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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한옥 눈 내리던 날
눈 소식을 손꼽아 기다려본 게 얼마 만인지! 금세 비라도 내릴 것처럼 하늘이 꾸물꾸물하더니 제법 굵은 눈발이 흩날린다. 눈이 오면 마당에 모여 빔 프로젝터로 영화 한 편 보자는 약속을 곱씹으며 다시 서촌 골목길을 찾았다. 눈 내리던 날, 여름한옥에서 보낸 하루.

서촌 골목에 자리한 여름한옥. 간판의 일러스트는 딸 정우가 그린 그림으로 여름한옥의 마스코트가 됐다.

1 대청에서 바라본 소담한 마당. 하얗게 페인트 칠한 담벼락은 근사한 야외 영화관이 된다. 2, 3 콩댐으로 마감한 말간 바닥과 한지 창 너머로 들어오는 은은한 채광 등 한옥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는 방. 작은 방은 바느질하기에 최상의 장소다. 4 한옥에 어울리는 데커레이션은 따로 있다. 코바늘뜨기로 완성한 볼을 조르르 달아 완성한 나뭇가지 모빌.
2014년 11월 “작은 한옥을 고치기 시작했어요” 블로그 단추수프로 활동하는 바느질 작가 문수연이 오랜만에 소식을 전해왔다. 2년 전 그토록 바라던 한옥을 장만한 뒤 꼭 1년 만이다. 평창동의 낡은 주택을 고쳐 <행복>을 비롯해 케이블 TV의 인테리어 방송에도 소개될 만큼 집 개조라면 자신있는 그였지만 ‘한옥 대수선’은 시작부터 녹록지 않은 도전이었다. 대지 면적 14평, 건축 면적 7.6평, 이웃집 다섯 채와 맞닿아 있는 좁고 긴 집은 먼저 한옥의 본래 모습을 되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서촌 한옥보존지구에 남아 있는 작은 한옥은 대부분 마당을 지붕으로 덮어 집 안 공간으로 끌어들여 쓰는 경우가 많은데, 이 집 역시 ㄱ자형 작은 한옥에 마당 부분을 천장으로 막아 거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기와를 제외하고는 외형상으로 한옥의 목구조가 전혀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세월의 더께가 두껍게 쌓인 집. 천장에 가려 있던 서까래와 흙에 파묻힌 보가 드러나는 순간 감동해 마지않았단다. “오랜 세월 버텨줘서 고맙습니다!”

다섯 집에 둘러싸여 있는 여름한옥은 그래서 더 아늑한 정취가 배가된다. 벽은 와편 장식을 생략하고 하얗게 마감해 빔 프로젝터를 쏘면 야외 극장으로 변신한다. 고재 벽돌을 사용한 마당, 기단석의 자갈 장식도 정겹다. 
2013년 11월 한옥은 문수연 작가 가족의 오랜 소망이었다. 평창동 빨간 벽돌집으로 이사할 때도 한옥을 고려했지만, 여섯 가족이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을 거란 판단에서 포기 했다. 하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또다시 한옥에 대한 로망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저는 늘 한옥을 꿈꿨지만 경제적 여력이 되지 않았고, 아이들 고모 역시 오래지 않은 미래에 한옥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기대했지만 항상 일하느라 바빠서 엄두를 내지 못했죠. 시누이가 한옥을 마련하고, 그 한옥을 고치고 꾸려나가는 일을 제게 맡겼어요.” 자매보다 더 마음이 잘 맞는 시누이와 올케의 합작품이라니 여러모로 꿈 같은 이야기다. 뭐든지 재량껏 해보라는 응원에 힘입어 그야말로 열심히 공부하고 설계 사무소를 고르는 데도 신중을 기했다고 한다. 하지만 처음 대수선을 의뢰한 한옥 전문 설계 사무소는 약속을 어기기 일쑤였고 6개월을 기다려도 만족할 만한 설계를 내놓지 못했다. 결국 믿을 만한 대목을 찾아 직접 시공하기로 한 그는 한옥을 준비하며 여러모로 참고한 <작은 한옥 한채 지었습니다>의 저자인 서울한옥 황인범 대표 도편수에게 공사를 의뢰했다. 황인범 목수가 공사를 총괄하고 북촌 일대의 한옥은 죄다 지었다는 조장래 대목이 목공사를 맡았다.

