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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8월 형, 단양은 어디예요?

지오를 만난 건 어느 단체에서 마련한 한글학교에서였다. 그는 베트남 출신의 근로자로 우리나라에 약 2년간 머물렀는데 두 차례 특강이랍시고 한글학교에 출강했다가 알게 되었다. 질문을 많이 했고 질문 수준 또한 남다른 구석이 있어 마음이 많이 간 친구였다. 수업이 끝나고 메일 주소를 알려달라고 해서 알려주었더니 그가 일을 하지 않는 날 내가 사는 그 먼 데까지 찾아와 몇 번 만나기도 했다. 저녁이 아닌 낮에 본 지오는 첫인상과 달리 참 많이도 배가 고파 보였다. 무엇보다도 말라서 또 피부색이 진해서 더 그래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한국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지, 기숙사에서는 어떤 음식이 나오는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물었고 그러다 결국에는 그를 앞장세워 그가 평소 먹고 싶어 한 것들을 사 먹이게 되었다.

나도 혼자 사는 처지이니 그 친구 덕분에 잘 얻어먹은 것으로 여겼다. 지오는 계약한 기간이 끝나고 그의 집이 있는 호찌민으로 돌아갔다. 그가 베트남으로 돌아갈 때 한국어 교재 을 들려 보내서 그런지 이제는 문자메시지도 잘 보내고 얼마 있다가 한국어 능력 시험도 볼 거라고 한다. 그리고 더 기쁜 일 한 가지는 오래전부터 만나온 여자 친구와 드디어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 한데 그 기쁜 소식을 접하고 너무 기뻐한 나머지 문자 몇 줄에 그만 눈물이 핑 돌고 말았으니 문자메시지의 내용은 이러했다. “형, 내가 한 번도 형 밥 못 사줬는데 그게 미안해요. 형이 만약 나의 결혼식에 올 수 있다면 형이 많이 먹을 수 있게 대단히 음식을 준비할 거예요.” 세상에, 난 밥 몇 끼 사준 게 전부인데 그걸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문득 지오가 보고 싶었다.

새삼 사람과 사람이 만나 마음을 나누고 음식을 나누고 한 것이 이토록 저릿한 일이구나 싶기도 했다. 그러다 그와 함께 한 여행이 생각났다. 언젠가 문득 그가 나에게 “형, 단양은 어디예요?”라고 물은 적이 있는데, 단양인지 담양인지 발음이 명확하지 않아 되물으니 단양을 묻는 거였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그 발음이 좋아서 그냥 그곳에 어떻게 가는지 묻는 거라고 말했다. 단양은 나의 고향에서 조금만 더 가면 되는 곳인데 참 아름답고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라고 설명했다. 그러고 나니 문득 그를 그곳에 데리고 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지난날, 나에게도 그처럼 가고 싶은 곳이 얼마나 많았던가. 지명이 아름다워서, 어떤 곳인 줄도 모르면서 막연히 그리워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나는 지오와 머리를 맞대고 가능한 날짜를 정했다. 어느 하루 일찍 조퇴를 하고 단양에 가서 1박만 하고 오자고 약속했다. 그리고 그날이 되어 그와 함께 단양에 도착하니 늦은 저녁이었다. 대충 숙소를 잡고 늦은 저녁 식사를 하려고 나가려는데, 그가 틀어놓은 텔레비전에서 영화 <쉬리>가 방영될 거라는 예고 화면이 나왔다. “무엇을 먹을까?” 하는 나의 말에 지오는 시계를 보더니 잠시 후에 시작하는 영화를 보겠다고 했다. 나는 이미 그가 그 영화를 너무도 좋아해 열 번도 더 봤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터라 적잖이 놀랐다. 단양에 가고 싶다는 사람을 몇 시간 운전해서 데리고 온 나란 사람도 있는데, 열 번도 더 봤다는 영화 때문에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겠다는 그의 태도가 적당하지 않은 것 같아서였다. 결국 나 혼자 나가 식사를 했다.

술 한 병을 시킬까 하다가 혼자 무슨 맛으로 마실까 싶어 그냥 식사만 하고 물가에 나가 산책을 한 다음,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지오가 먹을 만두를 샀다. 그런데 그가 텔레비전 앞에서 울고 있는 거였다. ‘아니, 왜 울어? 열 번을 넘게 본 영화를 보고 또 운다는 게 말이 돼?’ 나는 이렇게 그에게 큰소리를 올려붙이고 싶었지만 그의 들썩이는 등짝은 나에게 이렇게 묻고 있었다. 형은 좋아하는 영화를 열 번이나 보면서 열 번 다 울 수 있는 사람이냐고. 나는 옆에 만두를 담은 봉지를 슬며시 내려놓고는 창문을 열고 보이지 않는 별을 보려고 밤하늘을 향해 눈을 끔벅거렸다.

가보고 싶은 곳을 찾아 문득 여행을 떠나고 좋아하는 영화를 반복해 보며 눈물지을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감성을 스스로 어루만지고 다독일 줄 아는 사람입니다. 글을 쓴 이병률 시인은 시와 여행 에세이를 쓰는 작가입니다.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서 ‘좋은 사람들’로 등단했으며, 그가 쓴 여행 에세이 <끌림>은 10년이 넘도록 베스트셀러로 많은 이에게 끌림과 여운을 전했습니다. <끌림>에 이어 낸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도 큰 사랑을 받았으며, 시집으로는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바람의 사생활> <찬란> <눈사람 여관>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