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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창고를 개조한 신혼집 행복은 각자가 꿈꾸는 모습으로 찾아온다
내 집은 아니더라도 도심 한복판, 근사한 아파트에 살며 편리한 생활을 누리는 것만이 행복한 미래라 생각했다. 계획한 예산 범위에서 너무 무리하지 않으면서도 부부의 라이프스타일을 적극 반영한데다, 내 집 마련에 대한 불안감을 해결하고 전세금 걱정도 없는 이 집을 만나기 전까지는.

1 콘크리트 창고 안 ‘집 속의 집’ 내부. 시멘트 블록을 쌓아 벽을 만들고 안에 단열재를 넣어 겨울에도 따뜻한 실내 온도를 유지할 수 있다. 실내 마감은 합판과 집성목, 부분적으로 석고보드로 마무리했다.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긴 통로는 부엌과 다이닝룸, 서재로 이어진다. 
2 부부의 라이프스타일을 적극 반영한 2층 응접실. 낮에는 소파나 러그에 앉아 바깥 풍경을 조망하면서 책을 읽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지만, 해가 저물면 반대편 벽에 빔 프로젝터를 쏘아 둘만의 영화관으로 만들 수 있다. 

1년 전, 작은 집을 취재하며 만난 건축가 임형남 소장은 전세 대란과 주택 문제를 해결할 좋은 대안이 있다며 이곳을 소개했다. 콘크리트 창고와 예산 8천만 원이라는 빠듯한 조건을 이겨내고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집을 짓고 싶다며 가온건축의 문을 두드린 정동진ㆍ안현아 신혼부부의 이야기다. 캠퍼스 커플로 7년의 연애 끝에 결혼을 결심한 부부는 으레 도시에서 신접살림을 꾸리겠다는 생각에 대구에서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집값이 비싸니 대출을 받아도 작은 전셋집 하나 겨우 구할 수 있는 형편이었고, 남편은 차라리 도시를 포기하고 시골로 내려가 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아내는 포항에서도 시내보다 바다에 가까운 시골 중의 시골, 장기면에서 태어나고 자란터라 연애 시절부터 나이가 들면 장기면에 내려가 집 짓고 살자는 이야기를 종종 했기 때문이다. 결국 부부는 아내의 아버지가 물려준 오래된 창고를 활용해 형편에 맞는 집을 짓기로 했다. 어차피 나이 들어 찾아갈 고향이라면, 용기를 내어 지금부터 정착해 사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었다.

포항 시내에서 회사에 다니다 귀농한 아내의 아버지는 소싯적에 장기면에서는 꽤 잘나가는 영농 회사를 운영할 만큼 농촌 생활을 즐겼다. 아내는 그 시절 아버지가 직접 운영하던 양계장의 사료 만드는 기계와 쌀 건조기, 콤바인 등을 보관하던 오래된 창고를 집으로 개조하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낸 것. 어떤 집으로 지으면 좋을까 고민하던 부부는 “집을 지으려는 사람들 중 패시브 하우스나 에너지 세이빙 하우스를 염두에 두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도시가 아닌, 물과 공기가 좋은 시골에서는 자연스럽게 빛과 바람이 드나들 수 있도록 한 집이 가장 자연 친화적인 집이라고 생각한다”라는 가온건축 노은주 소장의 글을 읽게 되었다. 시골에서 집을 짓고 살아갈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마음에 와 닿았다는 부부는 그날로 이메일을 보내 설계를 의뢰했다. 이미 건축사무소 몇 군데에서 퇴짜를 맞은 남편은 이메일 답장을 받은 다음 날, 바로 아내와 서울행 고속버스를 탔다. 장기면 주민들도, 부모님도 모두 불가능할 것이라 만류하던 열악한 조건을 딛고 둘만의 신혼집을 그려낸 것이다.

1 난간을 따라 들어가는 2층 방은 드레스룸과 욕실, 발코니를 갖춘 침실. 
창고 속 집의 입구. 2층 침실과 이어지는 발코니는 1층으로 내려가지 않아도 창고 내부를 둘러볼 수 있도록 만든 것. 

