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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옴니 김민정 대표 집으로 가는 길
11년 전 대구 토박이인 한 여장부가 서울에 올라왔다. 청담동에 2백 평이 넘는 가구 쇼룸을 열고 개성 강하다고 소문난 카펠리니와 e15 가구를 들여왔다. 그리고 다시 대구로 내려가 아버지가 40년 전에 지은 집을 손수 레노베이션하고 그곳에 디저트 가게를 열고 싶다며 다시 눈을 반짝인다. 가구 사업을 시작한 지 20년, 또 다른 인생 설계를 시작한 디옴니 김민정 대표 이야기다.

주부에서 가구 사업가로 20년간 활발한 행보를 보여온 디옴니 김민정 대표. 지난해 청담동의 한 건물을 레노베이션하고 이탈리아 하이엔드 가구 브랜드 미노티를 새로운 파트너로 맞았다.
밤 9시, 밀라노의 한 호텔. 톡톡, 휴대폰 메시지가 도착한다. “밀라노에 왔으면 꼭 봐야 할 숍이 있어요. 주소는 OOO예요. 구경하다 시장하면 2층 델리에서 간단한 요리와 로제 와인을 시켜보세요.”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 취재를 갈 때마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보는지 일거수일투족이 궁금한 이가 있다. 이탈리아 가구 브랜드 미노티를 국내에 소개하는 디옴니 김민정 대표와 밀라노에서 실내 디자인을 전공한 그의 딸 허지원 실장이다.
아이템을 선별하는 남다른 기준으로 여느 수입 가구 숍보다 일관되고 탐나는 스타일을 갖춘 청담동 디옴니. 색깔 있는 수입 가구 숍이 하나 둘 등장하고 자리 잡고 또 사라지기도 하는 요즘, 디옴니를 빼고 가구를 얘기할 수 없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김민정 대표가 올봄 두문불출하고 대구 고향 집을 레노베이션했다는 소문은 그래서 더욱 솔깃했다.

1 소파의 뒤태까지 생각하는 가구 배치에서 김민정 대 표의 디스플레이 감각을 엿 볼 수 있다. 
2 청담동 디옴니 쇼룸. 원목의 옹이를 간직한 e15의 가구를 소개한다. 

40년 전 아버지가 지은 집을 레노베이션하다
제아무리 좋아서 시작한 일이라 해도 일과 실제 삶에 괴리가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디옴니 김민정 대표는 지극히 ‘디옴니’스러운 집에서 살고 있었다. 대구 삼덕로 한복판에 초연하게 자리 잡은 삼층집. “아버지가 40년 전 공들여 지은 이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결혼하고 가끔 들르는 친정집에 어린 시절의 추억이 깃들어 있으니 좋을 법도 하지만, 자식들 다 떠나보낸 집에서 적적하게 지낼 부모님을 생각하니 이 집이 그리 살갑게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탐탁지 않은 이 집이 내게로 왔어요. ‘다른 형제가 아닌 내게 물려준 이유가 대체 뭘까?’ 곰곰이 생각하니 집을 지켜야겠다는 확신이 생기더라고요.”

3 대구 집 2층 게스트룸. 심플한 라인의 e15 가구와 옛날 방식의 방범 창이 조화를 이룬다. 
4 40년 전 천장 가죽마감, 모자이크 타일을 살리면서 샤워 부스를 설치한 욕실. 

8년 전, 첫 번째 레노베이션을 진행했다. 처음엔 약간 개조해 숍으로 운영할 계획이었다. 집에 담긴 의미를 진중하게 생각하기보다는 오래된 집의 독특한 구조가 재미있게 다가올 뿐이었다. 하지만 공사를 진행할수록 과연 아버지가 지은 집의 흔적을 모두 걷어내고 말끔하게 개조하는 것만이 최선일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밀라노의 10꼬르소꼬모가 떠올랐다. 바닥재와 계단, 욕실 등 낡은 느낌을 그대로 살렸더니 제법 멋이 났고, 서울 삼청동이나 청담동의 잘 고친 집보다 훨씬 멋져 보였다.

“아버지가 굉장히 공들여 지은 집이에요. 집을 부분적으로 부수면 그만큼 보강을 해야 하는데, 이 집은 철근을 워낙 단단히 채워 보강할 필요가 없었어요. 주거 공간이지만 가구 쇼룸으로도 사용할 수 있고, 나중에 더 나이 들어 카페로 용도를 변경해도 좋을 정도로 경계가 모호한 것이 콘셉트였죠.” 평생 집에서 빈둥거리거나 한가로운 시간을 보낸 적이 없다는 김민정 대표. 다른 일을 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집’을 작업장으로 쓸 수 있도록 ‘가변성’을 테마로 러프하게 개조한 집은 8년 후 비로소 제 옷을 입었다.

