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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의 백가기행]지리산 자연가 청산은 아무 말이 없는데 꽃은 피어 웃고
지리산, 이름만 들어도 숨 가쁜 명산 중 명산이며 산세 험하기로 유명한 그곳에 인적 드문 신비로운 마을 ‘두지터’가 있다. 굽이진 산길을 매일 오르며 산야초를 캐고, 봄소식을 가장 먼저 알리는 여린 잎으로 차를 덖으며 자연의 삶을 살고 있는 약초꾼 문상희 씨. 그가 손수 지은 황토집 ‘자연가 自然家’의 툇마루에 앉아 있으면 바람에 실려 온 흙냄새, 나무 냄새, 사람 냄새까지 온통 그리운 냄새가 진동한다.


산야초 명인 문상희 씨의 황토집. 창암산이 바라보이는 이곳에 20년 전 터를 잡고 자연 재료로 직접 집을 지었다.

“지리산에 있으면 굶어 죽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없다.”
지리산에서 수십 년 살아온 산사람들의 이야기다. 나는 이 말만 생각하면 마음이 놓인다. 또 기분이 흐뭇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 어디론가 도망가야 한다면 지리산으로 갈 것이다. 지리산은 이처럼 후덕한 산이다. 인삼 빼고는 없는 약초가 없어 그만큼 뜯어 먹을 먹을거리도 많다. 지리산의 둘레는 대략 500리 정도다. 지리산 주위에 포진한 올망졸망한 동네를 따라서 한 바퀴 돈다고 가정한다면 그 거리는 850리가 된다. 이 둘레길을 따라 걸으려면 열흘은 족히 걸린다. 그만큼 품이 넓다.

지리산 남쪽은 쌍계사가 있는 화개와 악양이다. 섬진강을 끼고 있는 데다 들판도 넓고 남향이라 살기도 좋다. 지리산 북쪽은 지대가 높아 상대적으로 춥다. 실상사 쪽에는 귀농, 귀촌 운동으로 도시 사람들이 많이 내려와 살고 있다. 북쪽의 또 한 군데가 함양군 마천면이다. 천왕봉에서 내려온 칠선계곡이 이 마천면 쪽으로 내려온다. 칠선계곡은 우리나라 계곡 중에서 가장 험한 계곡으로 알려져 있어 초보 등산객은 이 골짜기를 올라가지 못한다. 전문 산악인이나 출입하는 난이도 높은 계곡인 것이다. 그만큼 인적이 드문 지역이라 신비로운 장소로 여기던 곳이고, 지리산의 여러 가지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곳이다.

우선 변강쇠의 전설이 있는 벽송사 碧松寺가 여기에 있다. 마천에서 올라가면 추성골이 나오는데 추성 樞星은 북두칠성을 가리킨다. 계룡산 학하리에도 추성낙지 樞星落地라는 명당이 전해져 오는데, 지리산 칠선계곡에도 추성이 떨어진 모양이다. 칠성 七星과 칠선 七仙은 왠지 궁합이 맞는 조합이라고 생각한다. 이 추성골에서 가파른 고갯길을 30분 정도 더 올라가다 보면 조그만 분지같이 생긴 터가 하나 나온다. 여기가 ‘두지터’이다. 쌀을 담아놓는 용기가 두지(뒤주)다. 옛날에 가락국의 마지막 왕인 구령왕이 전쟁에서 밀려 지리산에 성을 쌓고 숨었다고 하는데, 그 시절에 군량미를 저장해놓던 장소가 바로 이 두지터였다고 전해진다. 그만큼 외부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 은밀한 지형인 곳이다. 과거에는 난공불락의 칠선계곡이 둘러싸고 있어서 일반인이 접근하기도 어려웠고, 숨어 살기에 적당하던 곳이다. 또 1950~60년대 지리산 산골짜기에 흩어져 살던 화전민들을 모아 이주시키기 위해 만든 부락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왼쪽) 작은 서안과 이불 한 채, 분재 화분이 전부인 온돌방은 세상 시름을 잊게 해주는 치유의 공간이다.

이런 곳에서 사는 사람은 어떤 팔자인가? 아무나 이런 데서 사는 게 아니다. 팔자에 타고나야만 이런 천장지지 天藏之地(하늘이 감추고 땅이 숨겨놓은) 터에서 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이 뒤주터의 터줏대감은 문상희(57세) 씨다. 20년 전부터 여기에 들어와 살고 있다. 진주가 고향이고, 지금도 아내와 자식들은 도시 진주에서 산다. 어릴 때부터 산을 좋아하다 보니 결국 ‘산팔자’가 되었다.


