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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섭∙김명주 부부 특별할 것 없이 아주 평범한 날
열매를 수확하기 위해서는 나무를 살뜰히 가꾸고 돌봐야 한다. 꽃 피고 열매 맺는 것이 기적과 같은 경이로운 일이라면, 물을 주고 햇빛을 쪼이고 잡초를 뽑는 일은 꼭 필요한 과정이지만 다분히 일상적이다. 이를 인생에 대입하면 사람의 일 역시 마찬가지다. 매일의 순간은 원대한 포부와 목표에 묻혀버리기 일쑤다. 현재를 소중히 여기고 오늘을 즐기라는 말은 그래서 진부하면서도 실천하려면 어렵다. 글로벌 코즈메틱 브랜드의 마케팅 책임자로 근무하는 동안 소소한 일상을 담은 블로그를 운영하다 직장을 그만두고 ‘스타일 와이프로거’로 나선 메종 드 실크 김명주 대표와 에코 한국 지사장 심판섭 부부. 부부의 일상을 살펴보면 오늘의 생활을 돌보고 의식주를 즐기는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알 수 있다.


블로그를 통해 ‘일상도 향유할 필요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메종 드 실크 김명주 대표와 에코 한국 지사장 심판섭 대표 부부. 화이트 컬러와 나무, 빛을 콘셉트로 5년 전 개조한 스위트 홈에서 반려견 하늘과 따스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기본으로 돌아가라
저마다 꿈꾸는 집의 모습은 다르다. 누군가는 도심 한복판의 펜트하우스를, 다른 누군가는 푸른 초원 위의 그림 같은 집을 꿈꾼다. 라이프스타일 블로그 ‘실크의 아름다운 집(blog.naver. com/silk0216)’을 운영하는 김명주 대표의 상상 너머엔 언제나 ‘가장 자연스러운 삶을 살 수 있는 집’이라는 전제가 있었다. 분당 중앙공원이 내려다보이는 아파트 단지. 그의 집에 들어서는 순간 놀란 것은 두 가지, 정말 하얗고 정말 깨끗하다는 점이었다. 방과 거실은 물론 부엌에 이르기까지 벽과 천장은 화이트 컬러, 그 위에 자작나무로 일관성 있게 마감한 가구들이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는 집을 개조할 때 ‘흰색, 나무, 빛’ 이 세 가지 요소만 생각했단다. 사실 많은 사람이 꿈꾸는 요소지만 살다 보면 감당이 안 되기 십상이기에 신중하게 고려해야 하는 스타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집은 고친 지 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처음 모습 그대로다. 아니, 한 달 전 이사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간결하고 정갈하다. “아이가 없기도 하고, 저희 부부가 생각하는 삶의 가치가 반영됐기 때문이에요. 왜, 짐을 적게 가지고 다니는 여행은 쉽게 이동할 수 있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며, 더 풍부한 경험을 쌓을 수 있잖아요. 가뿐한 여행 같은 삶에 가치를 두었다고 하면 맞아요.”
매일 아침 차를 충분히 우려 티타임을 즐기고 꽃 시장을 탐방하며 공원 캠핑을 하는 등 김명주 대표의 ‘유한마담 놀이’가 더 이상 흉내가 아닌 행동이 된 배경에는 남편 심판섭 대표의 외조가 큰 역할을 했다(한화 갤러리아 점포 기획, 프라다ㆍ로레알 코리아 머천다이저를 거쳐 영국계 부동
산 투자 회사까지 패션, 뷰티, 유통, 컨설팅 업무를 모두 경험한 그는 현재 덴마크 신발 브랜드 에코ecco의 한국 지사장을 맡고 있다). 인테리어와 건축을 전공한 심 대표는 결혼 전 살던 아파트부터 지금의 집까지 개조공사를 직접 진두지휘했는데, 디자인뿐 아니라 수납과 동선을 완벽하 게 계획해 그야말로 여자가 살기 편한 공간을 완성했다.
“무엇보다 시각적으로 아름답지 않은 것이 눈에 띄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공간이 한정적이라 기능성 높은 수납 가구를 활용했죠. 자작나무 합판으로 맞춤 제작한 주방 가구는 상부장 크기를 줄여 답답함을 없애고 하부장은 서랍식으로 구성했어요. 침실 머리맡 수납장은 마치 벽처럼 보이지만 양쪽 끝에 오픈형 수납장을 짜 넣어 모자와 가방 등을 수납할 수 있죠. 정면 가운데 두 칸은 철 지난 이불을 넣어두면 좋아요.”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 공간인 침실을 가장 편안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가구를 최소화한 침실. 침대를 마주하는 벽 아래에는 낮은 테이블을 놓았는데, 쿠션을 올린 뒤 꽃과 소품을 더하니 벤치이자 진열대 역할을 한다. 두 식구뿐이라 불필요한 문을 떼어낸 것도 특징이다.
침실 오른쪽 화장실은 자작나무 맞춤 가구를 넣어 건식 메이크업룸으로 꾸몄고, 부엌 옆방 역시 문을 떼어내고 다목적 공간으로 활용한다. 다목적 공간의 한쪽 벽은 자작나무 패널로 마감하고 찬넬을 설치해 오픈 책장으로 연출했다. “넓은 테이블의 용도는 상상 이상으로 무궁무진해요.
요즘 한창 빠져 있는 책을 다 펼쳐두고 보거나, 하나 둘 모은 티웨어를 잔뜩 꺼내놓고 티타임의 호사를 누리기도 하죠. 가족이나 친구들이 왔을 때는 소파 대신 둘러앉아 편하게 담소를 나누기도 좋고요.”


