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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9월 짜증은 내어서 무엇 하나, 니나노~

오랜만에 느긋하게 맞는 일요일, 혼자 먹을 거지만 늦은 아침 겸 점심을 공들여 차려봅니다. 오늘 메뉴는 냉콩국수. 음악도 알맞은 볼륨으로 틀어놓고, 반찬 두 가지 예쁘게 덜어놓고 숟가락 가지런히… 이제 콩국만 부으면 끝! 우아하게 식사할 차례입니다. 그런데 냉장고에 넣어둔 콩국 담은 유리병을 꺼내다가 그만 에쿠! 깨뜨리고 말았습니다. 와우, 그 두 가지 다른 물질의 파편이라니…. 어렵사리 만든 진한 콩국이 사방으로 튀고 바닥에 엎질러지고, 유리병도 크고 작게 깨져서 흩어져버렸습니다. 뚜껑 부분만 잡고 들었더니 무거운 병이 무게를 못 이겨 떨어진 것입니다.

지난번 냉장고에 넣어둘 때 뚜껑이 제대로 닫히지 않은 것 같아 다시 닫을까 하면서도 바쁘기도 해서 그냥 넣은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 몇 초간을 아낀 것이 그만 오늘 점심의 핵심을 박살내고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느긋함은 고사하고 기가 막힌 시간으로 변해버린 상황을 내려다보며 그래도 싸다고 저 자신을 고소해했습니다. 짜증 내고 있어봤자 일요일만 확실하게 구기는 것, 심지어 웃으면서 “매사에 여미는 습관을 들이자. 그러니까 뚜껑 같은 것은 꼭 닫자. 앞으로 이런 병은 두 손으로 몸통도 같이 들자.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런 하찮은 실수를 연발하는가…. 다시는 그러지 말자.”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예배드리듯 허리 굽혀 천천히 치우면서 저를 타일렀습니다. 가스레인지에 냄비를 올려놓고 요리를 하면서 잠깐 든 생각이 있습니다. 예외 없이 불과 냄비 사이에 그릴을 장치해 적당한 거리를 띄워놓습니다. 냄비가 화구에 붙으면 이론상으로 화력을 더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아예 불을 끄게 되는 거지요. 요만큼의 거리를 두어 공기가 통하게 해야 온전히 불의 힘을 전달받는 것! 그렇지요, 세상을 살아나가는 데 지켜야 하는 거리, 유지해야 하는 ‘간격’이란 게 있을 것 같습니다. 모든 관계 지음과 상황에 대한 간격은 되짚어보고 재해석해보고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데 유효합니다.

흔히 말합니다. 있을 때는 몰랐는데 멀리 떨어지니 다시 생각난다고. 가족도 떠나봐야 보고 싶은 줄 알고, 고향도 떠나봐야 그리운 줄 알고, 나라를 떠나봐야 애국을 한다고…. 이렇게 너무 먼 거리야 그런 마음이 일어난다 치더라도, 일상에서 실망과 노여움과 화를 마주할 때 어떻게 거리를 둘 수 있을까요? 내가 잘못해서 무언가를 떨어뜨려 깨뜨리고, 돌에 차이고, 일을 그르치고, 약속에 늦고…. 남이 무어라 했을 때, 가령 친구한테 서운한 이야기 듣고, 어른한테 야단맞고, 가족들과 잘 안 통하고…. 이럴 때 우리가 받고 느낀 감정대로 바로 반응하지 않을 수 있으면 성공입니다.

화내기 전에, 실망하기 전에, 신경질 내기 전에 잠깐 거리를 두고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그 몇초간이라도 간격을 둔 사이에 공기가, 생각의 산소가 한번 돌게 두어보자는 것입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유와 배경과 나의 그릇된 습관을 상대의 마음으로 생각해보는 것 등으로 그 시간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상황이 제법 긍정적으로 정리되면서 자신을 웃으면서 다독일 수 있는 것입니다.

인생은 해석이라고 합니다. 매 순간 일어나는 상황과 만나는 사람들과 맺는 관계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합니다. 이 잠깐의 간격, 요만큼의 거리를 두고 자신에게 좋은 쪽으로 해석하는 습관이 있는 사람이 행복할 확률이 높은 것입니다.

읽은 지가 오래되었는데 스티브 코빈이라는 미국 학자가 쓴 <일곱 가지의 습관>이란 책에도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자극에 바로 액팅하지 말고, 프로액티브해져라” “어떤 자극에 바로 반응하지 말고, 잠깐 생각하고 행동하라”입니다. 이런 좋은 글을 읽은 지 몇몇 해가 지났는데 이제 와서 다시 생각해보는 일요일 아침. 이렇게 사람이 늦되는구나, 그래서 오래 살고 볼일이구나, 옛사람들도 이런 걸 다 알았나 보다. 짜증을 내어서 무엇 하나… 니나노…. 히히히, 그 아까운 콩국병을 통째로 깨뜨리고 노래까지 흥얼거리니 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