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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생태원 최재천 원장 알면 사랑한다
국립생태원 초대 원장 최재천 교수의 임기가 올 10월에 끝난다. 자신이 밑그림을 그리고, 지난 3년간 불철주야 성심으로 노력하며 이끈 작은 지구, 국립생태원을 떠나는 소감을 묻자 그는 대답에 앞서 후련한 듯 맑게 웃었다.

허브 향 산뜻한 지중해관의 바오바브나무 앞에 선 최재천 원장. 줄기가 술통처럼 생긴 바오바브나무는 수령이 5천 년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중해성 기후 지역은 지구 육지 면적의 약 1.7%에 불과하지만, 전 세계 식물종의 약 25%가 서식하는 생물 다양성의 보고다.
“컨트리 가수 케니 로저스Kenny Rogers가 부른 ‘더 갬블러The Gambler’라는 노래가 있어요. 도박사는 언제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 할지를 알아야 한다는 내용이지요. 누구나 떠날 때를 알아야 합니다. 제겐 그때가 바로 지금이에요.” 충남 서천에 자리한 국립생태원, 키보다 훌쩍 크게 자란 갈대숲 사이를 걸으며 최재천 원장은 곧 끝날 자신의 임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최 원장은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인문학자 도정일 선생과 함께 쓴 <대담> 등의 베스트셀러 저자이자, 강연과 기고, 방송 활동을 통해 생태학자로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생태원 주변을 잠시 함께 걷는 동안에도 많은 관람객이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저를 알아보고 인사하는 분들께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생태원을 이렇게 아름답게 가꾸어주어서 고맙다는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꼭 이렇게 설명드리곤 했죠. ‘원래 이곳의 자연은 이렇지 않았고, 다 새로 조성한 것’이라고요. 이 일대가 모두 논밭이었습니다. 불과 6~7년 전에 조성한 습지 생태계가 이렇게 늠름해진 것이지요. 제 눈을 의심할 만한 엄청난 변화입니다. 우리가 조금만 보듬으면 자연은 무서운 속도로 우리 곁으로 돌아옵니다. 이곳에서 참 큰 걸 배웠지요.”

열대관 산책로. 국수 가락처럼 늘어진 것은 포도과 덩굴식물인 시서스의 공기뿌리다. 공기 중 수분을 알뜰히 이용하려는 열대식물의 생존전략. 유리창 안으로 전기뱀장어, 독화살 개구리, 멕시코 도롱뇽, 듀메링보아뱀 등 열대기후에서 서식하는 동물을 만날 수 있다.
환경의 주인, 생태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이곳에 오기 전 최재천 원장은 ‘하루에 30분을 내기 어려울 정도’로 바쁘게 지냈다.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교수로 재직하던 최 원장은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를 쓰고 번역하며 자연과 생태의 가치를 알리는 대중 과학자로서 연구와 집필, 강연을 겸하느라 흔한 학과장조차 맡아본 적이 없다. 그런 그가 3백 명 이상의 직원이 일하는 거대 조직의 행정을 총괄하는 수장을 자청해 맡은 것. 최재천 원장은 국립생태원과 함께한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운명’을 이야기했다.

Q 처음엔 원장 자리를 ‘온몸으로 거부’하셨다고 들었습니다.
60대로 접어들던 무렵이었습니다. 남들은 은퇴를 준비할 나이에 서울에서 세 시간 걸리는 서천을 오가며 3년 동안 수백 명이 일하는 조직을 처음부터 새로 만든다? 개인적으로는 굉장한 희생이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분의 말씀을 뿌리치지 못하고 초대 원장에 지원했지요. 내무덤을 내가 판 셈입니다.(웃음) 그래도 지금 와서 보면 잘 왔구나, 생각해요. 내 인생에 이렇게 열심히 일한 3년은 없었을 겁니다. 눈 뜨고 있는 시간 내내 생태원만 생각했고, 오로지 이와 관련한 활동만 했지요. 2년 연속 1백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찾아왔고, 연구 기관으로서 국제적 명성도 많이 쌓았습니다. 보람이 있죠.

