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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이기조 빼고 빼고 빼서 정수만 남긴다
“조선백자는 정치精緻하면서도 현란한 색채는 전혀 없는 세계다. 도공은 면밀하며 복잡한 도안을 그려보자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꼼꼼한 기교란 그들이 알 바 아닌 수법이었다. 그들에게는 걸작에 대한 의식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릇은 그들이 낳은 것이지 만든 것이 아니다. 위대한 예술의 법칙, 즉 자연에 귀의함이 거기에 이루어져 있지 않은가.” 일본의 민예 운동 창시자이자 한국 공예품의 열혈 팬인 야나기 무네요시가 쓴 <조선과 예술> 중 한 부분이다. 하지만 이는 현시대를 사는 도예가 이기조와 그가 빚는 백자에도 여지없이 적용된다. 그리고 그가 만드는 음식, 그가 머무는 공간에도 통용되는 이야기다.

사람들에게 좋은 그릇을 사용하는 즐거움을 주고자 최근 양산 시스템을 도입하고 대중 라인 바숨Vasum을 선보이는 도예가 이기조. 이마트의 생활용품 전문매장 ‘더 라이프’에서 만날 수 있다.
의식조차 버리고 진실하게
담아보면 안다. 도예가 이기조가 빚은 백자는 여느 것과 다르다는 사실을. “좋은 백자는 만지고 싶은 그릇이고, 좋은 그릇은 뭔가를 담고 싶은 그릇”이라는 신념 때문인지 그의 백자를 마주하면 자꾸 마음이 가고, 한 번 더 만지게 되고, 정성스레 만든 음식을 담고 싶은 마음이 동한다. 혹자의 말처럼 라면도 이기조의 그릇에 담으면 격조가 더해진다. 본디 조선백자가 지닌 정결함과 따스한 살결의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리라. 담백한 흰빛이 소박하면서도 단아함을 드러내는 그의 그릇은 군더더기 없는 조선백자의 기품을 그대로 유감없이 보여준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앤티크에서 작가의 취향을 엿볼 수 있다. 
“사람들이 조선백자를 바라볼 때 느끼는 정서는 공통된 부분도 있지만 저마다 다릅니다. 제게는 ‘군더더기가 없다’는 것이지요. 필요 없는 것을 빼고 또 빼고 빼서 정수만 남는 것. 거기에는 잘 만들려는 의식조차 없어야 합니다. 잘 만들려는 욕심을 버리는 것조차 욕심이니 그런 의식조차 없는 것이지요. 나는 그걸 ‘진실성’이라고 봅니다.” 작업하는 과정의 진실성, 작업하는 태도의 진실성, 작업하는 노동의 진실성…. 그가 도예 작업을 하면서 충실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진실성은 뭘까. 진실하다는 것은 꾸밈이 없다는 뜻,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보여주고 정직하게 표현해내는 것이다. 그러려면 우선 숨김이 없어야 하는 법. 드러냄이 밝아야 한다는 말이다.

백자의 가장 큰 쓰임새는 그릇이라고 말하는 도예가 이기조. 그가 만든 대접에서 단순미와 절제미가 느껴진다.
“조선시대에는 여유와 풍류가 있었어요. 18세기에 조선 왕실에서만 사용했다는 ‘백자청화운룡문호’만 봐도 그렇지요. 찌그러진 쪽으로 용머리가 그려진 기가막힌 청화백자 달항아리인데, 형태에서도 도공의 진실성이 엿보이지요. 잘 만들어야 한다는 의식조차 없이 그저 작업하고,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결과를 감추지 않았어요. 그리고 검품관이나 임금 역시 일그러진 것도 받아들일 수 있는 포용력이 있었어요.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때는 문화적 자신감이 있었지요.” 조선백자는 언뜻 보면 모순 덩어리다. 심심할 정도로 단순한데 풍성한 느낌이 들며 상하좌우가 비대칭이지만 아름답다. 조선시대 사람들의 진짜를 골라낼 줄 아는 눈, 빼어난 미감의 안목 덕분에 조선백자만의 묘한 매력도 다져졌을 터.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는 좋은 것을 알아보는 감각, 바로 안목을 갖추는 것이 먼저라고 강조한다. 결국 미美의 문제는 선택하는 능력으로, 안목은 ‘베스트’를 보고 경험해야 키울 수 있다. “정말 좋은 것은 많이 경험해본 사람만이 알아보는 법입니다. 그래야 기준이 생기고 안목도 갖출 수 있지요.”