침대 헤드보드 대신 짜 넣은 수납공간. 양옆엔 선반장을 달아 모자, 가방 등을 수납한다. 얼마 전 기분 전환 삼아 교체한 베개, 쿠션, 베드 스프레드는 미국 피콕엘리 제품으로 자수와 둥근 마감이 근사하다. 


침실에 딸린 욕실은 건식 파우더룸으로 개조했다. 


도나 헤이의 로얄 덜튼 티웨어. 꾸밈 없이 단아한 모습에 매료되어 구입했고, 블로그를 통해 수입 판매할 예정이다. 


부엌 옆에 자리한 다목적 룸은 서재 겸 다이닝 공간이다. 
벽면 전체를 자작나무 합판으로 마감한 후 찬넬 방식의 선반을 설치해 책장 겸 장식장으로 활용한다. 

10분이면 충분하다
김명주 대표는 정성껏 준비한 차 한잔을 천천히 음미하며 마시는 일로 매일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한다. 아주 오래된 습관이다. “직장 생활을 할 때도 회사에 도착해서 늘 10분간 티타임을 가졌어요. 마치 의식을 치르듯 오로지 마음에 집중하는 시간이죠. 피곤한 날일수록, 시간에 쫓길수록 10분의 효과는 더욱 큽니다.”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오후의 티타임이란 어떻게 보면 한가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처럼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티타임은 굳이 몇 시간씩 할애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차는 정신적 음료이므로 하루에 10분, 단 5분이라도 시간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
홍차는 생산지와 차종에 따라 종류가 다양해 골라 마시는 재미가 있는데, 여름에는 쿠스미Kusmi의 쿨 티를 추천한다. 이름처럼 쿨한 민트와 시트러스 향에 오랫동안 입안에 머무르는 로즈힙과 사과 맛이 단연코 여름에 딱 맞는 차다. 냉장고에 두고 갈증이 날 때 마시면 그만이다. 차를 마시기 시작하면 차는 물론 티웨어에도 욕심이 생기게 마련. 평소 도나 헤이 스타일의 주방을 꾸미는 게 꿈일 정도로 도나 헤이의 팬인 그는 우연히 접한 도나 헤이의 로얄 덜튼 티웨어에 매료되어 한국에 공식으로 수입, 판매할 계획이다. 그 자체로 활짝 핀 꽃을 형상화한 일본의 하나 찻잔, 남편이 덴마크 출장길에 앤티크 숍에서 구입한 로얄코펜하겐 빈티지, 폴란드에서 온 화이트 티웨어 등 각각의 장단점을 설명하는데 단순 취미를 넘어 전문가 수준. 지금은 블로그를 통해 차와 티웨어를 소개하지만 곧 오프라인 티룸을 열어 함께 차를 즐기고 배우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단다.