Q 생태원이 어떤 의미였길래 그리 열심이셨습니까?
긴 역사와 인연이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 초대 환경부 장관이 이치범 씨였는데, 환경연합에서 함께 일한 적이 있습니다. 그분이 저녁 식사 자리에서 환경부 장관으로 있는 동안 뭘 하면 좋을지를 묻길래 국립 생태 연구소를 만들면 기초연구를 통해 환경문제를 많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지요. 환경부에 생태 연구 기관이 없어 아쉬웠거든요.

Q 환경과 생태는 어떻게 다릅니까?
<토지>를 쓰신, 지금은 돌아가신 박경리 선생님을 2002년에 처음 뵈었는데 그때 제게 이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당신은 환경부라는 이름이 싫다고. 이유를 묻자 환경은 ‘둘러싸고 있는 것’을 말하지 않느냐, 그 속에 살고 있는 주인이 중요한데 환경부는 인간과 동식물을 쏙 빼놓고 그걸 둘러싼 것들만 따지지 않느냐고 말씀하시더군요. 핵심을 기가 막히게 찌른 말씀이었어요. 생태학은 생물과 환경의 관계를 공부하는 학문이거든요. 이치범 장관 임기 중 충남 서천에서 큰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바로 옆 동네인 군산에 바다를 메워 새만금이라는 규모가 어마어마한 산업단지를 만들었는데, 여기엔 왜 아무것도 해주지 않느냐는 이야기였지요. 그때 정부에서 서천 군민을 이렇게 설득했습니다. 우리 갯벌은 더 이상 건드리지 말자. 대신 이곳에 환경부 주도로 국립생태원을 만들겠다. 환경을 보존하면서도 경제적 이득을 얻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실험해보자.

Q 전례가 없는 사업이었을 텐데요.
먹힐 리가 없는 이야기였죠.(웃음) 그래도 정부가 어떻게든 주민을 설득해낸 건 대단한 일입니다. 어느 날 신문을 보니 ‘국립생태원 건립 공청회’라는 공고가 실렸더라고요. 당시 한국생태학회 회장이던 저조차 진행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궁금해서 공청회에 갔더니 환경부 직원들이 깜짝 놀라더군요.(웃음) 약속이 있어 다 못 보고 중간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질의응답 과정에서 환경부가 그야말로 박살이 났다는 거예요. 준비가 미흡했던 거죠. 이틀쯤 지나 환경부 사람들이 찾아왔더군요. 저더러 처음부터 다시 국립생태원의 밑그림을 그리는 총괄 기획을 맡아달라는 거였어요. 그렇게 1년 동안 최선을 다해 계획을 짰습니다. 그 후 4대강 사업 반대 발언이 문제가 되어서 한동안 손을 못대고 있다가, 원장에 지원하게 되었죠. 이치범 장관은 생태가 아닌 철학을 공부한 분이었습니다. 식사 자리에서 제가 한 이야기를 듣고 국립생태원을 떠올렸을 거예요. 이곳을 기획하고, 초대 원장까지 한 건 어떻게 보면 운명이었죠.

다종다양한 선인장으로 가득한 사막관에서 만날 수 있는 검은꼬리프레리도그. 
개발 문화를 생태 문화로
국립생태원의 홍보를 담당하는 강수희 씨는 인터뷰 전 국립생태원을 안내하며 서천이라는 입지에 대해 “바다와 강, 산과 들이 만나는 최적의 장소”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립생태원 주변은 광활한 평지였다. 이곳의 입지에 대해 묻자 최재천 원장은 “다시 기획한다면 여기는 아니죠”라고 잘라 말했다. 최 원장은 늘 웃는 얼굴로 온화하게 말하지만, 상대방이 듣고 싶은 대로 이야기를 꾸미지 않는다.

Q 그렇다면 생태원이 들어서야 할 입지는 어떤 곳입니까?
설악산에 지어야죠. 한라산, 섬진강도 좋고요. 생태학 연구소의 입지는 생태적으로 가장 수려한 지역이어야 해요. 우리 연구원들은 생태학 연구를 위해 늘 어딘가로 가야 합니다.

