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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술 화랑 예나르 양의숙 대표의 제주 한옥 저지리 선장헌의 아침
<TV쇼 진품명품>의 감정 위원으로 시대와 장르를 초월한 수많은 골동품의 가치를 재조명해온 양의숙 씨. 고미술과 함께한 40년 인생을 회고하는 전시를 앞둔 그가 제주 한옥으로 <행복>을 초대했다. 자신의 근원이자 뿌리인 제주에서 남은 삶에 또 다른 가치를 부여하는 양의숙 씨의 살아가는 이야기.


제주의 허파, 곶자왈 지대에 자리 잡은 선장헌船匠軒은 자연 그 자체다. 양의숙 씨는 한옥 터를 닦으며 군데군데 움푹 파인 땅에 덩굴 식물이 어우러진 ‘숨골’을 그대로 살렸다. 편안한 집이라는 뜻의 현판 ‘거안당’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집자한 것.

삼청동에서 고미술 화랑 ‘예나르’를 운영하며 교양 프로그램 <TV
쇼 진품명품>의 전문 감정 위원으로 활동하는 양의숙 씨. 프로그램 제작진과 진행자가 바뀌어도 변함없이 늘 자리를 지키는 그가 문득 제주에 집을 지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렇다고 생활의 터전인 서울을 완전히 떠났다는 얘기는 아니다. 제주에서도 산간 오지로 꼽히는 한림읍 저지리에 편히 쉴 수 있는 주말 주택을 마련한 것. 화가 박서보, 작가 박완규, 가수 양희은 씨도 터를 잡은 저지리의 ‘저지예술인마을’은 파주의 헤이리, 출판 단지 같은 문화 예술 인촌으로 제주시에서 문화 특구로 개발하는 곳이다.

“제 고향이고 뿌리니까 뭔가 기여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고민하던 차에 문화 특구를 구축한다고 해서 흔쾌히 동참했어요. 마을에서 문화 행사를 할 때면 집을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고미술관련 전시도 열어요. 옛날에는 한 달에 하루나 이틀도 쉴 엄두를 못 냈는데, 이렇게 공간이 있으니 일부러 재충전하는 시간을 내기
도 하고요. 집을 짓고 서울과 제주를 오갔더니 문화 불모지인 제주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 잘 알겠더라고요. 얼마 전에는 사단법인 제주문화서포터즈를 발족했습니다.”


1 칸칸이 문을 열면 한 공간이 되는 문간채는 전시나 세미나 공간으로 활용한다.
2 제주에 전통 한옥을 짓고 제주 문화 서포터즈로 활동하는 고미술 감정 위원 양의숙 씨.



3 이 집은 그림이 없는 대신 족자 거울과 병풍 등으로 장식 효과를 냈다. 안채 건넌방 문 안쪽에는 해감 김규진 선생의 대나무 그림을 붙여 장식했는데, 문을 닫으면 거대한 벽화요, 열면 한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4 정갈하게 살아 있는 벽장, 문, 창의 선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잘 어우러지는 가구를 선택해 제자리에 두는 일은 늘 심사숙고해야 하는 작업이다. 안방에는 문갑, 사방탁자 등 사랑방 가구를 두어 정갈하게 꾸몄다.


곶자왈 지형을 살린 한옥 짓기
제주에서도 산간 오지로 꼽히는 한림읍 저지리. 포장되지 않은 흙길을 따라 들어선 모던 건축물 사이에 유일하게 자리한 한옥이 바로 양의숙 씨의 주말 주택 ‘선장헌船匠軒’이다. 선장헌은 배를 만드는 장인의 집이라는 뜻. 초가를 얹은 제주의 전통 가옥도, 생활의 편의성을 담은 모던 건축물도 아닌 한옥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나이가 들수록 근원으로 돌아가고 싶은 욕구가 커지는 것 같아요. 남편이 전통 건축을 하고, 저 역시 고미술 분야를 다루기도 하고요. 신기하게도 이 집에서는 뒤척이지 않고 잠을 잘 자요. 한옥을 짓고 나서야 나무로 지은 집이 참 편하다는 걸 알았죠.” 그도 그럴 것이 제주의 허파, 곶자왈 지대에 자리 잡은 선장헌은 자연 그 자체다.

