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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가 지은 집]구만재 씨가 설계한 양평 전원주택 행복한 가족 일기, 메종 404
공간 디자이너 구만재 씨가 설계한 메종 404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가 생활을 꿈꾸는한 여행사 대표의 소박한 염원을 실현한 곳이다. 경기도 양평, 서울에서 1시간 30분 남짓 달려 도착한 하얀 눈밭의 전원주택. 아침 일찍 도착한 가족은 이미 신나는 눈싸움을 한판 즐긴 후였다.

많은 건축가가 좋은 건축은 그것이 들어서는 장소와 행복한 관계를 가지는 건축이라고 말한다. 공간 디자이너 구만재 씨 역시 디자인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 바로 ‘관계성’이다. 공간을 계획한다는 것은 무언가 새로운 실체를 만들어내는 일이라기보다 외부환경과 내부 조건, 건축주와 시공자, 공간과 사물 등이 관계를 맺는 일. 따라서 주택 프로젝트는 상업 공간보다 더 친밀하고 밀도 있는 관계성을 요구한다.“건축가가 공간 설계와 디자인을 맡으면 건축주 의 삶을 관찰하기 시작합니다. 때론 낯선 문화와 생활 패턴에 놀라고 당황하지만, 이는 관계성을 갖기 위한 지극히 당연한 통증이지요.” 디자이너 구만재 씨는 서로의 것을 조금씩 내어주고 보여주면서 생기는 끈끈한 관계는 건물의 수직과 수평 등 기능적 관계보다 우위에 있다고 말한다. 인간관계가 좋은 사람이 좋은 디자이너가 된다고 하지않는가! ‘메종 404’는 인간관계 좋기로 소문난 건축가와 ‘가족애’를 중시하는 건축주의 행복한 ‘관계 맺음’이 바탕이 된 프로젝트다.

(왼쪽) 양평 전원주택 단지에 지은 종 404. 면적 146.76m2. 2010년 1월 설계를 시작하고 지난 9월 완공했다.

가족을 위한 행복한 집 짓기 건축주 김도준ㆍ곽정미 씨는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을 고객으로 하는 여행사를 운영한다. 외국인의 자유롭고 성숙한 여가 문화를 접해온 부부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맘껏 뛰놀 수 있는 시골집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옛날처럼 개구리 사냥을 다니거나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칠 수는 없지만, 어린 시절의 소소한 추억거리를 만들어주고 싶다는 부부. “매 주말마다 놀러 가자 계획을 세우지만 계획으로만 끝날 때가 대부분입니다. 주말 주택을 마련하면 시간을 내서라도 가지 않겠냐는 생각에서 집을 짓기로 했어요. 은퇴하면 아예 내려와 살 수도 있을 것 같아 접근성이 좋은 근교로 선택했죠.” 숙제와 학원에서 벗어나 원 없이 놀라며, 이곳에는 숙제도 가져오지말자고 다짐했다는 김도준 씨. 하지만 막상 아이들을 마당에 풀어두니 어떻게 놀아야 할지 방법을 모르더란다. 서울에서와 마찬가지로 TV를 보거나 컴퓨터 게임만 하는 아이들에게 막대기 하나씩 쥐여주며 그냥 ‘나가 놀라’며 등을 떼밀었다.

두 달이 지난 지금, 채은이는 멧돼지랑 뛰어논다. “산을 타고 멧돼지가 내려오면 아이들이 무섭다고 피하기는커녕 막대기를 휘두르며 여기저기 막 돌아다닙니다. 하하!” 집은 둘째 채은이 생일에 맞춰 완공되었다. 보통 건축 일정이 한두 달 지연되게 마련이지만, 친구들을 초대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딸아이의 모습을 보니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고. 패밀리맨인 아빠는 채은이 생일날에 맞춰 직접 음식을 준비하고 크리스마스 데커레이션까지 완성했다. 덕분에 아이들은 방학 내내 얼음 계곡 썰매, 트레킹을 즐길 수 있었다. 한 달에 한두 번 찾으려던 세컨드 하우스는 이제 금요일 저녁부터 가족의 온기로 훈훈하게 데워진다. “주말에 술자리에 참석하지 않아도 되니 더욱 좋죠. 이제부터는 목요일 밤부터 와 있으려고 계획 중입니다.”


