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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2월 발분망식 發憤忘食

<논어>에 공자가 자기 자신이 이런 사람이라고 말씀한, 즉 자화상에 해당하는 구절이 있다. “그(공자)의 사람됨은 발분하면 밥 먹는 것도 잊고, 즐거움으로 걱정을 잊으며, 늙음이 닥쳐오고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초나라의 섭공(섭葉 지방의 관리인 심제량)이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에게 공자의 사람됨이 어떠한지 묻자 자로가 대답하지 못하였는데 이 일을 공자에게 말하자 “너는 왜 내가 이런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았느냐”고 하며 일러준 말씀이다. 사람들이 공자에게 “요즈음 어떻게 지내십니까?” 하고 물으면 “요즈음 늙는 맛이 황홀하오”라고 대답할 법한 말씀이라 하겠다.

‘발분망식發憤忘食’이란 분발하면 먹는 것도 잊는다는 뜻이다. 사실 인생에서 먹는 것처럼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다. 불교에서 최대 의식인 영산재靈山齋 중 가장 중요한 절차가 ‘식당작법食堂作法’이라는 먹는 절차이다. 기독교에서 예수가 직접 가르쳐준 주기도문은 그 짧은 말씀에서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고 하느님께 먹는 데 대한 감사를 표한다. 일상생활에서도 가장 가까운 사람인 ‘식구食口’는 문자 그대로 자기와 함께 ‘먹는 입’이라는 뜻이다. 우리 속담에서도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듯이, 먹는 것을 좋아하고 그렇지 않고를 떠나 먹고 힘을 내지 않으면 아무리 중요하고 좋은 것도 그렇게 보이지 않는 법이다.

먹는 것은 곧 살아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그런데 공자는 분발하면 이렇게 중요한 먹는 것조차 잊는다고 했다. 본래 공자가 식욕이 좋고 먹는 것을 중요시한 것을 감안한다면 그가 깨닫기 위해 탐구하는 자세가 얼마나 지극한지 알 만하다. 더불어 공자는 누구나 시달리게 마련인 걱정, 누구나 한탄하는 늙음까지 잊을 정도로 진리를 탐구하는 재미에 푹 빠져 사는 사람이었다. 나는 1999년 1월 초에 서울대병원에서 대장암 수술을 받았다.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을 받은 것은 평생에 처음이었다. 수술을 마치고 회복 운동을 하기 위하여 링거 병을 주렁주렁 매단 카트를 힘겹게 밀며 입원실 복도를 돌아다녔는데, 어느 날 밤에 남쪽 창문으로 저 멀리 있는 시계탑이 조명을 받아 꿈속처럼 아름답게 보였다.

죽음에 직면하면서 비참한 지경에 달하니까 역으로 소녀처럼 아름다운 가야금 곡을 작곡하고 싶은 발분망식의 충동이 일었다. 3주 만에 퇴원하자 악상을 가다듬어 바로 가야금 독주곡 ‘시계탑’을 완성했다. 이 곡은 모두 5장으로 구성했는데 1장은 서주이며, 2장은 소녀의 뮤직 박스에서 나오는 사랑스러운 ‘시계탑’ 소리이고, 3장은 한바탕 흐드러지게 추는 무곡이며, 마지막 5장은 깜깜한 어둠 속에서 아름다운 빛들이 반딧불처럼 아른거리는 환상을 표현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3월에는 수술 후유증으로 기저귀를 차고 있으면서도 여의도 영산홀에서 가야금 독주를 했으며, 5월에는 멀리 독일 하노버 현대 음악제에 참가해 가야금 독주를 했다. 이때 <논어>의 발분망식을 경험한 것 같다. 어떠한 악조건 속에서도 사람이 발분하면 오히려 더 뛰어난 정신 활동을 할 수 있음을 깨달은 소중한 경험이었다.

학생들은 공부를 안 해도 되는 어른이 되고 싶다고 하지만 정작 어른은 배울 데가 없어 답답합니다. 대화하는 법, 조언하는 법, 시간 관리 등 삶의 나이테가 늘수록 배우고 익혀야 할 지혜가 늘기 때문입니다. 글을 쓴 황병기 씨는 가야금 명장입니다. 서울대 법대에 다니며 국립국악원에서 가야금을 배웠고, 실력이 출중해 1959년 법대를 졸업하던 해부터 같은 대학에 신설된 국악과에서 4년간 후학을 가르쳤습니다. 1962년 첫 가야금 곡인 ‘숲’을 작곡한 후 현대 창작 국악의 기원이 되었고, <침향무><비단길><미궁><달하 노피곰> 등의 가야금 연주 음반이 있습니다. 여러 권의 음악 관련 저서를 냈으며, <논어>를 풀어낸 <가야금 명인 황병기의 논어 백가락>으로 생의 지혜라는 특별한 연주를 들려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