곶자왈은 화산이 분출할 때 용암이 크고 작은 바윗덩어리로 쪼개져 형성된 제주만의 독특한 요철 지형을 말한다. 양의숙 씨는 한옥 터를 닦으며 군데군데 움푹 파인 땅에 덩굴 식물이 어우러진 ‘숨골’을 그대로 살렸다. 앞마당의 소나무 정원 역시 있는 그대로의 지형. 제주에 도로가 잘 나는 것이 불만이라는 그는 생태계를 그대로 살린 이 정원을 맨발로 거니는 일상이 행복하다. “요즘 오지에 관심이 많잖아요? 우리나라에서 전라도 무주, 제주 저지리에서만 반딧불이를 볼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까만 하늘에 반딧불이가 둥둥 떠다니고 별이 단추처럼 촘촘히 박혀 있을 때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요. 뉴욕에서 작업하는 친구가 제주 전시 때 저희 집에 머물렀는데, 그때 함께 온 손님들이 이 한옥에 반해 두고두고 이야기를 한답니다. 좋은 호텔은 세계 어디서든 찾을 수 있지만, 숲 속에 있는 한옥 스테이를 경험하는 것은 무척 경이로운 일이라고요.”

1 곶자왈 지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신비한 현상 ‘숨골’. 곶자왈은 화산이 분출할 때 용암이 크고 작은 바위 덩어리로 쪼개져 형성된 지형을 말한다. 지층에 또 하나의 생태계가 펼쳐지는 이 신비한 자연의 조화를 마당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안채와 문간채로 구성된 선장헌은 남편이자 한올문화재연구원장인 김홍식 씨가 설계했다. 그중 안채는 양의숙 씨가 직접 시공해 더욱 의미가 크다. 아파트를 수리할 때에도 인테리어 업체에 전부 의뢰하기보다 스스로 발품을 팔아 자재를 구입하고 따로 일꾼을 사서 한 터라 목수를 잘 만나면 어렵지 않을 듯했다. 거기다 평생 전통 가옥을 지은 남편과 남편을 따라 고택 답사를 즐기던 자신의 산지식이 보태지는데 무슨 걱정이랴. 북촌의 자그마한 한옥을 고치면서 인연을 맺은 목수와 동고동락하며 꼬박 1년을 지은 집. 나무가 시커먼 빛을 품은 모습이 마치 고택 같다고 하니, 모두 고재 소나무를 사용했기 때문이란다. 기와도 헌 기와를 사용해 어색함이 없다. “낡은 한옥을 뜯으면 헌 기와, 목재, 돌, 문짝 등 부산물이 나오는데, 이 고재로 한옥을 지으면 평당 건축비가 훨씬 높아져요. 고재를 찾기도 어려울뿐더러 헌 재료를 새 집에 맞추려면 치수에 맞게 다시 재단해야 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나무의 건조 상태가 좋기 때문에 그 값어치를 톡톡히 합니다. 문이 틀어질 염려도 없고요.” 한옥은 문을 빼면 기둥뿐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라 했던가. 그는 집에 대한 인상은 문이 결정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30평 남짓한 안채에만 문짝이 2백 개는 족히 넘는데, 모두 문살 장인 심용식 선생의 솜씨다. 수십 개의 문창살이 만들어내는 은은한 조도에 한낮에도 대청에 앉아 있으면 그야말로 힐링, 여백의 미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러고 보니 공간 곳곳 가구나 소품을 찾아보기 힘들다. 거실에는 삼층장, 침실에는 반질반질 고운 손때가 앉은 작은 반닫이와 사방탁자 하나가 방 한편을 차지하고 있을 뿐. “비우러 왔는데 이곳까지 가구들로 차 있으면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한옥의 아름다움을 살릴 수 있는 가구 한두 점만 두어도 충분히 격조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답니다.”

2 저지예술인마을에 자리잡은 한옥. 문 양옆으로 문간채가 있고, 문간채 옆으로 2층짜리 사랑채가 연결된 구조. 사랑채 2층에서 바라본 선장헌의 안채와 자연스러운 조경이 아름답다.
3 곶자왈 지형을 그대로 살려 지은 선장헌. 소나무 숲과 연못 모두 자연 지형을 그대로 살린 것으로 안채와 문간채를 ㄱ자 형태로 앉혔다.

전통은 변화해야 하는 것
지난 40년간 여한 없이 하고 싶은 일에만 몰두해 지냈다는 양의숙 씨. 고미술 화랑 예나르는 그 열정의 시발점이다. “대학원 졸업 논문으로 반닫이 장식 문양의 변천사를 썼어요. 제주도에 있는 반닫이 5백 개를 실측하고 소장자를 인터뷰했는데 결과물이 무척 흡족했지요. 결혼 후 남편을 따라 한국의 민가를 답사하며 조수 역
할을 자처했어요. 답사에 따라가서 마음에 드는 골동품이 있으면 하나 둘 모으다 보니 나중에는 공예점을 차릴 정도로 양이 꽤 되더라고요.” 보수적인 남편도 옛 물건에는 관대했다. 답사를 갔다가 일정보다 일찍 돌아오면 백발백중 뭘 하나씩 들고 오는데, 바로 여비로 장만한 골동품. 당시 살던 압구정동 현대아파트가 온통 고가구와 고미술품으로 가득 찼으니, 아들 친구가 놀러 오면 “민속촌에 온 것 같다”며 말했을 정도.