마침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가 우려낸 차를 마셨다. 차 한 모금을 입안에 머금었다가 삼키자 그 맛이 어찌나 개운하던지, 천하가 태평할 때 하늘에서 내린다는 단 이슬이 바로 이런 맛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가 유한마담 놀이라고 너스레를 떠는, 작은 사치의 두 번째는 바로 꽃이다. 요란한 세상에서 수선스럽지 않게, 차분하게 살아온 것 또한 자연이 가르쳐준 소박함의 미덕일 터. 그는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거실에 은은한 꽃향기가 퍼질 수 있도록 항상 꽃을 장식해둔다. 몇몇 클래스에서 어깨너머로 배운 실력이지만 제법 분위기를 낼 줄 안다. 꽃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살려서 그날 기분에 따라 장식하면 그만. 수국, 장미, 달리아 등 봉오리가 큰 꽃은 멋 부리지 않고 한 송이만 슥 꽂아도 되니 누구나 솜씨를 부려볼 수 있다.
“꽃을 선택할 때 많은 종류를 섞지 않아요. 꽃 시장에서 밑동까지 잘라달라고 한 뒤 좁고 깊은 리버티 에코 백에 넣어 오죠. 꽃대가 꼬이지 않도록 한 방향으로 쥐고 밑부분만 살짝 다듬은 후 화기에 꽂으면 봉긋한 형태가 그대로 유지되어 장식하기 손쉬워요. 웰 라이프가 별건가요? 사소한 일에서 순간순간 느끼는 따스한 감정의 총합, 그것이 바로 행복이죠.”


거실에서 바라본 주방. 부엌 싱크대 수납장은 서랍 형태로 바꿔 수납하기도 좋고 꺼내 쓰기도 편리하다. 


1 창밖으로 바라보이는 중앙공원의 전망이 일품이다. 
2 마음을 따듯하게 안정시키는 티 타임. 화이트와 블루 톤이 청아한 로얄코펜하겐 티웨어는 평소 애용하는 제품이다. 
3 자작나무로 마감한 담백한 공간에 레드 컬러는 아주 잘 어울리는 포인트 컬러다. 
4 덴마크 오디오 리브라토네. 세 가지 색상의 겉옷을 기분 전환 삼아 바꿀 수 있고 유・무선으로핸드폰과 연결해 사용할 수 있어 아웃도어용으로 제격이다. 
5 양재 꽃 시장에서 한 다발 구입한 하얀 장미. 꽃이 지천인 여름이 되면 주변 풀꽃을 꺾어 꽃다발을 만들거나 심플한 유리 화기에 툭 꽂아 연출한다. 
6 자작나무 벤치와 임스 락킹 체어가 조화를 이루는 침실. 벤치는 침대 발치에 두거나 벽에 붙여 장식장처럼 활용한다. 
7 마리아주 프레르, TWG, 쿠스미 등 평소 먹는 차와 소형 가전이 정갈하게 놓여 있다. 


문을 떼어내 공간이 확장된 같은 효과를 주는 다목적 룸. 책 욕심이 많은 부부는 조형적 디자인의 사피엔스 책장을 두고 분야별로 가장 마음에 드는 디자인 서적을 꽂아 장식 효과를 주었다.


도나 헤이에서 출간하는 요리책을 즐겨 보는 김명주 대표는 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실제 그 레시피로 브런치를 차려낸다. 신선한 재료로 빠르고 쉽게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도나 헤이의 철학이 마음에 든다고. 


집 근처 공원에서 즐기는 리얼 주말 피크닉. 차에 늘 싣고 다니는 캠핑 키트와 도나 헤이의 법랑 라인, 무선 오디오만 있으면 피크닉 준비 끝. 