5 3층 부부 침실. 평상 형태의 침대와 서랍장으로 간결한 공간을 완성했다. 
6 임스 빈티지 체어와 모더니카소파로 꾸민 3층 거실. 

작년 가을부터 올봄까지 꼬박 6개월 동안 현장을 진두지휘하며 완성한 두 번째 레노베이션. 40년 전 모습 그대로인 살구나무 마당을 지나 2층 계단으로 올라서면 곧 디옴니 쇼룸을 보는 듯한 거실이 펼쳐진다. 무엇보다 멋진 가구가 놓여 있지만 장식이나 세팅이 아닌 생활의 일부로 사용한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공간이 더욱 특별해 보이는 것은 정해진 공식대로 작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즘 주거 공간에 등장한 트렌드 중 두드러진 특징은 투박하고 산업적 요소들, 즉 돌, 나무, 시멘트 같은 다양한 자연 소재와 결합하는 것인데 이 집이 딱 그렇다. 오래된 건물의 경우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구조적 특징이나 생산하지 않는 하드웨어 등을 쓴 흔적이 남아 있는데 그 자체를 디자인 포인트로 활용한 감각도 눈에 띈다.

그는 본래 작은 방과 폐쇄적 부엌, 거실로 구성한 2층 공간을 벽을 해체하지 않고 부분부분 살려 지금의 열린 공 간을 완성했다. 내력벽은 그대로 살린 상태에서 최소한의 벽을 덜어냈고, 대신 천장을 털어냈다. 벽과 문의 복합 개념 또한 이 집의 다른 점이다. 슬라이딩 방식의 문은 열어두면 집의 순환을 돕는 도구가 되고, 닫으면 반복적 벽 마감재로 보이는 효과를 낸다. 이처럼 문의 재질과 크기를 집 안의 다른 마감재에 맞춰 선택하면 전체적으로 통일감을 유지할 수 있으면서 여느 집과는 다른 독창적 인테리어를 완성할 수 있다.

1 3층 거실에서 드레스룸과 침실을 바라본 모습. 덩치 큰 가구를 배제한 작은 거실, 덕분에 공간의 활용도는 전보다 훨씬 높아졌다. 
2 가구 디스플레이는 아름답고 쓸모있고 가치 있는 물건을 생활에 결합하는 일이라 말하는 김민정 대표. 장소는 청담 쇼룸. 

1차 개조 때 옛날 것을 버리고 새것으로 많이 바꿨다면 이번 개조에는 최대한 그대로 사용하자는 것이 또 하나의 테마였다. 주방 천장 조명등은 삼파장 LED 조명등, 버블 램프는 원래 있던 것을 사용했다. 1970년대 고유의 방범 창도 그대로 두니 이 집만의 개성이 된다. 거실 창을 바닥까지 내려오는 통창으로 바꿔 자연을 액자처럼 들인 점도 돋보인다. 그러고 보니 이 집은 벽에 그림이 없다.

“요즘 그림 없는 집 없잖아요. 근데 꼭 그림이 있어야 할까요? 저희 집은 다이닝룸도, 다이닝룸에 공식처럼 두는 빅 테이블도 없어요. ‘남들 다 하니까’ ‘요즘 유행이니까’ 라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이 바로 나다운 인테리어의 시작점이죠.” 사실 집을 취재할 때 가장 어려운 대상은 영혼과 삶이 미처 녹아들지 않은 신축 아파트다. 아버지가 지은 단단하고 옹골찬 집에 채워진 디옴니만의 확고한 스타일과 품성 좋은 가구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는 대구 살구나무 집.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이 집은 기본에 충실하고 내실 있는 디자인을 추구하는 김민정 대표의 가구 선택 기준과도 꼭 닮아 있었다.

조지 넬슨의 버블 램프와 카 펠리니 몬드리안 장, 미노티의 소파가 어우러진 리빙 룸. 개방감, 가변성, 실용성, 세가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중첩시킨 덕에 집은 서로가 연결되면서도 공간마다 고유한 분위기를 갖추고 있다.
재희 엄마, 이탈리아를 사로잡다
“어릴 때 학교 갔다 집에 오니까 온 방이 핑크색인 거예요. 핑크 벽지와 하늘색 벽지를 번갈아 네 면에 바르고 잔잔한 무늬가 있는 핑크 패브릭 커튼이 달려 있었죠. 더욱 놀란 건 바닥이었어요. 아버지가 커튼하고 똑같은 천을 바닥에 붙이고, 그 위에 니스를 발라 장판처럼 연출했더라고요. 어느 날은 오디오가, 어느 날은 TV가 바뀌어 있었고, 가구는 늘상 요리조리 옮겨져 있었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 어머니는 대단한 얼리어답터였던 것 같아요.”

