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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환∙도승원 부부의 계상고탁 고택, 즐길 준비 됐습니까?
안동 도산서원을 지나 구불구불한 비포장 숲길을 지나면 멀리서도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ㅁ자 형태의 고택이 자리한다. 그 뒤로 신식 주택이 나란히 이웃해 반전의 묘미가 있는 곳, 계상고택을 찾았다. 남다른 소명과 젊은 열정으로 조상의 집을 복원하고 지키고 즐기는 종부, 종손 이야기.

전통 한옥의 독특한 구조와 원형 그대로 모습을 잘 보존해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안동 계상고택. 퇴계 이황의 11대손인 이만응이 1800년대 후반에 지은 집으로 16대손인 이두환•도승원 부부가 얼마 전 단단히 보수를 마치고 집의 가치를 이어나가고 있다. 왼쪽부터 안동 지인인 이동균 비서관, 친구 우보람, 이두환•도승원 부부, 오름하우스의 김재붕 본부장, 김대일 시의원. 
어제의 햇볕으로 오늘이 익는/ 여기는 안동/ 과거로서 현재를 대접하는 곳/ 옛 진실에 너무 집착하느라/ 새 진실에는 낭패하기 일쑤긴 하지만/ 불편한 옛것들도 편하게 섬겨 가며/ 차말로 저마다 제 몫을 하는 곳…. 안동이 어떤 곳인가를 노래한 시로는 류안진 선생이 쓴 ‘안동’ 보다 좋은 것이 없다. 시처럼 의젓하게 안동살이를 선택한 이가 있다. 아버님 뜻을 이어 조상의 집을 지키는 이두환ㆍ도승원 부부. 계상고택繼尙古宅은 퇴계 이황의 11대손인 이만응이 1800년대 후반에 지은 집으로, 안동댐 건설로 물에 잠긴 지역인 부포리에 홀로 꿋꿋하게 살아남은(?) 곳이다(반경 4km 안에 집이라곤 계 상고택뿐이다).

고택은 조선 후기에 지은 건물이긴 하나 보존 상태가 좋고 유상고(다락의 일종)와 누당 등 독특한 것이 많아 문화재로서도 중요한 가치가 있다. 고택의 역사적 가치도 중요하지만, 그 바로 옆에 작은 집을 짓고 틈나는 대로 서울과 안동을 오가며 집을 지키는 이두환ㆍ도승원 부부의 이야기 역시 흥미로웠다. 고택 관리라는 게 나라에서 맡아도 어려운 일일진대, 그 고단한 짐을 자청한 이유가 궁금했다. “이 집은 살아 있는 역사죠. 한국전쟁도 겪었고, 큰불도 한 번 났다 하고, 댐 짓는다고 물이 차오르기도 했어요.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고택을 지키기 위해 고생도 많이 하셨습니다. 마을이 수몰되어 1백 일 동안 물에 잠겨 있던 집을 안채만이라도 살리겠다며 나룻배로 하나씩 옮겼으니까요. 그런 모습을 본 터라 꼭 제 손으로 보존하고, 사람 사는 집처럼 생명을 불어넣고 싶었어요.”

1 고택과 나란히 자리한 신식 주택. 고택의 원형을 유지하며 가장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고택 옆에 신식 주택을 짓고 게스트 하우스로 사용한다. 
2 신식 주택의 거실 겸 주방. 밖으로 나가는 문 주변에 노란색 타일을 발라 포인트를 주었다. 창고 자리라는 제한적 조건으로 경사진 지붕 아래를 메자닌 구조의 다락방으로 사용하는 등 공간 활용도를 높였다. 

고택, 현실과 이상 사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아버님이 기거하던 집을 관리할 사람이 없어서 문화재 등록을 했다는 종손 이두환. 하지만 모름지기 집이란 사람이 드나들어야 오래가는 법이다. 조금 힘들더라도 자신이 직접 고택을 보살피기로 마음먹은 그는 고택과 나란히 신식 주택을 지었다. 신식 주택은 고택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가장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나름의 묘안이었다. 우선 집을 지키려면 공부를 해야 했다. 고택의 세월과 규모만큼이나 방대한 역사 공부는 기본이다. 서울에서 건축자재 사업을하는 그는 고택을 관리하기 위한 조경부터 집의 양식, 복원 등 전통 건축 관련한 지식을 차곡차곡 쌓아갔다. 그가 고택을 보수하기 위해 허가를 받고, 보수업체를 찾으며 생각한 고택 복원의 가장 문제점은 무분별한 보수와 거품이었다.