Q 그래서 생태원의 전시 역할이 커진 건가요?
국립생태원이 이곳에 들어선 이유가 지역 경제에 보탬이 될 목적이었으니까요. 연구소가 경제 효과를 창출하는 건 수십 년 후의 일이겠지요. 기획 단계부터 전시와 교육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Q 서천 지역 경제에는 실제로 도움이 되고 있습니까?
최근 공주대학교에 용역을 주어 약식으로 파악한 것만 해도 최근 2년간 서천군에 음식점 2백50여 곳이 새로 생겼습니다. 지역민의 경제적 이득에 대해선 장기 조사가 필요하겠지만요.

Q 다른 지자체에서도 관심이 많겠습니다.
전국 지자체장만 스무 분 가까이 다녀갔습니다.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한 곳은 없지만, 다들 국립생태원이 어떻게 되는지를 지켜보고 있을 겁니다. 실내 전시 공간인 에코리움의 규모가 2만 1000㎡에 달하는데, 뒤쪽에 보면 더 넓은 재배 온실이 별도로 있습니다. 예산을 받느라 고생 많이 했죠. 관람객이 모르는 사이에 전시하는 동식물은 계속 죽습니다. 열대나 지중해 지역이 원산지인 희귀한 식물이 죽었다고 생각해보세요. 사오려면 기안 올리고, 예산 받고, 구입하고, 키우고… 몇 년이 걸릴지 몰라요. 그래서 죽은 식물 대신 구하기 쉬운 바나나, 파인애플만 심는 겁니다. 10년이 지나면 식물원 안이 온통 바나나로 가득 찹니다. 그렇게 망하는 거예요. 재배 온실에서 대체할 식물을 기르고 있어야 합니다. 새로운 종도 시험하고요. 연구 기능도 해야지요. 다른 지자체에서 이런 시설을 만들고 싶을 때 공급할 수도 있고, 도시화로 조경 수요가 폭발하는 중국 시장을 공략해서 수익을 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게 어렵게 설득을 했지요.

Q 전국 각지에 생태원 같은 시설이 들어서는 건 바람직한 일일까요?
대한민국처럼 국민이 똑똑한 나라가 전 세계에 없습니다. 머리도 좋고 공부도 많이 했지요. 10년 전만 해도 사후 매장이 사회적 문제였습니다. 저도 이대로라면 전 국토가 무덤이 될지도 모르니 화장해야 한다는 글을 썼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화장터가 모자랄 지경입니다. 일단 설득만 되면, 우리 국민은 빠른 속도로 변합니다. 학자로서 가장 큰 임무는 이 똑똑한 사람들에게 올바른 문화를 전파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개발 문화 국가였습니다. 토건 국가로서 문화적 흐름을 끊고, 생태 문화가 기본이 되는 국가를 만드는 것이 국립생태원의 역할입니다. 지난 3년간의 경험을 되돌아보면 희망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이 새로운 패러다임이 성공한다면 비슷한 시설을 여러 곳에 만들겠죠? 그러면 좋겠습니다.

흔들다리를 건너 전망대에 오르면 천장 높이가 30m에 달하는 열대관의 키 큰 식물을 조망할 수 있다. 
자연과 사람, 모두가 잘 사는 친환경
이번 <행복>의 ‘자연이가득한집’ 특별호를 준비하며 대체 ‘친환경’이 무엇일까라는 근본적인 궁금증이 생겼다. 친환경은 참으로 다양한 의미로 쓰이고 있었다. 과연 무엇이 지구환경과 생태계에 도움을 주는 것일까를 치열하게 고민하며 이 단어를 무겁게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그저 인간을 위한 것이었다. 피부에 자극이 없는 친환경 화장품, 새집증후군 없는 친환경 페인트…. 덮어놓고 과거의 방식을 따르는 것 역시 지구환경을 위한 일 같지는 않았다.

“지구 상에 인간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아마존 한복판에도 산성비가 내려요. 지금의 친환경은 사람이 모여 사는 도시 안으로 자연 생태를 끌어 오는 겁니다. 콘크리트 도시를 자연 생태 도시로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도 잘 살고, 자연도 잘 사는 것이 친환경입니다.” 


