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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와 주거가 함께하는 한남동 다가구주택 '같이'의 가치
집값에 버금가는 전셋값을 마련하느라 허덕이느니 차라리 작고 오래된 주택을 고쳐 살겠다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편리한 아파트 대신 다가구주택을 고쳐 ‘함께’의 가치를 실현한 김은아 씨. 크기, 넓이에 구속되지 않고 가치로운 집에서 살고 싶어 하는 요즘 세대의 로망을 실현한 사례라 더욱 흥미롭다.

왼쪽 패션 브랜드 비주얼 디자이너를 거쳐 아라리오 크리에이티브 디자인팀 디렉터로 활동하는 김은아 씨의 한남동 주택. 오른쪽 하얀 큐브로 감싼 파사드가 골목길 풍경을 환하게 바꿔준다. 왼쪽부터 ‘따로 또 함께’ 가치 주거를 실현한 김은아 씨, 1층 카페 운영을 맡은 후배 심은하 씨, 지하 101호에 거주하는 동생 김은덕 씨.
최근 북한남삼거리가 아티스트 거리로 주목받고 있다. 초기엔 개성 있는 카페가 입소문을 타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더니 지난해부터 디자이너 사무실, 갤러리, 복합 문화 공간이 하나 둘 들어서며 살고 싶은 동네로 각광받고 있는 것. 아라리오 크리에이티브 디자인팀 디렉터로 활동하는 김은아 씨는 일찍이 이 골목의 매력을 알아봤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독립 후 거쳐온 집은 대부분 아파트 였어요. 적당한 크기에 적당한 위치, 적당한 편리함을 갖춘 집이었지만 순수한 내 색깔의 공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다 5년 전부터 내가 살고 싶은 공간에 대한 계획을 세웠어요. 주거와 사무실 등 좀 더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다가구 주택이었으면 좋겠고, 출퇴근 시간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중심지를 찾다 보니 한남동 쪽이 적격이었죠. 이 동네는 그때까지만 해도 상업 공간이 많지 않아 1~2년간 찬찬히 알아보다 예산에 맞는 작은 집을 찾을 수 있었어요.”

대지 면적 91㎡(27.6평), 지하 층과 지상 2층으로 구성된 다가구주택은 1973년에 지은 집으로 워낙 노후해 대대적 레노베이션은 필수였다. 김은아 씨는 레노베이션에 앞서 자신에게 “여기서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싱글 세대도 궁핍하지 않게 안정적이면서 쾌적한 주거를 보장받을 수 있는 집, 혼자가 아닌 여럿이 따로 또 같이 즐거운 일을 도모할 수 있는 아지트 같은 공간 등 다채로운 삶에 대한 로망이 하나 둘 떠올랐다.

“마침 근린으로 용도 변경이 가능했고, 건폐율을 따져보니 3층으로 확장할 수 있었어요. 1층은 카페, 갤러리, 사무실 등으로 사용할 수 있는 오픈 공간으로 구성하고 지하 층과 2~3층은 세대를 분리해 따로 또 함께 사는 제 나름의 셰어 하우스가 탄생했죠.”


1 2층 현관으로 들어서자마자 마주하는 다이닝 공간. 공간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아일랜드 조리대와 슬라이딩 도어 안쪽의 파란색 스메그 냉장고가 인상적이다. 2 거실에서 바라본 주방. 2층 바닥은 광택이 도는 폴리싱 타일을 깔아 긴장감을 주었다. 3 데이베드형 소파와 자이언트 사이즈의 앵글포이즈 조명등으로 심플하게 꾸민 거실.

수평과 수직으로 시각적 확장감을 더한 공간
레노베이션은 김은아씨가 패션 브랜드 오브제의 비주얼 디자이너로 근무할 때부터 매장 인테리어로 인연을 맺어온 때컴퍼지션의 윤영권 소장이 맡았다. 설계할 때 가장 중요했던 것은 구조 보강과 건물이 허용한 부피를 최대한 알뜰하게 활용하는 것. 또 그냥 작고 저렴한 집이 아니라 조형적으로도 완벽한 하나의 아이콘처럼 보이길 바란 인테리어 디자이너는 하얀 큐브 디자인을 활용해 들쑥날쑥한 외관을 시각적으로 정리했다. “작은 공간은 기능, 동선 모두 좀 더 가까이에서 들여다봐야 하죠. 공간의 여유가 있으면 디테일이 좌지우지되지 않는데, 공간이 작다 보니 1cm까지 민감해져요. 설계부터 완성까지 세부 도면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고, 그야말로 수치와의 전쟁이었죠.”