도자기를 만들 때보다 요리하는 것이 더 좋다는 그가 직접 요리해 그의 그릇에 담았다. 제주 출신답게 소라구이, 자리물회, 멍게무침 등과 함께 샐러드로 여름 손님상을 차렸다.
그가 말하는 베스트는 세 가지. 하나는 신이 만든 베스트, 바로 자연이다. 그가 감각적으로 뛰어난 것도 제주도 출신으로 유년 시절을 제주의 풍요로운 천연환경 속에서 보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옛사람이 만든 문화유산이다. 그래서 그는 박물관과 미술관에 있는 베스트를 자주 찾고 경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마지막은 현시대의 명품으로, 그릇이든 가구든 가방이든 직접 사용해봐야 한다. 베스트를 경험하고 공부하면 감각이 생기고 눈이 밝아진다. 그가 자연에 기대어 살며 문화유산을 찾아다니고, 명품 중에서도 빈티지 가구와 그릇 등을 생활에 들이는 이유다.


조선백자의 맥을 잇는 현대판 백자 장인
“백자는 치기나 객기가 통하지 않는 부분이에요. 그런 마음가짐으로는 결코 형형한 느낌의 백자를 만들 수 없어요. 민낯으로 발가벗은 상태에서 보이는 게 백자거든요. 도공 입장에서는 마음가짐과 실력이 고스란히 드러나니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지요.” 그릇을 쓰는 사람에게도 그렇지만 그릇을 만드는 도공에게도 마지막 단계에 이르는 지점이 백자다. 조선백자는 흙의 맛으로, 아무런 기교 없이 흙 자체가 예술이 되는 도자기이기 때문이다. 지금에야 가장 다루기 힘든 도자기인 백자를 백자답게 다룰 줄 아는 작가로 ‘현대판 백자 장인’이라고까지 불리지만, 그가 20년을 한결같이 백자만 고집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갤러리 겸 문화 공간으로 사용하려고 만든 컨테이너 한쪽 벽면을 빼곡히 채운 LP 앨범들. 언젠가는 이곳에 음악실을 꾸며 여러 사람과 즐기고 싶은 것도 그의 꿈 중 하나다. 
물론 그도 처음부터 백자를 빚은 건 아니었다. 그가 서울대 응용미술학과를 다니던 1980~1990년대에는 공예와 제품 할 것 없이 디자인 붐이 일던 시기였다. 그도 가구 디자인에 뜻을 품고 들어갔는데, 도자기가 너무 재밌더란다. 특히 그릇을 만들어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기쁨이 굉장히 컸다. 하지만 그릇을 만드는 도예가가 많지 않은 데다 다들 조선백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시절이었다. 한데 교수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회의가 들더란다. 비록 맥은 끊겼지만 우리 최고의 전통인 조선백자를 누군가는 이어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고뇌하던 시기였다.

