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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선·김태엽 부부, 조엘·노엘 남매 바로 '지금'을 위한 디자인
'아이가 있는 집’을 상상할 때 더 이상 캐릭터 매트를 떠올리지 말자. 9개월간 공사하고 이사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설명이 무엇보다 마음에 와 닿았던 집. ‘엄마’라는 공통분모로 완벽한 하모니를 만들어낸 네 식구의 집은 아이가 만족하는 공간이 결국 가족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이자 가족의 행복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한다.

전망 좋은 펜트하우스의 장점을 살려 스튜디오처럼 탁 트인 공간을 완성. 널찍한 기둥을 중심으로 패밀리룸과 거실, 현관이 펼쳐지는 구조가 인상적이다. 디자인은 짐블랑 김은희 대표가, 시공은 권민성 소장이 맡았다.
인테리어에서 ‘아이의 눈높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아이가 있으면 포기해야 할 게 너무 많다. 캐릭터 매트가 주인공이 된 거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장난감과 그림책, 플라스틱 식기 등 아이 물건은 부부 침실과 서재, 주방까지 온 집 안을 장악한 지 오래. 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수납’이요 부부의 취향은 온데간데없으니, 왜 ‘육아’가 인테리어의 테러리스트가 되는지 알 것 같다. 여기까지가 엄마의 입장이라면 아이의 입장은 또 다르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췄다고 하지만 정확하게는 엄마가 정한 공간에, 엄마 뜻대로 선택한 물건을 채운 것 아닌가. 저 높이 달려 있는 동물 가면과 놀고 싶고 거울 속 내 얼굴을 보면서 치카치카도 하고 싶은데… ‘우리’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어른들은 통 모르는 눈치다. 

알랭 드 보통은 “공간이 그 안에 살고 있는 삶의 희망과 일치할 때 그곳을 집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어른뿐 아니라 아이들도 만족하며 모두가 공간의 주체가 되는 ‘행복한 가족의 집’. 이민선ㆍ김태엽 부부, 조엘ㆍ노엘 남매의 집은 취향이 확실한 이 시대 부모들이 어떻게 아이와 소통하고 어떻게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좋은 밑바탕을 만들었을 뿐,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발견하는 아이디어가 곧 집을 완성하는 인테리어 요소”라며 천천히 채워가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가족. 개조 포인트는 바로 ‘지금’이라는 시점이다. 

1 낮은 시선으로 완성한 미니멀한 침실. 책상과 드레스룸, 남편의 운동 기구가 있는 욕실 등 멀티 태스킹 공간으로 꾸몄다. 2 거실 한쪽에 디제잉 부스를 마련해 주말 아침이면 조엘과 함께 디제잉을 즐긴다. 패밀리룸 한쪽에 구성한 아이 전용 욕실. 세면대와 욕조, 변기 등을 아이 키에 맞춰 설치했다. 4 스틸 소재로 선반장을 짜고 이민선 씨가 좋아하는 키덜트 감성의 패션 액세서리를 장식했다.

지금, 우리는 뭐든지 함께 한다
“집을 디자인한다면 지금 바로 가족모두가 좋아하고 사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채워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혹시 모르니’ ‘몇 년 후에는’이라는 가정보다 ‘그래서 지금 끌리는 게 뭔데?’라는 질문이 저에겐 더 중요했어요.” 


