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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얼 리조트 '에덴낙원'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
에덴, ‘기쁨’이란 뜻의 이 말에 삶과 죽음의 의미가 공히 담겨 있다는 것이 새삼 놀랍다. 이천의 야트막한 산자락에 담박한 납골당과 예배당이 ‘에덴낙원’이란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조만간 납골당 앞으로 호텔이, 화분과 장화와 엽서도 파는 가든이, 그 땅의 채소로 요리하는 레스토랑이, 라이브러리 카페가 들어설 것이다. 사자가 어린 양과 뛰놀듯 삶과 죽음이 함께 뛰노는, 그야말로 기쁨의 낙원.

부활소망가든. 연못 가운데 유수식 자연장 시설에서 화장한 유골을 3단계로 안전하게 거른 후 3천 평의 가든으로 흘려보낸다. 조각가 박장근의 ‘긍휼을 구하는 기도 손’이 부활과 남은 자들의 소망을 담고 있다. 
밉게 추운 날은 아니었으나 바람이 찼다. 누군가의 또 한 생이 끝났고, 창밖 붉은 나뭇잎도 그 살과 뼈를 버리며 같이 생을 마감했다. ‘무거운 짐 벗었으니 얼마나 가볍고 개운할까. 아니다, 생이 어떻게 왔는데 이렇게 쉬이 갈까.’ 늦가을 나무처럼 축축한 생각에 젖어 앉은 이곳은 납골당이다. 인생이 다 타고 난 뒤 작은 항아리 속 뼛가루로 눕는 납골당. 겨울의 초입, 찬 바람에도 이곳은 춥지 않다. 납골당 위엔 담박한 예배당이 있고, 예배당 앞엔 측백나무로 둘러싼 나무 울타리(헤지hedge)가 있고, 그 안엔 유골을 뿌리는 묵묵한 연못과 하늘을 우러른 손 조각이 있다. 모두 고요하고 평안하다. 몸도 마음도 춥기가 삼척 냉돌인 데다 괴괴하기까지 한 여느 납골당과는 사뭇 다른 기운이다. 좀 거닐고 싶고, 얼마간 앉아 있고 싶다. 밥 먹고 그릇 치우듯 뚝딱 항아리 속에 욱여넣고 돌아온 것 같아 기일마다 밀려오는 죄스러움도 좀 감해질 것 같다. 여기, 인생이 다 타고 난 뒤 홀가분하게 떠나간 가족의 작은 방들, ‘에덴 (그 뜻이 바로 ‘기쁨’) 낙원’.

봉안당 시설인 부활소망안식처. 바닥의 간접조명, 대리석 또는 브론즈로 마감한 벽감이 밝고 단정한 분위기를 더한다. 조각가 박장근의 성경책 조각은 화룡정점. 
“사랑하는 이가 묻힌 곳인데도 납골당이나 묘지는 낯설어요. 몇 해를 가도 여전히 낯설죠. 무덤이 삶의 종결지라 생각하니 그래요.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이별이 확인되는 슬픔과 어둠의 장소라고만 생각하죠. 천국의 소망이 있는 이들에게 죽음은 천국으로 가는 새로운 시작이에요. 그들의 죽음이 구별되듯 그들이 묻히는 곳 역시 구별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에덴낙원을 계획했지요.” 기독교 신앙을 지닌 디자이너 최시영 씨가 이곳을 설계했다. 기독교 교단이 연합해 “어둡고 두려운 죽음의 공간을 부활체에 합당한 밝은 안식처로 변화시키겠다”는 의지로 만들어가는 곳이다. 하지만 종교라는 집합 연산에 속하지 않는 이라도 에덴낙원이 건네는 죽음과 장례 이야기에 귀 기울일 가치는 충분히 있다. 죽음은 삶과 마찬가지로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며, 언제든 나와 내 가족의 친구가 될 것이므로, 내일과 내생 중 내생이 먼저 찾아올 수도 있으므로. 죽음과 다정해지는 법, 이 난문제 앞에 세 가지 이야기를 건넨다.

먼저, 오래도록 죽음을 명상한 후 2012년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서 자신의 가상 장례식을 축제처럼 시연한 헤어 스타일리스트 이상일 씨의 이야기다. “삶과 죽음이라는 건 어떤 순서에 의해 수억만 년 동안 왔다 가고 또 왔다 가는 것, 탄생이라는 건 생존하기 위한 싸움의 시작, 죽음은 다싸워 비로소 승리와 자유를 얻었다는 의미다. 누군가 죽는다는 건 승리를 얻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 아닌가. 그 회귀의 현장을 우린 축하해주어야 마땅하다.” 그리고 또 하나, 생사학을 처음 만든 퀴블러로스Kubler-Ross가 죽음을 앞둔 어린아이에게 들려준 이야기. “우리 몸은 번데기와 마찬가지야. 죽으면 영혼은 육신으로부터 벗어나 나비처럼 예쁘게 날아서 천국으로 날아간단다. 죽음은 결코 끝이 아니야. 천국에서 만나자, 안녕.” 세 번째는 오래 앓다 떠난, 개신교 성직자였던 외종사촌의 마지막 이야기. “어쩌면 죽음이라는 건, 뜨거운 태양을 너무 오래 바라보다가 마침내 서늘하고 어두운 방 안에 들어섰을 때 느끼는 안도감 같은 것이 아닐까?”


