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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족이 사는 법 푸드 코디네이터 황규선씨 가족의 서촌 일기, 함께라는 행복
<개그콘서트> 현대레알사전에서 ‘한옥’을 묻는다면 아마도 ‘낡고 좁고 불편한 집’ 정도의 답변이 나올 것이다. 사 실 생활 한옥이라면 오늘날의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변모하는 것도 필 요한 과정일 터. 푸드 코디네이터 황규선 씨 가족의 서촌 한옥은 1백 살 된 한옥의 외피에 현대 주거의 편의 시설을 갖춘 21세기 생활형 한옥이다. 건축가로 활동하는 아들 양지우 씨가 설계하고 딸 문영 씨의 대안 전시 공간까지 갖춘 작 지 만 알찬 드림 하우스.


한옥과 2층 건물이 나란히 자리한 황규선 씨 가족의 집과 일터. 2층 건물 옥상에서 내려다본 작은 마당에 가족이 모두 모였다.

거실에서 바라본 주방. 약간 휘기도 하고 옹이도 남아 있는 나 무 기 둥 을 그대로 보존하니 새 마감재가 들어와도 한 옥 특유의 분위기가 살아 있다.


한 지붕 아래 달콤 쌉싸름한 동거 이른 새벽 채소 장수 트럭 앞에 모여 수다 떠는 아주머니들, 터줏대감의 위용을 자랑하는 철물점, 칠 가게와 나란히 자리한 최신 카페…. 삶의 다양한 모습이 겹쳐 느린 골목길 풍경을 만들어내는 ‘서촌’.
“은행 골목으로 들어와 철물점 전 골목에서 좌회전하세요. 회색 건물을 끼고 오른쪽 작은 골목으로 들어서면 철제 프레임으로 감싼 나무 대문이 보일 거예요.” 푸드 코디네이터 황규선 씨의 한옥을 찾아가는 길은 다소 복잡하고 생경하다. 솟을대문 대신 철제 프레임의 육중한 문이 손님을 맞고, 담벼락 사이 좁은 통로를 지나 마당으로 들어서자 이번엔 기와의 잿 빛을 담은 2층 건물이 나타난다. ㄱ자형 한옥과 열 평 남짓한 2층 건물이 마당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자리한 독특한 풍경.
“한옥에 살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했지만 사실 선택하기까지는 고민이 많았어요. 전통 한옥은 불편한 집이라는 인식이 강했으니까요. 대안으로 양옥과 한옥이 섞여 있는 터를 찾기 시작했고 한옥과 이층집이 나란히 매물로 나온 이 집을 발견했지요. 한옥은 주거 공간으로, 이층집은 사무 공간으로 사용하면 재밌겠다고 생각했어요.”
황규선 씨 가족이 이렇게 과감한 선택을 한 배경에는 오랫동안 해외에서 생활했다는 특별한 이력이 있다. 일본 주재원으로 20여 년을 생활하며 소박하지만 자기 스타일대로 사는 법을 터득했다는 황규선 씨. 낯선 타국에서 그것도 3~4년에 한 번씩 지역을 옮겨 다녀야 했지만, 집을 꾸미고 요리를 배우는 등 매 순간 현지인처럼 살려고 노력한 그는 덕분에 다른 문화를 쉽게 받아들이고 내 것으로 응용해 소화할 줄 안다. 양지우 씨 역시 일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이탈리아 로마에서 유학한 경험 때문인지 작은 집이 올망졸망 얽혀 있는 서촌의 느린 골목이 낯설지 않았다. 그는 한옥을 레노베이션하면서 옛 모습을 고수해야 한다는 생각에 얽매이지 않았고, 그 결과 투박한 손맛과 실용성이 조화를 이루는 독특한 형태의 주거 공간을 완성했다고 이야기한다.

“서촌에 있는 한옥은 서민의 생활상이 묻어나는 작은 한옥이 대부분이에요. 자식 키우면서 돈이 필요하면 집 일부를 떼서 팔기도 하고 좁으면 마당을 메워 거실을 만들거나 폭을 넓혀 쓰기도 하는 등 엉성하고 투박한 손맛이 남아 있죠. 이 집도 원래 한 채인 한옥을 둘로 나눈 거라 옆집과 여유 공간이 없었어요. 옆집 벽을 담으로 나눠 쓰는 상황이었지요. 좁지만 재미난 진입로와 벽면 화단이 탄생한 배경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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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에서 바라본 거실. 청록색 가죽 소파와 신혼 때 구입한 고재 테이블을 매치하고 베트남 여행길에 구입한 실크 원단으로 고속터미널에서 제작한 쿠션으로 포인트를 주었다.
2 옆집 담벼락 사이 좁은 통로를 살려 진입로를 만들었다.
3 이동식 가구를 쓰는 것보다 제작해서 수납 기능을 더하는 게 좋다고 판단해 침대는 모두 편백나무로 제작했다.

