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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을 거닐고 정원을 산책하는 수목원 화담숲
5월은 숲을 산책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다. 사람, 자연, 문화 중 가장 따스하고 가장 진중하게 우리 삶에 변함없는 휴식을 선물하는 건 오직 자연뿐.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이로운 자연을 선물하는 수목원 ‘화담숲’을 산책한 봄날 오후의 이야기.

지난 3월 21일 새 단장을 마치고 개장한 화담숲은 어린이와 노약자도 불편 없이 자연을 감상할 수 있도록 총 5km에 이르는 산책로 전체를 완만한 경사의 데크 길로 연결했다. 
새싹 사이로 바나나우윳빛 산수유와 개나리가 피고, 딸기우윳빛 벚꽃과 진분홍 철쭉이 흐드러지는 봄 숲. 그곳에선 자연의 이로움이나 휴식의 중요함 같은 말을 모르는 어린아이라도 바 나나처럼 딸기처럼 달콤한 숲의 즐거움을 맛본다. 마음결이 갈라진 어른은 어떤가. 푸른 산 능선에 엷은 하늘색이 펼쳐지고 소탈한 민들레와 소담스러운 목련, 풋풋한 들꽃과 고고한 매 화가 어우러지는 숲에서 여기저기로 분산되고 갈라진 마음결이 꽃잎처럼 살포시 포개진다. 그러니 숲으로 떠나는 봄 소풍은 아이에게나 어른에게나 설레고 즐거운 시간이다.

아이와 함께 가도 좋은 화담숲
봄 소풍이란 단어는 별일 없이 부는 봄바람 같지만, 현실에서 아이를 동반한 숲 산책은 노래 가사처럼 별일 많은 ‘벚꽃 엔딩’ 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걷기 싫다고 떼쓰거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라도 하면 목청 좋은 아이의 울음소리가 온 산에 만발할 것이니 말이다. 이런 걱정 때문에 이 화창한 봄에 숲으로 나들이를 가지 못하는 가족에게 ‘화담숲’이라는 아름다운 수목원을 추천한다. ‘정답게 이야기를 나눈다’는 뜻을 가진 화담和談숲은 LG상록재단이 공익 사업의 일환으로 곤지암 태화산 골짜기의 산자락을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가꾼 곳으로, 아이부터 노인까지 온 가족이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다.

우선, 화담숲은 중부고속도로 곤지암 IC에 가까이 있어 어느 곳에서도 짧은 시간에 닿을 수 있다. 거리는 가까워도 수목원의 생태계가 깊은 산처럼 청정하다는 것이 화담숲의 진정한 가치다. 1급수 계곡물에서만 사는 도롱뇽이 개울에 살고 사이좋은 원앙 부부 여러 쌍이 계곡을 찾아다니며 둘만의 신혼여행을 즐기는 맑은 숲에서 봄 햇살을 만끽하며 거닐 수 있다니! 이 감탄사에서 중요한 대목은 바로 ‘걷는다’라는 단어다. 젊은 연인은 물론 아이나 노인을 동반한 가족 등 어느 연령대의 사람이라도 편하게 걸을 수 있는 완만한 경사의 산책로가 입구에서 해발 330여 미터에 이르는 정상까지 숲 전체에 이어진다. 완만하게 굽이굽이 이어지는 데크 길에는 유모차와 휠체어도 무리 없이 다닐 수 있으니 아이가 유모차를 타고 숲 전체를 체험할 수 있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도 휠체어에 편안히 앉아 화담숲의 다채로운 정취를 오롯이 감상할 수 있다. 자연의 순리처럼 누구나 공평하게 즐길 수 있는 수목원을 만들고 싶었던 LG상록재단의 노력으로 화담숲은 이처럼 누구나 편안하게 청정 자연에서 힐링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었다.

1 화담숲의 봄에는 할미꽃, 은방울꽃 등 우리 야생화가 앞다투어 피어난다. 산책로 곳곳에 있는 안내판이 꽃과 나무의 이야기를 친절히 알려준다.
2 숲을 걷다가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담소를 나누며 휴식할 수 있는 쉼터.

