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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편의와 아파트의 효율성을 담은 주택 2년은 살아봐야 내 집이지
이사를 가면서 집을 손보고 싶을 때 하나부터 열까지 세심하고 꼼꼼하게 조언해줄 이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게다가 그릇과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아는 살가운 사이라면? 집주인의 취향과 원하는 바는 물론, 살림살이를 속속들이 파악하는 디자이너의 만남. 성북동 주택이 바로 그 결과물이다.

거실에서 다이닝룸을 바라본 모습. 사진작가 구본창의 달항아리 작품과 다양한 형태로 조합할 수 있는 천장의 아르테미데 조명등이 미니멀한 공간에 색다른 감각을 더한다.
부모님이 사시던 주택을 물려받은 이곳 집주인은 평소 친분이 두터운 인테리어 디자이너 정은주에게 레노베이션을 의뢰했다. 지은 지 얼마 안 된 주택에 입주하는데 무슨 레노베이션이 필요할까 싶겠지만, 부모님의 큰 살림을 단출한 세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에 꼭 맞게 바꾸는 데는 생활의 편의와 효율을 위한 디자인이 필요했다. 집 한번 고치고 나면 원수가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집주인과 디자이너의 궁합이 맞기란 쉽지 않은 일. 하지만 정은주 실장과 집주인은 아파트, 이태원 단독주택, 병원 등 벌써 여섯 번째 작업이요, 인연을 더듬자면 벌써 15년 지기다. 이 집의 개조 스토리가 더욱 의미 있는 점은 레노베이션한 지 이미 2년이 지났다는 사실. 세월에 장사 없듯이 시간이 흐르면서 어쩔 수 없이 살림이 쌓여가고 디자인이 무색해지게 마련일진대 이 집은 이제 막 공사를 마쳤다 해도 믿을 정도로 반질반질하다.

1 부술 수 없는 바위 위에 지은 집이라 1층 마당보다 2층 테라스가 채광이 훨씬 좋다. 관리하기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 면적이 아담해 천연 잔디를 심고 맨발로 촉감을 느낀다. 2 다이닝룸에서 바라본 주방. 아일랜드 바 체어 뒤편으로 슬라이딩 도어를 설치해 주방과 다이닝룸을 분리할 수 있다. 3 안방과 드레스룸을 부부 각자의 방으로 구성했다. 두 개의 문이 수납장 양쪽으로 순환되는 구조다. 
심플하고 편리하게 산다
현관을 들어서면 여백의 미가 느껴지는 긴 복도를 지나 온 가족의 공간인 거실이 나온다. 거실 옆에는 오픈 구조의 다이닝룸이 자리하고, 안쪽 복도 벽 뒤편으로 부엌이 있다. 창을 등지게 배치한 블랙 소파로 적당한 무게감을 실어준 거실은 공사 전후가 드라마틱하게 변신한 공간이기도 하다. “옛날 집은 사방에 모두 큰 창이 있었어요. 노부부가 살기에 성북동의 좋은 풍광은 놓치기 싫은 중요한 요소였고, 거실은 사방으로 통창에 가까운 창문이 시원하게 뚫려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집의 첫인상이 다소 산만하게 느껴졌죠.”

1 부부 각자의 방에는 드레스룸이 따로 있고, 양쪽 드레스룸 사이에 화장대로 쓸 수 있는 널찍한 욕실이 자리한다. 
2 주택 특유의 널찍한 복도에는 강익중 작가의 작품을 설치해 갤러리 하우스처럼 연출했다. 브라운 컬러 슬라이딩 도어 안쪽으로 부부의 침실이 있다. 
3 주방에서 바라본 다이닝룸. 유일하게 통창을 설치해 전망과 채광을 살렸다. 다이닝 테이블과 모던한 그릇장은 몰테니&C에서 구입했다. 
4 문과 벽 마감재는 모두 애시 무늬목으로 통일하고 2층 중문에는 유리창을 넣어 개방감을 더했다.

정은주 실장은 주거의 중요한 요소인 안온한 느낌을 주기 위해 양쪽으로 난 창의 한쪽은 아예 벽으로 막자고 제안했고, 다행히 집주인도 흔쾌히 수락했다. 통창으로 틔어 있던 거실 왼쪽 창은 벽으로 막았고, 대신 좁고 긴 가로 프레임의 쪽창을 구성해 한결 차분한 차경을 즐길 수 있다. “미술을 전공했기 때문에 늘 시각적 자극에 노출되어 있었다고 할까요? 마흔이 넘어가면서 제가 시각적 어지러움에 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죠. 40대 이전에는 뭔가를 소유하면서 하나씩 배웠다면 40대 이후에는 가지를 쳐내고 더 중요한 부분을 정제하며 취향을 다져나갔어요. 그리고 50대로 넘어가는 지금은 무조건 편한 게 좋아요.”