고미술이 좋아 골동품을 모으고, 고가구 숍도 열었지만 단순히 돈벌이를 위한 장사와는 구분되는 그만의 원칙이 있다. 팔기 위해서 물건을 사본 적이 없다는 것. 이건 이것대로, 저건 저것대로 먼저 내 마음에 들어야 누구에게든 그 물건의 가치를 피력할 수 있지 않은가. 살 때는 그저 좋아서, 남의 손에 갈 때는 자식 보내듯 마
음이 찡하던 그의 진정성을 알아보았는지, 단골손님이 하나 둘 늘었고 유일하게 고미술품을 감정하는 TV 프로그램의 감정 위원이라는 타이틀도 거머쥐었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예나르라는 이름으로 고가구를 제작했다.


(왼쪽) 사랑채 2층에서 후정을 바라본 모습. 
(오른쪽) 안채 대청마루와 동쪽 대문을 잇는 정원은 곶자왈지형을 그대로 살렸다. 새벽 안개가 자욱할 때면 신비로운 감동이 밀려온다.


“전통 가구를 오랫동안 고증하다 보니 현대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몇천만 원짜리 골동 가구를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또한 한옥도 생활이 달라진 걸 반영해 입식 부엌, 입식 화장실을 적용하는 것처럼 가구 역시 현대 주거 공간에 맞게 비례와 소재가 바뀌어야 하고요. 대청마루의 삼층장은 옛 모습을 재현한 리프로덕션 제품으로 소재, 문 크기 등에 변화를 줘 수납 가구로서의 쓰임을 더했지요.” 리프로덕션 사업을 시작한 지 5~6년이 지났지만 공장은 따로 두지 않았다. 가구를 잘 짜는 장인, 칠을 잘하는 장인, 장식을 잘 만드는 장인이 모두 따로 있다는 것. 조각, 칠, 장식 모두 각 분야의 전문가에게 맡기니 예나르 리프로덕션 가구의 완성도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요즘 그의 바람은 외국의 가구 박람회에 참여하는 것. 2011 청주 국제공예비엔날레에 출품한 민화장처럼 해외의 컨템퍼러리 가구와 견주어도 경쟁력 있는 예나르만의 독특한 색깔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그 꿈은 대를 이어 딸 김호연 씨가 실현하고 있다. 이화여대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 독일계 가구 회사 스튜디오 비카에서 근무하다 현재 예나르 스페이스를 운영하는 그는 전통 가구에 젊은 감각을 접목해 아름다운 미감을 만들어내고 있다.


1 가구를 고민하기에 앞서 먼저 해야 할 일은 벽장을 갖추는 것. 벽장 안에 TV와 책장을 넣고 옷을 수납한다.
2 반질반질 고운 손 때가 앉은 작은 반닫이는 아이를 키울 때 배냇저고리를 보관하던 가구. 친정어머니가 제주도에서 구해 보내준 것이다.
3 대청마루 한편에 자리한 삼층장은 예나르에서 제작한 리프로덕션 제품. 제주에서 물을 길어 나를 때 쓰던 허벅을 올려 장식했다.
4 일곱 살 난 손녀 윤우 양은 할머니와 제주 한옥을 찾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단다. 연못 안 올챙이를 구경하고 잡초도 같이 뽑으며 “건강해지려고 한옥에 와요”라는 예쁜 말로 할머니를 뿌듯하게 한다고.
5 제대로 만든 한옥의 문은 그 자체로 예술품이라는 말이 있다. 밝고 푸근한 한지의 느낌과 단순하고 간소한 살대가 어우러져 한옥의 매력을 극대화한다.



6 결혼할 때 어머니가 손수 지어주신 버선.
7 우리나라 전통 상차림인 1인 1상을 위한 소반 컬렉션. 통영반, 나주반, 해주반 등 상판 모양과 다리 생김, 용도에 따라 이름이 다른 다양한 소반을 부엌 한쪽 선반에 조르르 두었다. 습기에 강하고 가벼운 은행나무 소반을 으뜸으로 친다.



