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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부산비엔날레 폐허에서 예술을 꽃피우다
예술과 무관한 공간이 21세기 아트의 성지로 부상한 사례가 많다. 베니스 비엔날레가 열리는 ‘아르세날레Arsenale’는 버려진 조선소를 전시장으로 재탄생시킨 공간이고, 런던 테이트 모던 미술관 역시 2000년에 폐기된 화력발전소에서 현대 미술관으로 모습을 바꿨다. 국내외 재생 건축 붐이 한창인 요즘, 2016부산비엔날레가 이목을 끄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1960년대부터 2008년까지 고려제강의 와이어로프 생산 공장이던 부산시 수영구 망미동의 ‘수영 공장’이 지난 9월 3일 개막한 올해 부산비엔날레의 무대 ‘F1963’으로 변신했기 때문이다. 생산 공장이 시 외곽으로 모두 이전하면서 7년 넘게 와이어 창고로 사용하던 공장 터를 조병수 건축가가 2016 부산비엔날레를 위한 복합 문화 공간으로 레노베이션했다. ‘F1963’의 F는 ‘Factory’를, 1963은 고려제강이 지금의 터에 처음으로 공장을 지은 해를 의미한다. 지은 지 50년이 넘은 옛 공장의 외형을 유지하고, 내부를 용도별로 리모델링해 옛것과 새것을 조화시킨 ‘재생 건축’이다. 옛터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바닥은 조경석과 디딤돌로 재탄생했고, 공장 지붕을 받치던 나무 트러스truss는 관람객이 편히 쉴 수 있는 벤치로 다시 태어났다. 올해로 36년째에 접어든 부산비엔날레는 오는 11월 30일까지 열리며, 부산시립미술관(약 2천 평)과 F1963(약 3천 평) 전체 공간을 활용해 규모 면에서는 역대 최고다. 2년에 한 번 인종, 종교, 문화가 서로 다른 전 세계 수많은 예술가가 ‘미술’이라는 공통분모로 한자리에 모여 과거와 현재, 미래를 짚어보는 소통의 장인 비엔날레. 지난 9월 2일 하루 먼저 접한 부산비엔날레는 건축, 디자인, 영상, 설치, 회화, 조형 등 시각ㆍ촉각ㆍ후각ㆍ청각이 모두 어우러진, ‘혼혈하는 지구, 다중 지성의 공론장’이라는 주제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현장이었다. 부산시립미술관과 F1963에서 전시중인 전 세계 23개국에서 모인 1백20여 명 작가 중 꼭 주목해야 할 작가 10인의 작품을 엄선했다.

송기철 작가는 과거 미지의 이웃과의 분리를 가능케하고 사적 소유권을 지킬 수 있게 해주던 담벼락 위의 쇠창살을 재현함으로써 오늘날 영토와 영토 사이, 영토와 생명 사이, 생명과 생명 사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암시한다. 송기철, ‘이미 여기에 늘 평화롭게 존재한다’, 혼합 재료, 가변 크기, 2016 

다나 릭센버그, ‘Imperial Courts’
22년간의 흑백 드라마

다나 릭센버그, ‘Imperial Courts’ 1993-2015, 3 channel video, colour, sound, 69min., loop, 2015 
1992년 3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과속 혐의로 체포된 흑인 로드니 킹이 백인 경찰관 네 명에게 집단 구타당한다. 그리고 인근 주민이 이를 비디오로 촬영해 방송사에 제보하면서 LA 폭동이 촉발한다. 네덜란드 작가 다나 릭센버그의 흑백사진 작품과 영상 작업은 로드니 킹 사건이 발발한 시점 그가 로스앤젤레스를 여행하며 임피리얼 코트의 주민들과 맺은 관계를 통해 탄생한 작품이다. 작가는 1993년부터 2015년 봄까지 2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커뮤니티의 자화상을 기록하면서 파괴의 광경에서 벗어나 그곳 사람들의 일상적 삶을 담아냈다. 22년 전 만난 한 10대 흑인 소녀가 미혼모로 낳은 아들이 스무 살 청년이 되기까지의 오랜 시간 동안, 다나 릭센버그는 한 커뮤니티 안에서 일어나는 매일의 사소한 풍경과 극적 드라마를 수없이 오가며 ‘천사의 도시’에 살고 있는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라틴아메리칸의 생생한 얼굴을 꾸밈없이 기록했다.


