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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하우스]집은 가족의 놀이터 준이네 집
‘내 아이가 뛰놀 수 있는 집’이라는 기본 명제를 충실히 따르는 집. ‘준이네 집’은 젊은 부부의 자유로운 발상과 자재에 대한 고정관념을 떨쳐낸 건축가가 만든 합작품이다.


판교 단독주택 단지 안에 있는 준이네 집. 아이들이 실컷 뛰놀 수 있는 집을 짓고 싶었다는 젊은 부부 김태훈ㆍ임유나 씨와 집을 놀이터보다 더 좋아하는 아이들 민준ㆍ이준 형제가 살고 있다.

(왼쪽) 나선형 계단 옆에 마련된 김태훈 씨의 서재. 이 서재에 앉아 있으면 1층 거실, 길가에서 노는 아이들이 바라다보인다.
(오른쪽) ‘준이네 집’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집의 중심은 아이들이요, 공간의 중심 또한 아이 방이다. 미끄럼틀은 자작나무로 제작한 것.


주택에 대한 로망을 꿈꾸는 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위시리스트에 올렸을 판교 단독주택 단지. ‘똑같은’ 크기로 나뉜 필지에 결코 ‘똑같지 않은’ 단독주택이 들어서기 시작한 지 어느덧 2년이 지났다. 유명 건축가가 지은 타운하우스, 공원, 학교, 대형 마트 등 블록의 특징에 따라 다양한 기반 시설이 하나둘 들어서고 그사이 신분당선도 개통됐다. <행복>도 이미 여러 차례 판교에 자리 잡은 주거 공간을 소개한 바 있다. 1블록부터 12블록까지 마치 유명 건축가의 설계 경연장이라도 된 양 갈 때마다 표정이 달라지는 판교 맵. 그중 11블록에 멀리서도 눈에 띄는 독특한 외관의 집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하얀 인조대리석으로 외벽 전체를 감싼 집은 새하얀 벽이 물결치듯 곡선으로 흐르고 꼭대기 부분에는 첨성대처럼 네모난 구멍이 뚫려 있다. 네모, 세모라는 각진 형태의 틀을 깬 이 독특한 집에는 김태훈·임유나 씨 부부, 초등학교 1학년 이준이와 다섯 살짜리 민준이 형제가 산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준이네 집’으로 통한다.

‘준이네 집’은 건축가 고기웅 씨가 설계를 맡았는데 국내 처음 인조대리석을 건물 외장재로 사용했다. 주로 싱크대 상판을 만들 때 쓰는 인조대리석은 다른 것보다 가공하기 쉬워 구멍을 뚫거나 곡면으로 처리하는 등 색다른 디자인을 적용할 수 있다. 몇 해 전 화장실을 닮은 집 ‘해우재’를 설계하면서 인조대리석을 사용하고 싶었지만 여건상 다음 기회로 미뤘다는 고기웅 씨. 내심 ‘준이네 집’에 인조대리석을 도전하고 싶었던 그는 부부에게 세 종류의 외장재를 제안했다. 나무, 벽돌, 마지막 하나가 인조대리석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부부는 인조대리석을 고른 것. 이유는 간단했다. 남들과 다른 개성 있는 형태를 원했기 때문이다. 뻔하지 않은 소재를 찾던 젊은 건축주는 불투명하면서 빛을 흡수하는 인조대리석의 미묘한 느낌이 좋았고, 덕분에 외부는 물론 내부까지 실험적인 설계를 진행할 수 있었다.

(오른쪽) 대지 265.03㎡, 연면적 242.21㎡. 1층은 거실과 주방 등 공동 생활 공간으로, 2층은 아이방과 침실, 오픈 서재로 구성됐다.

아이의 꿈이 자라는 집
김태훈·임유나 씨 부부는 30대 초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집을 짓기로 결심하고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주택의 로망을 실현했다. 이는 남편 김태훈 씨가 바란 것이기도 하다. “여의도 아파트를 팔고 집을 짓자고 했을 때 아내의 반대가 심했어요. 아이들도 아직 어리고, 관리하기도 쉽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었어요. 주말마다 일산, 죽전, 판교 등 단독주택 단지를 데리고 다니며 설득했지요. 아이들이 어리니까 더욱 주택에 살아야 한다고요.”

독특한 외관으로 서두를 시작했지만 사실 이 집의 백미는 개방적인 내부 공간이다. 외부처럼 새하얀 내부는 가족 네 명의 생활 패턴에 맞춰 다양한 층고와 동선을 보여준다. 울타리 없는 마당을 지나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공간은 거실과 주방. 통창으로 시공해 마당, 전면 도로를 향해 열려 있다. 전실에서 주방으로 이어지는 복도 벽면도 곡선으로 처리했고, 거실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또한 나선형 구조로 공간이 입체적으로 느껴진다. 2층으로 올라가면 또 하나의 뭉툭한 매스와 만나는데, 바로 아이 방이다. 앞으로는 아이 방이, 아래로는 거실이 바라다보이는 오픈된 공간은 아빠 김태훈씨의 서재. 또 3층 옥상으로 오르는 계단과 복도 사이로 주방이 내려다보이는 구조다. 그렇기 때문에 아빠가 2층 서재에, 엄마가 주 방에 있어도 아이들을 살필 수 있다. 결국 이야기가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가장 큰 흐름은 ‘가족의 소통’인 셈.

(왼쪽)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터는 바로 거실 계단. 거실은 복층 구조로 이뤄져 난방에 취약하지만, 1층부터 옥상까지 공기가 잘 순환되어 여름에는 냉방을 하지 않아도 시원하다. 천장에는 하늘을 향해 다양한 형태의 쪽창이 배치되었는데 쏟아지는 빛에 따라 공간이 무척 입체적으로 느껴진다.