1 화장실 벽면은 안쪽으로 매입해 나무 선반을 짜 넣었다. 벽면은 화이트 콘플로어로 마감해 자연스러운 손맛이 느껴진다. 2 대문을 열면 골목과 마주하는 주방. 3 주방은 폭이 좁은 조리대와 테이블을 제작. 한옥 시공은 서울한옥(02-723-1595)에서 맡았다.
2015년 1월 작은 한옥에서 이렇게 많은 흙과 폐기물이 쏟아지다니! 2주간의 철거를 마치고 지붕의 흙과 기와를 덜어내 서까래가 온전히 드러난 모습을 보니 어둡고 눅눅했던 집이 금세 보송보송해진 느낌이다. 들보와 기둥, 서까래 등 한옥에 쓰는 나무는 모두 고재를 사용했다. 근처 체부동 한옥의 철거 현장에서 공수한 고재를 깎고 다듬고 연결하는 작업만 한 달이 족히 걸렸다. “이 집을 처음 지을 때 사용한 나무와 체부동 한옥에서 가져온 고재와 제재소 에서 가져온 신재까지 각각 사연이 있는 나무들이 어우러질 수 있다는 점이 재밌으면서도 그게 바로 한옥의 포용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뿐이랴. 울퉁불퉁한 땅을 고르고 기둥을 세운 뒤 수평과 수직을 맞춰 보를 올리는 모습은 감동 그 자체. 황인범 목수의 말처럼 한옥의 부드러운 아름다움과 시각적 균형은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정확한 직선의 수직, 수평에서 비롯하는 것이리라. 기둥을 세우고 마룻대를 올리는 상량식도 무사히 마치고 지붕 위에 흙을 일일이 던져 얹은 뒤 기와를 올리기까지… 잘 자란 자식을 보는 것처럼 매일 현장에 가서 감탄했다는 문수연 작가. 한옥 공사비는 양옥에 비하면 입이 쩍 벌어지는 수준이지만 하나하나 사람 손으로 완성해가는 과정을 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2015년 4월 7.6평의 한옥은 부엌을 지나 대청, 화장실, 침실이 나란히 자리하고 부엌과 대청 맞은편에 소담한 마당을 품은 ㄱ자형 구조다. “집을 설계할 때 부엌 위쪽에 다락을 얹자는 의견도 있었어요. 하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공간을 욕심낼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죠. 작다고 너무 아등바등하는 느낌이랄까요? 저는 늘 큰살림을 해왔기 때문에 작은 살림에 대한 로망이 있어요. 마치 소꿉놀이하듯 숟가락 두 개, 밥그릇 두 개만 두고 살아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작은 살림요. 이 집은 제가 딱 원하는 만큼 작았고, 작은 집에 맞춰 공간을 구성하고 최소한의 가구와 살림을 배치하는 일이 즐거웠죠.”

물론 일반 주거 공간이 아니라는 전제 조건이 있다. 여름한옥은 바느질 작업 공간, 게스트 하우스 등 목적이 정해지지 않았기에 방을 늘리거나 수납공간을 확보하는 것에서 다소 자유로웠던 것이 사실. 여기에 부엌을 바깥쪽으로 배치하는 신의 한 수를 뒀고, 이는 작은 한옥이 전혀 옹색하거나 답답하게 느껴 지지 않는 비결이 됐다. 창문과 대문을 열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설거지나 요리를 할 수 있는 열린 부엌. 조리대와 식탁은 높이와 크기를 맞춰 두 개를 붙여 쓸 수도 있다. 부엌과 대청은 일자 구조지만 단 차이를 뒀고, 마당 한쪽 벽은 미장한 후 흰색으로 칠하니 근사한 야외 영화관이 완성됐다.

