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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의 아름다운 집 이것이 바로 이탤리언적인 삶
오늘은 런던, 내일은 서울로 비행기를 타는 삶이 일상이 되어버린 영국 스포츠 마케팅 회사 파랄렐 미디어 그룹(PMG)의 데이비드・세레넬라 시클리티라 부부. 그들에게 이탈리아 스폴레토에 있는 여름 별장은 단순한 집이 아닌 정신적 휴식처이자 치유 공간이다.


시클리티라 부부의 소장품은 거실에서 정점을 이룬다. 아치형 구조의 통로로 분리된 두 개의 거실에는 작품이 빼곡하다. 창문 옆에 보이는 손 그림은 한국 작가 홍성철 씨의 작품.

데이비드 씨의 서재. 삼각 구조의 천장에 맞게 짜 넣은 책장에는 블루스 음반이 가득하다. 책상 뒤로 사진가 김준 씨의 2007년 작품 ‘Stay-Queen’이 걸려 있다.


늦은 밤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에 도착해 얼마나 달렸을까? 자동차 차창 너머로 ‘스폴레토Spoleto’라 선명하게 쓰여 있는 도로 표지판을 본 지 오래인데, 고불고불한 산길을 한참이나 더 오른다. “얼마 전 산불이 나서 길을 통제하는 바람에 돌아가고 있어요. 밤이라서 아쉽네요. 움브리아 주 고원지대의 아름다운 풍광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요.” 달빛에 걸리는 산등성이가 경계 없이 이어졌다. 우리는 산꼭대기로 계속 올라갔다. 구릉지대에 집이 띄엄띄엄 한 채 한 채 숨어 있는 이곳, 집 주소가 산 이름인 곳, 사람 소리보다 바람 소리가 더 잘 어울리는 이곳은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 주의 스폴레토라는 마을이다. 두 시간이 넘어 도착한 우리를 가장 먼저 반긴 것은 덩치가 허리춤까지 올라오는 강아지 세마리다. 바닥에 몸을 뒹굴며 온몸으로 반가움을 표현하는 우피, 재플린 그리고 스쿠비까지. 이 집에는 강아지 세 마리와 고양이 열네 마리, 당나귀와 말이 각각 한 마리씩 함께 산다. 쏟아질 듯 별이 총총 박힌 하늘 아래 따스한 훈풍 그리고 사랑이 넘치는 동물의 부드러운 촉감. 현실에서 시간을 뚝 잘라 만든 세계가 있다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우리를 초대한 파랄렐 미디어 그룹의 회장 데이비드 시클리티라 씨는 짐을 풀어놓자마자 ‘이탈리아 소주’라는 그라파grappa를 한 잔 권했다. “취재는 간단하게 끝내고, 그냥 쉬세요. 여기는 쉬는 집입니다!”
그랬다, 이곳은 쉬는 집이다. 일주일에도 여러 번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며 휴일 없이 일하는 ‘워커홀릭’ 데이비드 씨는 이 집을 정신적 고향(spiritual home)이라 부른다. “사업 때문에 로마와 런던에도 집이 있습니다. 아, 서울 한남동에도 있어요. 하지만 스폴레토 집을 가장 좋아합니다. 손녀 인디아가 가까운 곳에 살거든요. 강아지들과 올리브나무가 있고 무엇보다 아이 웃음소리가 있지요. 그라파도 있고!”


1 손녀 인디아의 그림 역시 이 집에선 작품이다. 
2 앤티크 벤치를 놓은 서재. 사진가 이림 씨의 그림을 함께 배치했다.

3 서재 입구에서 바로 보이는 것은 가위만 그리는 것으로 유명한 중국 현대미술가 마오수휘의 작품.
4 성태진 씨의 목판 부조 작품 ‘시발始發 택시’가 걸려 있는 시클리티라 부부의 침실.