침↑폼, ‘파빌리온’
망각에서 쌓아 올린 추모비

침↑폼, ‘파빌리온’, 종이학, 가변 크기, 2015
색색의 종이가 파헤쳐진 듯, 쌓아 올린 듯 거대한 동산처럼 쌓여 있다. 갖가지 색종이로 접은 종이학 사이로 언뜻 메모나 편지, 낙서처럼 보이는 종이들이 아무렇게나 헝클어져 있다. 그 한가운데로는 마치 유적지의 왕릉 내부에 들어가듯 허리를 굽혀 들어가볼 수 도 있다. 히로시마 원자폭탄 희생자들의 혼을 기리기 위해 매년 전 세계에서 보내오는 종이학을 모아 쌓아 올린 것으로, 히로시마 시에서 오랫동안 폐기하지 못하고 보관하던 것의 일부를 일본 작가 그룹 침↑폼이 작품에 사용한 것이다. 여섯 명의 작가로 구성한 침↑폼은 일본 전위미술을 다루는 이번 전시에서 가장 젊은 세대에 속하는 작가 그룹이다. 침↑폼은 패전 이후 시간이 흐름에 따라 히로시마 원폭에 대한 전 세계의 이목과 관심이 점차 사그라드는 것을 주목해왔다. 언뜻 예쁘게 쌓아놓은 색종이 언덕인 줄 알았던 이 작품은 결국 히로시마 원폭 희생자를 추모하는 거대한 종이학 무덤이었다.


조아나 라이코프스카, ‘아버지는 나를 그렇게 만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에 띄우는 편지

조아나 라이코프스카, ‘My father never touched me like that’, video, 10min., 52sec., 2014
중년의 여자와 노년의 남자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 누워 있다. 두 사람은 눈을 감고 뜨기를 반복하며 서로의 얼굴을 끊임없이 쓰다듬고 매만진다. 남녀 사이의 애정이라기보다 인간으로서 연민과 동정이 느껴지는 손길이다. 높은 천장에 매달려 관람객의 눈길을 잡아끄는 이 영상 작품의 주인공인 폴란드 작가 조아나 라이코프스카는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는 어릴 적에도 나를 만지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유년기에는. 그는 내 기저귀를 갈아주지 않았고, 초등학교 등교 첫날에 오지 않았다. 패혈증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그는 곁에 없었다. 그는 어머니를 떠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로 추방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시체를 수송 차량 밖으로 던졌다. 작가는 성인이 된 후에야 아버지에게서 그 시절의 씻지 못할 상처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어떠한 소리도, 음성도 없지만 바라보는 사람은 느낄 수 있다. 서로의 이마를, 코를, 뺨을, 턱을 매만지는 두 사람의 반복 행위 안에 부녀 사이에 오갈 수 있는 모든 감정이 녹아 있음을. 작가 노트 속 한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아버지를 만질 수만 있었다면 이 프로젝트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로 파이글, ‘Poppy’
장엄하고 우아한 꽃의 춤

조로 파이글, ‘Poppy’, tarpaulin, motor, steel, 750×950cm, 2012
마치 거대한 전등갓처럼 천장에 매달려 있는 붉은 방수 천이 서서히 펴지며 돌아가기 시작한다. 지름이 거의 10m에 달하는 거대한 천이 바람에 날리며 뱅글뱅글 돌아가는 모습이 흡사 바람에 날리는 횃불 같기도, 붉은 깃발 같기도 하다. 이 작품의 이름은 ‘양귀비’. 네덜란드 작가 조로 파이글의 설치 작품이다. 그의 작업은 로프에 전달되는 운동에너지로 반복되는 패턴을 만들어낸다. 펄럭이며 나부끼는 이 거대한 설치 작품에서 느껴지는 힘과 에너지가 언뜻 ‘양귀비’라는 제목과 어울리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천장의 오래된 나무 트러스 구조를 배경으로 계속되는 중력과 마찰력, 원심력이 결합한 이 거대한 꽃의 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반복 패턴의 운동에너지가 빚어내는 강렬한 우아함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다.