Q 생태학자로서 ‘친환경’을 어떻게 정의하십니까?
제주도가 국제도시를 표방하던 초창기의 일입니다. 기본 계획에 골프장 50개를 짓는다는 내용이 있었어요. 차를 몰고 가다 라디오에서 들었는데, 제주도청 국장이 나와서 진행자와 인터뷰를 하더군요. “국제도시 제주는 친환경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하셨는데, 골프장 50개는 환경에 문제가 되지 않습니까?” 묻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친환경 골프장을 짓겠다”고 답하더라고요. “친환경 골프장이 뭡니까?” 다시 물으니까 대답이 이랬습니다. “저희는 가장 좋은 환경에 골프장을 지을 겁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운전하던 차를 멈췄습니다.

이런 의견의 반대쪽 끝엔 “자연으로 돌아가자”며 문명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문명의 이기를 무슨 수로 버립니까? 과거 생태학자들은 아마존 우림 등 인간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연구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지구 상에 인간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아마존 한복판에도 산성비가 내려요. 이제는 인간을 포함한 환경에서 삶의 질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에 대한 연구를 해야 합니다. 지금의 친환경은 사람이 모여 사는 도시 안으로 자연 생태를 끌어 오는 겁니다. 콘크리트 도시를 자연 생태 도시로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도 잘 살고, 자연도 잘 사는 것이 친환경입니다.

Q 친환경적 삶을 살기 위해 가장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무엇일 까요?
책에 사인할 때 “알면 사랑한다”는 말을 늘 씁니다. 모르는 건 약이 아니라 낭패입니다. 속속들이 알고 나면 사랑할 수밖에 없지요. 자연을 모르는 사람이 자연을 파괴합니다. 포클레인으로 강 바닥을 헤집어놓으면 거기 사는 쉬리와 줄납자루, 피라미가 삶의 터전을 잃는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에요. 자연을 알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국립생태원에 전 국민이 다녀가면 좋겠다고 늘 말합니다. 여기 와서 생태에 대해 알고 나면 자연과 생태를 사랑하는 마음이 모두에게 퍼질 테니까요.

Q 일상에서 실천할 만한 친환경 생활법이 있을까요?
조금만 불편하게 살 각오를 하면 좋겠습니다. 8년 전 집 앞에서 쓰러져 병원에 갔습니다. 난생처음 종합검진을 받았는데, 의사가 운동 부족이라고 해요. 아무래도 시간을 낼 수 없어 고민하다 출퇴근길에 걷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하루에 7~8km를 걸었더니 일주일 만에 몸이 좋아지더군요. 내가 차를 안 타니 지구도 그만큼 건강해졌겠지요. ‘벌레 먹은 과일 주세요’라는 제목으로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제 글이 실렸습니다. 우리가 먹는 과일은 너무 예뻐요. 그게 문제입니다. 농약을 필요한 만큼만 쳐도 과일이 잘 자랍니다. 그런데 상처 하나 없는 과일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양의 살충제를 뿌려야 하거든요. 과일은 껍질이 가장 몸에 좋고 맛있습니다. 보기 좋은 과일은 농약 때문에 껍질을 못 먹죠. 벌레 먹은 과일은 대장금 과일이에요. 벌레가 독 있을까 대신 먹어준 겁니다. 그 부분만 살짝 베어내고 껍질째 먹으면 돼요. 소비자가 과일 가게에서 “벌레 먹은 과일 주세요”라고 말하면 상인들이 과수원에 그렇게 요청할 테고, 그러면 농부는 농약을 필요한 만큼만 쳐도 되겠죠. 조금만 불편함을 견디면 모두가 한층 좋아집니다.

습지생태원에서 바라본 에코리움. 맞은 편 갈대숲을 지나면 습지생태원의 연꽃과 부들, 용화실못의 철새, 금구리못의 개구리 등 다양한 동식물이 모여 이루는 생태계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안녕, 작은 지구
온대와 열대, 사막, 극지, 지중해성 기후 등 다섯 가지 기후대의 환경을 재현한 에코리움과 바깥의 습지, 숲에 이르기까지 국립생태원엔 총 5천4백여 종의 동식물이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인터뷰를 하기전, 최재천 원장은 학창 시절 은사 내외분을 모시고 생태원 곳곳을 구경시켜드렸다고 했다. 자기가 한 걸 자랑하는 아이처럼 흥분하며 이곳을 설명했다는 그. “아흔 가까이 되신 분들이 한 번도 안 쉬고 이곳을 다 도셨습니다. 걷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으셨죠. 알고 보니 수십 년 동안 두 분이 함께 거의 매일 1만 보를 걸으셨다는 거예요.”

