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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속에서 미래를 찾는 열정의 크리에이터 포르나세티
태양, 달, 물고기, 수수께끼 같은 여인의 얼굴…. 포르나세티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바르나바 포르나세티Barnaba Fornasetti의 밀라노 하우스를 찾았다. 아버지 피에로 포르나세티Piero Fornasetti의 살아 있는 아카이브이기도 한 집은 한 세기를 풍미한 아티스트의 눈부신 작품으로 깊은 내공을 드러낸다. 과거의 풍부한 유산 속에서 새로운 것을 향해 전진하는 현재진행형 공간, 포르나세티 하우스로 초대.

밀라노 국제 가구 박람회 기간 중 밀라노 자택에서 만난 바르바나 포르나세티. 브라운&버건디 스트라이프 수트에 모자 패턴의 포르나세티 넥타이를 매치해 위트를 더했다.
2013년, 밀라노 트리엔날레 디자인 뮤지엄에서 열린 피에로 포르나세티 탄생 1백 주년 기념 회고전. 피에로의 아들 바르나바 포르나세티가 큐레이팅을 맡은 전시는 오프닝 파티에만 무려 3천 명의 인파가 몰렸으며, 전시가 끝난 후에도 열기가 식지 않아 2015년 파리 장식미술관 순회 전시로 이어졌다. 그리고 아시아에서는 서울이 바통을 이어받아 지난해 11월 22일부터 올해 3월 19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대규모 특별전을 펼쳤다. 전시는 포르나세티의 명성만큼이나 반응이 뜨거웠다. 오페라 가수인 리나 카발리에리의 얼굴을 모티프로 한 대중적 작품부터 트레이, 의자, 조 폰티와 협업한 장식장, 거울, 우산 꽂이, 재떨이까지 1천3백여 점이 넘는 작품은 누구에게나 근사한 포토월이 되었고, 전시 기간 내내 소셜 미디어를 뜨겁게 달궜다. 포르나세티의 모든 창조적 영감이 시작된 곳, 전시의 모티프이자 포르나세티의 살아 있는 아카이브라 할 수 있는 밀라노 아틀리에 취재가 더욱 기대된 이유다.

포르나세티의 창립자 피에로 포르나세티가 디자인한 아르키네투라Archinettura 수납장과 조명등, 조각상, 거울 등이 어우러진 코너 공간. 패브릭, 소품을 벽지 등 바탕색과 같은 컬러로 매치하는 것이 바르나바의 데커레이션 방식이다.

컵, 트레이, 부엉이, 고양이 장식품까지 포르나세티의 수집 DNA를 보여주는 선반 장식장.

삶과 영감이 어우러진 공간
도시 전체가 디자인 축제로 들썩이는 지난 4월, 밀라노 동쪽의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한 포르나세티 아틀리에를 찾았다. 19세기 말 할아버지 피에트로 포르나세티 Pietro Fornasetti가 지은 집은 이후 여러 번 확장되어 단지 안에서 꽤 큰 지분을 갖고 있다. 라일락 정원을 중심으로 ㄱ자로 꺾인 건물은 한쪽은 바르나바의 프라이빗한 주거 공간으로, 다른 한쪽은 그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는 포르나세티의 아카이브&디자이너 스튜디오로 사용한다. “집은 누구에게나 의미가 다르겠지만, 이 집은 제가 가장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입니다. 정원과 고양이 스모키 (회색 반려묘)가 있기 때문이죠!” 그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바로 정원과 다이닝룸이다. 다이닝룸은 포르나세티 하우스에서 유일하게 ‘컬러’가 없는 공간으로(오롯이 자연의 색을 즐기기 위해!) 화이트 세라믹 타일로 마감했다.

바르나바는 이맘때 즈음이면 밖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공원 산책을 즐기는 등 야외 활동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 폴딩 도어를 젖히면 라일락 정원을 오롯이 만끽할 수 있는 다이닝 공간. 나비 프린트 가구와 타일을 매치해 주방도 살아 있는 정원이 된다. 타일은 체라미카 바르델리Ceramica Bardelli와 협업.
“어떤 물건과 사랑에 빠지고, 소유하고 싶고, 그걸 소유한 후 또 몇 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내고, 때때로 잊어버리고…. 그러한 물건들에서 나는 영감을 받곤 한다. 혹시 더 개선할 부분은 없는지, 더 좋은 물건으로 제작이 가능한지, 때로는 어떠한 물건이 본래 의도와는 다른 용도로 변형될 수 있는 여지를 직감할 때 그 물건에 흥미를 느낀다.”_ 피에로 포르나세티, <포르나세티 특별전> 中

피에로 포르나세티의 방대한 아카이브를 간직한 미팅 공간. 온통 빨간색으로 마감한 방을 지나 포르나세티 디자인 스튜디오가 연결된다.

빨간 피아노와 DJ 부스, 레코드 등 바르나바 포르나세티의 음악적 취향을 알 수 있는 음악실.

