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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은 신성하지 않다

한 여성이 창가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창밖에는 낡고 허름한 공장들 이 즐비하고, 주변은 뿌옇고 탁한 공기에 둘러싸여 있다. 맑고 푸른 하늘과 강하게 대비되는 풍경이다. 작은 테이블 위에 셔츠가 구겨져 있고, 실과 바늘 그리고 가위가 든 바느질 상자가 놓여 있다. 이 여성은 상류층 고객의 수제 옷을 만드는 재봉사로, 이 좁고 어두운 방에서 밤새 일한 뒤 아침을 맞은 모습이다. 제대로 쉬지도, 자지도 못하고 매일 기계처럼 일만 하는 그녀는 얼마나 고단할까. 아니, 힘들고 지칠 뿐 아니라 삶 자체가 생존을 위한 전쟁인지도 모른다. 힘주어 깍지 낀 손과 동그랗게 치켜뜬 눈이 하늘을 원망하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를 간절히 바라는 것 같기도 하다.

이 그림은 영국 화가 애나 블런던Anna Blunden(1830~1915)의 ‘재봉사’로 그녀가 핀즈베리 시티 로드에 살고 있을 당시 자신의 숙소에서 그린 작품이다. 18세기 중엽 영국 산업혁명의 핵심이던 섬유산업에서 여성의 노동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당시 여성은 가족을 부양하고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 공장노동자가 되어 매일 긴 시간 동안 열악한 환경에서 일했고, 공장이 아닌 집에서까지 추가 노동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종일 일해서 받는 노임이 남성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쳤고, 심하면 하루 스물두 시간까지 노동했다고 하니 일하는 기계나 진배없었다. 상시적인 고용 불안, 저임금과 임금 차별, 최장의 노동시간, 과중한 작업량에 시달리며 쉼 없이 일하고 또 일하던 그들의 삶은 피폐해졌고, 심각한 인권침해 속에서 일하다가 몇 년 안에 건강을 해치고 죽음에 이르는 것도 흔한 일이었다.

애나 블런던, ‘재봉사(셔츠의 노래)’, 캔버스에 유채, 47×39.4cm, 1854, 예일 대학교 영국미술센터
애나 블런던은 학대받는 재봉사의 모습을 그린 뒤 토머스 후드의 시 ‘셔츠의 노래’와 함께 자신의 작품을 영국미술가협회 전시회에 출품했다. 여성의 노동을 가시화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니는 이 그림은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노동문제를 환기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녀가 노동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진 것은 재봉업자였던 아버지의 영향도 컸지만, 화가가 되기 몇 년 전까지 가정교사로 일하며 겪은 본인의 경험이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이후 여성의 노동 여건은 영국의 대중매체 <펀치><픽토리얼 타임스> 등에 기사화되며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했고, 영국 의회 보고서의 안건으로 근로 조건이 상정되면서 노동환경 개선의 시발점이 되었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의 노동 여건은 어떤가? 여전히 여성들은 보이지 않는 성차별과 부당함을 이겨내며 일터에서 분투하고, 부모는 아이의 교육비를 위해 끊임없이 일하며 자신의 삶을 헌신한다. 장애인들은 전방위적으로 일어나는 다양한 유형의 부조리와 맞서 싸우고, 제3세계 아동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강도 높은 노동으로 학대받고 있다. 노인들은 일생 동안 나라와 자식을 위해 일한 결과로 빈곤과 병을 얻고, 청년들은 열정 페이라는 이름의 대가 없는 노동에 희생된다. 최장의 노동 과잉 상태를 당연시하고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 고된 노동에 지배받는 저녁 없는 일상, 이러한 상태를 지속하는 것이 열심히 살고 있는 것이라는 헛된 믿음…. 우리 사회에 “고생해야 성공한다”는 미신이 너무 깊고 광범위하게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른다. 고생 끝에 낙이 오면 좋겠지만 대개는 고생 끝에 고통만 남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노동은 삶에서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생계 수단이자 정서 안정의 기반이며, 자아실현의 도구이자 사회 기여 활동이기도 하다. 이제 노동은 좀 더 확장된 개념으로 정의되어야 한다.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제공하고 그 대가를 받는 임금노동은 합당한 보수와 함께 자긍심 형성에 긍정적 영향을 미쳐야 하고, 일터에서 겪는 감정 노동은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한 바람직한 관계 교류로 나아가야 하며, 생활 유지를 위해 가족 구성원이 담당하는 가사 노동은 협동과 이해라는 공동체적 연대의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일터와 가정의 양립, 일과 휴식이 공존하는 일상, 덜 치열하고 더 여유로운 삶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수이며, 우리는 지금 그 변곡점 위에 서 있다. 노동이 축복이 되느냐, 저주가 되느냐는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것이다. 세상은 변한 다. 하지만 저절로 변하지는 않는다.


글을 쓴 우지현은 그림 그리고 글 쓰는 사람이다. 개인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며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잡지, 웹진, 블로그 등 다양한 매체에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나를 위로하는 그림>이 있다.


글 우지현 | 담당 유주희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