(왼쪽) 숲 계곡에서 바라본 메종 404의 외관. 뒷산과 계곡은 아이들의 자연 놀이터다.
(오른쪽)야외 덱과 연결되는 주방. 옐로와 레드 컬러로 포인트를 주었다.


건축, 자연과의 조우 시원한 통창이 있는 갤러리 같은 집을 짓고 싶었다는 건축주는 아래층과 위층이 90도로 틀어진 독특한 형태를 원했다. “건축비를 절감하려면 형태를 단순화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죠. 아래층과 위층의 구조가 똑같은 아파트가 공공 주택 혁명을 일으킨 점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아래층과 위층이 완전 직각으로 틀어진 형태로 집을 짓는 것은 건축비도 문제지만 유지비 또한 부담을 줄 수 있어요. 외기와 닿는 부분이 많아지기 때문에 겨울에는 난방비가, 여름에는 냉방비가 많이 들 수밖에 없지요.”

하지만 도시민이 세컨드 하우스를 짓는 궁극적인 이유는 자연과 더불어 살자는 뜻이 가장 클 터. 따라서 구만재 씨는 교외에 집을 지을때는 건축주에게 무조건 외기와 닿을 수 있는 부분을 많이 만들라고 조언한다. 이러한 생각을 토대로 집은 하부층과 상부층이 30도 정도틀어진 형태로 설계했다. 상부층을 약간 뒤틀려 앉히니 외기와 닿는 면적이 많아지고, 자연과 접하는 부분도 많아진다. 또 1층 주방 옆에는 자연스럽게 뚫린 공간이 생기는데, 전원주택의 경우 야외이면서 천장이 있는 이러한 덱이 꼭 필요하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이는 구만재 소장이 교외에 세컨드 하우스를 지으면서 터득한 노하우다.


메종 404는 큰 창을 통해 바라다보이는 다양한 풍경이 매력적이다. 1층 거실 너머로는 소나무 숲과 계곡이 펼쳐진다. 또 소파에 앉으면 맞은편 쪽창을 통해 뒷산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


경쾌한 컬러와 벽지로 포인트를 준 2층 아이 방. 세컨드 하우스기 때문에 남매가 함께 쓰는 방으로 꾸몄다. 메종 404의 인테리어 포인트는 1층과 2층을 연결해주는 계단이다. 마치 하늘을 향한 마법의 계단처럼 부유하듯 가벼운 형태로 디자인했지만 안전 문제로 철제 빔을 시공했다.

“교외에 주택을 지을 때는 겨울철 결로 문제가 골칫거리예요. 내부는 따뜻하고, 외부는 기온이 낮아 창가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죠. 풍경이 좋아 통창을 설치하면 대부분 습기 문제 때문에 바닥에 수건을 깔아두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창가 앞에 결로 방지 라디에이터를 설치해 이 점을 보완했습니다. ” 마감재는 강도 높은 노출 콘크리트를 사용했다. 땅에 완벽하게 자리를 잡고 바닥에서 솟아나온 바위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콘크리트는 화장을 하듯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도 있다. 콘크리트 위에 징크를 더하면 호사스러운 건축물이 되고, 친환경적 건물처럼 보이고 싶을 때는 나무판을 붙이거나 흙을 얇게 바른다. 메종404는 노출 콘크리트에 적삼목을 덧대 자연 풍경과 조화를 이루는 건물이 되었다.

가장 매력적인 점은 틀어진 구조 속에서 큰 창을 통해 다양한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 1층 거실에서 보면 소나무와 계곡이 펼쳐지고, 각도가 살짝 틀어진 2층 아이 방에서는 저 너머 전나무 숲이 절경을 이룬다. 가을에는 울긋불긋, 겨울이 되면 꽁꽁 얼어붙은 계곡물과 그 너머의 푸른 소나무가 강한 대비를 이룬다. 눈이라도 내리면 온통 하얀 세상. “교외 주택 설계는 여러 가지 장점이 많지요. 대지가 넓고 제약이 덜해 도심에서는 해볼 수 없는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고, 클라이언트와의 의사소통도 부드럽게 진행됩니다. 미숙한면이 있더라도 넘어가는 여유가 생기고…. 건축주의 이러한 믿음이 디자이너에게는 큰 의무감으로 작용하고요.”