서쪽 산책로를 오르는 모노레일
매표소 너머 화담숲의 상징물인 천년단풍(천년 동안 숲의 아름다움을 유지해 후대에 물려주자는 뜻으로 이름 붙였다)을 지나면 수목원의 서쪽 능선을 따라 정상까지 올라가는 숲 속 산책길이 펼쳐진다. 너른 수목원이지만 어른이 보통 걸음으로 슬렁슬렁 걸어도 한 시간 반 정도면 전체를 둘러볼 수 있다.물론 곳곳에 마련된 쉼터와 벤치에서 준비한 도시락을 먹거나 개울에 발을 담그며 쉬엄쉬엄 보내면 반나절도 금세 지나간다. 숲의 주인은 자연이고 시간의 주인은 자신이니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은 온전히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

완만한 데크 길 덕분에 산비탈의 경사가 느껴지지 않는 산책로라도 걷기가 어려운 사람이 있을 수 있으므로 화담숲은 국내 수목원 최초로 입구에서 정상까지 모노레일을 운행한다. 유모 차와 휠체어를 실을 공간과 좌석이 마련된 이동 수단으로, 곤지암 일대의 산세를 훤히 조망하는 움직이는 전망대 역할도 한다. 따라서 화담숲을 자주 찾는 사람들은 모노레일을 타고 정상까지 갔다가 내려온 후 입구에서 다시 걸어 올라가거나 모노레일을 타고 정상까지 가서 걸어서 내려오는 등 자신만의 방식으 로 수목원 산책을 즐기기도 한다.

1 화담숲 입구. 연못엔 여러 쌍의 사이좋은 원앙이 살고, 방문객이 수목원의 전경을 즐기며 휴식할 수 있는 카페와 노천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다.
2 봄철의 벚꽃 향연.산 정상으로 올라가면 새하얀 벚나무 뒤로 산등성이 아련히 드리워지는 장관이 펼쳐진다.

서쪽 산책로에서 동쪽 테마 정원으로
화담숲의 산책로는 혹여 방문객이 많은 날에도 혼잡스러움 없이 한적하고 여유롭게 걸을 수 있도록 서쪽에서 산을 올라 동쪽으로 내려오는 관람 코스로 조성했다. 모노레일 탑승장이 있는 서쪽 숲 속 산책길은 태화산 골짜기 숲의 환경을 보전하고 최소한의 사람 손길만 더해 순수한 자연을 경험하게 한다. 반면 정상에서 동쪽 아래로 내려오는 테마 정원 코스는 수종에 따 른 특별한 정원으로 조성해 자연 생태계를 좀 더 아기자기한 경관으로 즐길 수 있다. 또 정상에는 습지와 철쭉 단지를 따라 2km가량 산길을 걷는 힐링 숲길이 두 코스로 나뉘어 있어 산책보다 산행을 더 좋아하는 사람에게 적합하다.

숲 속 산책길에선 가장 먼저 시원한 그늘에 자리 잡은 솔이끼, 돌솔이끼, 비꼬리이끼 등의 이끼류 식물이 인사를 건넨다. 평소 잘 보지 못하던 이끼 식물이 내는 다채로운 채도의 초록빛이 생경하고 신비로운 기분까지 느끼게 한다. 이곳은 수목원 내 스무여 개의 테마원 중 하나인 이끼원. 이윽고 나타나는 것은 계곡을 가로지르는 멋진 나무다리. 맑은 물이 콸콸콸 봄의 교향악처럼 흘러가는 계곡 위로 뻗어있는 약속의 다리 난간에는 화담숲에 찾아온 가족과 연인이 사랑의 자물쇠를 걸어놓아 눈길을 끈다. 조금 더 올라가니 이번엔 산수유나무가 축제를 벌이듯 노란빛으로 터져 나와 공기 중으로 번져간다. 그리고 이내 벚꽃, 철쭉, 진달래를 만나 세상이 온통 분홍빛이 되었고, 고상한 매화나무 군락이 있는 탐매원에 이르러서야 이 봄빛의 팡파르가 한층 차분한 색감으로 가라앉는다.