누구에게나 좋아하는 것에 둘러싸여 살 권리가 있다고 강조하는 바르나바 포르나세티. 우산과 지팡이 등은 패턴의 복원과 재조합을 통해 콜앤선Cole&Son의 벽지로 탄생하기도 했다.
포르나세티의 나비 문양 타일을 가구와 바닥에 시공해 라일락 정원을 배경으로 마치 나비가 날아다니는 듯한 동화적 무드를 완성했다. 거울을 장식한 거실을 지나 1층으로 올라가면 유럽의 한적한 목조 주택을 연상케 하는 화장실과 세탁실, 바르나바가 어린 시절을 보낸 아이 방(게스트룸)과 침실이 자리한다. 아이 방은 아버지 피에로 포르나세티가 1950년대에 디자인한 물고기와 조개 프린트의 빈티지 트레이를 벽에 조르르 장식했는데, 바르나바가 콜앤선과 협업해 발표한 코랄로Corallo 산호 벽지와 은근한 조화를 이룬다. 계단 좌측 문을 열면 레코드 컬렉션과 빨간색 피아노, 디제잉 시스템을 갖춘 음악실과 방대한 드로잉 북을 보관하는 아카이브&미팅룸을 지나 포르나세티 디자인 스튜디오가 연결된다. 음악을 사랑하는 바르나바는 마법사 모자를 쓰고 DJ가 되는 것을 즐긴다. DJ 부스를 지나면 온통 빨간 방과 마주하는데, 마치 포르나세티의 광기에 가까운 열정을 상징하는 듯하다. “레드, 그린, 옐로 등 역사적 공간을 현대적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과감한 색채를 선택했어요. 가구와 월 커버링, 조명과 소품 모두 같은 컬러로 톤앤매너를 맞추는 것도 하나의 재미 요소죠. 사실 아버지 세대에는 전쟁 때문에 피폐해진 생활에 장식품이 무슨 소용이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때마다 아버지는 ‘예쁘니까 좋지 않냐?’고 반문했죠. 많은 사람이 아버지가 남긴 수만 개의 작품(장식품)이 있는 집에서 생활하는 것이 부담 되지 않느냐고 묻지만, 저에게 집은 늘 책임감과 비례해 좋은 영감을 주는 상상력의 원천이 됩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진행한 포르나세티 특별전에서도 만난 거울 컬렉션. 더 많은 사람이 일상에서 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아트 프로젝트를 기획한 포르나세티는 포르나세티 아카이브 전시에 이어 오페라를 기획해 또 다른 도전을 펼친다. 고전 오페라와 로메오 질리Romeo Gigli의 현대 의상, 바르나바 포르나세티의 무대 디자인이 만나 뜨거운 호응을 얻은 오페라 <돈 조반니>를 서울에서도 조만간 만날 수 있기를!

조합, 편집의 시대
우리에게는 여인의 얼굴로 유명한 포르나세티의 다양한 세라믹 제품과 오브제, 가구 등은 모두 과거 방식 그대로 제작하는 것이 특징이다. 도장, 실크스크린, 옻칠 마감 모두 프로덕션의 숙련된 장인이 수작업으로 진행해 가구의 경우 주문부터 제작까지 7개월 정도 기다려야 한다. 지난해 소개한 1백 권 한정 아트 북은 14세기 방식 그대로 면사에 프린트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타일과 벽지는 라이선스를 두고 다른 회사와 협업해 제작하는데, 파트너를 찾을 때도 장인 정신과 수공예, 히스토리, 브랜드 철학을 검증하는 것이 우선이다. “오랜 파트너인 콜앤선은 영국 왕실에 납품할 정도로 높은 퀄리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브랜드예요. 우든 플로어 회사는 화학 요소를 전혀 사용하지 않죠. 패브릭은 코모 근처에 있는 오가닉 텍스타일 브랜드와 협업합니다. 동물을 사랑하고, 자연에 해가 되지 않는 것, 동시대를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가치니까요.” 포르나세티는 최근 아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오페라를 기획해 무대 디자인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고전 오페라 방식을 재현해 음악은 옛날식으로, 의상이나 무대 디자인은 현대적으로 구현. 의상 디자인은 로메오 질리가 맡았다. 이처럼 과거의 작품과 동시대의 프로젝트를 연결하면 커다란 시너지 효과가 발생하는데, 이것이 바로 바르나바가 원하는 콘트라스트다.

이 집에서는 오리지널과 새것을 구분하는 것도, 트렌드를 논하는 것도 무의미하다. 오랜 기간 축적해온 아카이브를 어떻게 다양하고 창의적으로 활용하고 변모시킬지가 훨씬 중요하다고 말하는 바르나바 포르나세티. 아버지의 드로잉이 담긴 아카이브가 그의 말을 증명한다.

정원을 가꾸는 일이 즐겁다는 바르나바 포르나세티. 휴일이면 언제나 반려묘 스모키와 정원에서 망중한의 휴식을 즐긴다.
“포르나세티 오브젝트는 사실 대중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가격대는 아닙니다. 하지만 전시와 오페라 등 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더 많은 사람이 예술과 디자인을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예술이 꼭 벽에 걸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은 아버지의 뜻처럼 일상에서 경험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믿어요. 관객 역시 작품을 보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닌, 자신의 방식대로 재해석하길 바랍니다.” 칼럼니스트 다이애나 브릴랜드는 “시선이 여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머물고 바라보는 사람 각자가 스스로 탐구하고 발견할 여지가 있는 공간을 창조해야 한다는 뜻이다. 트렌드보다는 오랜 시간 축적해온 아카이브를 창의적으로 해석하고 변모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포르나세티. 1백 년의 시간을 넘어, 밀라노에서 서울까지 시공간을 뛰어넘는 독창성이야말로 포르나세티가 지닌 가장 강력한 히스토리다. 그리고 바르나바 그다음을 넘어, 포르나세티가 끊임없이 진화해가기를 바란다.


취재 협조 포르나세티(www.fornasett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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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현 기자 사진 톰마소 포지니Tommaso Foggini(STUDIO-KORE)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7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