“전통 꽃담 1m 쌓는 데도 70만 원의 비용이 듭니다. 물론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있지만, 무리해서 옛 모습을 그대로를 재현하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실질적 관리를 어떻게 할 건지 에 대한 근본 해결책을 찾는 것이 우선 아닐까요?” 나룻배로 하나하나 옮겨 땅을 다질 새도 없이 얼기설기 세운 집. 그는 고택의 구조를 보강하기 위해 기단을 세우고 그 위에 다시 한옥을 올렸다. 고택은 지금 안동 지역 최초의 서원인 역동서원 자리에 있다(역동서원은 안동대학교로 옮겨 관리하고 있다). 기단과 담은 모두 옛것이 아닌 요즘 자재로 대체했다. “한옥을 한 번 들었다 다시 앉히면서 묵은 흙을 털어내고 기단, 옹벽, 구들, 배관 등을 다시 정리했어요. 기와도 다시 앉혔죠. 하지만 모든 것이 현대 공법의 열 배 정도 들었기 때문에 절충안이 필요했어요. 살릴 건 살리고, 보강할 건 보강하자는 게 포인트였죠.”

1, 2 대청 한편에 자리한 누당과 좁은 계단을 오르면 누마루처럼 펼쳐지는 다락방 등 독특한 구조가 많아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3 최근까지도 사용한 고택 부엌. 여름 장마철, 커다란 가마솥을 올려놓고 군불을 때면 금방 보송보송해진다. 부뚜막에서 조르르 말리는 그릇 역시 조상들이 쓰던 그릇이다. 

다수의 고택이 보수라는 명목으로 많은 변화를 겪어왔지만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쉽게 변할 수 없는 것은 독특한 공간 배치다. 계상고택은 안방-대청마루-사랑 칸이 조화를 이룬 정침 구조(정남향 ㅁ자집)로 화려하지 않으면서 고졸한 건축미가 살아있다. 이 집은 대부분 원형 기둥을 사용했는데 이는 보통 사가에서는 쓰지 못하던 재료로, 골조가 튼튼하고 창문살도 촘촘하다. 가죽나무로 일일이 손잡이를 만든 디테일도 남다르다. 하지만 당시에 아무리 잘 지은 한옥이라도 사실상 주거 공간으로는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내 도승원은 명절 때 시골집에 내려오면 손님처럼 겉돌다 차례만 지내고 금방 떠나던 일을 회상하며, 신축 주택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고택은 우선 화장실과 부엌이 불편하잖아요. 우리가 자주 내려와 곁에 두고 살갑게 관리하려면 명분이 필요했어요. 마침 고택 옆에 창고가 있었는데 대수선해서 작은 별채를 지었지요.”

1 신식 주택의 다락방에서 내려다본 주방. 푸드 스타일리스트인 아내 도승원의 아지트다. 식탁 대신 아일랜드 작업대를 둔 11자 구조로 콤팩트한 주방에 제격. 
2 직접 반죽해 구운 화덕 피자와 밀라노식 쇠고기 스튜, 아보카도 샐러드 등 고택 마당에 펼쳐진 이탤리언 초대 요리. 동양과 서양, 파란색과 노란색의 보색 대비 등 콘트라스트의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5백 년의 약속
가로 20m, 세로 15m의 창고를 개조해 지은 별채는 집과 야외 주방으로 되어 있다. 신식 주택인 별채를 짓는 데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고택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것이었다. 시공을 맡은 오름하우스의 김재붕 본부장은 우선 지붕 높이와 경사도를 맞추고, 천장 재료 역시 기와와 비슷한 징크를 골라 통일감을 주었다고 설명한다. 건물 외장재는 화산석으로 마감했는데, 나란히 있는 고택과 신축 건물이 전혀 이질감 없이 잘 어우러지는 비결이기도 하다. 내부 공간은 철저히 실용적으로 꾸몄다.

