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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음하영 가족 집이 다르면 삶도 다르다
멋진 수식어보다는 그냥 그림 그리는 아빠, 남편이 되고 싶었다는 작가 음하영. 순수 미술에서 패션 디자인으로, 일러스트레이터에서 다시 전업 작가로 활동하기까지 그에게 ‘집’과 ‘가족’은 늘 영감의 원천이다. 전형적 공간에서 탈피한 상수동 주택에서 펼쳐지는 포근하고 생동감 넘치는 가족의 일상을 들여다보았다.

주거 공간과 작업실, 제하를 위한 다락방까지 상수동 골목길에서 평온한 일상을 보내는 제하네 가족. 하나씩 천천히, 필요한 부분을 채워나간 레노베이션은 멋지다는 수식어보다 ‘다르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최근에 완성한 아이 방 개조와 외부 파사드 시공은 안팍건축디자인스튜디오(02-3417-8000)에서 맡았다.
홍대 인근, 상수동 골목길을 걷다보면 가정집을 개조해 상업 공간으로 활용하는 곳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골목마다 재미있는 공간이 즐 비해 주택의 다양한 변신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작가 음하영과 의류 디자이너 장은정 부부가 오래된 주택을 한 땀 한 땀 고쳐 완성한 개성 만점 스위트 홈. 오렌지색 대 문을 들어서는 순간, 기분 좋은 에너지가 가득하다.

거실 일부를 다락방과 통하는 보이드 구조로 설계해 개방감을 주었다. 
집과 작업실, 따로 또 함께
“처음부터 집을 사고, 레노베이션을 계획한 건 아니에요. 전업 작가로 활동하며 아이와 함께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죠. 작업실과 집이 같이 있는 공간을 찾다 보니 다시 홍대가 떠올랐고, 주거와 상업 시설이 공존하면서도 그나마 조용한 상수동이 적격이다 싶었죠.” 저마다 비슷한 시기에 지은 이층집들이 파사드의 변화로 다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상수동 골목길. 부부가 선택한 집은 지은 지 40년이 넘은 전형적인 이층 주택으로 1층 일부는 상업 공간으로 용도를 변경할 수 있었다(용도 변경 면적이 100㎡ 이하이면 근린생활시설군으로 등록할 수 있다). 1층은 임대하고, 반지층은 작업실로 꾸몄다. 세식구의 주거 공간은 2층으로 베란다와 다락방, 아담한 마당은 보너스다.

부부는 오래된 주택의 본래 분위기를 살리는 쪽으로 레노베이션하기로 결정했다. 두 사람 모두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아 나름대로 청사진이 있었고, 디자인에 관해서라면 어느 정도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공사에 들어가니 많은 부분에서 시행착오를 겪었단다. 오래된 주택은 뜯어봐야 알 수 있는 것이 많아 두어 달로 예상한 공사는 일정이 늘어지고 시간도, 예산도 넉넉지 않은 상태라 일단 기초만 튼튼하게 마감하고 입주를 감행했다. 지난여름 시작한 공사는 가을에 일부 마무리하고, 다락방과 외부 파사드 공사는 올해 봄에 다시 진행했다.

1 욕실에서 바라본 거실과 주방. 다락방으로 오르는 내부 계단은 마당 분위기와 맞춰 구로 철판으로 제작했다. 
2 가족사진과 음하영의 판화 작품으로 꾸민 아트월. 

“그렇게 중간에 텀을 갖고, 일정 기간 살아본 후 나머지 공사를 하니 필요한 것, 불필요한 것이 구분되면서 정리가 되더라고요. 다락방 공사는 아무래도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해 디자이너를 알아보던 중 <행복>에 실린 김학 중 소장 가족의 인터뷰를 봤어요. 오래된 구조의 묘미를 살리겠다는 고집스러운 철학, 또 감성적 부분이 잘 맞겠다 싶어 연락했죠.”

안팍건축 김학중 소장은 오래된 주택을 레노베이션할 때 외부 파사드의 완성도를 높이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상수동 주택은 처음 방문했을 때 공사를 급하게 마무리한 느낌이 강했다고. “마당에 들어섰는데 뭔가 불안한 느낌이 들었어요. 도로 위에 선 느낌이랄까, 마당도 자동차에 양보해야 했으니까요. 일단 주차가 가능하도록 대문을 폴딩으로 제작하고 따뜻한 오렌지 컬러로 도장해 포인트를 줬어요. 현관문으로 급하게 올라가는 높은 계단을 철거하고 조금 돌아 가더라도 대문을 열고 마당을 지나 완만한 경사로 올라가는 여유있는 동선을 구성했고요.”

거실 한쪽 벽은 합판으로 마감했다. 액자를 붙이거나 선반을 달아 소품을 장식하는 등 다양한 연출을 할 수 있어 좋다고. 
4 침대 맞은편에 가벽을 세워 드레스룸, 미니 라운지 공간으로 활용해 쓰임새를 높였다. 

