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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 따라 길 따라 코리안 누들 로드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희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겨울밤 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 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이 그지없이 고담 姑談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 - 백석의 ‘국수’ 중
지난해 봄 KBS의 다큐멘터리 <누들 로드>를 연출한 이욱정 PD와 함께 ‘누들로드에서 뽑은 국수’ 칼럼을 진행하면서,우리나라의 지역 국수를 전부 모으면 흥미롭겠다는 얘기를 나누었다. 그로부터 1년 6개월이나 지난 지금에야 비로소 ‘코리안 누들 로드’를 소개하게 됐다. 국수만큼 적응을 잘하는 음식이 또 있을까? 국수라는 게 마치 흰 도화지 같아서 어디에 가도 그 지역의 환경과 상황에 맞게 변화하고 흡수되며 뿌리를 내리고 만다. 그래서 우리나라 역시 ‘국수’라면 어느 지역 하나 빠지지 않고 할 얘기가 많다.
송나라 사신인 서긍 徐兢이 지은 <고려도경>(1123년)에 “고려는 밀이 적어 화북에서 들여온다. 따라서 밀가루값이 배우 비싸서 성례 成禮 때가 아니면 먹지 못한다. 10여 가지 식미 食味 중 면식 麵食을 으뜸으로 삼는다”는 구절이 나온다. 이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 국수가 전래된 것은 송나라로 유학 간 고려 승려들에 의해서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밀가루는 조선시대에도 귀하고 비싸 오래된 음식 책에는 밀가루보다 메밀로 만든 국수가 훨씬 많이 등장한다.
국수는 그 지역에서 가장 잘 자라고 구하기 쉬운 재료로 만든다. 춥고 척박한 북쪽에서는 메밀로, 따뜻한 남쪽에서는 밀가루로 면을 뽑고, 고명과 육수 재료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고향이 북쪽인 사람들은 추운 겨울 뜨거운 아랫목에서 이가 시리도록 찬 동치미 국물에 메밀이나 감자녹말로 만든 냉면을 말아 먹고, 남도 출신은 더운 여름에 뜨거운 닭국에 호박을 썰어 넣은 제물칼국수나 장국물에 끓인 온면을 땀 흘리면서 먹었다.
지역의 토속 국수와 유명한 국수를 따라 길을 나섰다. 맛있다고 소문난 국수를 먹으러 나섰는데, 막상 맛을 보니 한 그릇의 국수 안에는 그 지역의 자화상과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게 아닌가. 삶의 희로애락이 담긴 ‘가늘고 긴 기묘한 음식’, 이제 그 애틋한 국수 이야기를 풀어놓으려 한다. 팔도 최강의 다채로운 국수를 맛보시라!

나그네와 장사꾼들의 허기를 달래주던
여주 천서리 막국수

경기도 여주의 천서리 川西理는 예부터 내륙 교통의 요충지인 이포나루가있던 곳이다. 조선시대 마포나루와 광나루, 여주의 조포나루와 함께 한강의 4대 나루 중 하나로 꼽힌 이곳은 황포돛배(황토물을 들인 돛을 단배)를 타고 한양과 강원도, 서해(인천)를 오가는 이들이 하루를 쉬어 가는 중간기착지였다. 따라서 이포나루 주변에는 자연히 음식점과 주막이 밀집했고, 화폐가 귀하던 시절 강원도 특산물을 취급하는 장사꾼들이 고기나 술과 메밀가루를 교환하면서 막국수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1991년 이포대교가 완공되면서 이포나루는 물론 주변 음식점까지 모두 사라졌지만, 고향을 떠나지 못한 사람들이 인근으로 옮겨가 형성한 천서리 막국수촌이 지금까지 그 명맥을 잇고 있다. 10여 개의 막국숫집이 모여 있는 천서리 막국수촌은 메밀 특유의 향과 맛은 살리면서 적당히 졸깃한 느낌을 내기 위해 메밀가루에 고구마 녹말을 15~20% 정도 섞어 면을 뽑는다(날씨에 따라 메밀 함량 비율이 결정된다). 손님이 자리에 앉으면 강원도 막국숫집 대부분이 메밀국수 삶은 물(면수)을 내놓는 것과 달리 육수를 내는 점도 이곳만의 특징이다. 양지와 사골을 푹 삶은 국물에 면수와 후춧가루, 소금을 넣어 간한 육수는 짭짤하고 칼칼하며 맛이 진하다.
천서리 막국수촌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집으로 이름난 ‘홍원 막국수’ 역시 일제강점기부터 이포나루에서 막국숫집을 하다 이곳으로 자리를 옮긴 집이다. 1만 5천 평 농장에서 직접 재배한 배(1년 내내 사용하기 위해 빌딩만 한 저온 창고를 갖고 있다)를 고명으로 듬뿍 올리는 집으로 유명하다. ‘스윽스윽 챙챙!’ 유기 사발에 담긴 막국수 비비는 소리가 리드미컬하게 울리는 이곳은 손님의 80% 이상이 비빔국수와 편육을 주문한다. 적당히 매콤 달콤한 양념, 채 썬 배와 오이, 김 가루, 참기름의 조화가 입맛을 당기기 때문이다. 유난히 비계가 쫄깃한 삼겹살 편육 한 점을 비빔국수에 올려 함께 먹는맛도 기막히다. 물국수는 동치미 국물에 쇠고기 육수와 배즙을 섞어 시원하게 내는데 깔끔한 맛을 즐기고 싶은 이에게 추천한다.

