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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서동희의 아파트먼트 적게 소유하고, 더 좋은 것을 향유하라
언젠가부터 물건과 소비를 줄이는 ‘미니멀 라이프’에 관한 책이 줄줄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게임처럼 물건을 버리는 미니멀리즘 운동 열풍으로 SNS에서는 버리기 인증 경쟁이 벌어질 정도다. 일본의 정리 정돈 컨설턴트 곤도 마리에는 저서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이 영문판으로 출간되자 2015년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이름을 올리며 ‘곤마리’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미니멀 라이프는 한마디로 물건을 최소로 줄이는 삶이다. 언제 사다 놨는지 알 수 없는 식재료, 옷장에 빼곡히 걸려 있는 옷, 먼지 쌓인 책에서 해방되어 쾌적하고 건강한 삶을 즐기자는 것이 미니멀 라이프의 본질이다. 물론 미니멀 라이프 열풍이 과시적 인테리어로 오인되면서 더 적은 소비가 아닌 더 많이 소비하도록 부추기고 있다는 염려도 있다. 새로 사기 위해 비우는 삶을 실천하는 모순도 종종 목격된다. <행복>은 이 시대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미니멀리즘’의 의미를 살폈다. 무조건 버리고 금욕적 생활을 하라는 게 아니다. 소중한 것에 집중하는 힘, 쓸데없는 것에 나를 빼앗기지 않을 자유, 삶을 만족으로 채우는 행복! 미니멀 라이프의 본질을 보다 현실적으로 실천하는 사람을 만났다. 디자이너 서동희의 첫번째 미니멀 노트.

가치 있는 물건, 여백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디자이너 서동희 씨의 24평 아파트. 디자인포디움 이시은 대표가 시공을 맡았다. 프리츠 한센의 빈티지 모스키노 체어, 포울 키에르홀름의 PK 체어 등 북유럽 빈티지를 애정하는 두 사람의 감각은 서울리빙디자인페어 프리츠 한센 부스 디자인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바우하우스 디자인을 좋아하는 서동희 씨는 디터 람스의 유니버셜 셸빙 시스템에 빈티지 오디오와 LP, 좋아하는 디자인 서적 등을 두었다. 심플한 디자인을 선호하기 때문일까?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책등도 화이트 톤이 많아 책 자체로도 장식 효과가 있다.

한스 웨그너의 빈티지 소파와 프리츠 한센의 모스키노 체어, 포울 키에르홀름의 PK 체어로 꾸민 거실. 라운지체어와 낮은 테이블을 매치하니 시각적 안정감이 있다.


1950~1960년대 빈티지를 수집하며 좋은 물건의 가치를 깨달았다는 디자이너 서동희 씨.



버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잘 ‘사는’ 것
결코 미니멀리스트는 아니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이 남자는 패션 디자이너이자 빈티지 컬렉터 서동희 씨다. 대학에서 섬유를 전공하고 패션 브랜드 MCM을 거쳐 현재 루이까또즈 디자인 팀에 근무하는 그는 컬렉터라는 수식어에서 알 수 있듯 잘 만든 물건에 관심이 많다. “가방 디자인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설치나 공간 연출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런 관심사가 자연스럽게 라이프스타일로 연결됐지요. 저희 집은 미니멀리즘을 테마로 했다기보다 좋아하는 것에 집중했다는 표현이 맞아요. 좋은 물건을 컬렉션하고, 컬렉션이 공간과 잘 어우러지도록 심플하게 바탕을 만들었을 뿐이죠.” 생각해보면 우리는 미니멀리즘에 대해 몇 가지 오해하고 있다. 먼저 무조건 버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버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잘 ‘사는’ 것. 예를 들어 마음에 꼭 드는 물건을 발견하지 못해 무언가를 대체해 산다고 가정해보자. 임시용은 말 그대로 진짜가 나타나면 필요 없어질 물건이다. 결국 진짜가 나타날 때까지 버리고 사기를 반복하는데, 이는 미니멀 라이프의 본질에 위배된다. 꼭 필요하고 보기에도 좋은 물건 몇 가지만 둔다면 별다른 장치 없이도 그 자체로 미니멀 라이프요, 집은 평화로운 안식처가 되는데, 그러려면 무엇보다 마음에 꼭 드는 물건을 찾는 훈련이 필요하다. 물건을 정의하고, 확인하고, 평가하는 습관을 들이면 불필요한 물건을 가려내는 데 도움이 될 터. 재밌는 건 본질에 충실한 단순한 물건일수록 품질이 좋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서동희 씨는 바우하우스 디자인을 예로 든다.