한옥에서는 저절로 자연 친화적 삶을 살게 된다는 양의숙 씨. 선장헌에서 지낼 때는 잠자는 시간 외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마당에서 보낸다.

양의숙의 골동 이야기
“<TV쇼 진품명품>에서 한 주는 출장 감정, 한 주는 스튜디오 촬영이 잡혀 있어 마음 편하게 해외여행 한 번 해본 적이 없어요. 휴대폰 두 개가 잠시도 쉬지 않고 울려대지만, 그래도 저지리에서 맞는 아침은 찬란해요. 새벽녘의 꼬끼오 소리, 햇살처럼 따스한 새 지저귐, 가끔 동네에서 방목하는 말이 마당까지 들어올 때도 있어요.” 이 세상에 자연만큼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것이 또 있으랴? 자연을 거스르지 않은 조경, 나무 한 그루를 심더라도 자기 위치를 잡아 주기 위해 수도 없이 고민하고 식구들과 생각을 나누다 보니 한옥에 머물 때는 종일 흙일만 할 때도 있다. 하지만 몰입의 가치를 만끽할 수 있는 진정한 쉼, 그게 바로 제주 생활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제주에서 서울로 갈 때 몸은 피곤하지만 머리는 맑은 것도 이러한 이유. 시간이 좀 더 여유로워지면 서울에 아담한 두 칸짜리 집을 짓고 절반은 이곳 선장헌에서 보내고 싶단다.

그러고 보니 국내 유일의 고미술품을 감정하는 TV 프로그램의 감정 위원이라는 타이틀이 그를 수식한 지도 어느덧 17년이 되었다. 우리가 흔히 골동품이라 부르는 고미술품의 가치를 재조명해 그 진가를 밝히는 것이 지금까지의 그의 몫이었다면, 이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매듭을 짓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일 터. 그는 문화 불모지인 제주에 공예의 가치를 담고 전통미의 원형을 찾아 현대에 접목하는 일, 옛 장인의 뛰어난 솜씨와 미의식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는 것이 자신의 남은 소명이라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건 전시 <양의숙의 골동 이야기>를 통해 고미술과 함께한 40년 인생을 회고할 예정이다. 큰아이를 낳았을 때 친정어머니께서 배냇저고리를 넣어두라고 선물하신 애틋한 반닫이, 쌀벌레 걱정 없던 뒤주, 설거지를 마친 그릇이나 찬을 넣어두는 찬장 등 직접 사용하던 생활 목가구를 비롯해 장식 없이 직선으로 정제된 형태의 선비 가구, 민속품 등 1백여 점의 ‘진품명품’을 만날 수 있는 기회!

어떤 일을 매듭지을 때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붙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과오나 실수 없이 스스로에게 자신 있다는 뜻일 터. 양의숙 씨의 삶을 들여다보니 문득 스콧 니어링의 날마다 삶을 꾸리는 몇 가지 원칙이 떠오른다. ‘당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라’ ‘집, 식사, 옷차림을 간소하게 하고 번잡스러움을 피하라’ ‘날마다 자연
과 만나고 발밑의 땅을 느껴라’ ‘힘든 일을 하면서 몸을 움직여라’. 씨실과 날실 같은 나날의 삶이 이어져 한 사람의 인생이 된다면, 그 나날의 삶을 어떤 일을 하면서 꾸리는가가 중요하다.


1 기본형 이층장에 옻칠을 하고 경첩과 감잡이, 앞바탕을 둥근 유기 장석으로 장식한 장. 검자줏빛 바탕에 금빛의 크고 작은 동그라미 장식이 시각적인 즐거움과 함께 세련된 이미지를 더한다. 조선 19세기.
2 그릇을 올려두는 삼층 찬탁. 부엌 가구는 굵은 기둥과 두툼한 선반을 사용해 견고하고 실용적으로 만들었다.
3 한 사람이 들고 나르기 적당한 크기의 작은 상자류를 통칭해 함이라 한다. 뚜껑을 들어 올릴 수 있도록 경첩을 달고 자물쇠를 채울 수 있게 잠금장치를 만든 조선 19세기 서류함.
4 제주에서 살래라 부르는 찬장. 설거지를 마친 그릇을 엎어두거나 찬을 보관하는 용도로 썼다.
5 자개로 장식한 화려한 이층장, 나전이층농. 19세기 작품이다. 백동나비경첩으로 단조로움을 덜었으며 가늘고 긴 자개실을 끊어가며 섬세한 문양을 만든 장인의 솜씨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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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현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2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