5 방과 방을 연결하는 복도는 아치형 구조로 이뤄져 있다. 부부가 영국 왕립예술학교 졸업전에서 구입한 그림 앞에 데비 한 씨의 ‘스포츠 비너스’가 놓여 있다.
6 2층 현관문을 열면 두 층의 구조가 한눈에 보인다. 데이비드의 부인 세레넬라의 서재 문 위에 걸린 그림은 화가 강형구 씨의 ‘Woman’. 계단을 통해 내려가면 바로 정원으로 이어진다.

7 밀라노 출신의 조각가 포르나세티의 수납장이 놓인 갤러리. 붉은 벽면과 강렬한 컬러 대비를 이룬다. 
8 세레넬라의 서재. 벽면에 걸린 그림 역시 영국 왕립예술대학 학생의 작품이다.

취재하는 동안 머무른 손님방 중 하나. 작품을 제외하면 소박한 침구가 놓인 아늑한 방이다.


태양과 올리브나무가 머무는 곳 그라파 때문일까? 다음날 늦은 오전까지 이어진 늦잠에서 벌떡 깨어나 창문을 열어젖혔다. 단단한 나무 문짝에 두꺼운 유리창 그리고 다시 초록색 나무 블라인드까지, 삼중으로 된 창문을 여니 순식간에 방이 빛으로 채워졌다. 두 뼘 가까운 두께의 두꺼운 벽은 이탈리아의 강렬한 태양으로부터 실내 온도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 살이 아플 정도로 뜨거운 바깥 온도에 비해 실내는 딱 적당하게 선선했다. 벽에 뺨을 갖다 대면 오히려 시원하기까지 하다. 이 아름다운 집은 냉방 장치도 필요 없다.
“아내는 로마에서 자랐지만 부모님이 움브리아 주 출신입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살고 싶어 했죠. 이 집은 본래 4백50년 된 건물이에요. 이곳에 처음 살기 시작한 23년 전에는 고개를 돌리면 온통 산과 나무뿐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날것 그대로의 자연!”
노란색 벽과 붉은색 지붕으로 이뤄진 이층집 앞에는 나무 그늘이 근사한 연못이 큼지막하게 자리를 지키고, 그 옆에는 2층짜리 갤러리 건물이 있다. 그 반대편, 미노타우로스의 미궁을 떠올리게 하는 정원을 통과하면 구릉을 깎아 만든 수영장이 있다. 수영장 너머 완만하게 떨어지는 경사면 위로는 수백 그루의 올리브나무 숲이 끝없이 펼쳐진다. 그 사이로 당나귀와 말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린다. 경비 대장인 스쿠비가 뛰어오더니 허공을 향해 신나게 짖는다.


현관문 맞은편에서 본 풍경. 현관문 앞에 지용호 작가의 ‘황소 남자’가 보인다.

세 가지 컬러로 대비 효과를 낸 갤러리 내부. 천장이 낮아 보이는 것을 보완하기 위해 세레넬라가 직접 컬러 매치를 했다.

올리브 숲에서 만난 당나귀 ‘반돌퍼’. 이름을 부르면 용케 알고 달려온다. 데이비드 씨가 아내에게 준 선물이다.

산허리를 깎아 만든 수영장. 수영장 바닥을 네모난 각이 전혀 없이 라운드로 설계해 경계가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수영장 너머로 보이는 올리브나무 숲과 움브리아 주 고원 지대의 그림 같은 풍광은 이곳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다.


미술 애호가의 인테리어 한국에서 선물 받았다는 솟대가 매달린 현관 앞에는 2m 높이의 타이어 조각상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놀랐다면 미안합니다. <코리안 아이> 전시에 참가한 폐타이어 조각가 지용호 씨의 ‘황소 남자(Bull Man)’예요. 멀리서 보면 서 있는 모습이 덩치 큰 사람 같거든요. 도둑이 들어올 가능성은 없겠지요? 하하하.” <코리안 아이>는 한국 미술을 전 세계로 알리기 위해 부부가 함께 만든 전시 프로젝트(런던에서 열린 는 본지 378쪽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세계 여러 도시를 순회 전시하며 한국 미술을 알리는 데 앞장서는 이 부부의 미술 사랑은 정말 가열차다. 한국 미술에 대한 애정 때문일까? 집 안 곳곳에 낯익은 작품들이 눈에 띈다. 백남준, 데비 한, 강형구, 홍성철, 김진 등 이름만으로 굵직한 현대미술가뿐 아니라 이림, 성태진 등 떠오르는 신진 작가들의 작품까지 경계가 없다. 집 전체가 갤러리라 할 수 있을 만큼 빼곡하게 공간을 채우는 작품들. 사진과 회화, 설치 작품과 브론즈 조각 등 소장한 작품만 1천여 점에 이른다. 장르 구분 없이 곳곳에 자리한 미술품은 곧 집의 인테리어 자체다.

