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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이 인간 앞으로 뭐가 되겠나!

내가 올빼미형 인간에서 아침형 인간으로 바뀐 것은 14년 전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후였다. 하루아침에 바로 아침형 인간이 되어버렸다. 나는 일본 유학 시절까지는 밤에 절대 잠을 잘 수 없는 DNA를 타고난 인간쯤으로 생각하고 생활했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와 아침 9시에 수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한 톨 미련도 없이 올빼미형 생활 습관을 바로 버렸다. 일본에 있는 7년 동안 내 생활은 단조로웠다. 밤 12시 넘어까지 실험실에서 일하고 들어와 다시 시작하는 아침처럼 밥을 먹고 새벽 동이 틀 무렵까지 뭔가를 해야 잠이 왔다. 그런데 책을 읽는다든지 낮에 읽다 만 논문을 다시 읽는다든지 하는 발전적인 일은 하지 않았다. 주로 음악을 들으면서 뭔가를 했지만 특별한 무엇을 했는지 이상하게 생각나지 않는다.

당시 인터넷이 없는 상황이었으니 아마도 아날로그적 일을 했을 것이다. 이바라키 현 쓰쿠바 시의 변두리 소나무 숲 속에 자리 잡은 관사는 그렇게 조용할 수가 없었다. 밤이 깊어지는 것에 비례해 음악 소리는 커져만 갔다. 나무로 지은 관사에서 소리가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볼륨을 반복해서 줄여가면서 음악을 들어야 했다. 당시 내가 왜 음악을 들어야 했는지 그 이유를 찾으라면 힘들겠지만, 음악이 없었다면 무척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은 쉽게 떠오른다. 당시 무척 다양한 음악을 닥치는 대로 들은 것 같다. 한 뮤지션에 필이 꽂히면 지칠 때까지 그의 음악을 찾아 반복해서 듣곤 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중고 CD를 구하러 다니던 기억이 새롭다. 당연히 당시 이런 새벽 문화에 심취한 내 모습을 보고 뭐라고 할 사람은 없었다. 우리 가족은 이런 생활을 나름 즐긴 것 같다. 하지만 한국에서 누가 우리 집에 놀러 와 우리의 이런 모습을 보면 비록 말은 안 했지만 표정은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인간 앞으로 뭐가 되겠나?”

몇 년 전 아는 분에게 점심 초대를 받았다. 우아한 점심을 먹으며 웃고 떠드는데 그 집 아들이 자고 일어난 모습으로 방에서 나왔다가 순식간에 화장실로 사라졌다. 초대한 분이 약간 창피하다는 표정으로 먼저 말을 꺼냈다. “쟤는 도대체 밤에 뭐 하는지 모르겠어요! 교수님, 쟤가 요즘 게임에 빠져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죠?” “그냥 내버려두세요. 나이 들어 40대까지 계속하면 게임으로 성공한거고 게임에서도 우리가 모르는 것을 많이 배울 테고 애인이 생기면 언젠가 다른 즐거움을 찾겠죠. 평생 폐인이야 되겠어요?” 이때 싸늘해진 주인의 눈초리가 다가왔다. 마치 “당신이 책임질 거야?”라고 말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분은 “아드님에게 운동을 시켜보세요!” 이런 식의 대답을 기대했는지 모르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내 연구실에는 학생이 여덟 명 있다. 이들은 각기 성향과 취향이 다르고 생리적 리듬 역시 다르다. 내가 대학원에 다닐 때는 팀워크를 최우선으로 생각해 항상 같이 밥을 먹으러 가고 술집에 가도 한 명도 빠짐없이 몰려다녔다. 하지만 지금 대학원생은 자기 시간에 맞춰 연구실에서 일을 하고 시간을 보내며, 밥도 자연스럽게 혼자 먹기도 한다. 어찌 보면 구속력이 없는 생활을 하는 것 같지만 자신의 시간과 다른 학생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가면서 세련된 생활을 하는 것이다. 그들은 지금 내 나이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지구 상의 수많은 친구를 인터넷상에서 사귀고 있다. 나에게 가장 행복하던 때를 추억하라면 주저 없이 밤새 음악을 들으며 새벽을 맞던 그 시절이다. 휴일 게임을 하고 늦잠을 자고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가던 그 올빼미 젊은 친구 역시 훗날 나 같은 추억을 떠올릴지 모르지만, 그 친구가 아침형 인간이 되기 전까지는 그토록 즐거운 청춘의 시간을 보내면 좋겠다.

모든 사람이 반드시 똑같은 순서와 패턴으로 살아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자꾸만 ‘딴짓’ 하고 싶다>라는 이기진 교수의 신간 제목처럼 밤을 꼬박 새워도 마냥 즐거운 ‘딴짓’을 하는 사람은 아침형 인간이지만 종일 무기력한 사람보다 재미난 삶을 살겠지요. 글을 쓴 이기진 교수는 서강대 물리학과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물리학자입니다. 그는 아르메니아공화국에서 연구를 했고, 파리에서 박사 과정을 마쳤으며, 일본의 대학에서도 7년간 연구했습니다. 각 도시에서 연구하는 동안 가족과 함께 벼룩시장을 찾아다니며 이 빠진 백자나 호랑이 조각 등을 사 모으는 딴짓을 했으며, 그런 아빠를 따라다닌 딸 채린은 인기 아이돌 그룹 2NE1의 씨엘이라는 스타가 되었습니다. 학교 앞 철공소에서 용접해 만든 로봇과 의자를 아트페어에 내고, 과자나 빵을 직접 구워 선물하며 즐겁게 사는 이기진 교수는 나이 먹은 사람에게, 특히 나이 든 남자일수록 행복한 인생을 사는 데 몰입할 딴짓이 꼭 필요하다고 조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