홍원 막국수 주소 경기도 여주군 대신면 천서리 606 전화 031-882-8259 주메뉴 비빔국수 6천 원, 물국수 6천 원, 편육 1만 2천 원

‘발그락 알그락’ 소리도 맛있는
대부도 바지락 칼국수

예부터 경기도 안산시 대부도와 화성시 제부도의 차지고 너른 개펄에선 바지락이 많이 났다. 하루 종일 개펄에 엎드려 바지락을 캔 아낙들이 뭍으로 나와 바지락 씻는 소리가 ‘발그락 알그락’ 나는 탓에 바지락 넣은 국물 요리를 ‘발그락탕’ ‘알그락탕’이라 불렀다는 이 지역 사람들은 국수를 만들 때 밑국물 내는 재료로 자연스레 바지락을 사용했다. 바지락이 듬뿍들어간 육수에 손칼국수를 넣어 끓인 바지락 칼국수는 이 지역의 별미로, 이젠 전국 팔도 어디에서나 맛볼 수 있는 칼국수의 대표 주자다. 세월이 흘러 강산이 변하고 바지락 수확량도 크게 줄었지만 여전히 대부도와 제부도엔 ‘원조’를 자처하는 바지락 칼국숫집이 몰려 있다. 그중 대부도에서 꽤 유명하다는 ‘26호 까치 할머니 손칼국수’집을 찾았다. 예상한 대로 바지락 칼국수가 세숫대야만 한 그릇에 푸짐하게 담겨 나오는 데 다른 곳과 달리 바지락이 껍데기 없이 살만 들어 있다. 주방에서 일하는 ‘까치 할머니’인 김영임 할머니의 딸에게 이유를 물으니 “보기엔 허전하지만 이렇게 해야 바지락을 더 많이 넣을 수 있고, 자칫 개흙이 들어가 국물 망칠 일도 없고, 먹기도 편하다”고 설명한다. 바지락을 넉넉히 넣은 해물 파전도 인심 좋게 쟁반만 한 접시에 담겨 나온다.

26호 까치 할머니 손칼국수 주소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북동 1161-17 전화 032-886-0334 메뉴 바지락 칼국수 7천 원, 해물파전 1만 5천 원

냇가에서 놀며 쉬며 먹던
옥천 생선 국수
요즘 참 드물게 쓰는 단어 중 천렵 川獵이라는 말이 있다. 한자처럼 ‘냇물에서 고기 잡는 일’을 뜻하는데, 여기에 ‘놀이’라는 말이 붙어 ‘천렵놀이’가 되면 ‘친구들과 냇물에서 물장구 치고, 놀이 삼아 고기를 잡은 뒤 매운탕을 끓여 먹는 즐거운 시간’이란 의미가 된다. 천렵놀이는 꽤 오래전부터 내려온 문화로, 조선시대 가사인 <농가월령가> 4월령에 ‘고기잡이하며 놀기 좋다. 잡은 생선을 너럭바위에 노구솥 걸고 솟구쳐 끓이니 맛이 최고’라는 내용이 실려 있다. 이 천렵놀이가 남긴 음식이 매운탕, 어죽, 생선 국수로 냇가에서 잡은 다양한 종류의 민물고기를 한데 넣고 끓여 그대로 먹으면 ‘매운탕’, 쌀을 넣어 죽으로 끓이면 ‘어죽’, 면을 넣어 삶으면 ‘생선 국수’가 된다. 이 중 처음 생선 국수를 팔기 시작한 식당이자, 충북 옥천의 별미를 생선 국수로 널리 알린 집이 바로 1962년에 문을 연 ‘선광집’이다. 선광집의 주인 서금화 할머니는 “매일 새벽 5시에 생선을 끓이기 시작해 6~7시간이 지나면 뼈와 살 이 모두 녹는다. 여기에 채소를 넣고 고추장 양념을 한 뒤 면을 넣어 삶는다”고 설명했다. 칠어, 누치, 붕어는 매일 들어가고 그때그때 잡히는 다양한 민물고기를 이용해 국물을 우리기 때문에 맛 또한 매일 다른데, 다양한 잡어가 많이 들어갈수록 맛이 좋단다. 벌건 국물에 소면보다 조금 굵은 중면 굵기의 새하얀 국수가 가득 든 생선 국수는 투박하고 정리되지 않은 모양새인 데다 고명이랄 것도 없어 눈으로는 맛을 가늠키 어렵지만, 먹어보면 깊고 진한 국물에 매료 되고 만다. 국수보다는 국물을 먹기 위한 음식으로 밥까지 말아 한 그릇 뚝딱 비우면 배가 든든해진다. 함께 즐기기 좋은 메뉴로 프라이팬 위에 피라미를 둥글게 둘러 담아 가볍게 튀긴 후 고추장 양념을 바른 도리뱅뱅이가 있다.