침대에 등 쿠션을 가득 세팅하고 계절마다 쿠션 옷을 갈아입히던 시기를 지나 그저 편한 게 최고가 된 지금, 집주인이 디자이너에게 가장 먼저 요청한 것은 충분한 수납공간이었다. 자신이 추구하는 미니멀 인테리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넉넉한 수납공간이 필수. 거실 한쪽 벽에 있던 벽난로 등 불필요한 장식 요소는 없애고 그 자리에도 수납장을 짜 넣었다. 욕실 옆은 화장품과 수건, 1층에서 2층으로 오르는 계단 사이에는 모기약이나 초・장갑 등 야외 용품, 현관 옆 작은 다용도실은 청소와 세탁 관련 용품을 수납한다. 여백만 있으면 모두 수납장을 짜 넣었지만 공간이 지저분하거나 답답해 보이지 않는 비결은 벽인지 가구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는 마감 덕분이다.

5 부부 침실 중 남편 방. 따로 서재를 만드는 대신 폭이 좁은 책상과 선반장으로 코너 서재를 꾸몄다. 안쪽은 독립적인 드레스룸. 
6 유기견 봉사와 후원을 하는 집주인이 집 인테리어만큼 공들인 것이 바로 마당의 개집이다. 배관, 배수, 난방, 내단열, 외단열 등 무려 10여 공정을 거쳐 만든 나노, 티라노, 티거의 집. 

디자인의 끝은 정리 정돈
주택에 살면서 가장 불편한 것은관리하기 힘든 규모, 내부와 외부 공간을 오가는 동선, 냉난방이 아닐까. 정은주 실장은 집주인의 생활 방식과 동선에 맞춰 주차장부터 지하, 1층, 2층으로 연결되는 공간을 재구성했다. 주차장과 연결되는 지하 공간은 세탁실과 개 목욕실(이 집에는 무려 다섯 마리의 애견이 있다), 저장 창고로 구성. 세탁실 위쪽은 1층 주방인데 그곳에서 세탁기로 바로 세탁물을 넣을 수 있는 통로가 있다. 지하에서 1층으로 오르는 계단 옆 성큰sunken 구조의 방은 중층인 텃밭을 지나 1층 부엌문으로 다시 연결되는데, 덕분에 저장고에서 부엌으로 식료품을 운반하기 편리하다.

안방 침실 역시 방 두 개와 욕실이 연결되는 순환 구조. 각자의 수면 취향이 달라 과감히 방을 나눠 쓰기로 결정한 부부는 안방과 연결된 드레스룸 역시 침실로 사용한다. 거실 복도를 지나 벽돌색 중문을 열고 들어서면 수납장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부부 각자의 침실과 드레스룸이 자리하는데 가운데 욕실만 공동 공간인 셈이다. 오랜 시간을 동고동락한 만큼 따로 떨어져 있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는 집주인은 또래 친구들이 집 구경 와서 가장 부러워하는 곳 역시 이 침실이라고 강조한다.

1 고등학생 아들 방은 스칸디나비안 요소를 들여 캐주얼한 분위기를 냈다. 책상 옆 벽면은 철판을 붙인 후 백페인트 글라스로 마감해 메모를 붙이기 쉽다. 책상은 에디션365에서 구입. 
2 버니와 하니가 마음껏 집 안에서 뛰놀 수 있도록 거실 바닥은 대리석으로 마감했다. 커다란 창을 막고 가로 쪽창을 내 안온한 느낌을 준다. 
3 복도를 지나 거실과 다이닝 룸, 주방으로 연결되는 구조. 미니멀한 인테리어를 완성해주는 소파와 리클라이너, 테이블은 B&B 이탈리아에서 구입했다. 통창 너머로 성북동의 시원한 풍광이 펼쳐진다.

집주인과 디자이너가 함께 발품을 팔았다는 것은 가구 선택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가죽 헤드보드로 감싼 침대와 다이닝 테이블과 그릇장은 몰테니&C, 거실 소파와 리클라이너 그리고 남편 책상은 B&B 이탈리아 제품. 1층을 이탈리아 모던 스타일 가구로 꾸몄다면 2층 거실, 테라스, 아이 방, 욕실은 보다 다채로운 스타일로 개성을 더했다. 케네스 코본푸에의 니트 꼬임 소파와 아이 방 수납을 위한 그레이&퍼플 수납장, 게스트룸의 전통 가구와 테라스의 데돈 데이베드의 매치는 뻔하지 않은 스타일을 완성해주는 요소. 또 하나의 포인트는 조명이다.

