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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먼트 라이프] 어느 출판 편집자의 60일 개조 일지
최근 레노베이션은 전문가와 집주인의 적절한 역할 분담을 통해 공간을 완성해내는 ‘즐거운 아트워크’라고 표현할 수 있다. 집주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충분히 배려한 디자이너의 새로운 발상과 그 속에 자신의 감각을 자연스럽게 풀어놓은 집주인의 균형적 협업. 이번 작은 아파트 개조 과정에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인테리어 트렌드가 진화하고 스타일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이 분야 전문가가 새롭게 제시하고 이끌어온 영역이었다. 그런데 최근 주거 공간을 레노베이션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집주인의 안목과 열성 그리고 인테리어 상식이 그대로 드러난다. 인터넷에서 방대한 자료를 얻는 것은 기본이고, 좀 더 시간 여유가 있는 사람은 수많은 모델하우스와 트렌디한 카페를 직접 찾아다니며 머릿속 그림을 구체화한다. 또 싱글 라이프를 즐기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내 스타일을 대변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에 대한 중요성도 한층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이다 보니 집주인과 디자이너가 단순히 의뢰인과 전문가의 관계로 만나면 무언가 부족함이 생기게 마련이다. 한 공간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차이가 있을지라도, 소통을 중심으로 한 최상의 파트너십을 이루어야 한다.

출판 기획 편집자인 집주인 선유정 씨와 여름디자인 김보영 실장이 이번 레노베이션을 함께 한 것도 이러한 관계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오랜 지인으로 지내온 터라 집주인은 디자이너가 특별히 어떤 소재와 스타일에 뛰어난지를, 디자이너는 집주인의 라이프스타일과 감성이 어떤지를 잘 파악하고 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보태면 선유정 씨의 경우 몇 해 전 같은 평형, 같은 구조의 아파트에 살아본 경험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불필요하거나 개선했으면 하는 요소부터 체크하고, 이를 전달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함께 도출해갔다. 공사 전 충분한 상의를 거치는 동안 이번 레노베이션의 흐름도 정리할 수 있었다. 공간의 큰 모양새, 즉 하드웨어적 부분은 디자이너가 실현하고 디테일한 감성을 입히는 장식 디자인은 집주인이 담당하기로. 이렇게 시작한 동부이촌동 강촌아파트 25평형(84㎡) 개조 공사는 한 달의 아이디어 미팅과 한 달 공사, 총 60일의 작업으로 완성되었다.

(왼쪽) 기존 주방을 방 안쪽으로 들이면서 한층 넓어진 거실의 시작 부분. 배수관을 가리기 위해 고안한 폭 60cm, 길이 220cm의 넉넉한 벤치는 아래로 간접 조명등을 설치해 기능적이면서도 개성 넘치는 디자인을 갖추었다. 벤치 길이에 맞춘 6인용 테이블과 사이드 바가 어우러지면서 다양한 모임 장소로 제격인 카페 스타일의 다이닝 공간이 완성되었다.


(왼쪽) 다이닝 공간 전경. 모서리 돌출 기둥의 폭에 맞추어 작은 개수대를 설치해 차를 마신 후 컵을 바로 씻어 정리할 수 있다. 선반 아래 서랍장은 테이블 세팅을 위한 식기류를 수납할 수 있다. 쿠션은 디자인 소전에서 제작.
(오른쪽) 현관 옆으로 위치한 드레스룸. 출입문과 오른쪽 행어 코너 모두 철제 프레임의 유리 소재 슬라이딩 도어를 설치했다.


경험을 바탕으로 한 공간 재구성
개조에 들어가기 전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공간 이미지, 즉 스타일 콘셉트를 잡는 일이었다. 화사하고 로맨틱하기보다는 심플하고 시크한, 다소 중성적인 스타일을 선호하는 집주인의 취향은 레스토랑 등 상업 공간 인테리어 경험이 풍부한 디자이너의 개조 스타일과도 잘 맞는 부분이다.

바닥은 투명 에폭시 마감으로, 벽부는 노출 콘크리트에 그레이 계열의 페인트를 도장하기로 결정하고, 역으로 기본 바탕에 온화한 요소를 가미하기로 했다. 거실 한쪽 벽 전체를 채우는 수납 선반과 부실별 수납장, 장식 요소를 가미한 침실 패널 벽 등등. 톤다운 컬러의 원목 소재를 곳곳에 매치하니 밋밋한 공간이 한결 입체감있고 풍성해졌다. 한편 책장 뒤나 침실 천장의 돌출 부분은 하늘 색을, 욕실 슬라이딩 도어는 노란색을 입혀 산뜻한 포인트 컬러로 특별한 재미도 연출했다.

