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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페드로 우셰 가구를 만드는 건축가, 가구와 어울리는 집을 짓다
건물을 짓는 것보다 가구를 만드는 데 열정이 넘치는 건축가가 있다.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활동하는 베네수엘라 출신의 건축가 페드로 우셰. 가구를 살 돈이 없어서 직접 가구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그는 콘크리트 박스형 집을 지은 이유 역시 가구 디자인에 대한 또 다른 욕망인지 모른다 했다.


지하까지 총 3개 층으로 이뤄진 집은 1층에는 리빙룸과 다이닝룸 등 공용 공간이, 2층은 개인 놀이방과 서재 등이 있다. 책장과 콘크리트 벽난로가 일체를 이루며 벽면 그 자체로 연출한 디자인이 세련된 분위기를 내는 리빙룸은 이 집의 중심에 자리한다.

거실 반대편에는 손님을 맞이하는 공용 공간, 바와 주방 그리고 다이닝룸을 마련했다. 스툴을 줄지어 놓은 박스형 공간은 바가 있는 주방으로, 바에는 거울로 된 문을 설치해 넓고 탁 트인 느낌을 강조했다.

현관에서 실내로 들어오면 집 가운데 자리한 연못이 보인다. 집주인이 세계 여행을 하며 모은 에스닉한 소품과 카펫 등이 이국적인 멋을 더한다.

메자닌 구조와 개방형 구조의 매력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페드로 우셰의 집. 미드 센트리 모던 가구 특유의 반듯하니 중후한 멋이 탁 트인 공간에서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오늘날 건축가에게 요구되는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독특한 조형미는 기본, 스마트한 친환경 설계는 필수 그리고 시대를 앞서거나 초월한 인테리어 감각은 암묵적인 옵션이니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건축가보다는 가구 디자이너로 더 널리 알려진 페드로 우셰Pedro Useche, 그의 집이 유명한 이유는 바로 이 삼박자가 고루 갖춰진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파울루 남서쪽, 가장 높은 지대이자 여유로운 자연 환경이 돋보이는 동네 모룸비Morumbi에 있는 페드로 우셰의 집은 매우 단순한 콘크리트 박스다. 1999년에 짓기 시작해서 2003년에 완공, 무려 4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했다는 것을 보면 무언가 획기적인 조형미가 시선을 사로잡지 않을까 싶지만 사실 외형은 직사각형 건물에 박스 하나를 더 올려놓은 단순한 구성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지역의 자생 식물이 밀림처럼 우거지면서 건물을 뒤덮어 존재 자체가 잘 드러나지 않다 보니 모던 건축의 첨단이라기보다는 자연 친화적인 생태 건축으로 회자되는가하면 사람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현대 건축의 미덕으로 꼽히기도 한다.

(왼쪽) 2층까지 이어지는 높은 천장과 벽면이 특징인 리빙룸은 거대한 그림 컬렉션 전시장이 되었다. 페드로 우셰는 넓고 높은 거실 벽면에 철제로 만든 격자형 패널을 설치, 그림과 소품을 자유롭게 걸어놓을 수 있게 했다. 민예품에서부터 파격적인 컨템퍼러리 아트까지 다양한 작품이 이 집만의 개성을 연출한다.

“빨간색 지붕이 마천루를 이루는 동네에 콘크리트 덩어리가 불쑥 들어서는 것은 그리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니죠. 그런데 집터 주변에 우거진 수풀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모던한 콘크리트 상자가 밀림에 동굴처럼 자리하면 어떨까? 이게 집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페드로 우셰의 역발상은 예감대로 적중했다. 밀림에 있는 네모난 콘크리트 동굴. 겉모습보다는 속이 더 궁금한 곳이 동굴 아닌가. 페드로 우셰의 집 역시 그러하다.

“1층부터 2층까지 전면을 유리창으로 마감하면서 탁 트인 전망을 확보하고 푸른 정원과 풍부한 햇살을 실내에서 고스란히 즐길 수 있도록 했죠. 1층 발코니는 정원과 문턱조차 없이 바로 이어지기 때문에 자연과 하나 된 느낌을 온전히 누릴 수 있습니다.” 밖에서 볼 때와 달리 실내는 무척이나 개방적이다. 1층 리빙룸 위로 점층적으로 작아지는 메자닌 구조로 만든 덕분. 이로 인해 거실 천장 높이가 집 전체 높이가 되는 동시에 실내 어디서든 하늘 아래 사는 기쁨을 맛볼 수 있다. “모든 층이 단절되지 않고 개방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어느 곳이든 빛이 고루 들 뿐만 아니라 통풍과 환기 역시 별도의 설비 없이 자연스럽게 이뤄집니다. 맨 꼭대기 층에는 태양 에너지 집열판을 설치해 전력도 자체 발전하지요.” 자연을 온전히 받아들인 ‘비주얼’뿐만 아니라 친환경 건축이라는 시대의 양심까지 충실히 이행하는 집, 과연 건축가의 집이다.


1 지하에서 2층까지 이어지는 계단 역시 개방형으로 간결하게 만들어 창문 너머 정원을 그대로 감상할 수 있다.
2 거실 건너편에 있는 다이닝룸 역시 탁 트인 천장과 전면 유리창을 통해 풍부한 자연광과 푸른 숲의 풍경을 고스란히 즐길 수 있다. 창문 너머 보이는 건물 외벽의 담쟁이덩굴과 다이닝룸 벽면에 설치한 조형 작품이 닮은 듯 다른 모습으로 오묘한 매력을 선사한다.