선광집 주소 충북 옥천군 청산면 지전리 162-8 전화 043-732-8404 메뉴 생선 국수 5천 원, 도리뱅뱅이(소) 7천 원

막국수 대중화에 한몫한
춘천 막국수
막국수의 ‘막’은 ‘마구마구’란 의미로, 보편적으로 만들어 먹던 국수를 뜻한다. 춘천은 ‘막국수’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지역이기에 ‘막국수 체험 박물관(033-250-4134)도 있고, 매년 ‘춘천 막국수·닭갈비 축제’도 열린다. 막국수가 발달한 만큼 그 종류도 물, 비빔, 온면, 쟁반, 메밀싹 막국수 등으로 종류도 다양하고 집집마다 맛 또한 천차만별이다.
그중 유명 막국숫집으로 꼽히는 ‘원조 샘밭 막국수’는 40년 전 최명희 씨가시어머니와 함께 문을 연 곳으로 현재는 막내아들 조성종 씨가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다. 이곳의 면은 메밀가루에 다양한 곡물 가루를 섞어서 뽑는다. 조성종 대표는 “매일 오전 11시 30분에 메밀 함량 80%인 반죽으로 국수를 뽑아서 맛을 보고 메밀의 함량을 높이거나 낮춘다. 본래 막국수는 ‘옆집으로도 배달 안 한다’고 할 정도로 면이 쉽게 퍼지기 때문에 막국수를 맛있게 먹으려면 음식을 받자마자 사진 찍느라 시간 허비하지 말고 재빨리 먹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금방 삶은 면에 7일 이상 숙성한 양념장과 오이채, 김 가루, 달걀 고명 등을 얹어 내는데 면은 부드럽고 투박하며 양념 맛은 강하지 않고 깔끔하다. 먹는 법은 동치미 국물에 사골 육수를 반반 섞은 동치미 국물을 한 국자 넣어 비벼 먹거나, 처음엔 그냥 먹다가 동치미 국물에 말아 먹기도 하고, 처음부터 동치미 국물을 넉넉히 넣어 말아 먹는 등 취향에 따라 다르다. 서울 서초동에 분점(02-585-1702)이 있다.

원조 샘밭 막국수 주소 강원도 춘천시 신북읍 천전리 118-23 전화 033-242-1702 주메뉴 막국수 5천 원, 편육 1만 원, 감자전 5천 원, 모두부 4천 원

동동 뜬 동치미 국물에 말아 명태식해를 얹어 먹는
고성 동치미 막국수
춘천 다음으로 막국수가 유명한 고장이 강원도 고성이다. 고성 막국수는 100% 메밀가루로 반죽해서 뽑은 면과 육수를 섞지 않은 순도 100%의 동치미 국물, 명태식해가 나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북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고성 막국수의 순메밀면은 겨울철 메밀 반죽을 누름틀에 넣어 뽑던 함경도의 압출면이 전해진 것이며, 명태식해 역시 홍어나 가자미 회무침을 면에 넣어 비벼 먹던 함경도 회냉면의 영향을 받았다. 고성의 화진포해수욕장 인근에 있는 ‘화진포 메밀 막국수’ 역시 메밀가루만 반죽해 면을 뽑고 동치미는 인근에서 재배한 무와 들깨과 식물인 깨꽃이, 각종 채소를 넣어 담근 뒤 1년간 숙성시켰다 사용한다. 고성 막국수의 맛을 차별화하는 별미 반찬, 명태식해는 고성 거진 지역의(거진 명태 축제 매년 2월 중 개최) 특산물로 만든다. 명태식해는 꾸덕꾸덕 말린 명태를 적당한 크기로 찢어 찰밥, 엿기름, 고춧가루, 파, 마늘 등을 넣어 발효시킨 음식으로 동치미 막국수를 먹을 땐 반찬으로, 비빔 막국수의 고명으로, 보쌈을 먹을 땐 백김치와 함께 얹어 먹으면 궁합이 잘 맞는다. 동치미 막국수와 함께 즐기면 좋은 음식으로는 푹 삶은 삼겹살에 명태식해와 백김치를 얹어 먹는 명태식해 보쌈이 있다.