“’less is more(적은 것이 많은 것이다)’, 저는 적게 소유하되 좋은 것을 소유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좋은 가죽 의자는 오래 쓸수록 더 부드럽고 윤이 나며, 결 고운 나무 테이블 역시 길이 들면서 더 편안하고 멋스러워집니다. 심플한 디자인의 주전자나 컵처럼 일상 용품도 편리하게 꾸준히 사용하면 아름다운 물건으로 길이 드는데, 이것이 바로 바우하우스 정신이에요. 좋은 제품은 부유층의 것이라는 선입견도 버려야 합니다. 좋은 울로 만든 담요 한 장은 보통 담요 두 장보다 더 따뜻해요. 패턴과 디자인을 심플한 것으로 고르면 이 방 저 방 가지고 다니기도 좋고 활용도도 높아 하나만으로도 아주 오랫동안 기분 좋게 쓸 수 있죠.” 바우하우스 초기 주택은 아름답지만 너무 간결하다는 이유로 비판받았다. 하지만 미스 반데어로에나 알바 알토의 집처럼 기능과 상식을 기본으로 한 건축은 오히려 지금 이 시대 좋은 건축의 표본이 되고 있다. 서동희 씨 역시 북유럽 여행중 방문한 알바 알토 하우스에 마음이 뺏겼더랬다. 거주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한 안락한 집, 알바 알토의 집을 평범한 아파트에 적용하기 위해 그는 일본의 작은 맨션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했다. 아파트에 오래된 맨션 무드를 더하기 위해 일부러 베란다를 확장하지 않은 집을 선택. 방 세 개에 앞 베란다와 뒤 베란다가 모두 분리된 구조의 24평 아파트는 가벽을 사용해 공간을 최대한 쪼갠 것이 특징이다. 보통 작은 평수는 스튜디오 타입으로 벽을 없애고 확장해 공간을 넓어 보이게 연출하는 데 반해, 이 집은 없던 벽을 세워 거실과 현관을, 주방과 다이닝룸을 분리했다.

“집은 간결하고 안락하고 실용적이어야 해요. 디자인 분야에서 일하다 보니 집에서만은 시각적으로 편안해지고 싶어요. 거실에 앉아 있는데 주방 너머가 보인다거나, 여러 물건이 맥락 없이 섞여 있는 것도 참지 못하는 성격이고요. 공간을 분리한 뒤 그 공간에 맞는 최소한의 가구와 컬렉션을 배치했어요. 제가 한 공간에 오래 못 있는 성격이라 집에서도 자주 왔다 갔다 하거든요. 거실에서 책을 읽다 티룸에서 음악을 듣고, 다이닝룸에 앉아 있다 부엌 옆 ‘알바알토룸(알바 알토 소품으로 꾸민 방)’에 가서 낮잠도 자고…. 공간을 잘 활용하면 20평대 아파트도 충분히 재밌는 공간이 완성됩니다.”


디자이너 서동희의 미니멀 노트

디자이너 서동희 씨가 좋아하는 알바 알토의 제품을 모아놓은 컬렉션룸. 좋은 물건을 잘 ‘사기’ 위해 무엇보다 마음에 꼭 드는 물건을 찾는 훈련이 필요하다.

도자 주전자나 컵처럼 일상 물건 역시 아름답고 기분 좋은 것을 선택한다.