3 복도 끝 벽면을 유리창으로 만들어 정원의 푸르른 나무를 실내로 끌어들인 듯한 효과를 연출했다. 
4 현관문은 별도의 문을 설치하는 대신 외벽과 같은 소재로 만들었다. 마치 영화에서 벽면을 밀어 비밀의 공간으로 들어가듯, 이 집의 현관문은 바로 그런 원리로 열어야 한다.

5, 6 이 집에 또 하나 존재하는 비밀의 문. 바로 주방 바에 설치한 ‘거울 문’이다. 거울 문에 설치된 센서를 터치하면 아랫부분의 거울 문이 바 안으로 쏙 들어간다. 주방을 사용하지 않을 때는 이 거울 문을 닫아 완벽한 벽면처럼 보이게 한다.

1984년 브라질에서 건축을 시작하며 건축학 교수로, 또 세계적 모던 건축가로 명성을 날린 페드로 우셰는 현재 브라질 세낙Senac 대학원에서 인테리어 디자인, 그중에서도 가구 디자인을 주로 가르친다. 그리고 여기에 한술 더 떠서, 그는 자신이 곧 브랜드인 가구 회사의 대표도 맡았다. “어느 건축가도 그러하겠지만 자신이 설계한 공간에 어울리는 가구를 찾기란 만만치 않은 작업이죠. 그런데 제 경우는 좀 달라요.” 그는 모던 미니멀 건축에 어울리는 가구로 미드 센트리 모던 디자인 가구만큼 잘 들어맞는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시간을 초월하는 실용성, 현대적 디자인 감각과 복고적 향수를 동시에 표현하는 감성으로 시원시원한 건축적인 조형미를 강조하고 따뜻한 인간미도 표현할 수 있는 게 바로 미드 센트리 모던 디자인이라고. “하지만 문제는 미드 센트리 모던 디자인 가구가 ‘빈티지’라 수량도 한정되고, 가격도 비쌀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결국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제가 그 시대의 디자인 철학을 담은 가구를 디자인한 것입니다.” 이 집에 놓은 가구는 모두 그가 공간에 맞게 직접 제작한 작품이다.

그중 가장 심혈을 기울인 가구는 거실 벽난로 앞에 놓은 큐빅형 암체어다. 큐빅형 암체어는 다리 부분을 변형해 편안한 흔들의자로 만들었다. “이 의자는 인테리어 전체를 아우르는 대표 아이콘입니다. 클래식 무드로 격식 있고 세련된 공간을 만들어주는 동시에 편안한 일상을 선사하니 말이죠.” 그의 설명을 듣다 보면 이 집의 진정한 묘미는 클래식하면서도 자유로운 감성이 공존하는 반전의 미학이 아닐까 싶다. 지금 만든 가구지만 복고적인 감성이 살아 있고, 여기에 집주인만의 분명한 취향이 담긴 아트 컬렉션이 더해지면서 생동감 넘치며 독보적인 개성까지 담보했으니 말이다. 특히 거실의 거대한 벽면에 걸어놓은 아트 컬렉션은 그가 세계를 돌아다니며 모은 것으로, 민예품부터 브라질 컨템퍼러리 작가 로첼 코스티Rochelle Costi, 루이스 에르마노Luise Hermano, 발레스카 수아레스 Valeska Soares, 아만다 멜로Amanda Melo 작품에 이르기까지 무한한 취향의 스펙트럼이 펼쳐져 있다.


1 세계적인 건축가이자 가구 디자이너 페드로 우셰가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정리하는 서재. 갖가지 소품과 다양한 책이 나름의 질서에 따라 자유롭게 정리되어 있다.
2 거실과 정원 가운데 자리한 테라스. 바닥은 자연석을 깔아 정원과 연장선에 놓이도록 연출했고 스틸 기둥에는 해먹을 설치해 여유와 휴식의 멋을 더했다. 실제 이곳에서 낮잠을 즐기는 것 또한 집주인의 행복이라고.

푸른 숲에 숨어 있는 콘크리트 동굴 같은 페드로 우셰의 집. 정원 앞으로 수영장이 있다.

“이 집은 특정한 사람의 편집증적인 공간이라기보다는 시대를 관통하는 미드 센트리 모던 가구를 공통분모로 삼아 다양성을 존중하는 보편적인 감성이 살아 있는 집이라고 보면 좋겠습니다.” 상파울루에서 가장 복잡한 빈민 가 바로 옆에 자리한 부촌, 그 마을 안에서 자연과 야생미 넘치는 조화를 이루는 콘크리트 모던 건물 그리고 현대 미술사에 이름을 올린 작가들의 컨템퍼러리 아트와 이름 모를 부족이 만든 민예품이 연출하는 세련된 인테리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것들이 조화와 대비, 그리고 개성을 이야기하는 공간. 시대를 관통하는 가구 디자인을 통해 자연스러운 모던 미학을 이야기하는 페드로 우셰의 집은 트렌드를 능가하는 스타일리시한 집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귀감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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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이정민 기자 | 사진 프란 파렌테Fran Parente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2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