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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소박한 아름다움으로 꾸민 영국의 코티지 가든
타샤 튜더의 풍요로운 정원을 기억하는지? 아름다운 꽃나무가 흐드러지듯 피어 있던 그곳은 영국 코티지 가든을 모티프로 한 것이다. 무질서한 가운데 조화를 이루며 자연의 오롯한 아름다움을 전하는 영국 현지의 코티지 가든을 만났다.

코티지 가든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한 앤 해서웨이의 옛집. 꽃과 나무가 한데 어우러진 모습이 아름답다.
시골 정원의 진수, 영국식 코티지 가든
장미 덩굴이 뻗어 있는 아치에는 장미꽃이 만발했다. 이 아치를 지나면 꽃밭인지, 채소밭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화단이 눈앞에 펼쳐진다. 케일, 양배추, 감자 사이로 앵초, 바이올렛, 금잔화가 줄 맞춤도 없이 마구 뒤엉켜 있다. 제멋대로인 듯싶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웃한 식물들과 만들어내는 색상의 조화가 보이고, 키의 높고 낮음을 구별한 무심한 듯 하지만 오히려 섬세한 흔적도 눈에 띈다. 이 채소꽃밭을 지나면 과실수를 키우는 과수원이 이어진다. 정원 안에 조성해 넓디넓은 과수원은 아니지만 사과, 배, 복숭아, 자두 등 없는 게 없다. 그 아래 수선화는 처음부터 거기에 자리한 것처럼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피어 있다. 아마도 평화로운 풍경을 상상해 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떠올렸을 법한 정원, 타샤 튜더에게 영감을 준 정원이 바로 영국식 시골 정원 코티지 가든이다.

잘 정돈된 현대적 코티지 가든을 제시한 로즈메리 비어리 가든. 
흑사병과 코티지 가든의 탄생
‘코티지cottage’라는 단어는 아담한 초가집을 말한다. 이 때문에 단어로만 해석하자면 ‘초가지붕을 얹은 집 앞에 펼쳐진 정원’이 코티지 가든이다. 역사학자들은 이 코티지 가든의 시작을 흑사병이 유행하던 1340년 즈음으로 본다. 전염병으로 도시 전체가 붕괴하자 사람들은 먹을거리를 구하기 위해 근교의 시골 마을로 옮겨갔고, 향기로 전염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믿으며 채소와 꽃이 뒤섞인 정원을 만들기 시작했다. 셰익스피어가 살던 1500년대에 이르러 정원의 형태와 정원에 심을 식물 종류가 기본 틀을 갖추면서 시골 정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서민의 정원이라는 개념이 강했고, 귀족이 만드는 정형적이고 인위적인 정원과 비교하면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1870년대에 이르면서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가든 디자이너 존 런던John London을 비롯해 당시 유명 작가이자 정원사이던 알렉산더 포프Alexander Pope 등이 자신의 글과 정원 디자인을 통해 코티지 가든의 아름다움을 적극적으로 알리기 시작했고, 조지 윌리엄 존슨George William Johnson은 아예 <코티지 가드너>라는 단행본을 출판했다. 그리고 드디어 윌리엄 로빈슨William Robinson과 거트루드 지킬Gertrude Jekyll이라는 당대 최고의 저널리스트와 가든 디자이너에 의해 코티지 가든이 영국 정원의 커다란 축으로 등장했다.

