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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황규백 차가운 동판 위에 조각한 기억

<행복> 8월호 표지 작가인 황규백 화백의 작품 한 점 한 점에는 소장하고 싶을 만큼 서정적이고 우아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1970년 이후 미국에서 활동하며 세계적 명성을 쌓아온 그의 작품을 아트 프린트로 만나보세요. 그림 전문 온라인 쇼핑몰 ‘그림닷컴’ 박소연 대표의 제안으로 황규백 화백이 특별히 프린트를 허락한 작품입니다. 좀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그림을 만나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은 2000년 영구 귀국한 후 정통 회화로 전향해 작업한 다섯 점으로, 소장 가치가 높을 만큼 제 색을 재현한 것이 특징입니다. 우리 집 거실에 걸거나,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해보세요!


“파리에 도착한 지 약 두 달이 지나니까 작품이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두 점 판매하니 한 달 살게 되더군요. 이후로 작품에만 매달렸지요.” 한국전쟁이 끝난 후 ‘그림 그리는 남자’ 황규백의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일을 해도 먹을 것을 얻기 힘들던 시절이기에 그림만 그려 먹고사는 일은 막막하기만 했다. 그가 서른네 살의 나이에 도망가듯 프랑스로 떠난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보다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먹고살기 위해’ 작업에만 몰두했다고 회상했지만, 오롯이 창작 활동만 할 수 있어 행복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당시 그의 주요 작업은 동판이나 아연판을 부식시켜 완성하는 판화였다. 에칭etching과 콜라그래프collagraph 등 음각판화(intaglio) 전반에 걸친 다양한 실험을 했다. 반복적 화학작용이 만들어내는 우연의 그림인 셈인데, 이후의 작품과 비교하면 훨씬 관념적이다. 그러던 중 그의 그림 인생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 운명적 만남이 있었다. 미국에서 온 화상이자 출판업자가 그의 전 작품을 구매하면서 미국에서 그림 작업을 하라고 권한 것이다.

“6개월 정도 고민하다가 파리 생활을 모두 정리하고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새로운 세계였어요. 파리에서 하던 그림 작업이 고리타분하게 느껴지더군요. 새로운 것을 시작하지 않으면 화가로서의 삶도 끝이라고 생각했어요. 뉴욕 시내에서 자동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베어 마운틴 공원을 자주 찾아 오랜 시간 작업 구상에 몰두하곤 했습니다. 잔디에 누워 상념에 빠진 어느 날, 강렬한 햇빛을 손으로 가리고 있다가 일어나려는데 손수건과 하늘, 잔디가 결합한 이미지가 강하게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왜 좋은지 모르겠는데, 그 이미지가 환영처럼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제 운명이 바뀐 순간이었죠.” 그렇게 완성한 작품이 황규백 화백의 대표작 ‘White Handkerchief on the Grass’다. 그는 유럽의 전통 판화 기법인 메조틴트mezzotint 기법을 독학으로 습득해 완성했다. “이 물건에 담긴 서정성을 표현하려면 메조틴트가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기법은 어울리지 않았어요. 메조틴트는 본래 전체 배경색을 검은색으로 하는 것이 전통 방식인데, 저는 그것이 싫어서 배경을 다시 긁어내는 작업을 했습니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나만의 방식’이다. 오랜 시간 일정한 압력으로 동판을 긁어내면 배경은 회색 계조의 부드러운 톤이 된다.

‘Three Stones’, 메조틴트, 30×34.5cm, 1981
그래서일까, 황규백 화백이 메조틴트 작업으로 완성한 판화는 모두 시적이고 우아하며 화사하고 부드럽다. 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물건의 조화와 그 전체를 지배하는 독특한 질감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황규백’만의 새로운 시각 장르다. 작업을 완성하기까지 치밀한 계산과 노동집약적인 작업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더욱 가치가 있다. 운 좋게 그의 작품에 열렬히 환호하는 화상을 만나 작품에만 전념할 수 있었고, 이 시기에 2백30여 점의 작품을 제작했다. 특히 1984년 사라예보 동계 올림픽 포스터를 위해 제작한 작품은 그가 국제적 판화가로서 입지를 다지는 계기가 됐다.

표지 작품 ‘Spool and Pencil(실패와 연필)’(메조틴트, 17×27.5cm,1983)도 그 시기에 작업한 작품이다. 반평생 고국과 가족을 그리워하며 산 황규백 화백은 그의 기억 속 단편을 수집하듯 하나씩 동판 위에 새겼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항상 제 머리맡에 앉아 바느질하던 모습이 떠올랐어요. 누구에게나 마음속 서랍에 간직한 기억들이 있잖아요. 안경, 편지, 실패, 연필 등 우연하게 수집된 물건에는 깊숙하게 박힌 그리움의 기억이 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7월 5일까지 열린 전시 <황규백: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황규백 화백이 60여년간 걸어온 길을 만날 수 있는 대규모 회고전이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2000년 귀국한 이후 최근까지 작업하고 있는 유화 작품을 볼 수 있었다. 다시 정통 회화로 돌아온 그는 기존 판화에서 만난 소재를 회화적 시선으로 다시 구현해냈다. 여든세 살의 나이지만 작업을 향한 탐구와 고민을 내려놓지 않는 그는 그야말로 타고난 그림꾼이란 생각이 든다. 새로운 영감을 얻기 위해 1년에 두 번은 꼭 장거리 여행을 떠난다는 황규백 화백. 그의 다음 작품이 여전히 궁금하다.

1932년 부산에서 태어난 황규백 화백은 1968년에 프랑스로 이주한 이후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프랑스, 미국, 이탈리아에서 판화가로 활동했다. 류블랴 판화 비엔날레(1979, 1981), 브래드포드 판화 비엔날레(1974), 피렌체 판화 비엔날레(1974) 등의 국제 판화제에서 수상했으며, 뉴욕 현대미술관, 파리 현대미술관,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 등 세계적 미술관에서 황규백 화백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2000년 영구 귀국한 이후 현재까지 서울에서 회화 작업을 하고 있다.

글 신진주 기자 | 사진 김동오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