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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집의 소담한 순간들 북촌 오가헌 이야기
1백40년 된 한옥을 복원해 전통 주거의 가치를 높인 광주 오가헌의 오옥순 대표가 북촌 가회동에 살림집을 지었다. 불필요한 살림을 덜어내고 소담한 채마밭을 가꾸며 사는 즐거움. 한옥에서 제대로 사는 법은 비우고 기다리고 관심을 갖는 일이라 말하는 그의 즐겁고 아름다운 오픈 하우스.

한옥 두 채를 연결해 지은 가회동 오가헌. ㄷ자형 한옥을 현대 생활에 맞게 개조한 아래채는 부엌과 다이닝룸이 중심이다. 넉넉한 수납장을 짜 넣고 창을 많이 내어 북촌 풍광을 즐긴다.
2013년 12월, 광주 오가헌을 취재하며 만난 집주인 오옥순 씨는 다시는 한옥을 짓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화석 같은 한옥을 만나 3년간 정성껏 복원한 그는 그제야 가끔 서울에서 내려와 마음 놓고 쉴 수 있다며, 가족 합창단을 만들어 베짱이처럼 노래나 부르며 살겠다는 엉뚱한 바람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2년이 채 지나지 않아 그 다짐은 지켜진 듯 지켜지지 않았다. 마치 ‘한옥 짓기는 나의 운명’이라도 되는 양 광주 오가헌에 이어 북촌에 복원한 또 한 채의 한옥. 가회동 골목에 들어서는 순간 피아노 연주와 아련한 가곡이 울려 퍼지니, 북촌 가족 합창단이 탄생한 것이다.

“오래전부터 아이들에게 뿌리 있는 집을 남겨주고 싶었어요. 오랜 유학 중인 큰아이, 막 태어난 손주까지 집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대대로 살아갈 집요. 어린 시절 살던 한옥이 청사진으로 남아 결국 고향 광주까지 가서 찾은 집이 오가헌이고, 진짜 마지막이라고 다짐하고 지은 집이 여기, 북촌 오가헌이에요. 광주 오가헌을 지을 때만 해도 한옥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컸다면, 생활 한옥인 북촌 오가헌은 한옥에 대한 확신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죠.”

대문을 여는 순간 집 안 풍경이 한눈에 펼쳐지는 소담한 한옥. 마침 스무 평 남짓한 옆집도 매물로 나와 있어 두 집을 연결해 지으면 제법 널찍하고 재미있는 구조가 나올 것 같았다. 광주 한옥은 3년 걸렸으니, 딱 그 반만 투자하리라 마음먹고 남편을 설득했다. 고생길임을 알면서도 아내가 원하는 것이기에 흔쾌히 외조한 남편에게 고마워 남편의 세례명을 따 ‘토마스 하우스’라는 애칭도 지었다. 시공은 광주 오가헌으로 인연을 맺은 박용수 목수가 맡았다.

1 지대가 다른 집 두 채를 연결한 복도. 왼편이 부엌을 중심으로 한 아래채, 오른편이 위채 사랑방이다. 
2 손님들이 사용하기 편리하도록 뒤채 욕실은 타일로 마감했다.
3 원래 주방이 있던 대문 맞은편 자리는 서재와 입식 거실로 꾸몄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부부 침실과 거실, 게스트룸이 이어진다. 

전통과 현대의 간間 줄이기
한옥을 짓거나 고칠 때 가장 먼저 챙겨야 할 사항이 두 가지 있다. 첫째는 말할 것도 없이 명장을 만나야 하는 것이고, 둘째는 상상력을 최대한 절제해야 하는 것이다. 틀에 박힌 고전은 벗어나야 하지만 지나치게 상상력을 발휘하고 변칙을 쓰다 보면 이도 저도 아닌 목조 주택이 되기 때문이다. 1993년부터 사찰을 짓기 시작한 박용수 목수는 두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명장이다. 한옥 세트를 접하며 전통 한옥에서 생활 한옥으로 시야를 넓힌 박 목수의 통찰력에 오 여사의 바지런한 생활 감각과 건축 본능이 더해졌으니, 북촌 오가헌이 더욱 기대될 수밖에 없었다.