대구에서도 유행 1번지이던 동성로. 집 근처 도깨비시장에 가서 ‘미제’ 가전을 구경하는 게 놀이였다는 김민정 대표. 한 번도 못난 이불을 덮고 자본 적이 없는 어린 시절 잠자리에서부터 디자인 감성이 싹 텄으리라. 집에서 디자인을 만나고, 생활에서 디자인을 배운 것이다. 그의 어머니는 딸의 남다른 재능을 가장 먼저 알아본 이이기도 하다. “재희가 고등학교에 다닐 무렵이었어요. 친정어머니가 여자가 살림만 하면 안 된다고, 일을 해야 한다며 조언해주셨죠. 대학원에서 산업 디자인을 전공했기 때문에 의상이나 가구 디자인을 하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가구 수입이라는 구체적 계획으로 발전했죠. 하지만 십수 년을 주부로 살다 사업을 하려니 두려움이 앞섰어요. 그때 어머니가 ‘실패하면 또 어떻노, 나눠 쓰면 되지’라고 하셨는데, 그 한마디가 천군만마를 얻은 듯 큰 힘이 되었죠.”

1 3층 테라스에서 계단을 바라본 모습. 40년 전 스기목을 그대로 살린 덕분에 집이 머금은 시간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 집의 가구와 마감 디테일은 사소한 차이가 진짜 차이를 만든다는 정석을 현명하게 적용했다. 
2 음식 솜씨가 수준급인 김민정 대표. 대구에 내려가면 늘 지인들을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는 게 가장 큰 즐거움이다. 
3 2층으로 연결되는 집의 현관. 벽에 걸린 옷은 딸 허지원 실장이 어린 시절 입던 원피스다. 

1995년 김포공항. 사회 활동이라고는 미술 대학의 시간 강사 경험이 전부인 ‘재희 엄마’가 이탈리아로 시장 조사를 과감하게 떠난 데는 숨은 조력자가 또 있다. 바로 남편 허찬희 원장이다. 신경정신과 전문의로 바쁜 시간을 보내던 그는 여름휴가도 반납하고 이탈리아, 미국, 독일, 프랑스에 동행하며 아내를 소리 없이 외조했다. “속된 말로 동양의 어떤 아줌마가 와서 가구를 수입하겠다고 하는데, 그네들이 가만히 보니까 그동안 다녀간 딜러와는 좀 다른 거예요. 한국 주거 공간에는 이 크기가 맞지 않다, 모양은 이렇게 바꿔라, 패브릭은 이게 좋다… 셀렉트의 기준이 까다롭지만 그동안 모르던 한국 문화와 한국인의 취향을 그들도 알게 된 것이죠.” 허찬희 원장이 지켜본 김민정 대표의 남다른 저력은 바로 살림 솜씨 좋은 주부라는 점이었다. 미노티 역시 물건을 주문하는 양이 많지는 않지만 꽤 높은 매출을 올리는 이 한국 아줌마를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

4 블랙 튤립 체어와 조각배 형상의 조명등이 조화를 이룬다. 
5 천장을 털어내고 남은 콘크리트 구조를 노출한 것은 물론 옛날 문손잡이와 경첩, 두꺼비집까지 디테일로 활용한 감각이 눈에 띈다. 
6 스튜디오를 연상하게 하는 주방. 외부 계단과 통하는 것 역시 주방 구조의 특징이다. 

디옴니가 고른 건 천천히, 하지만 언젠가는 유행한다
미노티는 콧대 높은 이탈리아 가구 브랜드 중에서도 최고급 소재와 수작업을 고집하며 100% 이탈리아산이라는 자부심으로 유명한 브랜드다. 미노티의 커다란 소파 는 장식적일 뿐 아니라 앉았을 때 편안함이 남다르다. 최고급 거위 가슴털만 사용해 장인들이 한 땀 한 땀 손으로 작업하기 때문이다. 미노티를 이끄는 미노티 형제는 늘 쇼룸은 집과 같다고 말하는데, 그 점이 많은 이의 공감을 자아내는 부분이기도 하다.

“소파만은 좋은 제품을 소개하고 싶었고, 기준은 늘 미노티였어요. 무려 20년 전부터요! 미노티는 디옴니 쇼룸을 장식하는 커튼이나 패브릭, 소품 하나하나를 본사에서 직접 컨트롤할 정도로 꼼꼼하고 완벽한 파트너예요. 가구를 디스플레이하는 공간의 지휘자라고 표현하면 맞을까요? 제가 생각하는 가구 사업의 철학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고요.” 김민정 대표는 가구를 수입, 판매하는 것을 넘어 고객 집에 디스플레이하는 것까지 꼼꼼하게 작업하기로 유명하다.