침실에서 보이는 풍경. 별다른 장식 없이 창이 많은 것이 그가 머무는 생활 공간의 특징이다. 
그가 조선백자에 깊은 관심을 가졌을 무렵, 그 앞에 귀인이 나타났다. 그와 뜻을 같이하는 젊은 도예가들과 함께 국내와 일본의 고미술상과 컬렉터, 박물관을 수차례 찾아다니며 직접 그릇을 보고 만지고 들어보면서 우리 도자기를 연구하게 된 것. 그의 멘토인 공아트스페이스 공창호 회장도 그 시절 만난 인연이다. “당시 대동문화연구소에 가면 그분에게 감정을 받으려는 고미술품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감정 대기 중인 고미술품 사진을 찍는 일을 자청했어요. 그때 직접 들어보고 만져보면서 고미술품 공부를 엄청 했지요.” 조선백자의 기품에 사로잡혀 ‘해보자’ 마음먹은 이후 그대로 따라 만들기를 수년간 거듭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차차 조선백자의 조형미를 인용하고, 응용하고, 때로는 변형시키며 이기조만의 현대 백자를 완성해나갔다.

복층 구조를 연결하는 계단 밑에 수납공간을 마련해 자질구레한 소품을 보관한다. 그림은 박영대 작가 작품, 빈티지 콘솔은 무아소니에 제품. 
“도자기를 만들 때도 레시피가 필요한데, 저는 그게 없어요. 아이디어 스케치도 하지 않지요. 내 안의 감흥으로, 내 안의 감각에 충실하면서 작업하려고 해요. 내 머릿속에 있는 것은 이미 다 알고 있는 것, 고리타분한 것이니까요. 내 머릿속에 없는 것,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끌어내려고 노력해요. 우연성과 즉흥성의 결과물이랄까요.” 그 때문에 그는 자신 안의 감정이 각박해지지 않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작업할 때도 감흥이 생기지 않으니 영혼이 각박해지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애쓴다. “좋은 생각을 많이 하고, 좋은 음식을 먹고… 맑은 기운을 지니려고 노력하죠. 내 영혼이 맑아진다고 느끼는 순간은 소나무를 전지할 때예요. 집중해서 전지하다 보면 공명公明해지고 무심無心한 상태가 되죠. 서양에서 가드닝을 최고의 취미로 꼽는 이유를 알겠더군요.”

1층 공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방을 보면 요리 연구가의 공간으로 착각할 정도다.

도예와 요리하는 감각은 통한다
도자기와 요리의 프로세스는 똑같다. 손맛으로 만든다는 점도 그렇지만, 재료만 다를 뿐이지 조합이 중요한 것도 같은 부분이다. 도예 작업을 할 때도 즉흥적 감각을 중시하는 그의 자세는 요리할 때도 그대로 적용되는데, 요리하는 데 즐거움이 없으면 음식이 맛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 “요리할 때도 감각이 있어야 하고, 원리를 알아야 해요. ‘볶음 요리를 할 때는 팬을 달궈 기름을 넣고, 마늘과 고추를 먼저 볶는다. 그리고 재료는 늦게 익는 순서대로 넣는다.’ 이런 기본 공식만 알면 요리가 무척 쉬워져요.”

레노베이션한 집은 좁은 공간을 구석구석 알차게 활용했다. 거실에 가벽을 세우고 책상을 제작해 넣어 서재처럼 사용한다.
감각적이고 즉흥적인지라 딱히 레시피도 없다는 그의 요리 실력은 사실 수준급이다. 해마다 김장철이면 집으로 지인들을 불러 ‘김치 페스티벌’도 연다(<행복> 1월호에 소개되기도 했다). 집 앞에 있는 밭에서 직접 농사지은 재료로 담근 김장 김치와 돼지고기 수육, 직접 담근 막걸리까지 나눠 먹는 모임이자 회식이자 놀이로 그에겐 삶의 크나큰 낙이다.