“위채는 원래 옆쪽에 대문이 있는 ㄷ자형 구조로 방들이 칸칸이 벽으로 나뉘어 있었죠. 피아노 방이 화장실이었고, 사랑채 역시 벽으로 막혀 있었어요. 지금은 서재로 쓰는 사랑채 맞은편 공간이 원래 주방이었는데 입식 구조였어요. 편의를 위해 두 번 이상 보수한 집으로 한옥의 원형이 꽤 남아 있는 상태였습니다.” 무엇보다 한옥의 속살을 보존하길 원한 오옥순 씨의 바람을 존중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는 박용수 목수는 위채 한옥은 최대한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아래채 한옥을 현대 생활에 맞게 재구성했다. 위채는 독립적인 사랑방과 피아노 방이 대문 양옆으로 자리하고 안쪽으로 거실과 침실, 서재 등으로 활용하는 방들이 창호문을 사이에 두고 쭉 연결된다. 아래채는 오로지 부엌을 중심으로 공간이 순환하는 구조. 아래 채 대문을 기준으로 맞은편은 다이닝룸으로 꾸몄고, 오른쪽 부엌은 아래쪽에 지하 공간을 파 저장고를 복층으로 구성했다.

위채와 아래채의 지대 높이가 상당히 차이 났기에 나선형 계단처럼 부엌-다이닝룸-복도-욕실-다용도실 순으로 차츰차츰 낮아지며 동선이 연결된다. 방과 마루, 부엌, 다용도실, 수납장 등의 위치와 크기, 동선은 오옥순 씨가 용도에 맞게 정한 것. “목수는 한옥을 짓지만 저는 살림하는 주부잖아요. 한옥의 가장 불편한 점이 동선과 수납이에요. 저는 생활하는 사람이니까 그런 부분에서는 제 주장을 펼쳤지요. 목수 말씀이, 저를 통해 한옥의 ‘생활’을 배웠다고 해요.” 아래채의 현대식 타일로 마감한 욕실과 그 안쪽 복도에 짜 넣은 수납장은 그의 아이디어. 외출했다 돌아와 옷을 걸고 샤워한 뒤 위채로 올라오는 동선을 상상하며 적재적소에 수납장을 구성한 것이다. 반면 아래채 대문 오른쪽은 저장고를 지나 부엌으로 연결되는 구조로 장을 보고 바로 정리 정돈할 수 있어 편리하다.

1 아래채 다이닝룸. 부엌과 다이닝룸 역시 단 차이가 나 난간을 설치했다. 
2 툇마루 아래에 편백나무 야외 욕조를 설치. 별 헤는 밤, 물소리 들으며 반신욕하는 상상에 벌써 휴양지에 온 듯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3 “찻집은 내가 차려야 한다”며 연신 수집품을 보여주는 오옥순 씨. 포슬린 아트, 커피 잔, 시계, 술잔 등 공간 곳곳에 선반을 달아 수집품을 장식했다. 작은 거실에서도 차를 즐길 수 있도록 거실장에 커피용품을 수납하고 개수대를 설치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4 한옥은 주방이 좁아 불편하다는 점을 해결하기 위해 주방만큼은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을 만큼 수납장을 짱짱하게 짜 넣었다. 

한옥의 완성은 문
지난해 겨울, 이제 마무리하고 곧 이사할 거라는 소식을 듣고 찾은 북촌 오가헌의 현장은 그야말로 ‘공사판’이었다. 처음엔 눈을 의심했고, 그다음엔 귀를 의심했다. “뭔가 착오가 있는 게 분명해. 마무리라니, 잘못 들었겠지!”

나중에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한옥은 우리가 흔히 아는 벽식 구조와는 완연히 다른 기둥식 구조다. 나무 기둥을 세우고 보를 건 다음 서까래와 지붕을 올 리고, 구들과 마루를 설치한 뒤 부실별로 틀에 창호를 달아 완성한다. 벽체가 힘을 받지 않기 때문에 벽식 구조의 아파트와 달리 평면을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고 문을 여닫는 데 따라 방이 생겼다 없어졌다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기자가 본 것은 마지막으로 창호를 달기 직전의 상태였다. 창호의 존재감이 어찌나 강한지, 문을 안 달았을 뿐인데 마치 골조만 세운 공사 현장에 가구를 배치해놓은 느낌이랄까? 게다가 이 집에 사용한 문은 무려 7백 개가 넘는다니 한옥은 벽이 아닌 문으로 이뤄진 집이라는 말이 실감 난다. 문 크기와 형태가 모두 다른 것은 물론 하나의 창에 외문, 내문, 방충망 등 3중ㆍ4중은 기본, 이사한 지 4개월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진행 중이라는 이야기가 이해가 된다. “한옥은 창호가 정말 중 요해요. 심미적인 것은 물론 기능적 역할도 중요하지요. 저희 집 살문은 담양의 김철호 장인의 솜씨인데, 신발이 발에 맞듯 집에 딱 맞아 이번 겨울을 나며 외풍을 전혀 못 느꼈어요.”