아이다 마코토,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한 기념비Ⅱ’
무의미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

아이다 마코토,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한 기념비’, 골판지, 가변 크기, 2008~2011 
“제 목표는 유럽 중세 시대 고딕 양식의 교회 혹은 고대 유물과 같은 돋을새김 조각들로 둘러싸인 장엄한 폐쇄 공간을 만드는 것입니다. 골판지를 선택한 것은 현대사회의 편재성, 가벼움, 비예술성을 표현하기 위해서입니다. 근대 이후로 예술이 버려두고 온 것을 되살리려고 하는 터무니없는 시도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일본 작가 아이다 마코토는 2008년부터 일본 전국의 여섯 개 미술 대학에서 각각 1개월 정도에 걸쳐 이 프로젝트를 공동 제작해왔다. 골판지를 이용해 ‘기념비’를 만드는 작업이다. 무의미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을 통해 작가가 표현하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한 기념비’는 앞으로도 작가의 뜻을 따라 습기, 곰팡이, 바퀴벌레, 쥐의 습격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채 방치된 상태로 시간과 함께 나이 들어갈 것이다.


김학제, ‘욕망과 우주 사이’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달콤하고 나른한 상상

김학제, ‘욕망과 우주 사이’, mixed media, HD video, sound, 1min. 23sec., 340×1000×500cm, 2016 
빛과 어둠 틈새로 새어 나오는 소음을 따라 배회하다 익숙한 음악에 이끌려 들어선 공간에는 김학제 작가의 작은 우주가 놓여 있다. 정면의 대형 스크린에는 광활한 우주 한가운데에 이름 모를 행성에서 쓸쓸히 거니 는 로봇과 인간이 스치듯 지나가고, 추락한 비행기를 연상시키는 모조 인공위성은 어두운 바닥에 묘지처럼 고개를 묻고 있다. 데이비드 보위의 ‘Space Oddity’와 10CC의 ‘I’m not in love’가 교차 편집되어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김학제 작가는 말한다. “데이비드 보위의 ‘Space Oddity’는 1968년 작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를 모티프로 삼은 앨범이지요. 1968년은 미국에서 처음으로 유인 우주선 아폴로가 달에 착륙한 해이기도 하고요.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대한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과 우주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싶었습니다.” 욕망과 우주 사이, 오지 않을 것만 같은 먼 미래에 대한 상상은 늘 우리를 매혹시킨다. 달콤하고도 나른하게.


팡리쥔, ‘2014-2015’
냉담한 시선으로 바라본 조국

팡리쥔, ‘2014-2015’, oil on canvas, 400×720cm, 2015
중국 현대미술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하나인 팡리쥔.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대머리’ 형상은 중국 현대미술의 가장 고전적인 기호가 되었고, 비평가들은 그의 작품 스타일을 ‘냉소적 사실주의’라는 말로 정의했다. 부산비엔날레에서 선보인 그의 최근 대표작 ‘2014-2015’는 가로 8m에 달하는 대형 회화 작품이다. 한가운데에 자리한 태양이 발산하는 강렬한 빛은 마치 원자핵이 방출하는 거부할 수 없는 에너지처럼 보이고, 그 주변의 무수히 많은 커다란 아기들은 관람객을 등진 채 태양을 향해 있다. 그 뒷모습은 침묵으로 일관하는 멍한 상태로 느껴지는데, 이와 같은 강렬함과 차분함이 공존하는 모순적 상황이야말로 팡리쥔의 최근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다. 과거 작품에서 대머리 형상이 주를 이룬 것에 비해 최근에는 아기 형상이 많이 나타나는데, 이는 2005년 딸의 탄생이 작가의 작품 스타일에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진양핑, ‘Balloon Hit NO.1, NO.2’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다

