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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하우스]이도환경 디자인 김한석 대표 디자이너가 사는 집
언젠가 책에서 유명 건축가가 사는 집을 본 적이 있다. 흥미로운 점은 콘크리트 같은 차가운 소재의 작업을 주로 선보이는 건축가들이 사는 집이 의외로 아늑하다는 것. 실험적인 건축을 갈망하는 그들 역시 현실 속에서의 집은 그저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디자이너 김한석 씨의 레노베이션 스토리가 더욱 기대되었던것은 “사람 사는 집 다 똑같지요”라는 담백한 한마디 때문이었다. 사는 이의 편의에 의해 군더더기 없이 꾸며진 ‘인스턴트’ 레노베이션.


건축가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이도환경디자인의 김한석 대표와 그의 아내 이도연 씨. 미술 작품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거실 공간은 조명 박스를 없애 한층 시원한 느낌이다.

건축가나 디자이너가 시공한 집을 취재할 때면 그들이 사는 진짜 집이 궁금해진다. 이도환경디자인의 김한석 대표.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알려졌지만 실은 건축가이고, 베테랑 스타일리스트도 인정한 세심한 감각의 소유자이자 작은 갤러리를 운영하기까지. 인테리어 스타일리스트 홍희수 씨, 이정화 씨 등 여러 인물을 통해 그에 관한 정보를 익히 들어왔기에 그가 사는 집 또한 궁금하던 차였다. 그러던 어느 날, ‘소개할 만한 좋은 집 없냐’는 기자의 청에 오히려 귀가 솔깃한 제안을 한다. “굿 good 디자인을 원하십니까, 베터 better 디자인을 원하십니까? 화려한 기교는 없지만 그저 네 식구 살기 편하게 고친 집은 있습니다. 바로 저희 집입니다.”


집의 가장 큰 특징은 진한 블루 컬러 벽지를 사용했다는 점. 자칫 어두워 보일 수 있어 밝은 색 가죽 소파와 내추럴한 원목 소재의 테이블, 의자 등을 매치했다. 레일 위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삼파장 조명등이 공간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정면의 의자 그림은 이탈리아 작가 파비오 칼베티의 작품이다.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된 건축가 앞서 말했듯이 그는 건축가이다. 한 과목의 과락도 인정하지 않는 어려운 건축사 자격증을 따고 모 건설사에 입사한 그는 서른 살에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맞는다. 반복되는 설계 작업에 염증을 느끼다 IMF 무렵 미술 유학을 결심하고 과감히 회사를 그만둔 것. 하지만 이미 두 아이의 아빠였던 그는 계획을 일부 수정해 인테리어 사무실을 운영하던 후배를 잠시 돕게 된다. 건축가로 활동하던 동기들은 ‘인테리어 디자인?’ 하며 의아해했지만, 그를 계기로 현실과 동떨어진 설계보다 생활에 밀접한 인테리어 디자인에 더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는 김한석 씨. 그렇게 몸소 부딪쳐가며 실내 디자인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뜬다.

“보통 건축 하는 사람은 인테리어를 할 수 있고, 인테리어 하는 사람은 건축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저도 인테리어를 직접 해보고서야 건축과 인테리어는 그저 다른 분야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애초부터 카테고리가 다른 거죠. 건축 하는 사람은 큰 덩어리를 봅니다. 인테리어는 면을 보아야 하고요.”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빈 공간을 마주하며 막막하기 일쑤였다. 그러던 중 두 번째 유럽 여행을 떠났다. 처음 유럽에 갔을 때는 다른 관광객처럼 ‘책’에서 본 풍경을 보고, 웃고, 찍었을 뿐이다. 하지만 인테리어를 시작하고 두 번째 찾은 유럽은 달랐다. 단순히 건물을 보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문을 보고, 창을 보고, 몰딩을 어떻게 했는지, 조명등을 몇 개 달았는지…. 작은 걸 들여다보기 시작하자 더 큰 세상이 열리더라는 것. 처음에는 ‘설계를 하다 디자인을 할 수 있을까’ 스스로도 의구심이 들었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인테리어를 한 사람이 건축을 하면 굉장히 알찬 공간이 나오겠구나!’라고.


(왼쪽)
 침실과 욕실, 드레스 룸이 만나는 좁은 공간에 전면 거울을 설치해 확장 효과를 주었다.
(오른족) 서재를 두지 않고 침실 한쪽에 맞춤 제작한 책장과 책상을 배치해 작업 공간으로 활용한다.