집 속의 집
“널찍한 논밭 사이로 콘크리트 창고가 우두커니 서 있는 사진을 보자마자 ‘이 프로젝트는 꼭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주변 풍광이 훌륭하고 바다가 가까우니 과연 제가 살고 싶은 집이더라고요. 총 198.3㎡(60평)정도 되는 크기인데, 그중 부부의 라이프스타일과 예산에 맞춰 3분의 1만 고쳤습니다. 천고가 5m 정도로 높았기 때문에 복층으로 설계했어요. 1층은 66㎡(20평)로 부엌과 다이닝룸, 거실, 서재를 두었고 2층은 59.5㎡(18평)로 응접실과 침실을 배치했지요.” 임형남 소장은 이 집의 개념인 ‘집 속의 집’에 대해 설명했다. 창고 안에 들어서면 현관 베란다 역할을 하는 마루와 보일러실이 있고, 오른쪽으로 네모난 집의 귀퉁이가 보인다.

집의 큰 틀을 이루는 벽체는 시멘트 블록을 쌓아 만든 뒤 시멘트와 모래, 물을 섞은 반죽을 발랐다. 창고를 개조한 집인 만큼 사계절 내내 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단열에 신경 썼다. 실내는 대부분 합판과 집성목으로 마감하고 그 사이에 단열재를 넣은 것. 바닥은 이와 대비되게 흰색 타일을 깔아 한결 넓어 보이도록 했다. 집 안에 들어서면 오른편에는 작은 거실이, 왼편에는 부엌과 다이닝룸이 있는데, 그중 부부의 생활 패턴에 중점을 둔 공간이 바로 다이닝룸. ㄷ자형 부엌과 이어지는 통로에 식탁을 두고 큰 창을 내 풍경을 감상하며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설계했다.

통로 끝에는 작은 서재가 이어지는데, 문을 슬라이딩 방식으로 설치해 필요에 따라 공간을 분할할 수 있어 실용적이다. 벽 전체를 합판으로 마감한 서재에서 아내는 “종종 취미로 그림을 그리거나 책상에 앉아 일을 하면서 집 밖의 풍경을 감상하곤 해요. 논밭이 한눈에 들어와 자연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라며 소감을 전했다. 2층은 부부가 공유하는 취미를 적극 반영한 공간. 응접실처럼 마련한 공간에는 빈백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는데, 여기에 누워 빔 프로젝터를 쏘면 영화관 부럽지 않은 부부만의 극장이 된다. 난간을 따라 걸어가면 욕실과 드레스룸을 갖춘 침실도 있다. 침실 끝에는 작은 발코니를 설치했는데, 부부가 매번 1층 현관문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창고 안을 둘러볼 수 있도록 한 건축가의 배려가 돋보인다.

3 가온건축 직원들이 수성 페인트로 벽화를 그려 마감한 창고 외관. 바코드를 연상시키듯 직선 긋기를 한 뒤 가지를 그렸다. 
4 슬라이딩 도어를 제작해 설치한 1층 서재는 빛이 잘 들도록 작은 창문을 많이 냈다. 

외벽에 남긴 선물
“설계를 하고 시공팀과 합을 맞춰 집을 짓고 나면 약간은 공허함을 느낄 때가 있어요. 상실감 내지 산후 우울증에 빗대면 될까요? 짓는 동안만큼은 내가 주인이었지만 완성하고 나면 나는 그 집의 손님이지요. 그리고 10년, 20년이 지나면 그 집에 살던 사람들은 하나 둘 떠나고 집도 허물어져 없어져요. 그래서 몇 년 전부터는 집을 짓고 나면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려 건축주에게 선물하기 시작했어요.