마당은 흙 대신 매끈한 돌로 마감하고 30cm 정도 메워 단을 올렸다. 이처럼 마당과 마루의 높이가 비슷하면 다니기도 편하고 거실이 마당까지 이어지는 시각적 효과로 집이 한결 넓어보인다.

1 서촌 한옥과 자그마한 2층 건물 레노베이션은 양지우ㆍ강기진 소장이 운영하는 움UM 건축사사무소(070-4201-2011)에서 맡았다. 2층 사무실 모습.
2 한옥에서 바라본 2층 건물. 고강도 유리로 마감한 후 메탈 패털(얇은 쇠막대를 구워서 용접)로 외피를 감싸 보일 듯 가리는 효과가 있다.
3 첫 전시로 황성규 작가의 개인전을 연 갤러리움 UM . 천장, 대문 등 옛 건물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4 2층 건물의 1층, 계단 아래 자투리 공간을 활용한 딸 문영 씨의 방.
5 한옥과 2층 건물을 연결하는 통로에서 딸 문영 씨 방으로 들어서면 아기자기한 소품을 장식한 아트월을 만난다.


작고 간단하게 그리고 편하게 서민 한옥이 낡고 좁고 불편하다는 점을 개선하기 위해 양지우 씨는 공간 분할과 마감재 선택, 수납에 심혈을 기울였다. 가장 큰 특징은 거실과 주방이 하나로 오픈된 공간이라는 점. 정면에 보이는 대청마루에 커다란 다이닝 테이블을 배치하고, 소파는 가장 안쪽에 두어 주방-다이닝룸-거실로 이어지는 일자형 동선을 완성했다. 다행히 서까래, 대들보 등의 골조가 썩지 않고 잘 보존되어 있어 그대로 살렸는데, 중간중간 남아 있는 기둥들이 공간을 구획하는 가상의 벽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한옥 하면 떠오르는 대표 이미지인 전통 창호와 대청마루는 과감히 시스템 창호와 관리하기 편한 타일로 대체했다. 집의 모든 창은 유리에 한지를 붙여 마감했는데, 이는 전통 창호 대비 비용을 절약하고 최대한 채광을 좋게 하기 위한 선택이다. 대신 바깥쪽에 창살을 붙여 해가 지면 은은한 창살 문양을 즐길 수도 있다. 또한 벽 안쪽, 침대 아래까지 촘촘하게 수납공간을 마련한 것도 특징이다. 현관과 공간을 구분하는 주방 가벽 안쪽에는 푸드 코디네이터로 활동하며 모은 엄청난 양의 그릇을 수납할 수 있는 장을 설치했고, 철거할 때 우연히 발견한 거실 벽면 틈새 공간은 책장으로 활용한다. 침대는 편백나무로 맞춤 제작했고, 서랍을 구성해 철지난 이불을 수납한다. 약간의 구조 보강으로 비 오는 날에도 신발이 젖지 않는 현관과 넉넉한 신발장도 갖추었다. 이 집의 또 다른 재미는 한옥에서 2층 건물로 이어지는 예상치 못한 구조다. 미로 같은 통로의 폭을 나눠 화장실과 샤워 부스를 마련했고, 정면의 슬라이딩 도어를 열면 딸 문영 씨의 방이 나온다.

무엇보다 주택과 상업 공간을 함께 구성한 집이라는 점도 독특하다. 황규선 씨 가족은 집을 옮기면서 노후도 생각했다. 현재 1층은 문화 콘텐츠 기획자인 딸 문영 씨가 운영하는 대안 전시 공간, 2층은 아들 지우 씨의 움UM 건축사사무소로 사용하지만 부부가 더 나이 들면 소일거리 삼아 작은 꽃집을 해보고 싶단다. 규모가 작아 무엇을 해도 부담 없는 게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집 관리하는 일은 철저히 남편 몫이죠. 은퇴 후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아침저녁 마당을 쓸고 유리창을 닦고 철철이 화단을 가꿔요. 집이란 게 그런 것 같아요. 화려하고 큰 집도 좋지만 무엇보다 사는 사람이 감당할 수 있어야 사는 맛이 나요.”
황규선 씨는 요즘 근처 재래시장 나들이에 푹 빠졌다. 한 아주머니는 고향에서 나는 채소를 파는데 그 즙이 일품이다. 어떤 가게는 제사용 두부가 좋고, 한 할머니는 직접 담근 짠지를 아낌없이 내놓는다. 작고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늘어선 골목길을 걷는 재미 또한 남다르다. 이게 바로 ‘동네’에 사는 묘미일 터.

크거나 화려하진 않지만 한옥 주거의 색다른 시도, 집을 생각하는 담백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황규선 씨 가족의 서촌 집. 황규선 씨 가족에게 ‘한옥’이란? 추억으로 시작해 ‘희망’이 된 살아 있는 집, 진정 살고 싶은 주거 형태로 정의되지 않을까.

 
옥상 정원에 마주앉은 모녀. 홍콩에서 이벤트 마케팅 일을 하다 미술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양문영 씨는 갤러리움UM을 통해 문화 콘텐츠 기획자로 활동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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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3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