비움과 쉼은 일치한다 메종 404는 그동안 양평에 진행한 몇 개의 프로젝트 노하우가 집약된 곳이다. 땅은 2백 평이지만 집은 1, 2층을 합쳐 50평 내외. 1층의 주방과 거실, 2층의 침실 두 개가 전부다. 처음에는 더 작게 계획했다는 구만재 씨. 전원주택의 경우 굳이 클 필요가 없다는 그의 지론을 반영한 것이다. 집이 크면 쉬러 와서 일만 하다 간다는 것. 그간 설계한 집을 보니 처음에는 정원을 무척 멋지게 꾸며놓았다가 1년이 지나면 모두 자갈로 바꾸더란다. 서울에서 아파트 생활을 하는 김도준 씨는 이왕 짓는 집, 지하를 파서 대형 스크린을 설치하거나 스쿼시 등을 할 수 있는 취미 공간으로 꾸미고 싶었단다. 하지만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을 버려야 한다”는 디자이 너의 조언에 따라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즐기기로 했다. 산에 집을 지으면 산에서 봄나물도 캐고, 가을이 되면 마른 검불 모아 겨우내 불도 지피며 계절이 바뀌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곽정미 씨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곳에 오면 진짜 일을 안 하려고 하는데 안 움직일 수가 없어요. 곧 꽃도 심겠지요. 시골 사는 사람이 부지런해질 수밖에 없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더라고요. 눈에 보이니까요!”

 
2층은 두 개의 침실과 화장실로 구성했다. 각도가 조금씩 틀어진 집은 각 부실마다 다양한 구조를 연출해 공간에 재미를 준다. 안방 침실을 통해 2층 덱과 옥상이 연결되는 구조.

사실 아무리 뛰어난 건축가라고 하더라도 건축가의 의견만으로 집을 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디자이너의 뜻대로’라고 무조건 믿어주는 건축주 또한 만나기 쉽지 않은 일이다. “프랑스에서는 레스토랑에서 값비싼 와인을 마시면 마지막 한 잔 정도를 남겨둔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일하는 소믈리에를 위해 한 잔을 남겨둔다는 거지요. 소믈리에가 점점 실력이 좋아지면 다음에 더 좋은 와인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죠. 건축주와 건축가 역시 존중하고 배려하며 상생하는 것 아닐까요?”

건축주의 욕심대로 외관에 컬러를 더 많이 사용하고, 갤러리처럼 말끔한 집을 지었다면 지금처럼 편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까? 들어가도 되는지, 앉아도 되는지 자꾸 주인의 눈치를 보게 되는 집, 갤러리 같은 집 보다는 아이들이 학사모 쓴 졸업 사진을 걸어도 여유롭게 담아낼 수 있는 수더분한 집을 짓고 싶었다는 구만재 씨. 그가 트렌드라는 말을 믿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가 만든 공간의 생명력은 길게는 20년, 30년도 될 수 있지요. 결국 생명력이 오래가려면 시간이 지나도 질리지 않는 담백한 것, 본질적인 이야기가 빛을 발하지 않을까요?” 메종 404는 가족, 건축, 자연의 행복한 관계 맺음을 통해 시간이 지나도 질리지 않을 담백한 이야기를 하나씩 채워가고 있다.




공간 디자이너 구만재
씨는 프랑스 아틀리에 페닝겐 Penninghen 에서 기초 예술학을 수료했고 파리 고등 실내건축학교 ESAG를 졸업한 프랑스 공인 실내건축사 O.P.Q.A.I 이다. 현재 르씨지엠 대표이자 ㈔한국공간환경디자인학회 이사, ㈔한국공간디자인단체총연합회 이사로 있으며 경원대 겸임 교수로 재직 중이다.



디자인 및 시공 르씨지엠(02-584-7024, www.sixie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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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현 기자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