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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우동 242㎡ 아파트 좋은 가구가 좋은 집을 만든다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한 곳에서 살던 네 식구가 이사를 결심했다. 오랜 세월 정 붙인 집을 떠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만큼 가구 하나하나 신중하고 까다롭게 골랐다. 좋은 가구가 만들어내는 공간의 향기 속으로.

엄마 박명란과 딸 조혜정. 가족은 큰 거실보다 해운대구 시내가 보이는 작은 거실에서 시간을 많이 보낸다. 

창밖이 시원하다. 저 멀리 수평선이 펼쳐지고 창문 밖 아래에 동백섬이 살포시 놓여 있다. 섬 주변에는 개미보다 작은 사람들이 바다 주변을 서성이고 있다. 마린시티 내에 있는 아파트 35층에서 내려다본 해운대 주변 모습이다. 집주인 박명란ㆍ조재혁 부부는 매일 이런 풍경을 보고 산다. 아침에 눈 뜨면 침대 왼편 큰 창문으로 어디까지가 바다고 어디까지가 하늘인지 모르는 파란 그림이 펼쳐진다. 2007년에 완공한 이곳은 마린시티 내 다른 아파트보다 입지가 좋다. 큰 빌딩이 가까이 붙어 있지 않아 시원한 경관은 물론 집 안에 그늘이 지지 않는다. 부부가 사는 이 집은 같은 층의 다른 집보다 전망이 특히 뛰어나다. 거실과 안방에선 바다가 보이고 반대편 아이들 방에선 해운대구 시내가 내려다보인다. 부부는 집을 고친 후에야 이 집의 매력을 알아챘다.

모던과 클래식이 공존하는 공간
입구에 들어서면 보이는 공간. 큰 흑백사진 액자로 모던과 클래식이 조화를 이룰 수 있게 꾸몄다. 

원래 부산 다대포 근처에서 살던 가족은 약 3년 전 이 집을 구입했다. 네 살이던 큰딸이 의젓한 대학생이 될 때까지 20년이란 시간을 보낸 고향 같은 곳을 떠나 올해 초 해운대로 이사했다. 175㎡에서 242㎡로 넓어진 공간을 감당할 수 있을지 고민했을 터. 어느덧 20대가 된 아이들은 타지로 공부하러 떠났고 1년의 대부분을 부부 둘이 지내게 될 이 집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막막했다. 고심한 끝에 부부는 집 안에 놓을 가구를 심혈을 기울여 고르기로 했다.

모던한 스타일이 한창 유행이라는 소문을 들은 아내는 거금을 들여 명품 브랜드의 소파와 다이닝 테이블, 펜던트 조명등을 구입했다. 그런데 가구를 놓고 보니 생각만큼 만족스럽지 못했다. 넓은 집이 더 휑하게 느껴졌고 가뜩이나 식구가 적은 집이 차갑고 삭막해 보이는게 아닌가. 그래서 부부는 계획을 수정했다. 서울 청담동에 있는 가구 숍 ‘아띠끄디자인’을 찾았다. 유명 드라마 속 주인공의 방을 꾸몄고 잡지에도 여러 번 소개된 홍민영 대표를 만났다. 모던한 가구에는 정감을 느끼지 못한 부부는 매장에 진열된 클래식 가구를 보자 마음이 움직였다. 그래서 홍 대표에게 집 꾸밈을 맡기기로 했다.

주방에 놓은 랄프 로렌 와인 캐비닛은 그릇장으로 사용한다. 서랍장에는 와인랙이 있고 조명등도 밝힐 수 있다. 

기존에 구입한 가구를 그대로 두되 집 안이 차갑게 느껴지지 않도록 분위기를 바꾸는 것이 급선무였다. 홍 대표는 부부에게 모던과 클래식이 공존하는 믹스 매치 스타일을 제안했다. 색감이 다양하고 장식적인 클래식 가구와 사람 손때가 묻은 빈티지 가구를 기존 가구와 매치했다. 상반된 두 스타일이 어울릴 수 있을지 우려하는 건 당연했다. 홍 대표는 자칫 우중충해 보일 수 있는 마룻바닥을 대리석으로 바꿔 공간을 밝히고 무늬가 도드라진 쿠션이나 흑백사진 액자로 모던과 클래식을 적절히 섞었다.

1 모던 스타일이 유행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구입한 펜디 소파. 파스텔 톤 러그와 쿠션으로 자칫 차가워 보일 수 있는 공간에 온기를 불어넣었다. 
2 소파와 함께 구입한 펜디 6인용 다이닝 테이블과 펜던트 조명등. 주방에서는 창밖으로 달맞이고개가 보인다. 