모든 것은 밭에서 시작되었다
저 이슬의 세상을 놓치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못난 자식들을 보듬는 ‘아버지’가 예배당에 계신다. 우린 그곳에서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나날을 위로받는다. ‘부활교회’는 누구든지 찾아와 묵상하고 기도할 수 있는 곳이자, 고인과 유족을 위한 작은 예배당이다. <성경> 대신 유분함이 강대상(설교를 하는 대臺)에 놓인 곳. 죽음을 새로운 여행으로 받아들인 이들이 이곳에 모여 새로운 길을 위한 환송 예배를 드린다. 목구조 틀로 만든 지붕은 하늘에서 보면 십자가 형태이며, 공간의 큰 평면도 십자가 형태다. 보령 태생인 보령석, 징크 패널이라는 금속 지붕재, 목재만으로 공간을 담담히 마감했다. 부활교회 양쪽 벽으로는 수크렁(볏과의 풀)만이 무뚝뚝하게 심겨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무심한 풀 몇 무더기가 공간의 방점이다.

(왼쪽) “이 작은 선큰이 공간에 큰 힘을 주는 건 바로 속새라는 풀 덕분이다. 내가 가든을 몰랐다면 이런 표현을 할 수 있었을까?” ‘밭 가꾸는 디자이너’ 최시영 씨의 말이다. (오른쪽) 부활소망안식처에서 측백나무 울타리로 둘러싸인 부활소망가든을 조망할 수 있다. 
부활교회 아래에는 봉안당 시설인 ‘부활소망안식처’가 자리한다. 유럽의 오랜 성당밑에 사제들의 묘가 놓인 것처럼 교회 아래 유골이 묻히는 것이다. 스물여섯 개의 홀은 서로 막힌 듯 뚫려 있고, 어느 홀에서도 각각의 선큰가든을 바라볼 수 있다. 최시영 씨는 ‘외진 데 없이, 소외되고 멀어지는 느낌 없이, 모든 곳이 밝게, 어디서든 자연을 볼 수 있게’ 공간을 매만졌다. 혼잡한 유리 벽감 대신 천연 대리석과 브론즈로 벽감을 마감하고 고인이 좋아하던 <성경>구절을 새겨 넣게 했다. 지하 층도 트래버틴(백색 또는 우윳빛의 석회암), 보령석, 자갈돌 그리고 조각가 박장근의 조각만으로 담담히 마감했다. 그 사이사이 작은 선큰에 아이비과의 덩굴식물과 속새(상록 양치식물)를 심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선큰을 크게 만들 수 없었어요. 나무를 심자니 실내에 그늘이 질 것 같고요. 습기와 그늘을 좋아하고, 겨우내 파랗고, 햇빛을 받으면 굉장히 예쁘고…. 속새만 한 게 없겠다 싶었죠.” 그 풀 몇 무더기는 이 음전한 공간의 종지점이 되었다.

부활소망안식처 앞으로는 푸른 잔디와 연못, 조각가 박장근의 ‘긍휼을 구하는 기도 손’ 조각이 놓인 ‘부활소망가든’이 자리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시편 23편 1~2절). 이곳은 화장한 유골을 유수 시설을 통해 뿌려 안장하는 자연장 시설이다. 물로, 돌로 뿌린 유골이 마침내 흙으로, 에덴낙원으로 돌아간다는 부활 메시지가 담겨 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세기 3장 19절). 그리고 이 안식의 공간을 두르고 있는 건 측백나무 울타리다. 삶과 죽음, 영원히 사는 것을 오롯이 묵상하도록 돕는 가장 적절한 도구.