주택은 보통 층고가 높아 천장을 시원하게 드러내면 분위기가 살게 마련인데 이 집은 천장고가 다소 낮다는 게 단점. 필지 아래 암반이 있어 집이 약간 올라앉은 데다 부모님이 난방을 위해 층고를 일부러 낮게 설계했기 때문이다. 어떤 조명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답답해 보일 수도, 밋밋해 보일 수도 있던 터라 볼륨이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조형적인 디자인을 선택했다. 집 내부를 모두 개조하고 나니 외관과 동떨어지는 느낌 또한 정리해야 했다. 정은주 실장은 친한 건축가에게 파사드 디자인을 의뢰했고, 파사드에 많은 비용을 들이고 싶지 않던 집주인의 의견에 따라 외장 마감재는 가격 대비 고급스럽고 단단한 마감을 할 수 있는 입배 수종과 징크 등을 골랐다.

주택을 아파트처럼 편리하게 쓰는 방법 
1 주방 안쪽에 식품을 차곡차곡 저장할 수 있는 워킹 클로짓은 필수. 수납장 하단과 지하 세탁실이 연결되어 빨랫감을 넣기 편리하다. 
2 마당에서 키우는 커다란 개를 씻기고 보살피기 위해서는 지하로 연결된 메이크오버 룸은 필수. 
3 어떤 벽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계단참, 방문 사이 등 빈틈만 있으면 모두 수납장을 짜 넣어 동선에 따라 그때그때 필요한 생활용품을 적재적소에 수납할 수 있다. 
4 싱크대 개수대 뒤편 10cm 정도의 남는 공간에 랩, 포일 등을 끼워 넣을 수 있는 랙을 설치했다. 

“살면서 불편한 거요? 흠을 잡자면 주방 중문의 방향이에요. 제가 사람들을 초대해 집에서 노는 걸 좋아해요. 다이닝룸과 주방이 열린 구조니 아일랜드 앞에 중문을 달아 손님이 왔을 때 완벽하게 가려주면 좋겠다는 디자이너의 의견에 따라 중문을 달았는데, 설계 과정에서 주방 싱크대 위치가 반대로 바뀌면서 문이 시작되는 방향과 주방 가구 라인이 맞물려 무의미하게 됐죠.” 2년이 지난 지금도 소소한 컴플레인과 사용 후기를 거침없이 쏟아내는 다소(!) 깐깐한 클라이언트지만 오히려 완벽한 체크리스트가 있어 작업하기 편하다는 정은주 실장. 때론 동갑내기 친구처럼 티격태격하기도, 때론 자매처럼 서로를 보듬기도 하는 두 사람의 관계가 바로 2년을 살아도 한결같은 집의 성공적 레노베이션 비결인 듯하다.

사실 집을 짓거나 레노베이션을 하는 것은 평생 한두 번 있는 일이다. 공산품이면 제품끼리 비교가 되지만 내 취향대로 집을 고치고 짓는 것은 비교 대상이 없어 더 아쉽고, 예행연습의 기회도 없기에 실수도 많이 할 수밖에 없다. 디자이너와 건축주의 소통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이유다. 이 집을 다 둘러보고 나니 디자인을 새롭게 정의하게 됐다. 디자인의 힘은 바로 정리 정돈. 가구가 놓여야 하는 자리, 가구가 있으면 안 되는 자리, 부딪치는 컬러는 없는지, 생활하기 편리한 동선은 무엇인지, 그리고 더 나아가 힘을 줄 곳과 뺄 곳까지 전체적으로 정리 정돈하는 것이 곧 디자인 역할일 터. 정리 정돈이 잘된 집은 10년이 지나도 늘 깨끗이 빨아 햇볕에 잘 말린 옷처럼 산뜻하고 정갈하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정은주는 3백 곳이 넘는 주거 공간과 상업 공간 레노베이션을 진행한 20년 차 인테리어 디자이너. 세월의 흔적과 함께 1년을 살아도 5년은 산 듯한 안온함이 있고, 10년을 살아도 막 이사한 듯한 신선함이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게 목표다. 각종 잡지와 홈 관련 TV 프로그램을 통해 레노베이션 사례뿐 아니라 즐겨 찾는 브랜드, 리빙 숍 등을 소개하며 활발히 활동 중이다.



디자인 및 시공 e-design by정은주(blog.naver.com/style3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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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현 수석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