“본격적으로 작품을 모으기 시작한 것은 25년 전부터입니다. 영국 왕립예술대학(Royal College of Art)의 후원자로 매년 졸업 전시를 찾아 학생들의 작품을 구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좋은 작품이 많거든요. 갤러리 건물에 있는 작품 대부분이 학생 작품입니다.” 데이비드 씨보다 미술에 훨씬 조예가 깊은 이는 아내 세레넬라다. 회사 이름을 딴 ‘파랄렐 프라이즈’와 ‘세레넬라 시클리티라 조각 장학금 (The Serenella Ciclitira Scholarship for Sculpture)’을 만들어 재능 있는 학생들을 후원해온 것.
‘정말 미술 애호가일까?’ ‘사업가인 만큼 투자의 개념으로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궁금증이 자연스레 생겼다. “우리는 미술을 사랑하고 작가의 열정과 재능을 존경합니다. 투자 개념으로 작품을 구입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곤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소장한 작품 중 단 한 점도 다시 판매한 경우가 없습니다.” 데이비드 씨는 단호하게 말을 이어갔다. “갤러리 건물 옆에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낡은 건물이 있어요. 그 건물을 개조해서 레지던스 프로그램처럼 작가 스튜디오를 만들 계획입니다.” 허나 이렇게 평화로운 풍광 아래서 작가들이 작품 활동에 몰입할 수 있을는지!


1 정원 앞에서 바라본 집의 외관. 초록색 우드 블라인드와 노란색 벽면의 조화가 따스하다.
2 클래식 카 컬렉터이기도 한 데이비드 씨는 애시턴 마틴Aston Martin 네 대를 갖고 있다.
왼쪽부터 1963 Aston Martin DB4 Volante, 1967 Aston Martin DB6 Mk I Volante. 자동차 번호판의 ‘SAD’는 ‘세레넬라와 데이비드(Serenella And David)’의 이니셜에서 따온 것이다.

온 가족이 모였다. 우피와 이웃 개인 프린세신 그리고 재플린과 함께. 스쿠비가 빠졌네!


이탤리언 휴식 움브리아 주의 특산물이기도 한 송로버섯 듬뿍 넣은 파스타를 먹으며 입이 호사를 부리던 저녁, 문득 사업 파트너로 예술적 동지로 살아온 두 사람의 로맨스가 궁금해졌다.
“런던에서 변호사로 지내던 시절, 자선 파티를 계기로 아내를 만났습니다. 단번에 운명적인 만남이라는 것을 알아차렸고 바로 데이트 신청을 했습니다. 보기 좋게 차였지요. 그날부터 매일 그녀의 집을 찾아 우유 배달통에 장미꽃을 넣어 제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6개월이 지나자 마음을 열더군요.” 흐뭇하게 이야기를 듣던 세레넬라 씨가 한마디 덧붙인다. “제가 그만큼 매력적이었거든요. 호호.” 대륙을 누비는 타고난 사업가이자 탐미적 습성으로 집 안을 갤러리로 만든 미술 애호가, 32년간 함께 지낸 예술적 동지.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부부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이 노란 집에서 여덟 살 난 손녀와 함께 물놀이와 탁구를 즐기는 시간이다. 달빛 아래 그리스 민속춤 칼라마티아노를 추는 할아버지와 손녀의 춤사위를 보니 이보다 더 행복할 수가 없다. 미술과 삶을 사랑하는 시클리티라 부부의 여름 별장에서 보낸 이탤리언 휴식, 오랫동안 그리워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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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신진주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2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