일주일 만에 완성한 ‘인스턴트 홈’
“얼마 전 유리 시공하는 사장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집 욕실 유리창이 깨졌는데, 두 달이 지나도록 아직까지 손을 못 봤다고요. 제가 인테리어 디자이너이니 완벽하게 세팅하고 살 것 같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똑같죠.” 지은 지 6년 된 55평형 주상복합 아파트. 복도 왼쪽으로는 주방과 거실이, 오른쪽으로는 침실 3개가 나열된 평범한 구조로, 적당히 길들어 윤기가 흐르는 바닥재와 어두운 벽면, 적재적소에 배치된 작품이 공간에 녹아 있다. 그의 집에서는 눈을 사로잡는 소품이나 마감재의 화려한 기교는 찾아보기 힘들다.

“주방과 거실은 벽으로 공간이 분리된 구조였어요. 문과 창틀, 싱크대 등 모든 마감재는 체리목이었죠. 물론 주방과 거실 사이의 벽을 없애는 어느 정도의 구조 변경은 필요했지만 신축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파트를 단지 취향을 이유로 모두 뜯어내고 레노베이션하는 것은 다소 소모적인 일이라 생각했어요. 아내 역시 같은 생각이었기 때문에 꼭 필요한 도배, 시트지, 조명 공사만 했어요.”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천장이다. 언뜻 보면 평범하지 만 사실 이 ‘평범한 천장’을 만들기 위해 조명 박스를 모두 없앤 것이 포인트다. 보통 천장을 높이기 위해 골조를 모두 뜯어내는데 이렇게 하려면 전체 공사가 불가피하므로 천장의 가장 낮은 면에 맞추어 메우는 방법을 택했다. “천장이 답답해 보이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높이 차이예요. 높으면서 복잡한 것보다 낮더라도 일률적으로 맞춰주면 공간이 탁 트여보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왼쪽) 정광호 작가의 벽면 오브제와 원목 테이블이 잘 어우러지는 다이닝 룸.

또한 주거 공간에서 흔히 사용하지 않는 진한 블루 컬러 벽지를 메인으로 사용했다. 갤러리를 운영한 경험을 토대로 ‘갤러리 홈’으로 꾸밀 때의 노하우를 여지없이 발휘했다. 보통 그림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벽 컬러를 화이트로 선택하는데, 집은 갤러리처럼 넓지 않기 때문에 자칫 서로 다른 느낌의 작품끼리 부딪힐 수 있다는 것. 벽이 어두우면 공간의 중심을 잡아줄 수 있다는 것이 평소 그의 지론이다. 또한 몰딩 자리에 조명등과 작품을 걸 수 있도록 알루미늄 레일을 설치해 위치와 조도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게 했다. 가구 역시 기존에 사용하던것을 활용했다. 원래 침대 헤드가 있어야 할 벽면에 전면 책장을 짜 넣고, 창가 쪽에 침대를 배치하면서 합판으로 커다란 헤드보드를 제작했다. 책상과 책장은 목공사 때 제작한 것을 필름지로 마감했다. 만약 목공사를 진행할 경우에는 합판에 무늬목을 입혀 맞춤 제작하기보다 목공으로 제작한 뒤 필름지를 씌우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비용이 절감되는 것은 물론 페인트칠에 비해 내구성이 좋고, 또 새집증후군이나 기타 유해한 냄새가 없기 때문이다.

‘이도환경디자인’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친환경’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 반포에 위치한 사무실은 돌과 철판 등 가공하지 않은 천연 마감재를 많이 사용했다. 가공하지 않은 마감재의 매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진가를 발휘한다. 가령 벽돌이 낡았다고 치자. 그것을 ‘낡은 벽돌’이라고 하지 ‘더러운 벽돌’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또 오래된 나무를 ‘더러워진 나무’가 아니라 ‘고재’라 하는 것처럼, 이것이 바로 가공하지 않는 마감재의 매력이다. 사무실 벽 마감으로 철판을 사용했는데 그냥 자연스럽게 녹슬어가는 느낌이 좋단다. “사실 초간단으로 하기 위해 필름지로 래핑했어요. 하지만 이런 ‘인스턴트’식 레노베이션이 꼭 에코와 반하는 일이라 생각하지는 않아요. 필요에 의한 최소한의 공사로 자연스러운 멋을 살리는 것도 에코 실천법이 될 수 있지요.”

좋은 집의 중심은 ‘사람’이다 그는 무엇보다 클라이언트와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몇 년 전 한 신도시에서 여러 명의 건축가가 각각 설계해서 집을 한 채씩 짓고 후분양한 프로젝트가 있었어요. 당시 무척 화제였는데, 사실은 난센스지요. 집은 무척 주관적이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낙수장은 천장이 무척 낮은데 이는 건축주 에드가 파크만의 키가 무척 작았기때문이죠. 사는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하는것, 그것이 설계의 첫 단계입니다.” 또한 디자인이 멋진 집이 꼭 살기 좋은 집은 아니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앞에 설명한 낙수장은 구경하는 사람이 하도 많아 지금은 박물관으로 용도가 바뀌었는데, 사실 사람이 살 수 없다는 것이 용도 변경의 가장 큰 이유다. 폭포 위에 지어 비경을 뽐내지만 물소리 때문에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 없다는 것. 결국 집은 그 공간에 머무는 ‘사람’ 중심이어야 하는 것을 증명하는 좋은 사례다.