공간 확보만큼 중요한 또 하나는 창문 위치였다. 건물의 좌우와 뒤쪽으로 집들이 빈틈없이 붙어 있고 일방통행로를 사이로 다른 다가구주택과 마주보는 이 집에 최대한 큰 창으로 개방감을 주기 위해 디자이너는 창의 위치와 각도를 고민했다. “2층 거실의 경우 커다란 전면 창을 낸 대신 부엌 쪽 창은 막았죠. 3층 침실은 테라스로 통하는 창이 워낙 커 박공지붕 구조로 아늑함을 주고 건물 뒤편 계단 쪽에 창문을 배치했어요.”

계단실의 창은 집주인 김은아 씨가 매일 아침 가장 좋아하는 동네 풍경을 마주하는 공간이다. 골목길의 아침 풍경을 바라보며 2층 거실&주방으로 내려가 커피를 내리고 소파에 걸터앉아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한다면, 반대로 저녁에는 창문 너머로 환한 달님을 마주하며 하루를 정리한다.


1층에 주차 공간을 마련하면서 건폐율에 여유가 생겨 2층 주거 공간을 3층으로 확장했다. 3층은 김은아 씨의 프라이빗한 공간. 박공지붕 구조에 전체적으로 그레이 컬러로 도장해 아늑한 느낌을 살렸다. 왼편의 슬라이딩 도어 안쪽으로 화장실과 드레스룸이 자리하고 침대 맞은편 낮은 지붕 아래 책상을 두었다.


2~3층 복층 주거 공간의 백미는 현관으로 들어서자마자 만나는 키친 다이닝 공간이다. 주방을 직육면체로 관통하는 커다란 아일랜드 조리대는 테이블과 싱크대, 수납장까지 모든 기능을 하는 일종의 컨트롤 타워로 입구를 막아 답답하기는커녕 오히려 탁 트인 개방감이 전해진다. “작은 공간일수록 스케일이 큰 제품을 두면 공간감이 훨씬 살아난다”는 디자이너의 조언이 적중한 결과다.

또한 집을 설계할 때 또 하나의 난점은 책을 수납할 공간이었다. 디자이너는 계단 이면의 수직 공간을 제안했고 계단을 따라 조성한 작은 책의 빌딩, 앵글 책장이 탄생했다. 기존 화장실 위치는 바꾸지 않고 그대로 계단 뒤에 배치했는데, 이는 좁은 공간에서 쉽게 노출되는 화장실을 안으로 돌아가서 프라이빗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한 디자이너의 세심한 배려다. 


누구나 모이는 열린 공간
지하 101호는 김은아 씨의 동생, 은덕 씨의 주거공간이다. 사회 초년생이 독립 후 선택하는 주거 형태의 대부분이 원룸이라는 점이 안타까웠다는 은아 씨는 침실, 거실, 주방으로 완벽히 분리된 공간을 구성했다. “사진을 전공한 동생은 스튜디오처럼 천고가 높고 탁 트인 공간이 익숙할 텐데, 지하 공간이 잘 맞을까 우려했어요. 막상 분리해놓으니 아늑하고, 좀 더 다채로운 일상을 즐기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하더라고요.”

또 지하로 내려가는 진입로의 동선을 바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 자연광이 들고, 현관 앞으로 차 한 대를 주차할 수 있는 여유 공간이 생겼다. 지하 면적 일부를 줄이면서 1층과 보이드 구조로 연결되는 진입로를 새로 만든 덕분이다.


왼쪽 지하로 내려가는 진입로는 유리 벽을 사이로 카페와 통하는 구조다. 벽화처럼 연출한 일러스트는 내추럴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 종이에 출력한 것이 특징. 오른쪽 건물 1층은 카페, 갤러리, 사무실 등으로 사용할 수 있는 오픈 공간으로 구성. 3월 초에 카페 97page를 오픈해 동네 사람들이 편안하게 들르는 아지트가 됐다.

“1층을 임대하거나 다른 사람이 사용한다면 유리 벽을 사이로 지하 진입로와 1층이 통하는 보이드 구조를 실현하기 어려웠겠죠. 1층은 처음부터 마음 맞는 사람들이 모여 재미있는 일을 기획하거나, 함께 고민하는 아지트 같은 공간으로 기획했어요. 패션 회사에 같이 근무했던 20년 지기 후배가 맡아 카페로 운영하기로 했어요. 아이 키우며 경력이 단절된 친구가 다시 사회로 나와 뭔가 새로운 걸 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공간이에요. 얼마 전에는 서울에 놀러 온 외국인 친구들이 여기 모여 작은 콘서트를 열었어요. 우리끼리 놀 수 있는 공간으로 시작하다 보니 부담감이 전혀 없지요.(웃음)”