Q 생태원의 어떤 공간이 가장 자랑스러우십니까?
열대관이 가장 좋죠. 제가 우리나라 학자 중 열대를 연구한 1세대일 거예요. 열대는 온갖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아름다운 곳이죠. 에코리움 안의 열대관은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좋습니다. 다양한 동식물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 오래 연구하면 그 속에서도 신기한 것들이 한눈에 보입니다. 열대 지방에 도착해서 공항 밖으로 나가면 뜨거운 공기덩어리가 입속으로 훅 들어와요. 양말을 뭉쳐서 입안에 집어넣은 것처럼 숨이 탁 막힌다고.(웃음) 그런데 나는 그 느낌도 너무 좋아요.

Q 관찰하기에 특별히 즐거운 동식물이 있나요?
동물 생태를 연구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팔이 안으로 굽습니다.(웃음) 저는 요즘 사막여우가 가장 좋습니다. 최근에 새 식구가 되었지요. 원장으로 부임하기 전엔 한동안 관여를 못 해서 처음에 들여온 동물은 이곳에 어떻게 왔는지 모르지만, 최근에 새 식구가 된 아이들에겐 다 사연이 있습니다. 동물 밀매가 심각한 문제입니다. 정상 경로로 들어왔다면 다시 돌려보내면 되는데, 밀매된 동물의 경우 갈 곳이 없습니다. 세계적인 멸종 위기종, 보호종이 한국에서 죽임을 당하는 거지요. 우리가 맡아서 길러보자, 생각했습니다. 사막여우도 그렇게 들여왔습니다. 열일곱 마리가 있었는데 여기 오는 과정에서 열두 마리가 죽었습니다. 온 후에도 한참을 격리해서 돌보았지요. 그렇게 다섯마리를 살려냈어요. 그중 한 쌍이 낳은 새끼 두 마리가 어미만큼 컸습니다. 야생동물을 포획해서 전시하는 기존 동물원은 없어져야 할 기관이지만, 이런 공간에는 동물이 있어야 사람들이 좋아하지요. 사연 있는 동물을 잘 보살펴 전시하고 있습니다.

Q 동물도 행복을 느낄까요?
그럼요. 사막여우는 원래 야행성입니다. 전시 동물로 어울리지 않아요. 처음 왔을 때는 너무 힘들어하면서 늘 구석에 숨어 있었어요. 적응을 마친 지금은 사람들 앞에서 스스럼없이 행동하고, 잠듭니다. 그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이 눈에 선해요. 사실 제가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내는 동물은 집에서 기르는 여덟 마리 강아지입니다. 아내가 저보다 동물을 열 배는 더 사랑하거든요.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키우고, 좋은 환경을 만들어놨는지요! 저희 집에 놀러 온 사람이 다 그럽디다. “팔자가 늘어졌구나!” 강아지들이 행복하다는 사실을 저희에게 계속 알려주면서 살아요. 그걸 보는 저 역시 행복하고요.

에코리움의 전시 공간을 돌아다니며 촬영을 하는 도중에도 최재천 원장은 관람객, 직원 한 명 한 명과 인사하며 그곳의 동식물을 두루 돌보았다. 그는 임기가 끝나면 자신의 부재로 엉망이 되었다는 학교 연구실로 돌아갈 작정이다. 최 원장의 독자로서, 그에게 글을 쓸 여유가 조금이나마 더 생겼다는 사실은 반가운 일이다. 그리고 그가 직접 밑그림을 그리고 지난 3년간 3백여 명의 직원과 함께 온 마음을 다해 구축한 작은 지구, 국립생태원의 풍요로운 생태계가 앞으로도 계속 안녕하길.


글 정규영 기자 사진 서송이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