(왼쪽) 자연가라는 풋풋한 이름이 소박한 흙집과 닮아 있다.
(오른쪽) 툇마루 앞에는 아담한 야생화 정원이 펼쳐진다. 이제 곧 매발톱과 노루귀, 원추리, 불도화 등이 꽃을 피울 것이다.


약초 냄새가 그윽한 황토 집 짓고
칠선계곡 굽이진 흙길을 따라 30분 정도 올라 두지터를 지나면 현재 다섯 가구가 모여 살고 있다. 문상희 씨의 집은 맨 꼭대기 황토집이다. 방 두 칸짜리 황토집의 입구에는 ‘자연가’ 自然家라고 나무에 새긴 현판이 걸려 있다. 제자백가 중 법가, 유가, 도가, 종횡가라는 이름은 들어보았지만 ‘자연가’는 들어보지 못했으나 그 작명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노자는 ‘도법자연 道法自然’이라고 했다.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는 뜻이다. 동양에서 말하는 궁극적인 도는 결국 자연에 있다는 말이다. 자연의 이치를 알려면 자연에 몸을 담고 살아보아야 한다. 문상희 씨는 꿋꿋하게 지리산에서 살았으니 자연가라는 현판을 달 만한 자격이 있는 것이다.

(왼쪽) 두지터 초입의 게스트 하우스. 황토에 옥가루를 넣어 만든 현대식 황토집으로 두지터를 찾는 손님은 모두 이곳에서 묵는다.


(왼쪽) 말린 상황버섯은 귀한 약재.
(오른쪽) 바위 아래 복수초가 꽃을 피우며 봄의 시작을 알린다.


질문을 던졌다. “뭘 먹고 사는가?” “지리산 산신이 나를 먹여 살린다. 여기 오면 굶어 죽지 않는다. 약초가 많다. 몇 년 전에는 상황버섯을 많이 땄다. 암에 좋다고 해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버섯이다. 이거 팔아서 먹고살았다. 요즘에는 차 茶를 만든다. 이름은 초향 草香이다. 칠선계곡 두지터에서 자생하는 산야초와 나물을 따서 만든 차다. 곰취, 취나물, 산마늘, 청옥, 참나물, 머위, 금낭화, 고사리 등등이다. 4월 20일 무렵부터 따기 시작해 단오 이전까지의 어린순 荀으로 만든다. 순을 따서 뜨거운 가마솥에 일단 덖은 다음 손으로 비비고 말려서 발효를 억제시킨 순녹차 荀綠茶다.

여기 다녀간 서울 사람들이나 사찰의 스님들이 많이 사간다.” “이 근방에 어떤 약초가 쓸 만한가, 예를 하나만 들어주시라?” “벌나무가 있다. 한자로는 봉목 蜂木이라고 부른다. 이 나무를 달여 먹으면 간 肝에 좋다. 술을 많이 먹어서 간이 심하게 망가진 조폭들도 여기 와서 이 벌나무를 몇 달간 달여 먹고 좋아진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조폭들은 몸이 생명이다. 몸으로 벌어먹는 직업 아닌가. 그래서 몸 생각을 아주 많이 한다. 몸이 아프면 벌벌 떨고, 몸에 좋다면 끝까지 구해서 먹는 습관이 있다. 지리산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아픈 사람이 여기에 많이 오는가?” “상당히 많이 오는 편이다. 병원에서 포기한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의지하는 것이 자연요법이다. 어떻게 보면 지리산이 자연요법의 메카다. 약초도 많고, 기후가 좋고, 산이 넓기 때문이다. 우울증이 있거나 몸이 좋지 않던 사람들이 지리산에 와서 효과를 많이 보았다.”

“이 집은 어떤 재료를 썼는가, 황토만 사용했는가?” “황토에다 옥가루를 혼합했다. 아는 후배가 옥을 판매하는데, 그 후배에게서 옥가루를 좀 얻었다. 옥가루 세 포대를 얻어서 황토하고 버무려 이 방바닥에 발랐다. 이 온돌방은 옥이 들어가 있는 방이다. 장작을 때고 자보면 확실히 몸이 개운하다. 특히 땀이 많이 나오는데, 옥이 땀을 배출하는 작용이 강한 것 같다.”

