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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1월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논어>에는 현대인이 읽기에 따분하고 어렵고, 시대에 뒤떨어진 말씀이 많은 게 사실이다. 가령 “오직 여자와 소인(좀스러운 사람)은 다루기가 어렵다. 가까이하면 불손해지고 멀리하면 원망을 하기 때문이다”라는 공자의 말씀은 2천5백 년 전 당시 봉건 사회의 남존여비 사상의 한계를 넘지 못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정도를 지나치는 것은 아니하느니만 못하다(과유불급)”라든지, “자신을 죽여서라도 어짊을 이룩한다(살신성인)” 같은 말도 <논어>에서 비롯된 것이고, “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알아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덕불고필유린德不孤必有隣)”라는 말씀 등은 시대를 넘어서는 진리임에 틀림없다.

천주교 역사상 우리나라를 처음으로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4년 5월 3일, 그의 역사적 도착 성명에서 <성경>이 아니라 <논어>의 유명한 구절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를 낭독해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보다 적절한 인사를 그 어디에서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노자는 <도덕경>에서나 <장자>에서나 도를 훤히 꿰뚫은 사람, 즉 도통한 사람으로 보인다. 그런데 공자는 <논어>에서 “나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는 절실한 말씀으로 도를 모른다고 했다. 즉 공자는 도를 모르기에 도를 추구한 사람이라는 게 특징이다. 사실 천지의 도를 다 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은 용龍처럼 위대하게 보이면서도 실상은 허황한 존재가 아닐까.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절실히 고백하는 사람이야말로 내가 진정 따르고 싶은 사람이다.

나는 여러 가지 번역서를 참고해 <논어>를 정독한 후, 장황한 이야기로 초스피드 시대의 현대인에게는 읽을 가치가 없는 말씀,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 현대에는 맞지 않는 시대에 뒤처진 말씀 그리고 중복되는 말씀 등을 모두 빼고 시대를 초월해 여전히 보석처럼 빛나는 말씀만 1백 문장을 모아서 나만의 ‘논어명언집’을 만들었는데, 타이핑하고 보니 A4 용지로 5쪽 분량밖에 안 되었다. 이것을 외출할 때 품에 지니고 다니며 시간이 날 때마다 읽다 보니 모두 욀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이 명언들을 나의 인생 체험과 결부해 마치 가야금을 연주하듯이 풀어 쓴 책이 2013년 10월에 낸 <가야금 명인 황병기의 논어 백가락>이다.

<논어>는 “배우고 때때로 그것(배운 것)을 익히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로 시작한다. 극히 평범한 말씀이지만 참으로 진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70 평생을 살면서 배우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음을 깨닫고 있다. 지금 이 나이에 배워서 뭐 하느냐는 말 을 하지만,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하고 배우지 않을 수 없는 존재다. 어디에 써먹으려고 배우는 것보다도 배우는 것 자체가 기쁘고 행복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노인이 되어도 뭔가를 알고 배우려는 게 사람이다. 노인도 세상 뉴스는 알고 싶고, 손주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것도 배움의 일종이다. 그런 것을 알아서 무엇 하느냐 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장의 묘미는 그 내용 못지않게 말하는 방법에 있다. 먼저 ‘열심히’라고 하지 않고 ‘때때로’라고 한 것에 눈길이 간다. ‘열심히’는 강요하는 어투인데 ‘때때로’는 ‘틈틈이’나 ‘네가 하고 싶을 때에’처럼 듣는 이에게 넉넉한 기분을 주는 부드러운 어투다. 그리고 ‘이것이’나 ‘이것이야말 로’가 아니라 ‘(이) 또한’은 ‘다른 것도 있겠지만 이것도’처럼 여유로움을 느끼게 한다. 마지막에 ‘기쁘다’고 단정하지 않고 ‘기쁘지 아니한가?’ 하며 듣는 이의 의견을 묻는 형식을 취한 것은 참으로 민주적 화법이라 하겠다. 이처럼 <논어>는 첫 문장만 보아도 아주 쉽고 평범하면서도 시대를 초월한 진리의 말씀이고, 그 화법이 매력적이고 흥미진진한 고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학생들은 공부를 안 해도 되는 어른이 되고 싶다고 하지만 정작 어른은 배울 데가 없어 답답합니다. 대화하는 법, 조언하는 법, 시간 관리 등 삶의 나이테가 늘수록 배우고 익혀야 할 지혜가 늘기 때문입니다. 글을 쓴 황병기 씨는 가야금 명장입니다. 서울대 법대에 다니며 국립국악원에서 가야금을 배웠고, 실력이 출중해 1959년 법대를 졸업하던 해부터 같은 대학에 신설된 국악과에서 4년간 후학을 가르쳤습니다. 1962년 첫 가야금 곡인 ‘숲’을 작곡한 후 현대 창작 국악의 기원이 되었고, <침향무><비단길><미궁><달하 노피곰> 등의 가야금 연주 음반이 있습니다. 여러 권의 음악 관련 저서를 냈으며, <논어>를 풀어낸 <가야금 명인 황병기의 논어 백가락>으로 생의 지혜라는 특별한 연주를 들려줍니다.

글 황병기 담당 김민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