화진포 메밀 막국수 주소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화포리 70 전화 033-682-8182 주메뉴 동치미 막국수 6천 원, 명태식해 비빔 막국수 7천 원, 명태 식해 보쌈 1만 2천 원

춘궁기를 버티게 해준 구황 식품
정선 올챙이국수

해가 뜨자마자 넘어가버린다 할 정도로 깊은 산골, 강원도 정선은 평지가 귀하다. 그래서 손바닥만 한 땅뙈기에 메밀, 옥수수, 감자 등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는 곡물을 심어 기를 수밖에 없었다. 하여 늘 곡식이 부족했고, 약간의 곡식으로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개발한 것이 올챙이국수다. 올챙이국수를 만들려면 불린 옥수수를 곱게 간 다음 체에 걸러 건더기를 걸러낸 후 가마솥에 붓고 눌어붙지 않도록 저으면서 뭉근히 끓인다. 그러면 묵을 쑬 때처럼 걸쭉해지는데 이걸 구멍이 숭숭 뚫린 박 바가지에 부어 숟가락으로 비벼 찬물을 담은 커다란 그릇에 떨어뜨리면 반죽이 구멍을 지나 똑똑 떨어지면서 올챙이국수가 된다. 이름은 완성된 모양에서 따온 것인데 약 2~3cm 길이로 바가지에 내릴 때 힘을 줘 누른 부분은 굵고 통통하지만 끝부분으로 갈수록 가늘어져 올챙이 형상과 비슷하다. 먹을땐 물에 담긴 국수를 건져 차가운 오이냉국이나 멸치 국물을 끼얹은 다음 양념간장과 김치를 곁들여 먹는다. 옥수수 불리기부터 맷돌에 갈고 죽을 쒀 바가지에 내릴 때까지, 국수를 뽑는 과정이 복잡하고 힘겹지만 한 그릇 먹고 나면 올챙이마냥 금세 배가 불뚝해져 배고픈 춘궁기를 버텨낼 수 있게 도와준 고마운 음식이었다. 요즘은 정선 5일장(2일과 7일에 열린다)이 서는 정선 장터 먹자 골목에서 맛볼 수 있다. 면과 국물 모두 밍밍해 낯선 외지인에게 ‘맛있는’ 국수로 추천하긴 어렵지만 이 지역 사람들에겐 어렵던 시절의 추억이 깃든 고향의 맛이다.

아리랑 맛집 주소 강원도 정선군 봉양리 344-4, 정선시장 먹자 골목 안 전화 033-563-1050 주메뉴 올챙이국수 3천원, 수수부꾸미 2천 원, 곤드레나물밥 5천 원

면발이 콧등을 ‘탁’ 치고 입속으로 들어가는
정선 콧등치기 국수
‘후루룩 급하게 먹으면 면발이 콧등을 친다’는 콧등치기 국수 역시 강원도의 여느 국수와 마찬가지로 밥 지을 곡식이 떨어졌을 때 주로 먹던 서민 음식이다. 막국수와 마찬가지로 100% 메밀가루로 반죽하는데, 국수틀에 눌러 뽑던 막국수 면과 달리 밀대로 밀어 칼로 썬칼국수라는 점이 다르다. 콧등치기 국수 식당 역시 정선시장 먹자 골목 안에 모여 있다. 요즘은 보통 메밀가루에 밀가루를 섞어 면을 뽑기 때문에 콧등을 치는 경우는 드물다. 면발은 졸깃하지 않고 거칠며, 면을 말아내는 국물은 집집마다 다르다. 보통 멸치 국물에 된장을 풀어 넣기도 하고, 여름엔 오이냉국에 말아 내기도 한다.

신흥집 주소 정선시장 먹자 골목 안 전화 033-563-8240 주메뉴 콧등치기 국수 3천 원, 메밀 부치기 2천 원

아! 정말 지겹게 먹어 꼴도 보기 싫다는
영월 꼴두국수
꼴두국수 역시 이름의 유래가 재미있다. 올챙이국수, 콧등치기 국수와 마찬가지로 구황 식품으로 먹던 꼴두국수는 ‘꼴 보기 싫다’는 뜻이다. 한국전쟁 후 유난히 가난에 허덕이던 시절, 보릿고개가 닥치면 허기를 채우기 위해 매일 이 메밀 칼국수만 먹다 보니 질리고 질려서 붙인 이름이란다. 꼴두국수는 멸치 국물에 호박, 양파, 감자 등의 채소와 두부를 넣고 고춧가루 양념을 풀어 만든 얼큰한 국물에 메밀칼국수 면을 넣어 끓인다. 영월에서 꼴두국수로 유명한 신일식당에 가면 개그우먼 김신영 씨를 닮은 임덕자 할머니(기분이 좋으실 땐 “행님아!” 흉내도 내주신다)가 옛날 방식 그대로 면을 밀고 썰어 꼴두국수를 끓여낸다. “별것 없어 보여도 산과 들의 인심으로 버무린 강원도의 맛”이라는 할머니의 설명처럼 100% 메밀가루로 만든 꼴두국수의 면은 거칠지만, 또 먹어도 좋을 만큼 칼칼하고 개운한 국물이 입맛을 당긴다.