서그레이브 가든은 정형적 형태를 갖춘 코티지 가든을 제시했다. 
시골 문화가 귀족 문화를 바꾸다
19세기에 이르렀을 때 영국의 많은 귀족은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한 정형적이고 기하학적 패턴과 인위적 구성이 가득한 정원이 아니라 시골 서민이 스스로 조성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꽃과 채소, 과수가 흐드러진 이 정원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시골집을 구입하거나 자신의 저택 안에 코티지 가든을 흉내 내어 정원을 꾸미고자 했고, 이것이 전 유럽에 붐을 일으켰다. 지금도 영국은 물론 유럽에 코티지 가든의 명맥은 여전히 남아 있으며 끊임없이 진화 중이다. 특히 영국에서는 거트루드 지킬이 ‘영국식 꽃의 정원’이라는 형태로 디자인 면에서도 눈부시게 발전시켰다. 코티지 가든의 조성 원리를 응용해 꽃과 잎사귀 색상에 따라 식물을 모으고 구분하는 이른바 ‘색채의 정원’을 만들어낸 것. 역사상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주류가 된 문화는 대부분 귀족이나 왕족 사회에서 생겨나 서민 사회로 확대되며 전통을 이루었다. 반대로 서민 사회에서 시작된 문화가 귀족 문화까지 영향을 미친 사례를 찾아보기가 힘든데, 이 코티지 가든은 서민이 일으킨 문화가 주류를 이룬 역사적 사건이기도 하다. 코티지 가든의 원형을 보존한 곳부터 현대적 주거 환경을 고려한 정원까지, 영국 현지의 다양한 코티지 가든을 만나보자.

꽃과 채소를 풍성히 심은 바이버리 마을의 코티지 가든. 
로즈메리 비어리 코티지 가든
로즈메리 비어리Rosemary Verey는 최근까지 활동한 가든 디자이너로, 영국 전통의 코티지 가든을 그대로 이어오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디자인으로 새로운 21세기형 코티지 텃밭 정원을 선보여 널리 알려졌다. 그가 디자인한 반슬레이Barnsley 하우스에 딸린 이 정원은 채소와 꽃을 풍성하게 심는 전통 코티지 가든과 동일한 방식이다. 하지만 여기에 정방형으로 패턴을 만들고 수직의 아치를 곳곳에 배치한 뒤 식물이 교차하는 지점에 과일나무를 심는 등 작지만 정돈되고, 채소와 과일을 충분히 수확할 수 있는 정원이다.

서그레이브 코티지 가든
미국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의 선조가 살던 곳으로도 유명한 이곳은 1920년대 레지널드 블롬필트Reginald Blomfield가 좀 더 진화된 형태의 코티지 가든을 만들었다. 원래 코티지 가든은 정형성 없이 자연스러움과 흐드러짐을 강조하지만 이곳은 그런 옛 모습을 따르되 회양목 등을 이용해 정형적 형태를 갖추고, 그 안에 채소와 꽃을 풍성하게 피우는 식물을 심는 연출 방식을 택했다. 서그레이브 가든은 특히 지중해 지역에서 자생하는 허브 정원을 특화해 별도의 화단으로 만든 점이 인상적이다.

초기 코티지 가든의 모습을 간직한 앤 해서웨이의 가든. 
바이버리 마을의 코티지 가든
바이버리Bibury는 영국인이 가장 아름답다고 칭하는 코츠월드Cotswold 지역에 있는 마을이다. 이곳 정원은 그리 크지는 않지만 채소와 꽃을 혼합해 풍성하게 키우고 가축도 함께 기른다. 이곳 사람들은 매일 아침 정원을 관리하며 꽃을 가위로 잘라 식탁과 거실에 꽂아두는데, 이는 꽃을 정원에서만 즐긴 것이 아니라 집 안으로 들여와 실내를 장식하고 방향제 역할까지 하도록 한 관습이다. 이처럼 코티지 가든은 시골 사람들이 스스로 각자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대로 일궈낸 정원이다. 예쁜 집들과 어우러진 바이버리 마을의 정원은 진정한 코티지 가든의 원형을 그대로 보여준다.

앤 해서웨이의 코티지 가든
코티지 가든은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시기에 완전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앤 해서웨이는 영국 스트래트퍼드 어폰에이번이라는 도시에 살던 여인으로, 훗날 셰익스피어의 아내가 된다. 그녀가 살던 집이 지금도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데, 여기에 그 당시 만들었던 코티지 가든을 복원해놓았다. 이 정원은 초기 코티지 가든의 완벽한 형태를 그대로 보여주어 원류를 짐작게 하는 중요한 정원이다. 채소, 허브, 꽃이 특별한 경계도 없이 뒤섞여 있고, 건물을 덮은 장미 덩굴과 버드나무로 만든 아치, 스위트피로 장식한 담장 등이 초기 코티지 가든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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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사진 오경아(가든 디자이너, 오가든스 대표) | 담당 이새미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