구조적 부분 역시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해 진행했다. 종종 지인들을 초대하는 선유정 씨는 이번 기회에 ‘아지트’의 기능도 제대로 갖추기를 바랐다. 그래서 거실 속에 또 하나의 모임 공간, 즉 카페 같은 다이닝룸을 마련했다. 또 거실을 오밀조밀 구획을 짓기보다는 시원하게 트인 형태에서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지는 여유감을 누리고 싶었다. 이런 점을 반영해 디자이너는 본래 거실과 연결된 주방을 벽면 뒤쪽의 방으로 옮기자고 제안했다. 사실 2평 남짓한 작은 방을 부엌 용도로 사용한다고 하면 답답함과 환기 문제로 대부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 마련이다. 그런데 집주인은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이 아이디어가 무척 마음에 들었단다.

(왼쪽) 베란다를 확장하고 노출 콘크리트 벽면과 투명 에폭시 코팅으로 바닥을 마감해 시크한 카페 라운지를 연상케 하는 거실 전경. 한쪽 벽은 시원하게 비워 아트 오브제를 감상하는 갤러리 감각으로, 그리고 맞은편은 원목과 철제 소재를 이용해 서재 스타일로 꾸몄다. 벽면에 세워둔 작품은 사진작가 김태균 씨의 ‘If you go away’. 판화지에 인화한 뒤 액자를 입혔다. 절로 쓰다듬고 싶어지는 청동 조각품은 작가 백윤기 씨의 ‘오후’. 그레이 컬러의 거즈 소재 커튼은 디자인 소전에서 제작했다.


(왼쪽) 마주 보는 두 벽에 원목 패널을 덧대어 차분하고 안락한 이미지를 강조한 침실은 간접조명만을 이용해 은은한 조도를 유지하도록 했다. 침실 창 뒤쪽의 베란다 공간에 세탁기를 넣어 다용도실로 활용한다.
(오른쪽) 비비드한 레드 컬러 타일과 블랙 상판으로 임팩트 있는 분위기를 연출한 주방. 환기 기능을 높이기 위해 천장에 단 실링팬은 와츠에서 구입했다.


“요리하는 걸 좋아하고 손님 초대도 잦은 만큼 주방은 매우 중요한 공간이에요. 하지만 본래 있던 일자형 주방 역시 그리 넓지 않아 어느 정도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죠. 게다가 함께 모여 앉을 수 있는 다이닝 테이블은 항상 거실 일부분을 차지해야 했고요. 잡다한 물건을 넣어두는 용도로 쓰기 십상인 방을 주방으로 바꿔보자고 했을 때, 필요한 기능만 임팩트 있게 갖춘 특별한 조리 공간이 생길거란 기대감이 들었어요. 물론 저희 집처럼 복도 쪽으로 창문이 나있어 기본 환기가 되어야 현실 가능한 일이지만요.”

디자이너는 우려되는 부분을 해결하고자 몇 가지 아이디어를 더했다. 밀폐된 공간처럼 보이지 않게 문을 투명 슬라이딩 도어로 바꿔 달고, 메인 창과 기본 후드 외에 벽부용 실링팬을 부착해 환기 기능을 보다 높인 것이다. 그런가 하면 주방의 기능은 한층 넓어진 거실로 다시금 이어진다. 넉넉한 크기의 벤치와 테이블을 놓은 다이닝 공간 한쪽 벽면으로 개수대를 부착한 바를 설치해 이곳 역시 간단한 조리와 정리 작업이 이루어지도록 배려했다.

디자이너는 작은 평형 아파트에서 여유로운 기분을 느낄 수 있는 디테일도 잊지 않았다. 모든 문을 슬라이딩 도어로 교체해 각 부실이 하나로 연결된 듯한 효과를 주었고, 수납 기능을 최우선으로한 맞춤 가구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공간을 완성했다.