신일식당 주소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주천리 1225-7 전화 033-372-7743 주메뉴 꼴두국수 5천 원, 올창묵(올챙이국수) 4천 원

푸짐한 해물과 맵싸한 국물의 조화
군산 짬뽕
짬뽕에 관해 이야기하려면 역사적 배경부터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 ‘짬뽕’이란 말은 일본어 ‘잔폰 ちゃんぽん’에서 유래했다. 일본에 나가사키 ‘잔폰’이 있다면, 대한민국에는 군산 ‘짬뽕’이 있다. 그렇다면 나가사키 ‘잔폰’은? 원래 중국 푸젠 성의 ‘탕러우쓰 (肉絲麵: 돼지고기, 표고버섯, 죽순, 파 등을 넣고 끓인 국물에 국수를 만 음식)’에서 발전한 것으로, 나가사키 인근 바다에서 많이 잡히는 해산물과 숙주나물, 양상추를 넣어 시원하게 끓인 음식이 바로 나가사키 잔폰이다. 그리고 나가사키 잔폰에 마른 고추나 고춧가루를 넣어 얼큰하게 끓이면 한국식 매운 짬뽕이 된다. 이런 흐름을 보면 한국 짬뽕의 조리법은 나가사키 ‘잔폰’에서 유래했다고 봐야 할 듯하다. 일제강점기에 개항지 중 하나인 군산에는 많은 중국인 화교들이 모여 살았는데, 이들이 나가사키 화교들과 연결되면서 서로의 음식 문화에 영향을 주었다. 군산이 짬뽕의 최대 격전지가 된 것은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이다. 군산에는 ‘짬뽕 4대 천황’ 중국집이 있다. 그중 군산 토박이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복성루’로 이성구(67세) 씨 부부가 40년째 운영하고 있다. 탱탱한 오징어, 꼬막, 바지락이 듬뿍 든 국물에 돼지고기를 수북이 올려 그릇이 넘치도록 담아주는데 맵싸한 향이 코끝을 자극한다. 먼저 국물 한 술을 떠먹으니 보기보다 맵거나 짜지 않고 적당했다. 주문을 받으면 그때그때 돼지고기와 채소를 볶고, 물(우려둔 육수가 아닌)을 넣고, 해물을 넣어 ‘특제 국물’을 만든다. 짬뽕 못지않게 유명한 것이 볶음밥인데, 11시까지만 주문받는 한정 메뉴다. 탱글탱글한 새우살, 큼지막한 돼지고기, 센 불에서 재빨리 바닥만 바삭하게 익힌 달걀프라이…. 옛날 중국집의 촌스러운 맛이 느껴지는 볶음밥이다. 공간이 좁아 점심 시간대에 가면 줄 서기와 합석은 기본.

복성루 주소 전북 군산시 미원동 332 전화 063-445-8412 영업시간 오전 10시 30분~오후 4시(일요일 휴무) 주메뉴 짬뽕 5천 원, 짜장 4천 원, 볶음밥 5천5백 원

삼복더위를 물리치는 별미 국수
전주 팥칼국수
음식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전라도에서 다른 지역에 비해 유독 덜 발달한 게 있다면 바로 국수다. 호남 지방은 최대의 곡창지대라 쌀이 풍부했고, 예부터 음식 문화가 발달한 덕에 면식 麵食 문화가 끼어들틈이 없었다. 그런 전라도에서 별식으로 만들어 먹던 국수가 팥칼국수다. 팥은 전라도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인지라 전라도 전역에 걸쳐 보편화되었다. 팥죽은 일반적으로 동짓날 먹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옛날에는 이 뜨끈한 팥죽이나 팥칼국수를 삼복에 많이 끓여 먹어 ‘복죽’이라 부르기도 했다. 실제로 궁에서는 초복, 중복, 말복에 매번 팥죽을 쑤어 먹었다고 한다. 자고로 삼복에 팥죽을 먹으면 더위를 쉽게 물리치고 병에 걸리지 않는다 했는데, 실제로 <동의보감>에는 “팥은 소갈증과 설사 등을 치유하는 데 효험이 있다”고 적혀 있다. 18년 동안 전주에서 ‘원조 동짓날’을 운영해온 홍현순 씨는 “고향이 전남 순창인데 어릴 적 어머니가 여름철이면 팥칼국수를 자주 만들어주셨다”며 그 기억을 되살려 팥칼국수 전문점을 시작했단다. 팥칼국수의 맛은 팥을 얼마나 적당히 삶았는가가 좌우한다. 국산 팥을 씻어서 애벌로 한 번 삶아낸 다음(팥의 독성을 빼내기 위해) 첫 물은 버리고 다시 압력솥에서 30분 정도 삶으면 적당하다. 면은 직접 밀가루 반죽을 밀어 만든 손칼국수를 쓴다. 고운 자줏빛 팥칼국수 한 그릇과 동치미, 열무김치, 배추김치가 함께 나온다. 슴슴하게 간이 돼 있지만 취향에 따라 설탕이나 소금을 더해 먹는데, 전라도 사람들은 대개 설탕을 넣어 달달하게 먹는다. 걸쭉하고 달짝지근한 팥물이 먹을수록 구수하고 부드럽다.