집은 옛날 방식의 계단을 오르면 거실과 베란다 사이에 통창(새시)이 있고, 베란다를 지나 안쪽에 현관이 자리한다. 현관에 들어서면 정면에 침실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거실과 주방이 펼쳐지는 구조다. 거실을 사이에 두고 왼쪽은 욕실과 파우더룸, 오른쪽은 주방이다. 그러고 보니 방이 하나뿐 이다. “저희 부부는 무작정 방이 많거나 변화무쌍한 구조는 선호하지 않아요. 한 번에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는 구조가 좋았고, 잉여 공간이 생기는 것도 원치 않았고요. 세 식구뿐이고, 제 작업실은 아래층에 있어 굳이 방이 많을 필요가 없었죠.” 결국 세 가족은 공간을 층별로 하나씩 나눠 쓰는 셈이다. 아빠는 지하 작업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고, 엄마는 2층 주거 공간에서 액자도 붙이고 소파도 이리저리 옮기면서 재미를 느낀다.

3층은 제하 방이다. 이사 오면서 세운 목표는 한 달에 한 번씩 한 가지 주제로 변화를 주자는 것. 뭐든 한 번에 하려면 힘드니까 처음엔 가구 배치, 두번째는 패브릭, 세 번째는 벽 꾸밈, 네 번째는 아이 방… 이런 식이다. 남들은 언제 공사가 끝나느냐며 핀잔을 주기도 하지만 작은 인테리어가 하나하나 완성될 때마다 뿌듯하기만 하다.

아이를 키우는 모든 엄마의 고민 중 하나가 바로 아이 가구를 선택하는 것일 터. 원색 가구도, 캐릭터 가구도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부는 아예 다락방을 개조하면서 모든 가구를 목공으로 제작했다. 친환경 자작나무 합판을 이용해 침대 프레임과 책상, 수납장 등을 짜 넣고 바닥 높낮이에 변화를 줘 키즈 카페 같은 공간이 탄생했다. 
가족은 창작의 원동력
음하영은 10여 년 전 패션 일러스트레이터로 시작해서 현재는 영국의 에이전트를 통해 그림을 그리고 전시하는게 업인 아티스트다. 패션 디자인을 전공하고 옷 대신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제가 입학한 시기의 섬유미술과는 순수 미술에 가까웠어요. 작업에 대한 진지함보다는 시각적 자극에 더 예민하던 시기라 치기를 부리며 겉돌곤 했죠. 현실 도피의 방법으로 1학년을 마치자마자 군에 입대했고, 제대 후 복학하니 학과가 ‘섬유미술패션디자인’과로 바뀌어 있더라고요. 그때 처음 들은 수업이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이에요.”

패션 일러스트레이션 수업을 한 학기 듣고 나니 재미도 있는 데다 밥벌이는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을 만드는 입체 작업보다 패션이라는 이미지를 평면으로 옮기는 것에 더 재미를 느꼈고, 사람의 표정과 제스처에서 나오는 뉘앙스, 패셔너블한 이미지에 매료되기도 했다. 2006년 패션 일러스트레이터로 데뷔해 각종 패션 매거진에 개성 있는 작업을 선보인 그는 그 시기가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고 말한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길을 혼자 뚫고 가는 방법을 체득했고, 원하는 일을 하면서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하지만 곧 한정된 시장과 정해진 클라이언트라는 한계점에 부딪혔다.

1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다양한 동선과 재미를 불어넣기 위해 군데군데 턱을 두어 완성한 다락방은 이 집의 트레이드마크다. 
2 다락방 날개 틈새 공간을 욕실로 꾸민 아이디어가 재밌다. 

“패션은 유행이에요. 호흡이 빠르죠. 언젠가부터 패션 일러스트 레이터라는 수식어가 편하지 않더라고요. 패셔너블해야 한다는 속박이 생기니 마음 편하게 ‘그림’을 그릴 수 없었고, 내 그림에 내 이야기를 담을 수 없다는 점이 무척 공허하게 느껴졌죠.”

그는 패션 일러스트레이터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해 판화를 전공했다. 스킬보다도 작업을 대하는 자세를 배운 그 시기를 거쳐 몇 해 전 페인팅 작업을 하는 작가로 전향했다. 그리고 2009년 영국의 레모네이드 일러스트레이션 에이전시Lemonade Illustration Agency와 계약해 세번의 개인전을 열었다. 내년 봄에는 아름다운 순간들이라는 주제로 개인전 를 열어 페인팅과 판화 작업을 선보일 예정이다.

순수 미술에서 패션 디자인, 일러스트레이터를 거쳐 다시 순수 미술로 돌아오기까지, 이러한 변화에는 결혼 생활과 제하의 등장이 많은 영향을 주었다. 결혼 전 멘토가 대부분 미혼의 자유분방한 작가들이었다면 지금의 롤모델은 좋은 가정을 이루고 또 지켜가는 작가, 알렉스 카츠Alex Katz, 로이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이라고 말할 정도. 그래서 그의 작업에는 아내와 아이 그리고 주변 사람의 모습이 많이 등장한다.