봉안당의 면적을 일부 포기하면서 만든 선큰과 회랑을 통해 어디서든 자연을 관조할 수 있고, 외진 데 없는 공간이 되었다. 
말 그대로 이 모든 것은 ‘밭’에서 시작되었다. 최시영 씨는 자신을 “밭 가꾸는 디자이너, 농사짓는 건축가”라 말한다. 젊은 시절 사업의 어려움을 겪을 때 경기도 광주의 아버지 땅에서 농장 관리인을 하며 소도 키우고 각종 작물도 길렀다. 이후 15년째 놀리던 그 땅을 3년 전부터 자연 재배 계몽가 송광일 박사(2015년 2월호 <행복>에서 소개)의 가르침대로 비료도 퇴비도 주지 않고, 경운(땅을 갈아엎는 것)도 하지 않으며 땅심을 키웠다. 주말이면 뿌리 식물처럼 그 땅에 꽂힌 채 꽃식물도 식용식물도 심었다. 가느다란 속새가 실은 얼마나 내실 있는 녀석인지, 수크렁의 생존력과 번식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하나하나 익혀갔다. 그리고 그렇게 농사지으며, 숱한 생명을 죽이고 살려가며 깨달았다. 가느다란 팔에 다리 휘청거릴 정도로 주렁주렁 열매 맺게 하지 않는 일, 몇몇은 비바람에 뚝 떨어져 배고픈 벌레도 먹게 하고 씨만 남기고 그 자리에서 썩게 하는 일, 그게 자연의 순리이자 인생의 순리임을.

고인이 좋아하던 <성경> 말씀이나 찬송가 가사를 새겨 신앙의 유산을 묵상하게 한 벽감.
그의 전적을 아는 이라면 에덴낙원의 모든 것이 “밭에서 시작되었다”는 말을 제대로 이해할 것이다. 그가 가로수길에 만든 정원 카페 ‘스쿱가든’, 비닐하우스를 디자인 모티프로 논과 밭 사이에 지은 ‘알렉스 더 커피’, 팜 투 테이블 콘셉트를 성공적으로 보여준 전경련회관의 ‘더 스카이팜’을 아는 이라면 말이다.

그리고 납골당 앞 호텔
이 겨울이 끝나기 전, 부활소망가든 앞쪽으로 에덴파라다이스 호텔이 들어설 것이다. 일흔세 개의 객실이 있고 세미나 홀과 연회장을 갖춘 공간이다. 호텔 앞으로는 3천여 평의 에덴 가든과 라이브러리 카페, 레스토랑이 자리 잡게 된다.

봉안당 시설 위층의 부활교회는 누구든지 찾아와 묵상하고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이자, 고인과 유족을 위한 예배 공간이다. 징크 패널로 마감한 외벽을 따라 수크렁 무더기가 무심한 듯 풍성하게 심겨 있다.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나누는 대신 모두를 하나로 이어주는 공간이길 바랐어요. ‘여기서 우리 엄마와 차 마셨는데’ ‘글라스 하우스의 꽃이 하도 예뻐 우리아빠 사 드렸는데’…. 이렇게 생전에 고인과 함께 거닐고 머물던 추억과 사색의 공간이 되겠지요. 이 모든 걸 가능하도록 만드는 게 정원이에요. 십자가를 닮은 정원, 물이 흐르는 정원, 사색의 정원, 기도자의 정원, 키친 가든, 키즈 가든이 3천 평에 펼쳐져요. 그 정원은 생전에 함께 머물며 삶을 성찰하고 기억을 채워가는 곳, 고인이 그리울 때 찾아가 영혼을 정화하고 세상의 잡음에서 자
유로워지는 곳이 되겠지요. 납골당 앞 호텔, 납골당 앞 레스토랑이라는 개념에 놀라고 반대한 이도 많았어요. 전례도 없고, 아마 세계 최초일걸요. 하지만 난 확신했고 추호의 망설임이나 두려움도 없었어요. 흙의 힘, 정원의 힘을 믿으니까요.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세상, 사색이 필요한 세상이잖아요. 반려 식물 문화라는 게 생길 정도로 위로가 필요한 시대고요. 무엇보다 죽음은 영혼이 육신의 옷만 벗는 것이니 마냥 두려워하거나 꺼릴 필요가 없다는 걸, 이별이 아니라 환송의 마당이라는 걸 사람들이 차츰 알아가니까요.”

나무 울타리로 아늑하게 둘러싸인 가든, 교회, 봉안당 시설이 ‘에덴낙원’의 현재다. 그 앞으로 호텔, 3천 평의 가든, 레스토랑, 라이브러리 카페 등이 조만간 들어설 예정이다. 
최시영씨의 뜻에 동의한 외식 디렉터 노희영 씨, 조선호텔과 팔래스 호텔의 총지배인, 남해 사우스케이프의 대표를 거친 이종배 씨가 에덴낙원을 함께 만들고 있다. 시기와 질투가 없고 갈등과 아픔이 없으며 배고픔과 헐벗음이 없는 곳, 신성과 인성이 조화로운 그곳이 에덴동산일 것이다. 우리 모두 기쁘게 쉬러 가고 싶은 곳, 이건 에덴낙원의 실험이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할 것이다. 산 자도, 죽은 자도 “저기가 어디야? 아름답구먼. 나 이제 급히 감세” 말하게 되는 곳.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게 될 우리의 그곳.
주소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서이천로 449-81 문의 031-645-9191


글 최혜경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