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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현·김건희, 하연 가족의 볕 잘 드는 집
인스타그램 열풍에 힘입어 이제는 홈스타그램 시대. 집에 관한 수많은 피드 중 단연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북유럽 인테리어다. 하지만 대부분이 데커레이션에 급급한 ‘한국화’된 북유럽 스타일이라는 점은 아쉽기도 하다. 흉내 내기 인테리어에서 탈피해 보기에 아름답고 살기에 편한 집. 키워드는 빛과 여백, 자연이다.

개방적 공간 구성, 가족 모두가 공존하는 인테리어를 실현한 하이현 씨 가족의 ‘볕 좋은 집’.

<행복> 편집부에는 집을 소개하고 싶다는 독자들의 문의 전화가 자주 걸려 온다. 가끔 이메일이나 꾹꾹 눌러쓴 손 글씨로 적은 사연을 보낼 때도 있다. 집주인이 직접 보낸 사연은 디자인업체가 소개하는 리모델링 사례와는 사뭇 다른 특별함이 있다. 쑥스러워하면서도 은근히 자랑하고 싶은 설렘이 느껴지기도 하고, 소박한 한 장의 사진이 감동스러울 때도, 전문가 못지않은 감각에 감탄사가 나올 때도 있다. ‘평창동 볕 좋은 집’이라는 제목의 이메일도 그랬다. 

“지난해는 개인적으로 제 인생에서 가장 바쁘고 힘든 1년이었습니다. 딸아이가 태어났고 마당 있는 볕 좋은 집에서 아이를 키우겠다는 오랜 계획이 생각보다 빨리 진행된 탓이지요. 아이가 태어난 지 6개월이 되던 날 전셋집이 팔려 만기 연장이 힘들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날부터 아이를 안고 부동산을 뒤지기 시작했어요. ‘신랑은 뭐 하고 애기 엄마가 집 구한다고 이 고생이누…’ 하시던 집주인도 계셨지요. 그러다 지은 지 25년 정도 된 비어 있는 이 집을 만났습니다. 볕이 참 좋고 마당이 있었으며 주방에 앉으면 푸른 담쟁이덩굴이 보이기도 하는 구조가 좋은 집이었어요. 외부와 구조만 남겨놓고 대대적으로 고쳐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할 수 있다’를 외치며 리모델링을 시작했습니다. (중략) 제 마음에 쏙 드는 집이 기적같이 완성됐고, 안고 다니던 아이는 이제 마당을 뛰어다니며 텃밭에 물을 주고 그네를 타고 있답니다.”

말로 하면 끝이 없는 에피소드를 누군가에게 편지라도 쓰며 글로 정리하고 싶었다는 하이현 씨. 직접 해외 사이트에서 소품을 주문하고 부부의 키, 아이 발달 과정에 맞춰 가구 높이, 수건 크기, 샴푸 통 길이까지 정하는 등 세 식구에게 딱 맞는 맞춤형 집을 완성했다는 사연을 다 읽고 나니 뻔하지 않은 인테리어일 것 같은 기대감은 확신이 되었다. 



ㄷ자형 아일랜드에서 바라본 다이닝 공간. 창 너머로 담쟁이덩굴이 사시사철 다른 풍경을 연출한다.

빛, 바람, 자연… 매일 ‘벽지’가 바뀌는 거실
이메일의 제목처럼 평창동 볕 좋은 언덕에 자리한 빨간 벽돌집.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 덴마크의 여름 별장이 떠오른다. 개방적 구조, 집 안에는 물건이 거의 없고 그나마 있는 가구의 형태는 매우 단순하다. 실내는 온통 흰색이지만 차갑지 않다.  
“집을 고치면서 북유럽 인테리어와 관련한 책을 많이 보았어요. 들여다볼수록 요즘 유행하는 ‘북유럽 스타일’과 ‘북유럽 집’은 개념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죠. 여유로운 소박함과 우아한 겸손이 느껴지는 인테리어, 시간이 흐를수록 더해지는 가치와 편안함이야말로 북유럽 디자인의 핵심이자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라는 점도요.”
하이현 씨는 북유럽 인테리어를 테마로 하되, 겉모습만 흉내 내는 스타일링보다는 북유럽 디자인의 정신과 가치를 담고 싶었다. 키워드는 빛과 여백, 자연. 사실 이 세 가지 요소는 북유럽 디자인에서 삼원색과 같은 기본 개념으로 서로 긴밀한 인과관계를 맺고 있다. 빛을 들이기 위해 창의 크기를 키우고, 커진 창안으로 외부 풍경이 흡수되며 안과 밖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창을 통해 들어 온 빛은 공간을 밝히기만 하는 게 아니다. 공간에 넓이, 깊이, 높이, 구조를 부여해 그 공간만의 감도를 창조해낸다. 만약 그 규모에 상관없이 개방감이 느껴지는 공간이 있다면 이 세 요소가 잘 조화를 이뤘기 때문이다.