그릇 빚을 때도 쓰임새까지 고려해 형태를 만드는 그는 요리도 직접 만든 그릇에 담아낸다.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그가 빚은 백자가 그릇으로서도 최적화된 이유다. “일본의 최고 요리학교에는 지하에 도예 공방이 있다더군요. 요리사에게 그릇에 대한 감각을 키우게 하기 위해서죠. 같은 맥락에서 그릇 만드는 사람이라면 요리가 필수 덕목이에요. 좋은 그릇에 일상 음식을 담아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는 것도 작가가 해야 할 일이니까요.”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뒷마당에서 머무는 시간을 좋아한다는 그는 자연을 마주하며 마음가짐을 새롭게 한다.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좋은 그릇을 사용하는 즐거움을 경험을 하게 하고자 요즘은 양산 시스템으로 대중화할 제품을 만드는 데 열심인데, 바로 이마트의 생활용품 전문매장 ‘더 라이프’에 도예가 이기조의 세컨드 브랜드 ‘바숨Vasum’을 소개하는 것. 대신 작가로서 선보이는 조선백자는 옛 느낌을 더욱 살리고자 한다. “모던한 형태는 유지하되 흙의 질감은 옛 조선백자의 근원에 가깝게 빈티지로 가려고 해요. 조선백자의 독특한 맛은 흙에서 나오는데, 태토가 지닌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담고 싶어요.”


자연에 기댄 단출한 삶
1995년 중앙대학교 공예학과 교수로 안성에 오면서 지금까지 작업장이자 생활터로 사용하는 그의 집은 그가 직접 레이아웃하고 설계한 것. 검박한 박공지붕 집 두 채 중 한 채는 작업장으로, 기다랗게 자리한 나머지 한 채는 생활 공간과 또 다른 작업장으로 쓰고 있다. 생활 공간 바로 앞에는 반듯하게 손질한 잔디와 금송, 마로니에, 감나무 등을 심었다는 정원이 아늑하게 자리하고, 이곳을 지나면 배추ㆍ콩ㆍ고추 등을 농사짓는 밭이 너르게 펼쳐진다. 집 뒷마당에는 직접 담근 장을 묵히는 장독대와 소금 창고도 따로 두었다. 작지 않은 규모인데 편안하고 아늑한 기분이 드는 것은 구성도 아기자기하거니와 자연에 기대어 살고자 하는 그의 마음이 그대로 투영되었기 때문이리라. 대중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그의 성정이 드러나는 공간도 있다. 갤러리 겸 문화공간으로 사용하려고 만든 컨테이너가 바로 그곳.

그가 직접 손 글씨로 쓴 바숨 로고. 대중 라인으로 선보이는 그릇으로 라틴어로 ‘그릇’을 뜻한다. 
1년 전 레노베이션한 집은 복층식이다. 이곳은 그의 취미와 취향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1층은 주방과 다이닝 공간으로 그가 음식을 만들고 나누는 곳이고, 2층에는 침실과 그가 좋아하는 것들을 모아두는 ‘다용도실’이 자리한다. 여기에는 그의 도예 작업에 영감을 주는 도자기와 빈티지 오디오, 앤티크 가구 등이 있다. 집은 사는 이의 인생 철학을 담는다더니, 그의 집은 이기조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하다. “작업 이외의 생활 공간은 그리 넓을 필요가 없더군요. 사실 살아가는 데 많은 것이 필요하지는 않으니까요. 제 삶의 모토는 ‘나 자신으로부터의 자유화’예요. 자유로워지려면 단순해야 하니까, 나이 들수록 비우고 버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느껴요.”

정원 한편에 오브제처럼 쌓아둔 장작. 작지 않은 크기지만 워낙 아기자기하게 구성해놓은 데다 나무로 둘러싸여 편안하고 아늑한 느낌을 자아낸다.
빼고 또 빼고 빼서 정수만 남긴 조선백자처럼 비우고 버려서 단출한 삶을 살고자 하지만 그에게서 백자처럼 당당한 기품이 느껴지는 것은 청년 못지않은 포부와 열정 때문은 아닐는지. “지금은 과정에 있다”는 그의 꿈은 조선백자를 기반으로 한 도자기 명품 회사를 설립하는 것이다. “역사가 몇천 년 된 이 나라에 자국 도자기 명품 회사가 하나도 없다는 게 너무 안타까워요. 조선백자를 명품화해서 우리의 전통문화를 널리 알리는 데 일조하는 게 최종 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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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신민주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