그러고 보니 제법 쌀쌀한 날씨인데도 집은 따뜻하고 안온하다. 무엇보다 ‘한옥은 춥다’는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단열, 난방에 심혈을 기울였기 때문. 서까래 위에 이중으로 덧붙인 보첨(덧처마)은 직사광선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도 하지만, 처마 아래에 공기주머니가 형성되어 단열 효과를 준다. 목재는 부식되고 오염된 부분을 갈아 기존 것을 80% 이상 유지한 반면, 문틀처럼 정교하게 맞아야 하는 곳은 부분적으로 고재를 사용해 교체했다. 대청의 우물마루 역시 기존 마루를 갈아 복원했는데, 오래 사용해 두께가 얇아진 것이 아쉬운 점. 마루 아래는 황토와 숯, 소금을 채워 소금에서 올라온 염분기와 숯의 정화 작용으로 마루 밑에 벌레가 다니지 못한다. 이처럼 한옥은 하나의 살아 있는 생명체요, 천연 재료로 짓는 집이기 때문에 꾸준히 유지ㆍ관리가 필요하다. 빗물에 부식되고 낡아서 삐걱거리는 것 모두 자연스럽게 나이 들어가는 과정. 결국 한옥에서 제대로 사는 법은 기다리고 이해하고, 관심을 갖는 일이리라.

1 멀리 남산까지 내다보이는 북촌 언덕길, 촘촘한 기와와 도심 풍경이 어우러진 모습이 인상적이다. 
2 소담한 뜨락을 품은 안채. 아래채의 채마밭이 모자라 뜨락에도 파와 고추를 촘촘히 심었다. 
3 은은한 피아노 선율과 고운 가곡이 울려 퍼지는 북촌 오가헌. 피아노, 바이올린 등 악기를 잘 다루는 아들과 가족 합창단을 만들고 싶다는 그의 바람이 이루어진 순간이다. 

함께 즐겨야 제맛
위채와 아래채와 분리되었지만 사랑채와 나란히 자리한 부엌은 이 집의 생활을 작동하는 엔진과 같은 역할을 한다. 위채의 가장 안쪽 서재 공간에 있던 부엌을 길가 쪽으로 ‘대이동’ 한 이유는 가회동 골목길 풍경을 바꾸고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관광객이 사진을 찍어 불편한 점도 있겠지만, 사실 대문을 꼭꼭 닫고 있으니 한옥의 속살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웠어요. 저는 일부러 길가 쪽 부엌 창문과 대문을 활짝 열어놔요. 부엌일을 하고 있으면 시끌시끌 올라오던 관광객들이 조용히 멈춰 집을 유심히 들여다봐요. 간절히 보고 싶어 하는 외국인에게는 언제나 ‘웰컴’ 하며 집 구경을 시켜주죠. 살림이 늘어져 있을 때도 있지만, 다 사는 모습이라 그런지 연신 ‘뷰티풀’을 외치곤 합니다.”

수십 년간 현대 주택에 살다 한옥으로 이사했는데, 불편한 점이 왜 없을까. 당장에 침대 생활을 못하고, 커다란 피아노를 둘 거실이 없었으며 TV를 어디에 설치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는 오옥순 씨. 미국에서 잠깐 한국에 들어온 아들 도헌 씨는 두툼한 요를 두 개 깔아줬더니 불편하기는커녕 방바닥에서 따뜻한 온기가 올라와 좋다고 한다. 피아노는 대문 옆 문간방에 놓았더니 피아노 연주가 은은하게 울려 퍼져 이웃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네고 TV 대신 툇마루에 앉아 꽃을, 나무를 바라본단다. 불편한 것보다는 장점이 훨씬 많다. 우선 텃밭과 앞뜰이 생겼다. 아래채 텃밭에는 살구나무와 고추, 가지, 토마토, 치커리 등 먹을거리를 키우고 위채 앞뜰과 대문 옆 뒤뜰은 감나무, 라일락, 앵두나무 등 과실수를 심었다. 앞뜰 툇마루 아래에 설치한 야외 욕조에서는 별을 바라보며 반신욕을 할 수 있고, 손주들이 물놀이도 할 수 있으니 휴양지 부럽지 않다.

집이란 그저 땅을 고르고 재료만 쌓아 올린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위에 집 짓는 사람의 마음이 차곡차곡 쌓여야 비로소 완성된다. 세상에서 제일 자신 없는 게 쇼핑이고, 집 짓는 것이 가장 재미있다는 오옥순 씨. 제각각의 공간을 합치니 그의 삶의 방식이 지도처럼 그려진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여주인공이 무도회장을 상상할 때 화면이 바뀌면서 공간이 반짝반짝해지잖아요. 집 역시 사람이 있어야 향기가 나고 아름답지요. 저를 아는 모든 사람은 한옥을 지을 필요가 없어요. 여기서 즐기면 되니까요. 북촌 오가헌은 언제나 열려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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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현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