이 집의 개성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원형 계단. 천장 모빌은 보금자리인 이 공간에서 바깥세상으로 날아오른다는 의미로 선택했다

“거실, 침실, 부엌, 서재 모두 외부로 향한 큰 통창을 통해 푸른 자연과 하늘을 볼 수 있어요. 특히 원형 계단실 통창으로는 뒷집 소나무를 그림처럼 즐길 수 있지요. 식탁에 앉으면 뒷집의 담쟁이덩굴이 청량감을 전하고요.” 날씨에 따라 시시각각 풍경이 달라지는 마당은 “매일 벽지가 바뀌는 거실”이라고 한 건 축가 유현준의 말이 떠오른다.



아이와 거실을 바라보면서 요리와 설거지를 할 수 있도록 주방 가구를 ㄷ자형으로 배치했다.부엌일할 때 하연이도 옆에서 함께 머물 수 있도록 아이 전용 주방놀이 가구를 뒀다. 브리오 제품으로 직구했다. 

볕 좋은 집의 가장 큰 특징은 ‘개방감’. 거실과 부엌, 다이닝룸이 하나로 트인 구조를 완성하기 위해 구조 변경은 필수였다. 레노베이션 전에는 부엌이 막혀 있었으며, 부엌과 단 차이가 나는 다이닝룸은 미닫이문이 있어 전체적으로 폐쇄적이고 어두운 느낌이었다. 먼저 거실, 주방, 다이닝룸의 높이를 맞춘 뒤 부엌 아일랜드를 파티션 삼아 공간을 분할했다. 거실, 다이닝룸으로 향하는 ㄷ자형 조리대를 설치하고, 거실과 부엌 사이에는 냄새와 소음을 차단하는 유리 파티션을 시공해 부엌에 있을 때도 거실 너머 마당까지 바라볼 수 있다. 언덕에 들어선 평창동 집들의 구조상 거실에서 마당으로 통하는 남쪽의 전면 통창은 프라이버시 침해가 없어 커튼이나 블라인드를 설치하지 않았다. 안과 밖의 경계를 모호하게 함으로써 거실을 실제로 마당까지 확장하거나, 마당을 거실까지 확장할 수 있는 것이다. 눈 오는 날이나 비 오는 날 통창 앞에 앉아 경치를 감상하면 그 순간이 바로 ‘행복’이다. 


하연이 방은 아빠가 고른 파스텔 컬러로 도장하고 어른 소파도 매치한 것이 특징.

모두를 위한 디자인
기능적으로는 ‘가족 구성원 모두를 위한 집’이라는 키워드가 가장 중요했다. 보통 아이가 있는 집은 거실이 장난감으로 점령당하기 일쑤. 부부를 위한 공간은 없다.아이 입장에서도 부엌과 욕실은 전적으로 어른 위주의 설계다. 각 부실의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세 식구가 공존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공간, 10년이 지나도 아직 어린아이일 하연이를 위한 배려를 곳곳에 담았다. 예컨대 거실과 마당에는 아이를 위한 주니어 체어가 있고, 부엌 한편에는 주방놀이 가구를 두었다. 2층 아이 방 욕실은 세면대와 샤워룸, 변기 등을 모두 아이에게 맞췄다. 1층 부부 욕실에는 아이가 충분히 수영할 수 있는 큰 욕조가 있다. 반대로 아이 방에도 부부가 앉을 수 있는 어른 소파가 있다. 아이랑 놀아줄 때 바닥에 앉아 있다 보면 가끔 허리가 아플 때도 있는데, 소파는 잠시 쉬기에 제격이다.