부산에서는 생각만큼 다양한 가구나 소품을 찾기 어려워 하나부터 열까지 서울에서 공수했다. 시간만 나면 부부는 잠시 한국에 온 큰딸을 데리고 서울의 아띠끄디자인을 찾았다. 결정을 빨리 못 하는 성격이라 가구 하나를 고르는 데 며칠을 고민했다. 어제는 좋던 가구가 오늘은 이상해서 가 구를 결정하기까지 반년이 걸렸다. 침대를 제외하고 침실 안 콘솔이며 테이블이며 모두 그렇게 고심해서 고른 가구다. 아내 박명란은 의자 팔걸이를 매만지며 “신중하게 선택했기에 후회한 일이 없다”고 애착을 보였다.

두 개의 거실
1 큰 거실에서 바라본 작은 거실. 유리 진열장으로 공간을 구분해 한층 넓어 보인다. 
2 안방 창문 너머 해운대 바다가 펼쳐진다.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못 잔다는 아내 때문에 침대만 원래 사용하던 것을 가져왔고 나머지는 아띠끄디자인에서 구입했다. 

이 집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특징은 거실이 두 개라는 점이다. 보통 큰 거실이 하나 있으면 여분의 공간은 서재나 작업실로 사용하기 마련인데, 이 집에는 거실이 두개다. 회사를 운영하느라 야근이 잦은 남편은 귀가 후에는 온전히 휴식을 취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서재나 작업실을 따로 만들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남은 방 하나를 또 하나의 거실로 만들기로 결정. 벽과 문을 없애고 대신 유리 장식장 하나로 큰 거실과 작은 거실을 구분했다.

큰 거실에는 미리 사둔 모던한 소파를 놓았고, 작은 거실에는 파스텔 톤의 클래식한 프렌치 헤리티지French Heritage 소파와 암체어, 콘솔을 놓았다. 작고 아늑한 거실은 부부가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다. 큰 거실에서는 해운대 바다를 조망할 수 있지만, 반대편 작은 거실 창문으로는 장산의 완만한 산세를 감상할 수 있다. 밤에 창문 밖 바다는 그저 깜깜하기만 하지만 장산이 보이는 도심은 불빛이 꺼지지 않는다. 다대포에서도 몇십 년을 보고 살아온 바다여서일까, 부부는 장산의 이런 풍경이 더 좋다고 한다.

1곱게 정돈한 랄프 로렌 테이블 웨어. 
2 작은 거실 콘솔 위에 놓은 부부의 옛날 사진. 
3 작은 거실에 놓은 암체어와 테이블은 아띠끄디자인이 판매하는 프렌치 헤리티지 제품. 
4 켜면 향초처럼 향이 나는 LED초.

방을 트고 나니 공간이 한층 훤해졌다. 해운대 바다와 장산, 양쪽으로 난 창은 부부가 이 집을 선택한 결정적 이유였다. 양쪽 창문 밖에 시야를 가리는 빌딩이 없어서 채광이 유난히 좋고 통풍이 잘된다. 아직 이 집에서 겨울을 나진 않았지만, 지금 같은 여름 날씨에 에어컨을 켜지 않아도 창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제법 불어온다. 게다가 가구도 꼭 필요한 것만 마련해 집 안에 숨통을 틔워주었다. 사실 이 집은 아직 미완성이다. 미국에서 유학 중인 딸과 대구에서 대학을 다니는 아들의 방은 그대로 남겨두었다.

인테리어의 통일성도 중요하지만 방은 방 주인이 원하는 대로 꾸며야 한다는 부모의 배려다. 부부는 자신의 방을 ‘팝아트적’으로 꾸미고 싶다는 딸의 취향도 존중한다. 방학을 맞아 잠시 한국에 온 딸이 곧 미국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아이들 방은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한 번 구입한 가구나 물건은 잘 버리지 못하는 성격이라는 아내 박명란. 그는 새것보다는 살면서 손때가 묻은 오래된 물건을 좋아한다. 그래서 쉽게 유행을 타는 모던한 가구보다 세월의 더께가 앉아야 더 멋스러워지는 클래식 가구에 눈이 갔을 테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부부는 이 집에서도 오랫동안 살 계획이다. 이사 온 지 이제 겨우 넉 달이 되어가 아직 집 안에 사람 냄새가 덜 묻어나지만, 그만큼 채울 것이 많다는 얘기다. 성장한 아이들이 얼마나 더 오래 곁에 머무를지 몰라도 5년, 10년 후 네 식구의 이야기로 채워질 이 집이 새삼 궁금해졌다.

디자인과 시공 아띠끄디자인(02-3443-8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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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민정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