진양핑, ‘Balloon Hit No. 1, No.2’, painting on screen, mixed materials, 230×310cm, 2016 
회화도 설치도 아닌 이 독특한 작품을 만든 진양핑은 중국에서 거의 무명에 가까운 작가다. 눈·코·입이 없는 군중의 얼굴에 풍선이 붙어 있고, 관람객은 그 앞에 놓인 가짜 총으로 그 풍선을 쏘아 터뜨릴 수 있다. ‘총’ 은 권력과 힘의 상징이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우리 사회에서 총을 가진 자란 늘 독재자 혹은 권력자, 또는 ‘사회악’으로 분류되는 악인들이었다. 진양핑 작가는 그저 작품을 감상하러 온 관람객에게 총을 쥐여주고, 그 ‘힘’을 행사하도록 부추긴다. 윤재갑 전시 감독은 진양핑 작가의 이 작품을 두고 “독일 철학가 하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말한 ‘악의 평범성’과도 직결되는 개념입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진양핑은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는 현대사회를 이렇게 풍자했다. 과연 우리는 지금 누구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걸까?


폴케르트 드 융, ‘Operation Harmony’
우리들의 오래된 미래

폴케르트 드 융, ‘Operation Harmony’, styrofoam, pigmented polyurethane foam, pearls, 40×700×230cm, 2008 
아득히 먼 옛날, 우리 선조의 모습은 어땠을까? 교과서나 각종 서적을 통해 우리 선조인 ‘유인원’의 모습을 익히 알고 있으면서도 네덜란드 작가 폴케르트 드 융의 작품 앞에서 생각에 잠기고 만다. 그는 주로 스티로폼과 폴리우레탄 등 환경에 해로운 영향을 미치는 오염 물질을 이용해 설치 작품을 만든다. ‘Operation armony’는 받침대 없이 격자무늬 형태로 서 있는 분홍색 기둥에 앉고, 서고, 무릎 꿇고, 거꾸로 매달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공간을 가로지르는 유인원의 모습을 묘사하는데, 새까맣게 그을려 훼손된 시체마저 떠올리게 한다. 우스꽝스러우면서 동시에 그로테스크한 유인원 모습을 통해 작가는 자연의 순리와 순환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표현하고자 했다. 이 작품과 함께 소개하는 작가의 또 다른 작품 ‘Early Years’(2008), ‘Business as Usual’(2008), ‘Double Happiness’(2008)는 모두 찰스 다윈의 <인간의 유래>(1870)와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1942)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장샤오강, ‘혈연:대가족 3’
기억과 기록 사이

장샤오강, ‘혈연:대가족 3’, 캔버스에 유채, 190×150cm, 1996
중국 아방가르드를 대표하는 화가인 장샤오강. 그의 대표작 ‘대가족’ 시리즈는 기억과 망각 사이, 중국의 역사와 그 시절을 헤쳐온 중국인의 마음을 아련한 분위기로 보여준다. 문화혁명 시기 우연히 부모의 가족사진을 접한 작가는 그것을 계기로 중국인의 단체 사진, 가족사진의 성격을 들여다보고 ‘기록’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기억’하자는 태도로 작업을 시작한다. ‘대가족’ 시리즈 전체를 지배하는 회색빛 어두운 화면은 혁명 시기 개인의 억압된 상황을, 도식화한 초상화 같은 가족 이미지는 집단의 기억을 표현한다. 냉담한 분위기와 흐릿한 배경, 원근이 잘 느껴지지 않는 평면적 화법은 비현실적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주변의 흐릿한 배경에 비해 유난히 또렷하게 표현한 검은 눈동자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도드라짐에도 불구하고 텅 빈 공허마저 느껴진다.


글 유주희 기자 사진 이기태, 이창화 기자, 정푸르나 인턴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