원조 동짓날 주소 전북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1가 621-6 전화 063-255-1704 주메뉴 팥칼국수 4천 원, 팥죽 5천 원, 동지죽 5천 원

돼지를 잡은 잔칫날 흥을 돋우며 먹던
제주 고기 국수
제주도의 ‘고기 국수’는 비교적 최근에야 널리 알려진 국수다. 제주도에서는 잔칫날 돼지를 잡아 손님에게 대접하곤 했는데 돼지의 고기는 삶아 편육으로 내고, 뼈는 발라 푹 곤 뒤 이 국물에 면을 말고 돼지고기 편육을 고명으로 얹어 내던 데서 유래했다. 제주도의 잔치 음식인 고기 국수를 대중화한 식당에 가면 뽀얀 돼지 뼈 우린 국물에 칼국수 면보다 조금 가는 대면을 넣어 삶은 뒤 ‘돔베고기’라 부르는 삼겹살 편육, 송송 썬 대파, 채 썬 당근이 고명으로 얹어 내온다. ‘돔베’란 제주도 방언으로 도마를 뜻하는 데, 편육을 나무도마에 얹어 내면서 붙은 이름이다. 제주도의 고기 국수는 서울에서도 맛볼수 있는데, 1년 전 논현동에 문을 연 ‘삼대국수회관’은 제주도 본점에서 만드는 법을 직접 전수받았을 뿐만 아니라 매일 아침 돼지고기 삼겹살과 돼지 뼈 등의 주요 재료를 제주도에서 비행기로 공수해 사용하기 때문에 현지의 맛과 거의 흡사하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서울 사람들이 넓은 면을 싫어해 대면이 아닌 중면을 사용한다는 것. 돼지 뼈 육수에 도톰한 삼겹살 편육이 넉넉히 들어 있어 한 그릇 먹고 나면 제법 든든한 고기 국수는 국물에 다진 양념과 김 가루를 푼 다음 부추김치를 얹어 먹는다.

삼대국수회관 논현점 주소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 124-15 전화 02-3446-1186 주메뉴 고기 국수 6천 원, 비빔국수 6천 원, 국밥 6천 원, 돔베고기 2만 5천 원

쇠고기 장조림을 올린 한국식 메밀국수
의령 소바
경남 의령 지방은 국내산 메밀을 사용해 면을 뽑아 만든 ‘소바(메밀의 일본말)’가 유명하다. 메밀국수가 아니라 소바라는 말을 그냥 쓰는 걸로 봐서 일본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는데,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의령으로 돌아온 한 할머니가 일본에서 배워온 소바를 퍼뜨려 자리 잡은 것이다. 그 할머니가 현재 ‘다시식당’ 주인 김막내 씨의 큰언니인 고 故 김초악 할머니다. 차가운 쓰유에 적셔 먹는 일본식 소바와 달리 의령 소바는 따뜻한 국물에 메밀국수를 말아 먹는다. 멸치와 다시마를 우린 국물을 쓰고, 짙은 갈색을 띤 메밀국수는 국내산 메밀을 껍질째 함께 빻아 뽑는다. 바로 삶아 건진 메밀국수를 대접에 담고 쇠고기 장조림 국물을 한 국자 끼얹은 뒤 한 귀퉁이에 볶은 양배추, 볶은 버섯, 시금치나물(혹은 얼갈이배추), 다진 파, 고춧가루, 후춧가루를 얹고 마지막으로 가늘게 찢은 쇠고기 장조림을 넉넉히 얹는다. 의령 소바 맛의 비결은 바로 한우로 만든 장조림과 그 국물. 깔끔한 멸치 국물과 진한 장조림 국물이 만나 감칠맛 나는 소바 국물을 완성해내며 고춧가루와 후춧가루를 듬뿍 넣어 뒷맛이 아주 칼칼하고 개운하다. 가짓수는 적지만 내공이 느껴지는 고명, 매끄럽고 메밀 향 진한 국숫발, 어디서도 맛보지 못한 독특한 육수, 이 삼박자가 절묘한 조화를 이뤘다. 메뉴는 소바, 냉소바, 비빔소바 딱 세 가지. 비빔소바에도 고명으로 장조림이 올라가는데, 초고추장 양념과 썩 잘 어울린다.

다시식당 주소 경남 의령읍 서동리 491-7 의령시장 내 복개천 옆 전화 055-573-2514 주메뉴 소바, 냉소바, 비빔소바 각각 6천 원.