7 벽에 건 그림만이 작품인가? 벽시계를 그림처럼 걸고 시계보다 작은 테이블 위에 화분을 올린 아이디어가 재밌다. 
8 모노톤에 컬러로 포인트를 준 미노티의 방식처럼 집 안 곳곳에 컬러 소품이 자리한다. 

“아이러니하지만 디옴니 단골들은 가구를 자주 바꾸지 않아요. 이사를 가도 그 집 디자인에 맞게 디스플레이를 다시 해주죠. 있는 가구에 몇 가지를 더해 또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그러면 ‘10년 전에는 이 제품을 왜 추천하는지 의아했는데, 지금 보니 왜 그랬는지 알겠다’고 하죠. 또 가구는 신중하게 골라야 하지만 놓는 방법 역시 심사숙고해야 하죠. 1mm의 차이로 디자인이 될 수도, 디자인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요.” 김민정 대표는 분명 인테리어 디자이너는 아니다. 그저 안목 좋은 가구 사업가일 뿐. 하지만 20년간 세계를 돌아다니며 그가 보고 경험한 것은 웬만한 디자이너 보다 깊고 풍부하다. 그에겐 좋은 것을 알아보는 보배같은 안목이 축적되어 있고, 브랜드와 고객 역시 이를 굳게 신뢰하는 것이리라.

커다란 나무 뒤로 보이는 김민정 대표의 대구 집. 2층 주방으로 연결되는 외부 계단이 있어 정겹다. 
또한 미노티가 한국 파트너로 디옴니를 선택한 이유는 가족 경영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1950년대 미노티를 론칭한 아버지 알베르토 미노티는 매트리스 제작, 판매를 시작으로 가구 사업을 일으켰다(알베르토의 아들 중 첫째인 레나토는 건축과 경영을 전공했고, 동생 로베르토는 디자인을 전공했다.

레나토의 쌍둥이 아들도 미노티에서 일하고 있어 3대째 가구 기업을 이어가고 있다). 가족이기 때문에 더 효과적인 사업이 가능하다고 믿는 미노티는 김민정 대표에 이어 경영을 전공한 허재희 부장, 디자인을 전공한 허지원 실장으로 이어지는 디옴니의 가족 경영 역량을 높이 산다. 가족 경영이야말로 제품의 이미지와 유전자, 사업의 방향과 철학을 잘 계승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1 쉽게 사지도, 쉽게 버리지도 못하는 성격이라 말하는 김민정 대표. 부엌 작은 창가에 조르르 장식한 인형은 허지원 실장의 어린 시절 장난감이다. 2 디옴니의 저력은 가족에서 비롯되는 것. 김민정 대표와 디옴니 허재희 부장, 허지원 실장 그리고 든든한 외조자 허찬희 원장이 오랜만에 가족사진을 찍었다. 
“가구 사업은 오랜 경험이 축적되지 않고는 결코 성공을 보장할 수 없어요. 또 경험은 감각과 직결되죠. 지원이는 고등학교 때까지 바이올린을 했어요. 모두 음악 대학에 갈 거라고 했지만, 갑자기 진로를 바꿔 로드아일랜드스쿨 디자인과에 입학했죠. 어린 시절부터 숱하게 봐온 게 가구였을 테니 경험이 만든 자연스러운 감각의 발현이요, 결과라 생각해요.” 여행지 호텔에서도 손에서 줄자를 놓지 않는 집요함, 레스토랑 화장실의 세면대가 마음에 들면 크기, 두께, 간격까지 하나하나 재서 기록하는 꼼꼼함까지 두 남매에게 유전자로 고스란히 계승한 김민정 대표.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면서 재희 엄마가 아닌 사업가로서 제2의 삶을 선택한 그는 자신의 뒤를 이어 가구 산업에 뛰어든 아들과 딸 덕에 요즘 또 다른 인생 설계를 시작했다. 대구 고향 집에 내려가 1층(반지하, 현재는 가구 창고로 쓰고 있다)에 달콤한 디저트 가게를 차리는 것이다. 가구 숍과 공간 디스플레이로 대구의 주거 문화를 업그레이드했다면, 이제 식문화까지 섭렵해 일상이 파티처럼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단다. 나이가 들수록 진짜 내 것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일이든, 공간이든, 사람이든… 그리고 어떤 바람이든 그것은 행동하는 자의 몫이다. 대구 고향 집에서 자그마한 디저트 가게를 하고 싶다는 그의 꿈이 예삿말처럼 들리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 소녀 같은 열정과 추진력이라면 앞으로 5년 안에 이곳은 줄 서서 먹는 디저트 가게가 되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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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현 수석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