거실에 디제잉 부스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미 짐작했지만, 역시 요즘 젊은 엄마답다. 가끔 오는 손님을 위해 게스트룸을 만들거나, 짐이 늘어 날 것을 대비해 거실 벽 전체에 붙박이장을 짜 넣는 ‘보험’은 없었다. 부부 침실과 서재, 아이 방으로 나누는 보편적 공간 구성도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여느 집에서는 없애거나 혹은 최소화하는 널찍한 기둥을 한껏 강조했으며, 유리벽으로 통하는 패밀리룸과 어린이 전용 욕실을 구성했다. “아이가 하나 더 생기고 이사를 하게 되면서 신혼 때와 달라진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죠. 남편이 퇴근 후 옷을 어디에 벗어두는지, 그때 우리 부부는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조엘이 집에서 뭘 하면서 놀기를 좋아하는지, 한 달에 몇 권의 책을 읽는지…. 생활을 들여다보니 그에 맞는 동선과 공간, 공간에 필요한 요소들이 하나 둘씩 떠오르더라고요.” 아내가 침실, 주방, 패밀리룸, 아이 방 등의 동선과 어떻게 꾸밀지를 고민했다면 남편은 공간의 큰 구조를 결정하는 역할을 했다. “혼자 살 때는 취향이 완전히 반대였어요. 온통 블랙으로 마감한 집에 살았거든요. 아내가 밝고 톡톡 튀는 스타일을 좋아한다면, 이 집의 미니멀리즘은 나름의 제 취향을 반영한 거죠.” 스튜디오처럼 뻥 뚫린 구조, 선이 잘 정리된 미니멀한 마감, 화이트를 베이스로 하되 촉감이 느껴지는 나무 바닥재를 선택하는 등 큰 그림은 남편의 아이디어였다. 무엇보다 거실과 패밀리룸, 다이닝룸이 시원하게 오픈된 구조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채광 좋고 환기가 잘되는, 스튜디오처럼 탁 트인 공간을 원한 만큼 구조 변경은 불가피했어요. 구조 기둥만 남기고 모두 철거한 뒤, 집 한 채를 다시 짓는 것처럼 필요한 부실을 동선에 맞춰 하나 둘 앉혔죠. 무엇보다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한 디자인이에요. 기둥 자리는 원래 화장실이 있던 곳인데, 화장실을 없애고 기둥을 오히려 드러내고 더 과장된 크기로 마감했죠. 기둥은 그 자체로 웅장하면서도 이국적 느낌을 주는 것은 물론 현관과 거실, 패밀리룸을 구분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해요.”

디자인을 맡은 김은희 대표는 엄마 디자이너로서 공간의 기능과 동선도 신경썼다. 특히 패밀리룸 벽면을 스윙 도어와 강화유리로 시공해 거실, 다이닝룸, 부부 침실 등 어디에서나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아이 놀이방을 예쁘게 만들어주더라도 혼자 들어가기 싫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렇게 시각적으로 통하는 놀이 공간을 만들어주면 생활 공간과 단절되지 않아 혼자 서도 잘 놀고, 부모 역시 더 자주 함께 공간에 머무는 효과가 있다. 취미로 디제잉을 즐기는 이민선 씨는 거실 한편에 디제잉 부스를 원했다. 이전 집에는 따로 디제잉하는 방이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혼자만 만족하는 취미인 것 같아 아쉬웠다고. 요즘은 엄마가 디제잉을 할 때면 두 아이도 엄마 주변으로 모여 든다. 조엘은 엄마 옆에서 엄마 모습을 그대로 따라 하고, 남편은 거실에서 둘째를 돌보거나 책을 읽는 등 사진 그대로, 평범하면서도 행복한 일상이다. 

1 코발트블루, 옐로, 핑크 등의 컬러 매치가 돋보이는 아이 방. 가구는 짐블랑에서 제작, 판매한다. 2 아이 손이 닿는 높이에 임스 행어를 설치. 유치원에 다녀오면 가방과 모자를 벗어 스스로 걸어둔다. 3 휴식과 놀이가 공존하는 패밀리룸. 베드 타입 소파와 책장을 구성해 온 가족이 따로 또 함께 자기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지금, 내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
“조엘의 방을 꾸미면서 짐블랑 김은희 대표님과 인연을 맺었어요. 부분적으로 아이 방만 개조하고 싶다고 했는데 흔쾌히 가능하다고 하더라고요.” “맞아요. 짐블랑이 한남동으로 쇼룸을 옮기고 아이 맞춤 가구를 제작하기 시작할 때였어요. 우연히 소품을 구경하러 오셨는데 아이 방 인테리어를 하게 됐고, 또 그 인연으로 이렇게 집 전체 공사까지 맡게 됐지요.” 취향과 감각뿐 아니라 엄마이기에 통하는 공통 관심사가 있어서 좋았다는 이민선 씨. 김은희 대표 역시 두 아이의 엄마로서 이민선 씨의 집을 디자인하면서 공감하는 바가 컸다고 한다. 두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손가락을 치켜드는 이 집의 백미는 역시 ‘패밀리룸’이다. 사실 패밀리룸의 가장 큰 역할은 놀이와 휴식의 공존. 아이들이 장난감을 갖고 노는 동안 아빠는 소파에 앉아 책을 읽거나 엄마는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는 등 따로 또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어른 책과 아이 그림책 등 크기별로 수납이 가능한 모듈형 책장, 편안한 데이베드형 소파, 높이를 조절할 수 있는 테이블 등 가구를 고를 때도 편안함과 실용성을 동시에 고려한 이유다. 아이 전용 욕실의 세면대, 둥근 욕조, 변기는 아이 키에 맞춰 낮게 제작한 것이 특징이다. 스스로 씻고, 양치하고 세수하면서 자기 모습도 볼 수 있도록 거울도 낮게 설치. 이것이 부부가 생각하는 ‘눈높이 인테리어’의 핵심이다. 