진주 기생과 한량이 즐겨 먹던 화려한 국수
진주 냉면
거의 사라졌다가 10여 년 전부터 차츰 알려지기 시작한 진주 냉면은 함흥냉면이 유명해지기 전까지는 ‘북쪽에 평양냉면 남쪽에 진주 냉면’이라 할 정도로 대한민국 냉면의 양대 산맥 중 하나였다. 진주의 화려한 교방 문화와 함께 전성기를 구가한 진주 냉면은 한량들이 기생과 어울려 거방지게 술판을 벌인 뒤 입가심으로 즐겨 먹은 음식이었다고 한다. 해물 육수에 쇠고기 육적 고명을 쓰는 게 특징. 현재의 진주 냉면은 68년 전 황덕이(81세) 할머니가 만든 것이 시초다. 본디 중앙 시장에서 성업한 몇몇 진주 냉면집은 1960년대 시장 화재로 인해 자취를 감추고 지금은 황 할머니의 ‘진주 냉면’만이 유일하게 남아 있다. 진주 냉면의 핵심인 해물육수는 멸치, 새우, 바지락, 홍합, 문어 등을 끓여 사흘쯤 달인 뒤 항아리에서 보름 동안 숙성해야 비리지 않고 감칠맛이 제대로 난다. 유기 대접에 바로 뽑아 삶은 메밀국수(고구마 녹말을 넣어 약간 쫄깃한)를 담고, 오이채, 배채, 무초절임, 편육, 굵게 채 썬 육적, 삶은 달걀, 채 썬 지단, 실고추를 수북하게 탑처럼 쌓아 올린 뒤, 짙은 갈색의 찬 육수를 부어 낸다. 풍성한 오색 고명에서 교방 문화의 화려함이 느껴지며, 국물 맛은 약간 짭짤하고 진하다. 할머니의 막내 사위인 정운서 사장은 “육적 한 점과 국수를 같이 먹어야 한다. 한 그릇을 3분의 2쯤 먹었을 때육수 맛이 가장 좋다”고 말한다. 해물 육수와 채소, 달걀, 육적 등이 메밀국수와 섞이면서 맛이 어우러져 환상의 조화를 이루는 시점이라는 설명이다.

진주 냉면 주소 경남 진주시 봉곡동 28-7 전화 055-741-0525 주메뉴 진주 물냉면 6천 5백 원(소)/ 7천5백 원(대), 진주 온면 6천 원

피란민이 미군 구호품 밀가루로 만든
부산 밀면
부산의 토속 음식을 꼽을 때 돼지 국밥, 동래 파전과 함께 빠지지 않는 것이 밀면이다. 쉽게 말해 부산식 냉면인데, 메밀가루 대신 밀가루를 사용해 만든다. 부산을 비롯한 경상도 지역에 국수 문화가 퍼지기 시작한 건 1950년대 미국이 값싼 밀가루를 구호물자로 공급하면서부터다. 그중 부산 밀면은 남쪽으로 피란간 이북 사람들이 냉면을 만들어 먹고 싶은데 메밀가루를 구할 수 없어 밀가루를 대용해 만든 것이다. 예전에는 돼지 육수나 멸치 국물을 이용했지만, 요즘엔 쇠고기 육수로 맛을내는 게 일반적이다. 부산 사람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요즘 부산으로 여행 간 이들도 너 나 할 것 없이 유명 밀면집을 찾는다. 특히 여름이면 살얼음 동동 뜬 차가운 밀면 한 그릇을 먹기 위해 긴 줄을 서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부산 시내에 원조로 꼽히는 밀면집이 몇 곳 있지만, 입맛 깐깐한 도예가 신경균 씨와 부인 임계화 씨는 기장의 ‘소문난 한방 밀면’을 추천한다. 18년째 한자리에서 손님을 맞는 윤영순 씨는 좀 더 건강한 방법으로 밀면을 만든다. 쑥 삶은 물로 면을 반죽하고, 육수는 한약재와 칡을 넣고 끓여 7~10일 동안 숙성한다. 주문을 하면 곧바로 펄펄 끓는 물에 국수를 뽑아 내려 삶는다. 대접에 설탕, 식초, 겨자, 참기름을 조금씩 넣고 무초절임 국물을 한 국자 떠넣은 뒤 삶은 면을 사리지어 담는다. 그 위에 윤 사장만의 특제 소스인 매콤한 양념과 오이채, 무채, 편육, 삶은 달걀, 채 썬 지단을 소복하게 올린 다음 살얼음 낀 육수를 붓는다. 밀가루에 고구마 녹말과 감자 녹말을 섞어 약간 누런빛을 띠는데, 먹어보면 평양냉면(메밀)보다는 쫄깃하고 함흥냉면(감자 녹말)보다는 잘 끊어진다.