“언젠가 사진을 정리하다 아내가 임신한 시기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그 시간 속에서 제가 너무나 행복해하더군요. 그 순간 ‘아름다웠던 순간을 너무 쉽게 잊고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행복했던 순간들을 다시 조합하고 그려내는 경험 자체가 무척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고요.”

1 같은 건물 반지층에 있지만 입구가 달라 확실히 일하러 가는 기분이 든다는 음하영의 작업실.진행하는 작업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벽면에 철제 보드를 설치하고 실크스크린, 페인팅, 디지털 작업 등 공정에 맞게 동선을 정리했다. 의자와 테이블, 벽 장식, 오디오 시스템까지 필요한 것을 하나씩 채워나가는 즐거움이 컸다고. 
2 제하가 와서 편안하게 놀 수 있도록 작업실 곳곳에 낮은 암체어를 두었다. 

우리 아빠는 최고 멋쟁이
그의 하루는 아내를 배웅하면서 시작한다(홍대 선후배 사이인 아내 장은정은 ‘허밍’이라는 의류 회사의 대표다). 그리고 제하를 어린이집 셔틀버스에 태워준 뒤 지하 작업실로 들어가면 비로소 작가 음하영의 일상이 시작된다.
작업실은 혼자 쓰기에 알맞은 크기와 구조다. 작업실을 꾸미면서 중점을 둔 것은 작업의 성격에 따라 재료와 공정을 구분하는 동선이었다. 실크스크린과 석판화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 페인팅을 위한 공간, 디지털 작업을 위한 공간 등 세 가지 동선으로 구분했다. 싱크대가 놓인 판화 작업 공간은 프레스처럼 커다란 기계도 있는 데다 유성 실크스크린 잉크, 휘발유 등 독성이 있는 재료가 많아 환기 설비와 배수에 신경을 썼다. 그래서 다른 공간보다 높이를 5cm 정도 낮추었고, 제하 손이 닿지 않도록 독성 있는 재료는 죄다 선반 위에 올려두었다.

“작년부터 작업 스타일이 바뀌었는데, 이 또한 집을 수리하면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공사가 한창이던 시기에 제가 한 고민은 캔버스와 종이를 벗어난 새로운 바탕재를 찾는 것이었는데, 도장팀이 합판에 롤러로 도장을 해둔 것을 우연찮게 봤거든요. 롤러가 움직이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텍스처가 종이의 그것과 유사했고, 이를 응용해서 캔버스를 직접 만들어 작업하고 있어요.”

그의 판화 작품이 세련되면서도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처럼 그의 작업이 집과 가족, 주변 사람들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리라. 작업실 곳곳에는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제하가 편하게 놀 수 있도록 낮은 책상과 소담한 안락의자를 두었는데, 아빠 물감, 스케치북을 놀잇감 삼아 자유로운 창작 시간을 즐길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미술학교도 없을 듯싶다. 평범한 일이 아닌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는 것, 어린 제하의 눈에 아빠의 그런 모습이 멋져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3, 4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영향을 받은 음하영의 개성 있는 판화 작업.
5 외벽을 감싸는 하얀 박스 형태의 파사드, 오렌지색 철 대문이 인상적이다. 

가족의 꿈을 채우는 집
이 집의 하이라이트는 거실에서 보이드 공간으로 나눈 다락방으로 바로 제하 방이다. 오로지 제하의, 제하에 의한, 제하를 위한 공간. 장난감, 스케치북, 레고 블록 등이 방에 어지럽게 뒹굴어도 매일, 때마다 가지고 노는 것들이라 굳이 치울 필요가 없다. 다락방 일부분은 거실 천장과 하나로 연결되는 보이드 구조로 투명한 난간을 설치해 아래로 2층 거실 공간을 볼 수 있게 했다. 완벽하게 분리하면서도 소통하는 공간인 셈. “아이 방이 워낙 특색 있어 집에 놀러 오는 사람들은 제하가 집주인이라며 농담을 할 정도예요. 세 식구 중 가장 어리니 조금 더 신경 써야겠죠? 이 방에서 제하의 감성이 무럭무럭 자라길 바랍니다.”

창을 열면 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비가 오면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도 즐길 수 있는 게 바로 다락방의 묘미 아닐까. 주변에 유명한 빵집도 많아 아침이면 빵 굽는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도 이 집만이 누리는 낭만이다. “나름의 기준으로 집을 고치긴 했지만 무엇보다 집이 갖춰야 할 필수 조건은 편안하면서도 기운찬 에너지를 전달하는 거라 생각해요. 이 집은 저뿐만 아니라 아내, 어린 제하의 영감과 감성에 발동을 걸어주는 에너지 창고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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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현 수석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