나를 위한 맞춤 공간이자 누구라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오픈 공간으로 셰어링 홈의 가치를 실현한 김은아 씨. 그는 이 집을 두고 여러 사람의 진심이 모여 완성한 결과물이라 말한다. 보통 인테리어를 하다 보면 이것저것 욕심을 부리게 되고, 그에 따라 예산은 한도 끝도 없이 늘어가게 마련. 하지만 디자인을 맡은 윤영권 소장은 공사 내내 “웬만하면 그냥 써라”는 말을 가장 많이 했다고 한다. 나뿐 아니라 이 집에 입주하는 모든 사람이 편안했으면 하는 진심, 합리적 비용으로도 좋은 집을 만들 수 있다는 진심, 집이 거창한 인생 역전이나 돈 버는 수단이 아닌 다채로운 삶의 모습을 담는 그릇이 되어야 한다는 진심. 이런 진심이야말로 이 시대에 가장 현실적이면서 이상적 집을 짓기 위해 필요한 레시피가 아닐까. 문득 건물 정면에 걸려 있는 ‘97page’ 사인의 의미가 궁금해졌다.

“인생을 리셋해서 다시 시작하는 페이지를 떠올렸을 때 문득 97페이지가 떠올랐죠. 100페이지에서 97페이지는 3페이지를 더해 무언가 완성한다는 희망 같고, 200페이지에서 97페이지는 아직 중간도 안 온 시점의 설렘 같은? 이 집에서의 다음 페이지가 더 기대되는 이유예요!”


디자인을 맡은 윤영권 소장은 도면을 완벽히 이해하면 어떤 솔루션도 도출할 수 있다고 믿는 현장파 디자이너. 건국대학교 실내디자인과를 졸업하고 전 디자인 어쏘시에이트에서 실무를 쌓은 뒤 2005년 디자인 스튜디오 때컴퍼지션 설립. 토미 진, 리바이스, TNGT 등 다양한 브랜드 쇼룸을 디자인하고, 2007년 서울리빙디자인페어 최우수 공간상, 움직이는 벽으로 공간을 완성한 ‘담백하게, 집’ 프로젝트로 주거 부문에서 화제를 모았다     


★ 97page’에서 찾은 작은 집 개조 팁

1 슬라이딩 도어를 활용하라 슬라이딩 도어의 가장 큰 장점은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다는 점. 이 집의 모든 방문은 슬라이딩 도어를 사용. 침실에 설치한 슬라이딩 월은 시선을 정리하는 효과가 있다.
2 인더스트리얼 소재로 개성을 더하라 집을 지어보면 손잡이, 스위치 커버, 환풍기 등 마음에 드는 건축 부자재 찾는 게 ‘더’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 두꺼비 집용 스위치, 도르레를 활용한 외벽 조명등 등 다소 투박한 인더스트리얼 소재를 활용해 재미를 주었다.
3, 7 작을수록 쪼개라 침실, 거실, 주방으로 완벽히 분리한 동생 은덕 씨의 지하 공간. 작은 화장실 역시 확장하는 대신 샤워 공간과 용변 공간을 분리했다. 침실 한쪽에 가벽을 설치해 드레스 룸으로, 계단 아래 틈새 공간은 책과 철 지난 물건을 수납하는 창고로 활용한다.
4 원하는 가구와 소품은 미리 미리 준비할 것 블랙 철제 프레임 침대와 침대 위 원목 팬, 앵글 포이즈의 자이언티 스탠드 조명등 등은 직접 구입한 것. 해외 직구를 할 때는 집을 설계할 때부터 미리 서치해 시공 시기에 맞춰 배송받는 것이 중요하다.
5 구조재도 디자인이 될 수 있다 노후한 주택은 곳곳의 구조, 마감재가 그 자체로 디자인 포인트가 될 수 있다. 외벽 안쪽의 회벽을 그대로 두거나 조적 사이의 나무 마감재를 그대로 살려 하얀 벽면의 디테일로 활용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구조 보강재로 설치한 에이치빔을 노출해 하얀 벽에 포인트를 주었다.
6 가구 배치까지 설계 단계에서 완성해라 게스트 룸 안쪽의 원목 책상은 2층 복도의 가벽을 세우기 전 방 안쪽으로 미리 옮겨둔 것. 이 집은 통로,계단 등 진입로의 폭이 좁다. 벽체를 세우기 전, 유리를 끼기 전 그 공간에서 사용하는 큰 가구를 옮겨놓아야 나중에 가구를 들여놓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는다. 시공하면서 가구를 옮겨 놓으면 공사 기간이 그만큼 늘어나니 공사 스케줄에 여유를 두는 계획이 필요하다.


★ <행복> 독자를 초대합니다
작은 다가구 주택의 개조 팁이 무궁무진한 김은아 아트디렉터의 ‘97page’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일시 5월 12일(목) 오후 2시 인원 8명 참가비 1만 원 장소 한남동 97page(용산구 한남대로 42가길 16)
신청 방법 <행복> 홈페이지 ‘오픈 하우스’ 코너에 참가하고 싶은 이유를 간단히 적어 신청해주세요


설계와 시공 윤영권(때컴퍼지션, 02-749-4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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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현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