궁금하면 확인하라
토요일 오전, 분당에 있는 한 카페에서 부부를 다시 만났다. 무엇보다 커피 맛에 매료돼 아예 잔을 맡겨두고 먹는다는 점이 재밌다. 입술에 잔이 닿는 고유한 느낌조차도 ‘내 것’이어야만 하는 까다로움이 놀라웠고, 까다로운 입맛을 사로잡은 비결이 뭘까 궁금했다. “다소 옛날 분위기지만 핸드 드립 커피 맛은 가히 분당이 최고예요. 오죽하면 이 카페를 찾는 모임까지 있습니다. 남자들 모임인데, 일요일 밤 9시에 하나 둘씩 모여 일주일간의 회포를 풀지요. 집안일을 돕다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그쯤이에요.”
카페, 캠핑 멤버들을 비롯해 분당 지역에서만 몇 개의 사적 번개 모임을 하는 심판섭 대표는 모닝커피 모임도 있다고 귀띔한다. 판교 백현동 카페 거리 뒤쪽으로 야트막한 산이 있는데,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고 사람이 거의 없어 아침에 피크닉 하기 제격이란다. 또 심 대표는 산악 자전거, 백패킹 마니아다.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인적 드문 숲을 찾아 야영하는 것을 즐기는 그는 캠핑이라는 이벤트를 통해 비일상적 상황을 적극적으로 즐긴다. 일상의 관습적 생활 패턴에서 벗어나 해방감을 느끼고 생존을 위한 창의적이고 주체적 활동에 몰입하는 즐거움, 이것이 바로 캠핑의 매력 아닌가. 그에게 캠핑은 적당히 먹고 적당히 자고 남는 시간은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목적 없이 보내도 되는 시간이 아니다. 일회용 그릇이 쓰기 싫어 천연 나무를 얇게 켜 만든 캠핑용 그릇을 찾았으며, 와인 잔도 전용 글라스를 사용한다. 바비큐 대신 램 스테이크를 차리고, 아웃도어에서는 덴마크 오디오 리브라토네Libratone를 사용한다. 좋은 물건은 직접 써봐야 직성이 풀리는 그는 캠핑할 때 야크 가죽을 사용한 에코 등산화를 신는다는 깨알 같은 홍보도 잊지 않았다. 멈추지 않는 호기심은 여행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멀리 가는 비용으로 사고 싶은 걸 사기로 하고 대신 가까운 일본으로 신혼여행을 간 부부는 일주일간 도쿄에 머물며 현지인처럼 골목 투어를 했단다. 맛이 궁금하면 먹어보고, 옷이 궁금하면 입어 보고, 호텔이 궁금하면 묵어보는 등 7년 전 그때의 기억은 여전히 살아 있다. “경험의 조각조각을 이어 스토리를 만드는 게 제 장점이에요. 정보는 인터넷 서핑으로 누구나 얻을 수 있어요. 하지만 정보를 모아 발품 팔아 경험하고 스토리를 만들면 그건 온전히 제 것이 되거든요.”
그는 아내에게 티를 소개한 주인공이다. 출장을 가면 언제나 가장 먼저 티 부티크부터 들러 하나씩 선물하고, 출장 때는 골목마다 숨어 있는 앤티크 숍에 들러 티웨어와 그릇을 잔뜩 사다 준다. 티를 좋아하는 아내가 티에 대해 공부하고,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고, 티웨어를 수입하기까지 …. 무엇보다 좋아하는 일을, 또 오래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것 같아 반가웠단다. “결혼이라는 건 긴 호흡으로 함께 먼 길 가는 동반자잖아요. 다떼고 유일하게 남는 내 편인데, 서로가 ‘공유’하는 게 많으면 좋겠지요.”
사소한 것도 허투로 보지 않는 세심함과 따스한 감성이 잘 정제된 집. 부부는 매일의 평범한 식사, 티타임, 산책, 대화 등을 애정으로 돌볼 필요가 있다며, 차를 마시고 꽃을 꽂는 그 순간을 즐기라 말한다. 숨가쁜 일상에 여운이 될 만한 순간순간을 만드는 것, 이게 부부가 말하는 삶에 꼭 필요한 사소한 여유요, 삶이 풍요로워지는 비결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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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현 수석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