“저는 늘 큰살림을 해왔기 때문에 작은 살림에 대한 로망이 있어요. 마치 소꿉놀이하듯 숟가락 두 개, 밥그릇 두 개만 두고 살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작은 살림요. 이 집은 제가 딱 원하는 만큼 작았고, 작은 집에 맞춰 공간을 구성하고 최소한의 가구와 살림을 배치하는 일이 즐거웠죠.”

1 주방, 대청, 침실까지 일직선으로 통하고 또 나뉘는 작은 한옥. 조명등의 전선을 코바늘뜨기로 장식하고, 앙증맞은 오너먼트를 만드는 등 소소한 살림 미감을 함께 나누고 즐기는 친구가 있어 행복하다. 2 머물고 싶은 공간으로 만들어주는 비결은 바로 손뜨개.
2015년 6월 방 한쪽에는 한지 미닫이문 안에 수납장을 짜 넣어 TV와 이불 등을 수납하고, 누웠을 때 안정감이 들도록 서까래를 막는 천장 마감을 했다. 한옥의 완성이라는 창호를 달고, 화장실 공사와 가전제품 설치까지 마치니 이제 집주인의 손길이 더해져야 하는 작업만 남았다. 조명등과 스위치 커버를 달고 전등갓을 벗겨내고 천을 씌우고, 나무 선반도 집에 어울리는 것을 골라 다시 달고, 정갈한 이부자리를 맞추고… 꿈꾸던 한옥의 이미지가 하나 둘 실현될 때의 행복감이란! “사실 그간 이사도 많이 다니고 인테리어 공사도 많이 했지만 공간을 공간 자체로 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여섯 식구 짐이 다 알맞게 들어가고 가족이 같은 시간 화장실을 쓰는 데 불편함이 없는지, 부엌과 거실의 동선은 괜찮은지, 늘 생활에 초점이 맞춰 있었지요. 이 집은 마치 한풀 이하듯 오롯이 제가 꿈꾸던 집의 이상향을 원 없이 풀어낸 것 같아요.” 그렇게 완성된 집의 이름은 ‘여름한옥’. 우리나라 말로 의미가 좋은 단어가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 열매, 또 뜨겁다는 뜻을 품은 ‘여름’으로 정했다.

2015년 11월 좁은 골목길과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서촌. 일명 ‘건축학개론 한옥’이 자리한 작은 골목에 사람들이 북적인다. 여름한옥 오픈 하우스 날, 동네 이웃은 물론 가족을 동반한 친구며 지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따뜻한 구들방에 모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이, 창밖을 바라보며 한옥의 고즈넉함을 즐기는 이, 대청 한구석에서 혼자 책 읽는 이 등 한옥을 즐기는 방법도 제각기다. ‘여름한옥’은 문수연 작가의 바느질 모임을 비롯해 다양한 모임 공간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처음에는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해볼까도 생각했지만, 이 역시 특정인에게 국한되는 것 같아 핸드메이드 클래스나 다과 모임 등 한옥을 체험할 수 있는 대여 공간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봄이 되면 일주일에 며칠만 오픈하는 카페로도 운영해볼 생각이다.

무엇보다 여름한옥을 구입하고 설계 사무소와 시행착오를 겪고 관공서를 매일 드나들며 믿음직한 시공사인 황인범 목수를 만나고 가족들의 아낌없는 응원을 받기까지(시아버님이 직접 상량문을 써주셨다), 한옥을 지으며 집이 아니라 사람에 대해 삶의 태도에 대해서 더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는 문수연 작가. 앞으로 이 작은 한옥에서 벌어질 소소한 일들을 온전히 즐거운 마음으로 누려야겠다는 생각이 크다. 작디작은 한옥이 품은 큰 생각이다. “다음 주에 눈 소식이 있어요. 마당에 눈이 소복이 쌓이는 날, 같이 눈 구경 하실래요? 
문의 www.buttonsoup.co.kr, thebuttonsoup@gmail.com