우리나라 온돌방 가운데 옥이 들어간 방은 이 방이 유일하지 않을까. 그는 황토를 비롯해 집 짓는 모든 재료를 차도 오르지 않는 길을 따라 지게로 날라 손수 지었다. 나무는 살아 있는 자연에서 얻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가치는 돈으로 따질 수 없다. 황토집에 걸맞은 인테리어도 아마추어 솜씨라 하기에는 제법 멋스럽다. 고향에서 얻어온 한옥 문짝을 천장에 매다니 조명 갓이 되었다. 두지터 초입에는 수영장이 딸린 현대식 황토집이 있다. 파란색 페인트를 칠한 도시 수영장 모습이다. 자연 속에 이런 인공 수영장이 있으니 또 색다르다. 수영을 하다 바윗돌에 앉아 쉬면 그 자체로 자연 삼림욕이다. 이 현대식 황토집은 포클레인을 동원해 지었다. 아무리 중장비라 해도 굽이진 산길을 올라올 수는 없을 터. 이 포클레인을 헬기로 날랐다고 하니 계곡에 황토집 짓고 살고 싶었던 주인장의 열망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왼쪽) 지리산 칠선계곡을 오르는 굽이진 길의 초입. 적막함이 감도는 이곳에서 ‘사무사 思無邪’(마음에 간사한 생각이 없다)를 깨닫는다.
(오른쪽) 두지터 초입에는 약초 갤러리와 찻방을 준비 중이다. 문상희 씨가 딴 산야초와 약초술이 전시되어 있다. 테이블, 장 등 하나씩 만들어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리산 치유산방 ‘자연가’
언젠가 이 ‘백가기행’ 연재에서도 필자가 언급한 바 있지만, 온돌방이야말로 건강의 첩경이고 한국 전통 주택의 최대 장점이다. 간 肝 팔아서, 신경 써서 먹고사는 게 범부의 생활이다. 스트레스는 긴장을 유발시키고, 긴장은 근육을 경직시키는데 이 경직된 근육과 경락을 풀어주어야만 큰 병에 걸리지 않는다. 요즘은 다 잘 먹기 때문에 조선시대처럼 못 먹어서 생기는 병은 적다. 대부분 긴장에서 병이 온다. 이 긴장이 축적되면 등 쪽에 문제가 나타난다. 등과 어깨 그리고 목뒤가 굳는 것이다. 이걸 푸는 데는 뜨거운 온돌방이 최고다.
돌이라는 것이 원래 기를 품고 있는 물건이고, 온돌은 이 돌에다가 불을 가열시키는 장치다. 불도 사람을 거듭나게 하는 신물 神物이다. 가열된 돌 위에 등을 대고 누워 있으면 모든 긴장이 풀린다. 매일 저녁 집에 들어와 온돌 위에 자면서 등 쪽의 긴장을 풀면 건강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온돌방에 옥을 첨가했으니 그 효과가 얼마나 좋겠는가. 지리산 칠선계곡 두지터의 이 ‘자연가’ 방이야말로 최고의 명품 온돌방이 아닌가.

“이 산속에 살면서 느끼는 풍류는 없는가?” “‘청산불어화장소 靑山不語花長笑 수류무성조작가 水流無聲鳥嚼歌’라는 옛 시가 있다. ‘청산은 아무 말이 없는데 꽃은 피어 웃고 있고, 계곡의 흐르는 물은 말을 하지 않는데 새는 노래를 부르고 있구나’라는 내용이다. 자연에 살면서 느끼는 미묘한 정서라고나 할까. 이런 재미를 못 느끼면 산에 사는 게 무료해질 수 있다. 또 이 맛을 느끼면 산에 오래 산다.”

청운 靑雲 조용헌 趙龍憲 선생 동양학자이자 칼럼니스트인 조용헌 선생은 ‘백가기행’을 통해 가내구원 家內救援을 이야기합니다. 위로와 휴식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집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행복>과 함께 각양각색의 집을 돌아보며 그가 찾아낸 가내구원의 공간은 다실, 구들장, 중정이라 합니다. 그중에서도 현대인이 꼭 갖추어야 할 공간으로 다실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5백 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조용헌의 고수 기행> <그림과 함께 보는 조용헌의 담화> 그리고 <행복>에 연재되었던 백가기행 칼럼을 엮어 출간한 <조용헌의 백가기행 白家紀行>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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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용헌 사진 임민철 담당 이지현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