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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 편지의 주인공, 변호사 조근호 씨 댁 사물과 소통하는 집
스타일과 분위기를 논하기에 앞서 “아, 이런 집도 있구나”라는 호기심 어린 감탄이 먼저 나오는 집이 있다. 사람과 물건이 화해한 집, 변호사 조근호 씨의 남다른 공간 철학과 사물에 대한 사유가 담긴 레노베이션 스토리.


한 주를 여는 월요 편지(www.mondayletter.com)로 행복을 배달하는 변호사 조근호 씨와 그의 아내 이운한 씨. 서재는 아내와 함께 쓰는 공간으로 처음에는 책상을 마주 보게 배치했는 데 컴퓨터에 가로막혀 서로 ‘차단’되더라는 것. 옆으로 긴 테이블을 두고 마주 보는 양쪽 끝에 홈을 팠더니 따로 또 같이 쓰는 편리한 책상이 되었다.

1 노출 콘크리트 마감, 흰색・회색・짙은 회색의 컬러 조화가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전하는 거실. 고성욱 작가의 소나무 숲 사진이 풍기는 몽환적인 분위기가 거칠고 차가운 느낌을 상쇄해준다.
2 책등 커버의 컬러가 이렇게 다채롭다니! 빨강, 파랑, 검정, 노랑, 녹색, 흰색으로 구분해 꽂았더니 책장이 한결 정돈된 느낌이다.

3 바나나나무 잎사귀를 말린 오브제를 작품처럼 연출한 현관. 시각적 개방감을 주는 자동문을 설치했다.
4 조준점에 꿀벌이 그려진 남성 전용 소변기는 집주인의 깔끔한 성격이 드러나는 용품이다.


여러분, 물건과 잘 소통하십니까?
“저는 남성용 재킷입니다. 어느 백화점 매장의 가장 앞쪽에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그곳을 지나는 사람마다 저를 입은 마네킹 앞에 서서 저를 눈여겨 보곤 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신사 한 분이 저를 몹시 탐내더니 결국엔 구입했습니다. 드디어 제게도 주인이 생긴 것입니다. 매장에 멋스럽게 진열되던 시절도 좋았지만 누군가를 위해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 또한 가슴 설레는 일이었지요. 그날 저는 신사의 손에 이끌려 매장만큼 인테리어가 근사한 어떤 집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서 제가 살게 된 곳은 깜깜한 옷장 안이었습니다. 옆에 걸려 있는 재킷이 말을 걸어옵니다. ‘저는 이 옷장에 들어온 지 1년이 되었어요. 우리가 누군가의 것이 되는 순간, 머지않아 우리는 그 누군가로부터 소외되고 말지요. 저 옆에 있는 파카는 3년째 이 옷장 밖을 구경하지 못했는걸요.’ ”
지난해 마음에 들어 구입한 재킷이 지금 이렇게 속삭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한번쯤 생각해보셨나요? 백화점에서는 그토록 마음에 들어 소유하고 싶었던 옷이 집에 오면 왜 하나같이 저장되고, 스톡stock의 대상이 되는 것일까요?_131번째 편지 요약

소소한 일상에서 발견한 따뜻한 이야기로 매주 월요일 많은 이에게 행복을 배달하는 변호사 조근호 씨. 집을 손질하고 싶어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사람과 물건의 관계에 대해 사유하게된 그는 사물의 관점에서 ‘수납’에 대한 진중한 철학을 풀어낸다. 물건은 장롱이나 장식장에 들어가는 순간 공간과 차단되고 사람으로부터 소외된다는 것. 좀 더 거창하게 철학적으로 접근하면, 이는 뭐든 풍족한 현대의 삶과 미니멀리즘 건축 사조와도 연결된다. 모든 것을 감추는 시스템 수납으로 인해 사람과 물건은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일부 물건은 아예 잊히는 것. 소유와 적재, 그러다 잊어버리면 또 구입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다. 다소 엉뚱한 생각에서 출발했지만, 하루가 다르게 쌓이는 살림살이를 돌아보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이야기 아닐까? 이것이 바로 그가 주장하는 ‘화해주의’ ‘소통주의’ 건축이다.


퇴근 후 언제 옷을 갈아입고, 가방과 휴대폰을 어디에 두는지 등 삶의 패턴을 정리해보니 가장 큰 안방을 서재와 드레스룸으로 사용해야 할 이유가 충분했다. 붙박이 옷장에 거울 문을 달아 공간이 한결 넓어 보인다.

붙박이 옷장의 불을 켜면 거울 문을 투과해 가지런히 걸린 옷들이 한눈에 펼쳐진다. 물건이 내 손으로 들어온 후에는 더더욱 그 물건과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조근호 씨. 이처럼 사람과 물건이 공간에서 ‘소통’하면 불필요한 물건에 파묻혀 지내는 일도 없어지지 않을까.