이를테면 ‘이 집은 왜 지었고, 어떤 콘셉트이고, 어떻게 지었다’라는 기록을 남기는 거죠.” 임형남 소장은 이곳에 어떤 그림을 선물할까 고민하던 중묘안이 떠올랐다. 최대한 예산 내에서 집을 지으려한 계획은 공사를 시작하면서 곧 무너졌다. 원래는 1층과 2층 사이에 야외 대극장 같은 큰 계단을 놓아 영화도 보고, 안쪽으로는 장을 짜 넣어 수납 문제도 해결하려 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예산이 필요해 심플한 구조로 변경했다. 부엌과 연결한 수도관을 흘러 들어오는 물을 정화하기 위해 집 뒤편에는 자갈을 세 트럭분이나 깔았는데, 이처럼 생활에 꼭 필요한 요소들이 공사 중에 발생해 외관을 마감할 여력이 턱없이 부족했던 것. “사람 사는 집인데 콘크리트 외벽은 자칫 차가워 보일 수 있잖아요. 어떻게든 재미와 위트를 주고 싶어 직원 여섯 명이 총출동해 1박 2일 동안 벽화를 그렸어요. 수성 페인트로 바코드처럼 긴 직선을 긋고, 가지를 친 거죠. 옥상으로 오르는 계단과 창고 안 기둥에는 박수근 화백의 그림을 크레용으로 똑같이 그려 넣었어요. 아예 집 전체에 그림을 그려 선물한 셈이죠.”

1 천고가 높아 복층으로 완성한 집. 1층은 거실, ㄷ자 주방과 다이닝룸 등 소통 공간으로, 2층은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응접실과 침실 등 휴식과 힐링 공간으로 구성했다. 
2 총 198.3㎡(60평) 규모의 오래된 콘크리트 창고 중 3분의 1을 신혼집으로 개조했다. 마당 앞쪽에는 집 뒤편에서 잘 자란다는 대나무를 심고 빨랫줄로 길게 이어 담장을 만들었다.

대화와 희망으로 완성한 집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이 집에서 생활한 지 딱 한 달 되었다는 부부에게 시골에 살면서 불편한 점은 없을까? 남편 정동진씨는 인터넷 선을 설치하는 데에만 한 달 가까이 걸렸다며 얼마 전에는 길이 어두우니 가로등을 추가로 설치해달라는 민원을 넣었다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버스 막차 시간이 8시라고 넌지시 말하며 아침마다 버스를 세 번씩 갈아 타고 출근하는 아내를 걱정했다. 아내 안현아 씨는 “여기가 장기면 임중1리인데, 워낙 가구 수가 적어 곧 2리랑 합친다고 해요. 근처에 있는 장기초등학교도 전교생이 30명이 채 되지 않고요. 그래서 어머니도, 시부모님도 이곳에서 살겠다는 결정을 썩 달가워하지 않으셨어요. 아이가 생기면 교육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고 하면서 많이 걱정하셨지요. 하지만 저는 시골이 불편한지 잘 모르겠어요. 여기서 나고 자라서 그런지 몰라도 산으로 둘러싸인 이 동네에 있으면 마음이 푸근해져요. 바쁘고 정신없이 살아갈 도시에서의 모습을 떠올리면 막막해요. 평일에는 조용한 동네를 산책하거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고, 주말에는 쉬엄쉬엄 어머니가 하는 산딸기 농사도 돕고요. 쌀이나 파, 배추, 양파, 고구마, 호박 같은 것들은 다 집 앞에서 키우니까 먹을거리 걱정도 없고, 모든 게 평화롭고 안락해요”라며 지금의 삶이 꿈만 같다고 했다. 연애하면서 한 말 한마디, 남편과 함께 꿈꾸던 미래가 진짜 눈앞에 펼쳐진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도시에서, 아파트에서 사는 미래의 제 모습을 당연하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남들 하는 대로 전셋집 구하는 대열에 들어서며 내 집 마련의 꿈이 멀게만 느껴졌죠. 그런데 조금만 생각을 바꾸니,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에 가장 가까운 모습이 되었어요. 우리는 모든 사람이 꿈꾸는 행복이 곧 내 행복일 거라 착각할 때가 많아요. 행복은 모든 사람에게 다른 모습으로 찾아오는데 말이죠.”


가온건축(02-512-6313)을 함께 운영하는 건축가 임형남ㆍ노은주 부부. 평일에는 집을 짓고 주말에는 집과 건축에 대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저서로는 <나무처럼 자라는 집><작은 집 큰 생각><집, 도시를 만들고 사람을 이어주다>등이 있다. 최근 포항 신혼집을 완성한 뒤로는 산 좋고 물 좋은 시골에 버려진 오래된 콘크리트 창고를 물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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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손지연 기자 | 사진 이우경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