“세 식구가 함께 쓸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게 중요했어요. 가구마다 보호 장치를 붙이는 대신 모서리가 둥근 라운딩 가구를 선택했죠. 부엌에 아이가 들어오면 위험하다고 소리치지 않고, 아기용 주방놀이 가구를 두어 같이 머물 수 있고요. 다이닝룸 한쪽의 원형 아트월에는 아이 사진과 가족사진을 붙여 밥 먹을 때도 사진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눌 때가 많아요.”
아이 방과 작은 거실, 서재, 드레스룸으로 구성한 2층은 오롯이 하연이를 위한 아이디어가 가득하다. 일자로 막혀 있던 천장을 박공 구조로 변경하면서 물탱크 자리를 발견해 다락방을 구성. 다락방을 오르는 계단 벽면에는 색색의 클라이밍 홀드를 설치했다. 소꿉장난도 하고 책도 읽고 또 근력도 키울 수 있는 재미난 아이디어다. 아이 방은 벤자민 무어의 친환경 페인트를 시공했다. 사랑스러운 파스텔 컬러는 아빠가 직접 고른 것. 창호는 안전을 고려해 손잡이를 높게 달고 방문에 원형 창을 넣어 시각적ㆍ청각적으로 개방했다.


재미는 물론 근력 운동까지! 다락방과 클라이밍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경치가 가장 좋은 방은 남편의 서재예요. 책 읽고영화도 보는 남편 혼자만을 위한 공간이죠. 인테리어를 잘 모르지만, 평소 누군가의 집에 방문했을 때 단점이 먼저 보였어요. 아빠는 있을 자리가 없고, 퇴근하고 돌아오면 장난감 치우면서 들어와야 하고…. 컴퓨터 바탕 화면에 ‘내가 살고 싶은 집’이라는 폴더가 있어요. 하지 말아야 할 것, 하고 싶은 것을 정리해둔 폴더인데, 평소 정리해둔 덕분에 꼭 필요한 내용을 공간에 잘 풀어낸 것 같아요.”

채움보다 비움
각 공간에는 꼭 필요한 가구만 들였다. 에리크 요르겐센의 델피 소파와 허먼밀러의 노구치 테이블, 프리츠 한센의 로 체어와 아날로그 테이블 등 가구는 에이후스에서 공간에 맞춰 추천해준 제품. 그중 현관 입구에 둔 아르텍의 티 트롤리는 하이현 씨가 꼭 사고 싶었던 가구다. 가구를 가장 순수한 형태로 환원하는 알바 알토의 능력이 잘 반영된 제품으로, 동글납작한 판으로 제작한 바퀴는 단순하면서도 안정감과 부드러운 느낌을 동시에 자아낸다.


최소한의 가구만 둔 침실. 통창 너머 마당에서 자는 기분이 든단다.
“2년의 휴직 기간 동안 큰일을 치렀어요. 하연이를 낳았고 13년 된 강아지를 보냈으며,가족을 위한 공간을 완성했어요.일상으로 돌아와서 다시 바빠지면 이 세 가지를 기억할 수 있을까?<행복>에 편지를 보내면서 그 시간들을 정리한 것 같아요.”

‘가족 모두를 위한 집’을 완성해주는 원칙
컴퓨터 바탕 화면에 ‘내가 살고 싶은 집’ 폴더를 만들자. 당장 집을 짓거나 고치지 않아도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정리’하면서 생각이 ‘정리’된다.
‘아이를 위해’ ‘남편을 위해’ ‘나를 위해’를 이유로 누구의 희생도 강요하지 말 것. 주방, 거실, 다이닝룸 모두 가족이 공존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고민할 것.
 
그럼에도 아이는 가장 배려해야 하는 대상이요, 아이에게 집은 놀이터와 같다. 거실과 다이닝룸의 가구는 아이가 마음껏 뛰어다녀도 위험하지 않도록 모서리를 둥글게 처리한 가구를 선택했다. 다락방 벽면에 클라이밍 홀더를 설치한 아이디어도 돋보인다. 
개방적 배치는 가족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준다. 빛과 자연을 최대한 활용해 막힘없는 공간을 연출하자.