차단과 화해 개념이 공존하는 수납 철학
2011년 여름, 법무연수원장으로 30년간의 공직 생활을 마친 조근호 씨는 일상에 활력소가 될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12년째 살던 빌라에서 이사하기로 결심한 그는 두 집(어머니와 위아래 집에서 나란히 살고 있다)을 함께 옮기는 것이 여의치 않아 레노베이션으로 계획을 수정하고, 평소 알고 지내던 디자이너 김한석 씨에게 디자인을 의뢰했다. 보통 레노베이션이라면 안주인이 주도권을 잡겠지만, 이 집은 남편이 우위를 선점한 데다 건축을 전공한 남자 디자이너가 조력자로 나섰으니 어느 정도 거칠고 차가운 공간일 거라는 예상이 앞섰다.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한 175.2㎡(53평) 빌라. 현관문과 긴 전실을 지나니 복도 한쪽으로 자동문이 스르르 열린다. 방 네 개와 거실, 다이닝룸, 두 개의 화장실로 구성된 공간은 목적과 쓰임새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이지만 가장 큰 특 징은 ‘미니멀리즘’이다. 집 안 전체가 깔끔하다 못해 간결한 아름다움으로 넘쳐나니 그 비결은 바로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한 수납에 있다.
“공간 레이아웃, 수납에 관한 정보는 넘쳐나지요. 하지만 그것을 단순히 흉내 내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살림살이, 라이프스타일 그리고 집주인의 성격까지 모두 다르기 때문이죠.” 김한석 씨의 말처럼 결국 자신의 생활과 맞지 않는다면 어떤 수납법이든 효과적으로 지속할 수 없는 법. 따라서 이 물건을 왜 여기에 수납해야 하는지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하나하나 스스로 해답을 찾아야 한다. 조근호 씨는 레노베이션을 진행하면서 자신의 하루 일과를 분석하고, 이를 공간 레이아웃에 반영했다. “평소 일상을 돌아보니 퇴근하고 서재에서 일하다 샤워하고 자더라고요. 아침에도 서재에서 메일을 체크하고 옷 갈아입고 출근하고요. 서재와 드레스룸이 한방에 있으면 편리할 것 같았고, 오랜 시간을 보내는 만큼 널찍한 안방을 서재로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책장과 옷장이 함께 있는 광경이라. 어색할 법도 하지만 그의 서재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옷장에 거울 필름지를 붙인 유리 문짝을 사용하고, 안쪽 천장에 조명 박스를 설치한 것. 평소에는 거울처럼 반대편의 책상을 비추고 옷장 안의 불을 켜면 디스플레이 효과가 뛰어난 드레스룸이 된다. 오늘은 어떤 옷을 입을까? 옷장 문을 열지 않아도 조합이 가능하니 마법의 드레스룸 아닌가.


목공사 때 맞춤 제작한 책상과 낮은 침대 프레 임으로 단순하게 꾸민 아들 방. 왼편에는 가전 제품 부속물 등 자질구레한 살림살이를 정리하도록 전면 수납장을 짜 넣었는데 마치 벽처럼 보인다. 문이 벽처럼 보이는 착시 효과도 이 집 인테리어의 백미다.

1 집에서 가장 소녀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자 한 딸 방. 마루 아래 간접 조명등을 넣고, 박공지붕 구조의 천장으로 옥탑방 같은 아늑함을 더했다.
2 침실은 바닥에 낮은 다다미를 깔고 천장에 거울을 달아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낸다.
3 주방 가구는 문짝만 교체해 분위기를 바꾸고 주방 문에 거울을 붙여 확장 효과를 냈다. 다이닝룸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벤치를 두었다.

낯선 긴장감, 확장 효과가 있는 거울의 마술
반사 효과를 주는 ‘거울’을 마감재로 사용한 것도 특징이다. 다소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는 천장이 낮으면 집중력이 좋아지고 천장이 높으면 창의력이 발달한다는 ‘신경 건축학’ 이론을 적용한 것이다. 미국의 솔크 연구소를 예로 들 수 있는데, 설계를 맡은 거장 루이스 칸에게 솔크 박사가 주문한 것은 딱 한 가지, 바로 천장을 높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솔크 연구소는 여덟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무엇보다 집이 자유로운 사고를 펼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원한 조근호 씨의 바람을 담아 디자이너는 천장을 15cm 높였고, 침실 천장에는 과감하게 거울을 설치했다. “침실은 답답해 보이지 않게 꾸미는 데 중점을 두었어요. 침대 프레임 대신 낮은 단 위에 다다미를 깔아 만든 침대의 정면 벽과 천장에 거울을 붙였죠. 아침마다 눈뜨면 잠시 ‘이곳이 어디인가?’ 하는 낯선 기분에 빠집니다.” 침실과 서재 사이에 욕실을 두길 원한 그는 리조트처럼 히노키 각탕 시설을 갖춘 샤워실과 파우더룸, 용변 공간으로 나눠 구성했다. 식탁 맞은편에 전면 수납장을 짜 넣은 것 또한 인상적이다. 아침마다 건강 보조 식품을 챙기는 아내를 위해 트레이 통째로 수납할 수 있는 선반장을 설치한 것. 사실 물건을 둘 장소가 없는데 깔끔하게 정리한다는 것은 굉장한 난센스다.

자, 하던 일을 멈추고 잠시 고개를 들어 집 안을 둘러보라. 지금 눈에 보이는 물건들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나뒹굴고 있지는 않은지? 잠깐씩 쓰는 물건이라도 적확한 자리, 즉 ‘지정석’을 정해둬야 한다는 조근호 씨의 지론에, 옷장 속 재킷의 속삼임에 귀 기울여볼 일이다. “아무런 속삭임이 없는 공간은 죽은 공간이라 생각해요. 공간은 사람이 만들지만 결국 그 공간이 사람을 변화시키기도 하니까요. 눈뜨면 마주하는 나 자신이, 거실 벽에 걸린 숲 사진이, 옷장 속의 스트라이프 티셔츠가 속삭이죠. ‘숲 너머로 멋진 해변이 있을 것 같아. 바로 지금 이 거실, 리조트 같지 않아?’ 라고요.”

시공 및 디자인 김한석(이도환경디자인, 02-593-2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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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현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2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