천천히 짓는 집, 여름한옥 개조 일지

1 1백 살 한옥 철거. 서까래만 남기고 지붕과 벽체, 바닥을 모두 들어낸다. 2 목공사 시작. 뼈대만 남아 있으니 들보와 기둥 곳곳에 부목을 댄다. 3 확보한 고재를 정리한다. 사용할 고재를 치수에 맞춰 재단하고 다듬는 과정. 4 겨울 공사라 기와를 얹기 전 먼저 상량식(마룻대를 올리는 의식)을 했다. 5 썩거나 약한 서까래를 단단한 서까래로 교체한다. 고재를 다듬어 사용. 6 흙을 개어 기와 위에 얹는다. 서까래 사이사이에도 흙을 바른다. 7 바닥 마감 전 배관 공사. 위치를 잘 기억해둬야 한다. 8 수장드리기(창호와 방을 만들기 위해 기둥 사이에 프레임을 설치하는 작업).
9 기와 얹기. 암키와(평기와)를 아래 깔고 수키와(둥근 기와)를 위에 또 한 번 깐다. 10 신재와 고재의 색감 통일을 위해 집에 사용한 나무를 모두 사포로 갈고 칠한다. 11 내부 바닥과 마당 바닥을 마감한다. 실내는 단열재를 채운다. 12 방 천장의 서까래 막기, 벽 세우기 등 실내 목공사. 13 마당 기단 정리. 땅을 깊숙이 파 원래 있던 주초석을 많이 찾았다. 14 한옥의 완성, 창호(미닫이, 여닫이)와 처마의 빗물받이 설치. 15 방바닥 마감과 마루 깔기. 따땃이라는 마감재로 1차 마감하고 콩댐했다. 16 도배와 타일 공사. 이후 부엌 가구 제작, 조명등 설치 등의 작업을 마무리한다.
한옥 지을 때 알아둘 점
1 한옥보존지구의 한옥 대수선은 서울시의 지원금을 요청할 수 있다. 지원금 외저리 융자금도 나온다. 물론 이 지원금을 받으려면 서울시 한옥 요건을 다 갖춰야 하고 건축 설계 사무소와 작업하는 것은 필수다. 융자금 외 지원금은 한옥 공사 완료 후 준공 심사와 한옥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지급된다.

2
한옥 재료로 고재와 신재가 있다면 기와를 제외하고는 고재가 무조건 더 비싸다. 고재는 재개발이 되거나 신축 한옥 현장에서 철거하는 재료를 구입할 수 있다. (공사 시기를 맞추는 게 중요). 나무 색이 다르더라도 깎기와 칠하는 과정을 통해 색감을 통일할 수 있다. 고재 기와는 방수 기능이 떨어질 수 있으니 유의할 것.

3 서까래를 신재가 아닌 고재로 선택했을 경우 천장을 치받이로 마감해야 한다. 치받이란 서까래 사이사이에 나무 판자를 대지 않고 하얀색 도장으로 마감하는 것. 나무와 흰색의 조화가 좋아 치받이를 선호하지만 하얀 돌가루가 떨어질 수 있다.

4 한옥 심사를 받을 경우 창살, 빗물받이, 벽면의 와편 문양 등 한옥의 필수 요소를 만족해야 한다. 특히 창살, 여닫이나 미닫이 형태 등 창문에 대한 요건이 엄격하다.

<행복> 독자를 초대합니다 
정갈한 살림과 소소한 손맛을 느낄 수 있는 서촌 ‘여름한옥’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일시 2월 17일(수) 오후 2시 
인원 8명 참가비 1만 원 
장소 서울시 종로구 필운대로5가길 11-2 
신청 방법 <행복> 홈페이지 ‘오픈 하우스’ 코너에 참가하고 싶은 이유를 간단히 적어 신청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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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현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