이제 곧 매실, 사과, 배 등 과실수에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면 아이들의 체험 학습장이 될 탐매원을 지나 하얀 자작나무 8백여 그루를 심은 이국적 산책로가 이어진다. 물레방아 옆에서 계곡 이 만든 천연 전기로 휴대폰을 충전하고, 발 담그는 계곡에 맨발로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며, 자작나무 사이에 놓인 돌탑에 소망을 담은 조약돌을 올려 소원을 빌면서 천천히 걸었는데도 40여 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벌써 정상에 다다랐다.

발에 묻으면 향기가 1백 리까지 난다고 해 백리향이라 불리는 꽃을 발아래 두고 걸어서인지 정상에서 내려오는 걸음마다 꽃향기가 가득하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수종인 미선나무는 잎이 임금이 더위를 식히려 부치던 미선 부채를 닮아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꽃잎이 팥을 닮은 팥꽃나무는 완도 지방에서 조기가 많이 나는 시기에 꽃이 피니 별명이 ‘조기 나무’다. 또 우리나라에서 품종 개량을 해서 외국에 수출했다가 역수입하는 미스김 라일락은 품종 개량 담당자가 미스 김을 열렬히 사랑해서 하필 이름이 미스김라일락이 되었다. 이처럼 재미난 이야기도 산책길에 곁들여진다. 다른 수목원과 달리 화담숲에는 주요 지점마다 식물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안내 표지판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자연 정보도 얻을 수 있어 산책이 더욱 즐겁다.

1 입구의 카페를 비롯해 수목원 숲과 계곡, 연못 곳곳에 벤치, 원두막, 쉼터 등이 있어 도시락을 먹거나 한가롭게 휴식을 즐길 수 있다. 
2 청정한 자연환경 덕에 화담숲 곳곳에 1급수 계곡이 흐른다. 비가 많이 오면 알을 한곳에 모아서 낳고 맑은 날이면 알을 분산해 낳는 천연 기상 캐스터인 도롱뇽과 각종 동식물이 계곡에 서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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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와 노약자를 배려해 운영하는 모노레일은 정원이 스무 명으로, 유모차나 휠체어를 실을 공간과 좌석이 마련되어 있다. 

수국 만개하고 반딧불이 떠다니는 테마 정원
테마원은 숲의 환경을 이용해 방문객에게 특별한 볼거리를 선보인다. 단풍나무원은 여름에 그늘을 만들고 가을이면 붉은색의 향연이 펼쳐지도록 정읍에서 가져온 내장 단풍나무를 심어 나무 터널을 만들었다. 곧은 나무 대신 특이한 모양으로 가지가 서로 얽히면서 자라는 독특한 수종을 모아놓은 특이형태나무원은 아이들이 이상한 나라에 온 듯 신기해하며 나뭇가지를 만지고 두드려보는 숲 속 유치원 같다. 초여름이 되면 계곡을 따라 탐스러운 수국이 신부처럼 피어나고, 참나리와 돌단풍이 들러리를 서는 수국원은 여성 방문객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다. 또 이 계곡은 요즘 시골에서도 보기 힘든 반딧불이가 대거 서식하는 반딧불이원으로, 어두운 계곡에 반딧불이가 작은 별처럼 떠다니는 장관이 연출되는 초여름밤에는 야간 개장을 하고 반딧불이 축제를 벌인다. 그 광경에 아이보다 어른이 더 놀라고 좋아해서, 해가 갈수록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방문객이 늘어나 여름날 화담숲에는 늦은 밤까지 생기가 넘친다.

하하호호 이야깃거리가 마를 틈이 없는 테마원 산책은 돌담 사이로 매화나무, 앵두나무, 살구나무, 감나무가 드리워져 옛 시골집을 떠올리게 하는 추억의 정원에서 마무리된다. 고향 마을의 추억을 가슴에 간직한 노인에게도, 엄마 아빠의 설명을 들으며 역사에 빠져드는 아이에게도 사진 촬영 장소로 인기다. 화담숲에서 맑은 공기를 음미한 시간, 떠나는 마음이 아쉬워 입구의 노천카페에 앉아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시인의 시처럼 심리학자의 조언처럼, 먼 산이 나를 보고 내가 먼 산을 보는 사이 어느덧 일상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자신을 돌아보는 마음의 여운이 느껴진다. 이 봄에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아름다운 숲,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열린 숲을 만나게 되어 다행이다.



글 김민정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