집은 언젠가는 쓸 물건으로 가득 채워진 창고가 아니라, 꼭 필요한 물건만 가지고 안락하게 살 수 있는, 예를 들면 여행용 트렁크의 확대 버전이어야 한다. 생필품은 다기능 제품을 선택한다. 욕실에도 용기를 많이 두는 게 싫어 샴푸, 보디 워시, 세안 기능을 하는 오가닉 제품 하나만 두고 쓴다.


간결하고 안락하고 실용적이어야 한다는 미니멀 하우징의 명제를 실천한 침실과 다이닝 공간. 공간을 분리한 뒤 그 공간에 맞는 최소한의 가구(침대, 식탁, 조명등)를 배치했다.


미니멀리즘의 기본은 수납! 물건의 용도와 동선에 맞춰 적재적소에 배치한 수납공간이 전제되어야 한다. 나무 커틀러리, 유리잔 등 소재별로 모아두니 시각적으로 통일감이 느껴진다.

공간의 중심은 조명! 여백의 공간을 따뜻하게 채우는 데는 ‘빛’의 역할이 중요하다.


비우니 채워지더다
요즘엔 갤러리처럼 화이트로 마감한 집이 많다. 이 집도 온통 하얀색이다. 디자인을 맡은 디자인 포디움 이시은 실장도 처음에는 집주인이 마감과 붙박이 가구 등을 모두 화이트로 통일한다고 했을 때 걱정이 많았다. 자칫 차갑고 딱딱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제가 생각하는 흰색은 단편적인 색보다는 ‘여백’의 개념이 커요. 일본에 ‘와비사비わびさび’라는 말이 있어요. 불완전하고 투박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일본 특유의 미의식을 말하는데, 빛이 투과하는 창호지, 옹이가 많은 나무, 성근 질감의 원단 등을 예로 들 수 있죠. 저는 화이트 중에서도 노르스름한 화이트 톤을 좋아해요. 빛바랜 화이트 컬러는 인위적이거나 차가워 보이지 않고, 또 여백의 아름다움을 살릴 수 있지요. 그래서 그 공간에 있을 때 조금 더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고요.” 나무나 직물 등 따뜻하고 부드러운 소재를 더한 인테리어는 가구나 소품이 꽉 차지 않고 비어 있어도 꽉 찬 듯 포근한 느낌이 난다. 거실에 있는 한스 웨그너의 빈티지 소파는 라탄 소재를 접목한 아이템으로, 포울 키에르홀름의 가죽 라운지 체어와 대리석 테이블과 안락하게 조화를 이룬다. 공간을 아늑하게 완성하는 아이템으로 조명등의 역할도 중요하다. 그는 원하는 조명등을 최적의 장소에 설치하기 위해 벽을 세울 정도로 조명 마니아다. “일반적으로 가구를 다 배치한 뒤, 가구 위치에 맞춰 조명등 위치를 정하는데 저는 반대로 해요. 조명등 위치를 정하고 거기에 맞춰 가구를 배치하죠. 거실에는 1950년대 프랑스에서 유행한 갓등을 달았어요. 조명등 위치를 정하고 사이드보드와 소파를 배치하니 불을 켰을 때 양쪽으로 은은하게 퍼지는 느낌이 좋아요.”