현관으로 들어서면 왼쪽이 거실 겸 주방, 오른쪽이 침실과 욕실이다. 작은 집이 답답해 보이지 않도록 천장을 최대한 끌어 올리고, 노란색과 파란색을 포인트 컬러로 사용했다. 또 메자닌 구조의 다락방도 구성했는데, 다락방은 여러 가족이 머물 때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비밀스러운 공간이다. 거실과 연결되는 덱은 종손 이두환이 즐겨 머무는 장소. “지금도 어린 시절을 기억하면 마음 한편이 평안해져요. 이중환의 <택리지>에 나오는 도산서원 풍경이 바로 이곳인데, 굽이굽이 숲길 아래 하얀 조각돌 과 아름드리 미루나무가 펼쳐졌다고 해요. 제 어린 시절 기억도 다르지 않죠. 집 앞은 백로 서식지였는데, 학들이 모여 아침마다 조회를 했어요. 덱에 앉아 안동댐을 바라보면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죠.”

1 가로 20m, 세로 15m의 창고 자리를 레노베이션한 신식 주택은 침실 하나, 거실 겸 주방, 욕실, 다락방으로 콤팩트하게 구성했다.두 개의 침대를 나란히 배치한 침실. 
2 침실 앞 작은 복도 공간에 다락방으로 오르는 접이식 계단이 펼쳐진다. 
신식 주택 현관문을 열면 고택 행랑채가 보인다.

신축 주택의 또 다른 별채, 야외 주방은 아내 도승원을 위한 공간이다. CJ 푸드 디렉터, 푸드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하는 도승원은 요즘 안동에서 집들이하는 재미에 푹 빠져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꼭 서울에서 내려와 손님을 치른다. “안동에 내려오면 정말 할 일이 끝도 없이 생겨요. 하지만 힘들어도 분명히 이곳만의 매력이 있지요. 누군가는 산책을 하고, 누군가는 땔감을 모으고, 누군가는 잡초를 뽑고…. 고된 노동 끝에 차 한잔 나누며 고택 이야기를 들려주면 충분히 공감하고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그는 시골 골짜기에서 시골스럽지 않은 음식을 해주며 솜씨를 발휘하기도 한다. 고택 아궁이 부엌과 현대식 주방을 왔다 갔다하며 바쁘게 요리할 때도 있지만, 사람들이 먹고 즐기는 걸 보면 힘들다가도 절로 힘이 솟는다. 그리고 안동의 토속 음식을 비롯해 우리 고유의 전통 식문화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올해부터는 이곳이기에 할 수 있는 장 담그기에 도전해볼 생각이란다. 그림이나 도자는 잘 관리하면 되지만 집은 그렇지 않다. 사람이 살지 않으면 금방 죽은 공간이 된다. 마음 맞는 이는 누구나 와서 이렇게 즐기고 마음 편하게 피자 한 판 구워 먹고 갈 수 있는 공간. 부부는 이 모든 것이 고택만 있었으면 엄두도 못 낼 일이라 단언한다. 고택 옆, 초연하게 자리한 신식 주택이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고택, 즐길 준비 됐습니까?” 그리고 우리가 진정 경험하고 싶은 것은 고택에서 뿜어져 나오는 깊은 정서, 수백 년의 세월을 품은 존재 자체의 강인함일 터다.

지난 1년간 서울과 안동을 오가며 고택을 복원하고, 바로 옆에 신식 주택을 짓고 주말 주택으로 활용하는 등 집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이두환•도승원 부부. 안동에 내려오면 정말 할 일이 많지만 온종일 일하다가도 잠시 누마루에 앉아 부포리의 평화로운 풍경을 바라보면 고단함이 싹 가신다. 그저 모시는 집이 아닌 여럿이 즐기고 나누고 경험하는 집이기에 계상고택의 가치가 더욱 높아지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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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현 수석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