“집에 놀러 오는 사람들은 먼저 독특한 외관을 보며 신기해하지만, 막상 집 안으로 들어오면 내부가 더 특별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재미있는 아이 방 인테리어 때문이죠.” 집의 정중앙에 자리 잡은 널찍한 아이 방은 들어가는 문과 나가는 문이 따로 있는데, 아이들은 이 양쪽 문 사이의 방과 복도를 뱅글뱅글 돌며 술래잡기를 한다. 방 가운데는 자작나무로 제작한 미끄럼틀이 있어 놀이터나 다름없다. 아파트에 살 때는 틈만 나면 나가자고 하던 아이들이 이젠 자전거 탈 때를 제외하고는 집에서 종일 깔깔거리며 뛰논다. “1년 동안 살아보니 아이들에게는 신도시의 단독주택 필지가 더할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더군요. 문만 열면 외부와 통하기 때문에 언제라도 밖에서 뛰놀 수 있고 안전하죠. 여름에 골프 치는 저보다 더 시커먼 손을 볼 때면 마음이 뿌듯해요. 퇴근 후 잠들기 직전까지 신나게 놀아줄 수 있다는 점도 좋고요.”



(왼쪽) 마당 덱과 통하는 주방. 거실과 주방은 이면 도로와 맞닿는 전면부가 모두 유리로 되어 있지만 햇볕이 잘 들어오는 시간에는 블라인드를 걷고 생활한다. 이 집처럼 천장이 높은 복층 구조의 주택은 겨울철 난방 효율성이 떨어지는 데, 이를 보완하는 것이 바로 채광이다.
(오른쪽) 시원한 전망을 자랑하는 2층 화장실. 화장실은 세면대와 샤워실, 용변실이 모두 분리되어 있다.


외장재로 사용한 인조대리석은 햇빛을 받으면 탈색되기 때문에 색이 빠져도 영향이 적은 하얀색을 골랐다. 단, 1년에 한번 외벽 청소가 필요하다.

상상력에 실용성 더하기
‘준이네 집’은 규모에 비해 방의 개수가 적다. 1층에 하나, 2층에 두 개뿐. 오히려 세면대, 샤워실, 용변실이 모두 구분된 화장실의 개수가 더 많다. 집을 처음 설계할 때는 둘째가 어렸기 때문에 아이 방도 하나면 충분했다. 지금도 한창 놀 때라 큰 방 하나를 놀이방으로 내주고 안방 침실에서 네 식구가 함께 생활한다. 이 집의 가장 큰 특징은 가변적이라는 것. “아이 방 양쪽에 문이 달린 것이 힌트지요. 아이들이 자라면 가운데를 가벽으로 막아 각각 두 개의 방으로 사용할 수 있어요.” 임유나 씨는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공간이기에 불필요한 장식을 최대한 배제했다. 아이를 키우는 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것이 바로 아이들 장난감을 비롯한 잔살림인데, 그 역시 가장 강조한 부분이 바로 이 ‘수납’이다. 이런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해 거실 소파 뒤, 침실 침대 맞은편, 아이 방 등 공간의 한쪽 벽은 모두 전면 수납장을 짜 넣었다. 자칫 답답해 보일 수 있어 모두 글로시한 화이트 컬러로 도장했다. 아직까지는 책장과 수납장 모두 여유로운 편이지만, 세월이 갈수록 추억이 쌓이듯 살림살이도 차곡차곡 채워질 터. 외부 덱과 바로 연결되는 주방은 이 집에서 가장 넓은 공간이다.

지금은 바비큐 그릴이 주방으로 들어와 있지만 봄부터 늦가을까지 주말이면 이웃들과 바비큐를 즐기는 것도 중요한 일과. 여름에 작은 마당에 튜브 수영장을 만들면 또래의 꼬마들도 와서 같이 논다. 단독주택 단지라 아이들이 없을까 봐 걱정했는데 초등학교도 가깝고 생각보다 또래 이웃이 많아 뭐든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회사 일로 아내를 많이 도와주지 못하는 김태훈 씨 역시 이 점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다.

(오른쪽) 1층 공용 화장실은 현관 앞에 배치했다. 아이들이 밖에서 놀다 들어오면서 바로 씻을 수 있고, 손님이 왔을 때나 외출할 때도 현관 앞에 세면대가 있어 편하다.

거실과 주방이 있는 1층을 통유리로 시공해 불편하지 않냐고 묻자, 처음에는 카페나 갤러리인 줄 알고 벨을 누르는 사람도 많았는데 오히려 블라인드를 걷고 사니 그런 일이 줄었다고 말한다. “6개월의 설계 과정 동안 단독주택 모델하우스, 타운하우스를 다니며 마음에 드는 인테리어를 점찍어 두고 건축가에게 이것저것 요청했어요. 하지만 1년 동안 살아보니 집은 역시 미적인 측면보다 실용적인 측면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건축가의 말이 무엇인지 비로소 알겠더라고요.”

단순하면 단순할수록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고 더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는 것. 그래서일까? 이 집은 비어 있으면서도 꽉 찬 달항아리 같다. 아이들이 스케치북에 그리는 그림을 떠올려보자. 엄마, 아빠 그리고 세모 모양 지붕 딸린 집을 그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동심 속 살고 싶은 집은 마당이 있어 꽃도 심고 나무도 심을 수 있다. 아마도 저도 모르게 드넓은 마당에서 자유롭게 뛰놀고 싶은 소망을 구현한 것일 터. 이 집 둘째 민준이의 스케치북에는 네모난 집 대신 동그란 놀이터가 그려져 있지 않을까 싶다.



취재 협조 고기웅사무소, 건축사사무소 53427(www.office-kokiwoo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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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현 기자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2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