위, 아래 개방형 구조로 거실과 다이닝룸, 부엌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자연을 온전히 담기 위해 커튼, 블라인드를 생략했다. 에리크 요르겐센의 델피 소파, 허먼밀러의 노구치 테이블, 가리모쿠의 주니어 K체어와 프리츠 한센의 로 체어와 아날로그 테이블, 세븐 체어 등 엄선한 최소한의 가구로 여백 있는 공간을 완성했다.



“단순한 건축일수록 디테일이 중요하잖아요. 통창부터 곡선 창까지 창문이 많아 창호 프레임을 결정하는 게 어려웠어요. 보통은 나무 프레임으로 틀을 만들고 도장하는데, 디자이너 하얀색 인조 대리석을 추천했죠. 몰딩까지 모두 대리석으로 통일했는데 내구성도 좋고, 마감도 깔끔해 만족해요.” 

지은 지 오래되어 낙후된 주택이다 보니 레노베이션업체를 찾는 데 고민이 많았다는 부부. 디자인과 시공을 맡은 티에스리모델링의 김기돈 실장은 미적인 것 외에도 춥고 불편한 주택이 되지 않도록 기능적 면에 집중해 공사를 진행했다. 창호, 난방, 결로와 누수 점검, 환기 시스템과 배관 설비 등 기본 공사를 마친 뒤에는 창호와 바닥재 등 집의 기능과 큰 그림을 좌우하는 요소를 정했다. 같은 종류의 원목을 사용하면서도 1층은 개방적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두껍고 긴 마루를, 2층은 아기자기함을 강조하기 위해 얇고 짧은 원목을 선택했다. 창호 역시 알루미늄 시스템 창호를 기본으로 방범을 고려해 틸트 창을 혼합해 시공했다. 원형 계단 한쪽 벽은 가족사진을 붙일 수 있도록 벽 안에 얇은 철판을 덧댔다. “아이와 함께 현장을 찾을 때마다 낮잠 시간을 피해 미팅 시간을 잡는다거나 먼지가 날리지 않도록 작업을 중단하는 등 세심하게 배려해주셨고, 무엇보다 얘기를 많이 들어주셨어요. 냉장고 자석을 모으는데 붙일 자리가 모자란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그걸 놓치지 않고 다이닝룸 둥근 벽 안에 철판을 넣자고 제안하셨죠. 덕분에 가족의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우리 집 자랑거리가 됐지요. 결과적으로 누군가의 일방통행이 아닌, ‘함께’ 고민해준 최상의 파트너예요.” 


왼쪽 아르텍의 티 트롤리를 현관 앞에 두고 기저귀, 책 등을 수납한다. 오른쪽 현관 중문은 하연이 키에 맞춰 한 칸을 투명 유리로 구성했다. 부츠나 하이힐을 신는 엄마를 위한 벤치, 손님용 옷걸이, 거울 등 기능에 맞춰 소품을 배치했다.
아침에 하연이가 엄마, 아빠를 배웅할 수 있도록 하연이 키 높이에 맞춰 현관 중문 유리 일부를 투명 유리로 구성한 아이디어도 돋보인다. 퇴근하면서 마을 어귀로 들어서는 순간 그 유리문 너머로 인사할 하연이의 웃는 얼굴을 상상한 다. ‘아, 집에 왔구나!’ 보기에 아름답고 살기에 편한 북유럽 디자인의 가치를 읽어내고, 이를 곰살맞게 실현한 하이현 씨 가족의 볕 좋은 집. 그가 많은 영감을 받았다는 책 <북유럽의 집>의 마지막 구절이 떠오른다.

“빈 공간에는 장면이 있다. 그것은 배우를 기다리고 있는 무대 같다. 공간이 가구의 영향을 덜 받을수록 이런 기대감은 더 크다. 크고 높은 창, 나란히 배열된 방, 중앙의 나무 마루, 곧게 뻗은 계단, 깊이 파인 벽감… 이를테면 집은 그곳에 들어와 둥지를 틀고 살 사람을 기다린다. 사람이 중요하다. 건축과 디자인은 그저 물리적 준비에 불과하다. 준비된 무대에 사람이 올라 연출을 완성해야 한다. 더 안락한 집은 있을 수 있지만 더 아름다운 집은 없다.”


시공 티에스리모델링(02- 542-3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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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현 기자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