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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무모했지만 가장 행복하던 시절

지금부터 20년 전쯤 결혼을 할 때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당시 수입이라곤 시간강사 월급이 전부였다. 나를 딱하게 여긴 선배들이 만들어준 시간강사 자리였다. 한 곳은 군산에 있는 대학이었고 다른 한 곳은 천안이었다. 군산은 새벽 4시에 일어나 첫 고속버스를 타야 9시에 시작하는 첫 수업에 맞출 수 있었다. 이틀에 할 수업을 하루에 몰아서 하는 탓에 점심도 간신히 먹고 오후 6시까지 연속해서 수업을 했다. 수업이 끝나면 버스를 타고 다시 터미널에 와 표를 끊고 기다리는 동안 포장마차에서 저녁을 해결했다. 해산물 하나를 시키고 우동을 먹었다. 물론 소주도 한잔했다. 군산의 신선한 해산물을 초장에 찍어 먹던 맛이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다. 수업 중 힘이 들 때면 터미널 옆 포장마차에서 한잔할 생각에 피곤함을 이겨내곤 했다.

소주 한잔에 버스에서 곯아떨어지면 그래도 행복했다. 하지만 어떤 날은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럴 때면 달리는 창밖을 바라보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해답 없는 삶을 생각했다. 서울에 도착해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거의 자정이다. 그러면 정식으로 저녁밥을 먹고 그 당시 한 살이던 채린이와 놀다가 아이가 잠이 들면 나는 다시 책상에 앉아 공부를 했다. 천안은 강남 쪽에서 통학버스가 있었다. 군산처럼 그렇게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됐다. 당시 매주 같은 시간에 버스를 타던 수녀님이 계셨다. 아침 통학 버스에서 수녀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가는 길이 행복했다. 쉬는 시간에 잠시 보건실에 들러 수녀님이 타주는 커피를 한잔 마시는 즐거움 역시 컸다.

연속해서 강의를 끝내고 돌아오는 스쿨버스를 타면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있었다. 서울에 도착하면 정류장 앞에 생맥줏집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학생들과 같이 통닭에 맥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길 했다. 물론 술값은 내가 박봉인 강사료를 털어서 냈다. 수업 중 힘들면 통닭에 생맥주 한잔을 마실 수 있다는 생각에 다시 힘을 얻곤 했다. 당시는 가난하다거나 불행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한 달에 한 번 통장을 정리하면서 “드르륵 드르륵” 통장에 찍히는 소리가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당시 시간강사료가 생활에 어떤 도움이 되었을까 생각하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그래도 행복하던 시절을 꼽으라면 가난하던 그때를 꼽을 수 있어서 좋다.

학위를 마치고 파리로 공부하러 가기로 마음 먹은 것은 ‘앞으로 우리 식구에게 좋은 추억이 될 수도 있다’라는 무모한 생각 때문이었다. 경제적으로 시간강사의 생활과 별반 달라질 것도 없는 상황이라면 파리의 다락방이 더 재미있을 것 같았다. 이런 내 생각에 부모님은 걱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봤지만 나는 내심 들떠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달리 뾰족한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대안이라고 해봐야 ‘그래 가보자!’ 하나였다 어렵게 구한 다락방은 세 식구가 한꺼번에 움직일 수 없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천창엔 하늘이 있었다. 매일 비가 오는 파리의 연말이 주는 스산함을 떨쳐버리기 위해 가장 작은 차를 빌려 파리에서 출발해 프랑스 남쪽을 지나 스페인까지 여행을 했다. 파리 다락방에서 추위에 떨 바에는 따뜻한 곳으로 가면 더 행복할 것 같다고 생각한 것이다.

당시 파리 다락방에서 식구들이 다 잠들고 나면 홀로 천창 밖으로 내리는 비를 바라보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지 생각하면서 한숨을 내쉬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은 어떻게 그 어려운 시절을 보냈는지 기억이 어렴풋하다. 하지만 확실히 생각나는 건 무모했지만 그때가 가장 행복하던 시절이라는 것뿐이다. 사람들은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늙어갈까?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늙어가겠지만 내 생각으로는 무모함을 하나 둘 버리는 순간부터 더 늙어가지 않을까? 다가오는 내년엔 이런 무모함이 나를 찾아올 수 있기를, 그리고 그 무모함을 따라 행복이 찾아오기를 기다려본다.


소득이 늘고 명예를 얻으면 행복할 것 같아서 숨 가쁘게 살다가, 문득 그것이 없이도 행복하던 삶의 순간을 떠올리면서 우리는 그제야 삶의 쉼표를 찍습니다. 다 가졌는데도 즐기지 못하는 삶 대신 조금 부족해도 매사가 즐겁고 만족스러운 삶, 그것이 가장 명예롭고 부유한 인생 아닐까요.

글을 쓴 이기진 교수는 서강대 물리학과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물리학자입니다. 그는 아르메니아공화국에서 연구를 했고, 파리에서 박사 과정을 마쳤으며, 일본의 대학에서도 7년간 연구했습니다. 각 도시에서 연구하는 동안 가족과 함께 벼룩시장을 찾아다니며 이 빠진 백자나 호랑이 조각 등을 사 모으는 딴짓을 했으며, 그런 아빠를 따라다닌 딸 채린은 인기 아이돌 그룹 2NE1의 씨엘이라는 스타가 되었습니다. 학교 앞 철공소에서 용접해 만든 로봇과 의자를 아트페어에 내고, 과자나 빵을 직접 구워 선물하며 즐겁게 사는 이기진 교수는 나이 먹은 사람에게, 특히 나이 든 남자일수록 행복한 인생을 사는 데 몰입할 딴짓이 꼭 필요하다고 조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