주방과 다이닝 테이블을 분리하는 벽에는 디터 람스의 선반장과 둥근 벽부등을 설치했는데, 불을 켜면 마치 달이 뜬 듯 공허하면서도 아름다운 분위기를 완성한다. 여백이 있는 공간에서는 모든 게 작품이 되고 정물화가 되며 매 순간이 소중한 시간이 된다. 물론 여기에 전제되어야 할 것이 바로 ‘수납’이다. 어질러지는 것을 피하려면, 옷장과 서랍장ㆍ장식장 등 온갖 잡다한 가구가 늘어나는 것을 막으려면 붙박이식 수납장을 충분히 갖춰야 한다. 또한 수납공간은 필요에 맞게 배치해야 한다. 냄비 하나를 꺼낼 때마다 의자를 가져와야 한다거나 티스푼 하나 때문에 집을 가로지르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 이 집은 현관과 거실을 나누는 벽과 티룸의 빈티지 모듈 장이 그 역할을 한다. 거실 벽은 책을 비롯해 철 지난 물건을 수납하고, 티룸에는 아라비아핀란드를 비롯해 일본에서 하나둘씩 사 온 그릇 컬렉션을 장식처럼 조르르 수납했다(티룸 안쪽 화장실은 미니 주방으로 개조해 간단한 차를 주방까지 가지 않고 바로 끓일 수 있다). “물건이 정리되지 않는 이유는 물건을 편리하게 정리할 공간이 없기 때문이죠. 모든 정리 전문가가 조언하듯 수납공간은 크기보다 동선이 더 중요해요. 사용자의 움직임과 발걸음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도록 그 기능에 맞는 장소에 있어야 더 쉽고 편리하게 정리할 수 있으니까요.”

"집 안 곳곳에 배치한 주전자, 도자 등은 그저 바라보는 소품이 아니라 모두 직접 사용하는 제품이다. 직접 써보면 그 나라의 문화, 라이프스타일까지 들여다볼 수 있어 좋다."


뜨겁게 맞이하고, ‘쿨’하게 보내라
물질을 버리고 정신을 사는 미니멀리스트가 얻고자 하는 정신적 만족은 주로 ‘체험’에서 비롯한다. 물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만족은 일시적일 뿐이지만, 다양하고 직접적 체험은 나중에 이를 기억함으로써 만족감을 소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효과적인 도구는 여행. “일본 출장을 다니면서 일본이 해석한 북유럽 스타일의 매력을 알게 됐죠. 컬렉션하고 싶은 아이템도 하나 둘씩 생겨났어요. 첫 북유럽 여행은 갖고 싶은 아이템을 사러 가는 것이 목적이었던 것 같아요. 수집을 하다 보니 디자이너와 브랜드에 대해 공부하게 되고, 그 물건을 직접 써봐야 직성이 풀리는 단계에 이르렀죠.” 컬렉션한 제품은 디자이너인 그가 제품을 디자인하는 데 영감을 주기도 한다. 아르네 야콥센의 스틸 주전자는 부분적으로 뜯어보면 기하학적 요소가 돋보이는 제품인데, 그런 면면을 가방 디자인에 적용하기도 한다. “좋은 물건은 물건 자체의 기능을 넘어 바라보는 것만으로 힐링이 되기도, 디자인의 영감이 되기도 하지요. 밀도 있게 즐겼다면 쿨하게 떠나보내야 하는 것도 중요해요. 사실 저는 물건에 관심이 많지만 떠나보내는 것 역시 쉬운 편이에요. 미니멀리즘의 핵심이 ‘비우기’잖아요. 좋은 물건을 모으되, 충분히 즐겼으면 필요한 누군가에게 보내는 이별 과정도 필요하죠.”

그는 SNS로 컬렉션을 판매하기도 한다. 1950년대 디자인을 수집하고 여행기를 웹진으로 소개하다 보니 가구나 소품을 구해달라거나 공간을 스타일링해달라는 부탁을 받곤 하는데, 그때마다 집이 살아 있는 쇼룸 역할을 한다. 1년에 한두번 오픈 하우스도 펼칠 계획. 서동희 씨를 인터뷰하면서 ‘단순화한다는 것’과 ‘아름답게 장식하는 것’은 어쩌면 같은 의미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리 작고 평범한 집이라도 정갈하다면 누구나 시를 쓰고 우아하고 세련된 상차림을 할 수 있으며, 감미로운 음악을 듣고 장미 포푸리 향도 음미할 수 있다. 기분 좋은 가죽 냄새가 나는 소파, 리넨 행주, 질박한 도자접시…. 진정으로 럭셔리한 생활은 아름답고 질 좋은 물건을 별로 의식하지 않고 당연히 곁에 두고 사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미니멀 라이프에서 추구해야 할 가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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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현 기자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7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