1 창가 쪽으로는 개인 작업을 할 수 있는 테이블을 하나 더 두었다. 책장과 연결감 있게 배치하니 자연스럽게 구획 나뉜 코너 공간이 완성되었다. 부드러운 곡선으로 입체감을 살린 화이트 상판 테이블은 인엔, 테이블 위 브라켓 조명등은 아르테미데 제품.
2 서로 다른 컬러의 슬라이딩 도어. 문들을 연결하는 벽면에도 개성적인 그림과 조각 오브제로 장식했다.


3 낮은 천장고의 거실을 라운지 스타일로 연출하고 싶다면 가구와 장식 오브제의 높이도 함께 낮춰본다. 대형 액자 역시 걸지 않고 바닥에 세워두면 공간의 여백미를 살릴 수 있다.
4 거실 벽에 설치한 오픈형 수납장은 책을 모두 채우는 대신 중앙 부분을 세로로 길게 비워 보이는 수납을 했다. 공간이 시원해 보일뿐더러 개성적인 소품 컬렉션으로 시선을 끄는 효과도 볼 수 있다.


미니멀한 공간 장식으로 풍부한 생활감을 얻다
디자이너가 완벽하게 마련한 곳곳의 수납 기능 덕에 기본 공사를 끝낸 뒤 이사한 집은 마치 갤러리 같은 인상을 풍겼다. 선유정 씨는 새로운 공간 형태가 완성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꼭 채우고 싶은 몇 가지 장식 요소를 정리, 하나씩 순서대로 들이면서 이들의 조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 그림과 아트 오브제를 위해 시원하게 비운 거실 벽면. 계절 따라 기분 따라 다양한 그림을 교체해 변화를 주고자 한만큼 조명 역시 이를 감안해 레일형으로 설치했다. 그리고 거실용 소파와 암체어는 낮고 부피감이 작은 가리모쿠60 제품을 선택해 공간의 여백을 살렸다. 이 코너에 처음 설치한 액자는 평소 친분이 있는 사진작가 김태균 씨의 작품으로 그가 집을 찾아 공간을 직접 둘러본 뒤 어울리는 작품을 선물했다고 한다. 베란다를 확장해 소파가 차지하는 면적이 준 만큼, 거실에는 개인 작업용 테이블을 하나 더 들일 수 있었다.

몇 가지 가구와 장식 오브제 외에 특별히 염두에 둔 것은 조명이다. 간접조명 특유의 은은한 멋으로 분위기를 완성하고 싶은 생각에 천장 메인 등은 따로 달지 않았지만, 대신 특별히 장식미를 갖추고 싶은 부분에는 다양한 펜던트 조명으로 임팩트를 주었다. 마지막 장식 요소인 거실 커튼은 내추럴한 코튼 거즈 소재를 선택 했다. 과감한 패턴과 컬러가 주는 재미를 느낄 수는 없지만, 공간에 따스한 느낌을 연출하는 효과를 보자면 아마도 가장 큰 주역일 것이다. 거실에 다양한 가구와 작품을 배치했을 때 결코 산만하지 않는 이유 역시 절제미를 지닌 패브릭 덕일 듯싶다.


5 욕실에는 산뜻한 노란색 문과 잘 어울리는 재활용 나무 프레임 거울을 매치했다.
6 침대 헤드보드 뒤쪽 벽면은 원목 패널로 슬라이딩 문을 만들고 45cm 폭의 수납장을 짜 넣었다.


심플&시크 스타일을 완성하기 위한
작은 집 개조 포인트

상공간 디자인을 주거 공간에 접목할 때는
에폭시 도장을 주거 공간에 활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칫 삭막하거나 차가운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한다. 색감으로 따스한 느낌을 더하는 것이 좋다. 또 넓은 라운지 형태를 갖추기 위해 베란다를 확장하는 경우도 많은데, 별도의 다용도실이 없는 집이라면 세탁기를 둘 장소도 염두에 두자. 베란다를 거실 쪽만 확장하고 침실 뒤쪽은 그대로 두어 이곳을 다용도실로 사용하는 것도 방법.

미니멀한 공간 완성을 위한 수납 아이디어 부실별로 넣어서 정리할 물건들 을 체크한 뒤, 크기와 양에 맞게 수납장을 제작한다. 침실은 침대 헤드보드 뒤쪽 벽 전체에 수납장을 짜 넣거나, 침대 상판을 제작할 때 받침대 부분을 박스 형태로 만들어 계절 이불을 넣어두면 좋다.



디자인 및 시공 디자인 여름(02-540-3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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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보리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2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