부부는 아이 물건을 고르는 나름의 원칙과 기준이 있다. <뽀로로> <겨울왕국> 등 유행하는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는 되도록이면 피한다는 것. 대신 이 집에는 ‘패밀리 컬렉션’을 들여다보는 묘미가 살아 있다. 이민선 씨가 고등학교 시절 모은 러시아 인형부터 피겨, 직접 그린 그림, 스냅 컷으로 찍은 아이들 사진 등 값비싼 미술 작품이 아닌, 가족의 추억이 담긴 물건이다. 자꾸 눈이 가고, 보는 동안 저절로 미소를 짓게 만드는 게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작품일 터. “드레스룸은 작지만 상징적 공간이기도 해요. 엄마이기 이전에 패션에 재능 있고 관심 많은 ‘이민선’의 다양한 캐릭터를 꺼내볼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디자인했어요.” 디자이너의 바람에 응답하듯 이민선 씨는 드레스룸 한편에서 그림을 그리는 등 자신만의 시간을 보낸단다. 서울대 의류학과를 졸업한 뒤 외국계 증권 회사를 다니다 다시 패션 전공을 살리고 싶어 케이블 채널의 리얼리티 프로그램 <디 에디터스The editors>에 출연, 제일모직에서 근무하다 조엘을 임신하고 스타일리시한 임부복 스타일링으로 파워 블로거가 되어 패션 사업가로 활동하는 등 이 작은 드레스룸에는 그의 취향과 일상, 꿈과 열정이 오롯이 담겨 있다. 집에서도 종종 업무를 보는 남편 김태엽 대표(스탠다드 차타드 프라이빗 에쿼티 코리아) 역시 서재를 따로 두지 않았다. “드레스룸, 서재가 꼭 분리될 필요가 있을까요? 이렇게 침실 한쪽에 책상을 두면 서재고, 파우더룸을 나눠 드레스룸으로 사용하면 되죠. 이렇게 ‘겸’하는 공간은 가족 이 더 자주 스킨십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고 생각해요.” 

대리석 테이블과 베르판 원형 조명등으로 연출한 다이닝룸. 폭이 좁고 긴 오벌 형태 테이블은 여럿이 앉아도 가까이 앉을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 선택했다. 다이닝룸과 연결되는 다용도실에 인더스트리얼 창문을 설치해 밤에는 테이블에 앉아서도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이 더욱 강조되는 시대에 뭐든 함께 하는 것이 좋다는 가족. 김은희 대표도 이 점을 높이 산다. “보통 남자들은 숨어 있기를 좋아하잖아요. 서재나 AV룸을 원하고요. 하지만 이 집은 모든 걸 같이 한다는 게 포인트예요. 짬짬이 좋아하는 운동을 할 수 있도록 욕실에 철봉을 배치하는 등 침실에서도 충분히 일과 여가를 함께 할 수 있지요. 거실에서는 또 다른 취미 생활을 즐기고, 패밀리룸에서는 아이들과 밀도 있게 교감하고요.” 

결국 집이란 그곳에 사는 가족, 그곳에 담긴 취향과 일상의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완전체가 되는 법. 무엇보다도 아이를 위한 공간을 가꾸는 일이 가족 전체의 삶을 풍성하게 해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이 사례를 통해 아이와 함께 하는 일상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기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디자인을 맡은 김은희는 다양한 디자인 가구와 라이프스타일 소품을 수입, 판매하는 디자인 숍 짐블랑의 대표다. 두 아이의 엄마로 기능은 물론 디자인도 만족하는 아이 방 가구를 찾다 직접 디자인한 가구를 제작, 패밀리 라이프스타일을 원하는 고객을 위한 맞춤 가구와 공간 컨설팅을 선보인다. 




디자인과 시공 김은희ㆍ권민성(짐블랑, 070-8842-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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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현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