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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6월 비원에 사는 사나이 (윤광준 에세이스트)

가끔 여러 매체에서 인터뷰 요청을 받는다. 알량한 책 몇 권 펴내고 신문, 방송에 얼굴 팔린 덕분이다. 주변의 관심이 싫지 않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내가 펴낸) 책과 사진을 사주어야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동안 벌인 작업과 활동은 대중과의 소통을 전제로 하지 않았던가. 자신을 알리는 좋은 방법인 인터뷰를 마다하지 못한다. 다만 수락 조건은 하나, 인터뷰 장소는 반드시 나의 작업실이어야 한다는 것. 상대의 불편을 강요하면서까지 일산으로 오게 하는 이유가 있다.

자신의 공간을 드러내 보여줌으로써 인터뷰어의 단편적 연상에서 오는 왜곡을 막아보려는 조치다. 사는 모습을 직접 들여다보는 일만큼 낯선 사람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하는 방법은 없다. 지하층을 뜻하는 B1의 우리말 발음인 작업실 비원은 나의 또 다른 모습이다. 커다란 탄노이 오토그래프와 여섯 대의 진공관 앰프, 여기에 연결된 국수 면발같이 흐트러진 오디오 케이블. 천장까지 닿을 만큼 높게 쌓인 LP와 CD, 전파상을 연상시키는 별의별 오디오 기기와 연장, 높은 파티션으로 가려진 책상 위에서 어지럽게 돌아가는 세 대의 컴퓨터 모니터, 온갖 종류의 책이 삐죽삐죽 꽂혀 있는 책꽂이…. 어제 먹다 남은 커피잔은 테이블 위에 그대로 놓여 있다. 밤늦게까지 들었던 CD와 LP 재킷은 산만큼 수북하다. 책상 위엔 일주일의 행적이 비늘처럼 중첩되어 흩어져 있다. 오디오와 온갖 물건이 정신없이 널려져 있는 것, 바로 비원의 모습이다. 비원에서 마주치는 모든 물건은 나의 관심과 현재를 알려준다. 인터뷰어의 반응은 감탄 아니면 어깃장 가운데 하나다. “와! 이렇게 큰 스피커로 듣는 음악 정말 멋져요.” “참 독특하게 사시네요.” 어떤 반응이든 공통점은 여느 사람의 일상 모습과 다른 기괴한 생활 방식이 주는 당혹감일 것이다.

비원이 풍기는 아우라의 실체는 무엇일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자유의 흔적이 주는 압도감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혼자 사는 삶에 익숙해졌다. 사면이 막힌 공간에서 홀로 뒹굴며 시간을 보낸다. 주위엔 아무도 없다. 문득 밀려오는 외로움엔 아저씨도 속수무책이다. 혼자 노는 놀이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놀이는 재미있어야 하고 반복되어도 지루하지 않아야 한다. 혼자 노는 최고의 방법인 음악과 오디오를 찾아내는 데는 30년이 더 걸렸다. 혼자만의 공간에 놀잇감을 늘어놓고 즐기는 일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볼 필요가 없다. 여럿이 어울릴 수 없는 놀이의 탐닉엔 일상 너머의 우뚝한 가치가 있다는 믿음이 있으니까. 어지러운 놀이의 흔적은 아무렇게나 살지 않겠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약간의 차별을 위해 들여야 하는 노력은 열정만으론 모자란다. 무한정의 시간을 퍼붓고 반복하는 지속의 힘이 더욱 중요하다. 쓸데없는 친목 모임 자리와 행사 참석은 가급적 피한다. 예전의 화제를 되풀이하고 남의 이야기로 메워지는 관심은 더 이상 공유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탓이다.

세상엔 알고 듣고 느껴야 하며 교감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나만의 관심을 해소하기 위해선 직접 몸을 담가보는 몰입의 시간을 늘려가야 한다. 잡다한 관계의 달콤함을 포기하면 묵직한 성취 하나쯤 건질 수 있다는 자각은 자초한 고립으로 얻은 선물이다. 어떤 일이든 죽기 살기로 매달려야 쥐꼬리 만한 차별성이 생기는 게 세상의 이치다.이젠 고립이 괴롭고 힘들지 않다. 좋아하는 놀잇감이 널려 있는 비원에서 위대한 아티스트를 만날 시간이 늘어났으니. 세계 최고의 소프라노와 오케스트라는 언제나 나의 부름에 달려온다. 두 시간이 넘게 걸리는 오페라 전곡을 듣는 여유보다 큰 호사는 없다.사진 작업을 위해 새로 들여놓은 최고 사양의 컴퓨터와 세 대의 모니터는 현재의 표현이다.

일을 위해 하루 종일 컴퓨터와 씨름한다. 그리고 글을 쓴다. 얼핏 보면 위대하고, 자고 나면 또 초라해지는 작업 성과에 일희일비하는 나의 하루는 잠시도 무료할 틈이 없다. 홀로 있다는 것, 자아의 맞대면 시간을 의지로 늘리는 좋은 방법이 아닐까. 관계 속의 나 대신 나로부터 비롯되는 세상을 꿈꾸는 바탕의 출발이다. 자아와 만나는 일은 여럿이 함께하지 못한다. 홀로 논다는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희망이다. 창조적 삶을 위한 자양은 여기서 비롯되었다. 죽지 않았다면 여기서 무엇인가 끝없이 만들어내고 세상을 다시 조립해보아야 한다. 누추한 비원을 사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나와 놀아줄 또 다른 나를 만나게 해준 실존의 공간….

이야기사진작가, 오디오 평론가, 에세이스트 등으로 활동하는 윤광준 님의 비원에는 그와 함께 히말라야까지 다녀온 산악자전거도 있습니다. 오디오, 음반, 책, 자전거…. 혼자 놀기에 좋은 매개들입니다. 이들은 다른 세상을 만나게 해주는 다리가 되어줍니다. 오디오에 담긴 장인정신을 만나고, 음악가의 예술 혼을 체험하고, 지은이의 생각을 알게 되고. 종국엔 ‘나’를 대면하게 됩니다. 윤광준 님은 최근 <찰칵, 짜릿한 순간>(웅진 지식하우스)을 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