1 현관에 들어서면 마주하는 거울은 스틸 프레임으로 맞춤 제작한 것.
2 기존에 사용하던 침대 헤드 뒤편에 커다란 헤드보드를 더해 필름지로 래핑하니 멋진 디자인 가구가 완성되었다. 고속터미널 상가에서 맞춘 그레이 컬러 배딩이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해준다.

3 ‘가수’가 꿈이라는 딸 해진의 방. 미국 유학 중인 딸은 하루에도 몇 번씩 인터넷 전화로 아빠의 안부를 묻곤 한다.
4 그는 아이들 방에도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미술 작품 한두 점 걸어두라고 조언한다. 그림은 생활의 일부이자 정서에 영향을 주므로 자연스레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 ‘이도’에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습니다. 다를 이 異, 그림 도 圖. 다른 그림을 본다, 즉 ‘시각을 다르게 해서 세상을 바라보라’는 뜻이죠. 이도는 영어로는 ‘I do’라고 읽어요. 영어에서 ‘I do’라는 표현을 가장 많이 쓰는 데가 바로 결혼식장인데 이 짧은 한마디에 수많은 의미가 담겨 있어요. 사랑, 결단, 간절함, 책임감…. 처음에 내뱉은 ‘I do’의 마음을 담아, 초심을 그대로 이어가겠다는 의미로 지은 이름이죠.” 인테리어라는 한 우물만 판 지 10년, 이제 김한석 씨는 다시 건축을 시작하려고 한다. 나름대로 스페셜리스트가 되었다고 자부하기에 이제 ‘사람살이’를 이해한 행복한 집 짓기를 시작할 예정이다. 첫 번째 클라이언트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2년 후 완성할 집은 세 가지 도면으로 설계를 마친 상태.

“가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집이에요. 집 안에 또 하나의 네모 상자가 있는 형태로 집 안과 밖에 모두 정원이 있어요. 한옥과 같은 맥락입니다. 위에 천창이 있어서 안에서 하늘을 볼 수 있고, 그 창 위로 나무 한 그루가 지나가는 거죠.” 유학 중인 딸과 아들이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면 함께 살 집. 마당에는 손님 초대를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널찍한 아웃도어용 테이블을 놓을 것이고, 그 옆에는 가족 음악단을 만들고 싶어 하는 아빠의 색소폰과 딸 해진의 첼로가 나란히 놓여 있을 것이다. 괜한 소품 하나 두면 폐가 될 것 같은 말끔한 공간에 디스플레이용 가구를 나열한 공간이 아닌 사람살이가 느껴지는 집을 상상하며 2년 후의 약속을 기대해본다.

김한석 대표가 말하는 ‘좋은 집’의 조건
1 그림을 걸어라
김한석 대표는 아이 방에도 그림을 걸어두는 섬세한 갤러리스트이다. 아이 방에는 앤디 워홀의 아트 상품과 디스플레이용으로 그린 (사인이 없는 회화) 작품을 걸어두었다. 거실에는 정광호 작가의 낙엽 오브제, 김형섭 작가의 사진 작품 ‘스위트’ 시리즈와 피카소의 포스터를 배치했다. 값비싼 작품을 나열하여 각자 강한 소리를 내게 하기보다 때론 캐주얼하게 포스터 한두 점 붙여두고 생활의 일부로 즐기라고 조언한다.
2 살짝 어두워도 좋다 거실과 침실 모두 가운데 등갓을 없애고 벽면을 향한 삼파장 램프를 달아 간접 조명을 설치했다. 사실 주거 공간에서는 전체 조명보다 필요할 때마다 국부 조명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어떤 목적이 있을 때만 전체를 밝게 평소에는 스탠드를 사용하는 것이 이상적. 빛 투과율 70%의 간접 조명 바리솔 barrisol을 시공하면 은은한 조도를 만들 수 있다.
3 TV를 없애라 TV를 안 보면 수명이 10년 연장된다는 말이 있다. 하루 한두 시간씩 TV를 보지 않고 활용하면 그만큼 시간이 차곡차곡 쌓인다는 뜻. 처음에는 불안하지만 한 달 정도 지나면 익숙해진다고.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는 소소한 취미를 즐기기 위해 좋은 스피커를 고르고 거실을 서재로 만들어 보다 업그레이드된 취향을 즐길 수 있다. 리빙 룸이 확장되면 가족의 웃음소리도 그만큼 더 커질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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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현 기자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