소문난 한방 밀면 주소 부산시 기장군 기장읍 교리 339-9 전화 051-722-5735 주메뉴 물밀면 4천 원(소)/5천 원(대), 비빔밀면 4천5백 원(소)/ 5천5백 원(대)

양반집에서 여름에 즐겨 먹던 찬 국수
안동 건진 국수
밀가루에 콩가루를 섞어 만드는 게 특징인 안동 국수는 두 종류가 있다. 국수를 삶아서 찬물에 식혀 건진 뒤 장국에 말아 먹는 ‘건진 국수’와 국수를 따로 삶지 않고 육수나 멸치 장국에 삶아 걸쭉한 국물째 먹는 ‘제물국수’(누름 국수)가 그것이다. 건진 국수는 안동의 양반집에서 여름철에 즐겨 먹던 찬 국수인데, 국수를 삶은 다음 찬물에 식혀 건졌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제 물국수는 서민들이 겨울에 많이 먹던 것으로, 예전에는 낙동강에서 잡히는 은어가 밀국수와 어우러져 독특한 맛을 냈다고 한다.
신현하 씨가 운영하는 ‘옥동손국수’는 밀가루와 콩가루를 6 대 4로 섞어 반죽해 큰 홍두깨로 밀어 국숫발을 만든다. 이 국수를 배춧잎과 함께 삶아 찬물에 헹궈 건진 뒤, 달걀지단채와 오이채, 김 가루와 깨소금을 뿌리고 찬 멸치 국물을 부어 내면 건진 국수, 육수에 면과 배춧잎을 넣고 같이 끓여 고명을 올리면 제물국수가 된다. 국수를 주문하면 옛날 반가에서 유생들이 먹던 것처럼 조밥과 함께 열무김치, 배추김치, 두세 가지 나물에 상추, 쌈배추, 풋고추와 쌈장, 고등어조림, 멸치젓을 함께 내준다. 면발은 고소하고 보들보들하며, 국물은 정갈하다. 슴슴한 듯하지만 멋 부리지 않은 절제된 맛이랄까. 시인 안도현 씨의 시 ‘건진 국수’에는 여름날 건진 국수 만들어 먹는 풍경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건진 국수에는 건진 국수,라는 삼베 올 같은 안동 말이 있고 안동 말을 하는 시어머니가 여름날 안마루에서 밀가루 반죽을 치대며 고시랑거리는 소리가 있고 반죽을 누르는 홍두깨와 뻣센 손목이 있고 옆에서 콩가루를 싸락눈처럼 술술 뿌리는 시누이의 손가락이 있고 칼국수를 써는 도마질 소리가 있고 멸치 국물을 우리는 칠십 년대 녹슨 석유곤로가 있고 애호박을 자작하게 볶는 양은 냄비가 있고 며느리가 우물가에서 펌프질하는 소리가 있고 뜨거운 국물을 식히는 동안 삽짝을 힐끔거리는 살뜰한 기다림이 있고 도통 소식 없는 서방이 있고 때가 되어 사발에 담기는 서늘한 눈발 같은 국수가 있고 찰방거리는 국수가 있고 건진 국수 옆에 첩처럼 따라붙는 조밥이 있고 열무며 풋고추며 당파를 담은 채반이 있고 건진 국수에는 누대의 숨 막히는 여름을 건진 국수가 안동 사람들을 건졌다는 설이 있다.”

옥동손국수 주소 경북 안동시 옥동 770-8 전화 054-855-2308 주메뉴 옥동손국수(건진 국수와 누름 국수 중 선택) 5천 원, 옥동 들깨 국수 5천 원

어부의 지친 속을 달래주던
포항 모리 국수
경북 포항의 구룡포항에는 모리 국수가 유명하다. 큰 양은 냄비에 싱싱한 수산물과 콩나물을 넣고 고춧가루 양념으로 얼큰하게 끓여내는 국수다. 푸짐한 해물탕에 칼국수가 들어 있다고 생각하면 쉬울듯. 예부터 구룡포에는 수산물이 넘쳐나, 어부들이 어판장에서 팔고 남은 생선을 식당에 가져가 국수 넣고 끓여달라고 하던 것이 시초다. 고된 뱃일을 마친 어부들은 지친 속을 달래줄 따끈한 국물이 필요했을 것이다. 냄비에 생선을 ‘모디(모아의 사투리)’ 넣고 여럿이 ‘모디’ 먹는다고 해서 모리 국수라는 이름이 붙었단다. 42년 동안 구룡포에서 ‘까꾸네 모리 국수’를 운영하는 이옥순 (67세) 할머니가 원조로 아귀와 아귀 내장, 물메기, 미더덕, 홍합, 말린 새우를 넉넉히 담고 육수(구룡포산 대게와 다시마로 끓인)를 부어 고춧가루와 양념장을 풀어 끓이다가 콩
나물을 얹는다. 대구에서 주문해온 풍국면은 따로 삶는다. 콩나물 숨이 죽으면 면을 넣고 한소끔 끓여 냄비째 식탁으로 옮긴다. 칼칼하고 시원해 속이 탁 풀리는 느낌. 해물의 가짓수가 많고 국물이 걸쭉해 모양새는 투박하지만, 비린 것 못먹는 이도 맛있게 먹을 만큼 뒷맛이 무척 개운하다.

까꾸네 모리 국수 주소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구룡포리 957-3 전화 054-276-2298 주메뉴 모리 국수 1인분 5천 원(2인분 이상 가능)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