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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깨끗한 소통을 위하여 (마종기 의사)

얼마 전 어느 분에게서 들은 무재칠시無財七施라는 말이 요즈음 자주 생각난다. 가진 재물이 없어도 베풀 수 있는 일곱 가지 보시라는 뜻인데 어느 불교 경전에서 유래한 말인 듯하다. 다정다감한 얼굴로 상대를 기분 좋게 하는 화안시和顔施, 거짓말, 욕설을 안 하고 유익한 말만 하는 언시言施, 남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의 심시心施, 인자하고 부드러운 눈매의 안시眼施, 몸으로 돕는 신시身施, 자리를 양보하는 좌시座施, 상대의 마음을 살펴주는 찰시察施. 물론 이런 식의 보시를 따져보자면 일곱 가지보다 훨씬 많겠지만 이런 말이나마 가끔 생각해보면 공연히 마음이 따뜻해진다. 나는 젊은 나이에 멋모르고 외국에 나와 공부를 하다가 그대로 주저앉아 산 지가 이제 50년이 되어간다.

그나마 10여 년 전 은퇴한 후부터는 몸에 밴 향수병을 고쳐보겠다고 매해 고국에서 몇 달씩 살고 있지만 너무 오래 고국을 떠나 살아서인지 한국에 오면 가끔 이해하기 곤란한 것이 많이 있다. 그런 것 중 첫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많은 사람이 자기 주위에 있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불완전한 인간인 우리가 어떻게 모든 것을 사랑하고 좋아할 수만 있으랴. 하지만 그 빈도와 사례가 너무 많은 게 이상하다. 이런 부정적인 관계는 가난 때문에 밥 먹기가 힘들어서도 아니고 휴가를 가지 못해서도 아니며, 가족이나 친구가 없어서도 아니다. 눈을 돌려보면 함께 즐길 아름답고 아기자기한 곳은 온 나라에 차고도 넘친다.

한데 왜 그렇게 싫어하는 게 많을까? 몇 해 전 서울에 있는 어느 대학교의 사회학 교수는 연구 논문에서 동북아시아 3개국인 중국, 일본, 한국 국민을 대상으로 무작위 조사한 결과 시기와 질투와 불평이 제일 많은 국민이 단연 한국인이라고 밝히고, 그 이유는 아마도 과도한 경쟁과 비교로 생기는 사회적 경계심(내가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걱정하는 성향)이 스트레스를 유발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온 국민이 너무 밀착해 살아서라고도 했다. 어쨌든 동북아 3개국 중 한국에 고독한 사람이 가장 많고 자살률 역시 한국이 가장 높다고 한다. 요즈음 사회에는 갑을 논쟁이 한창이다. 모든 사람이 서로를 아우르는 말보다 내 편이냐, 네 편이냐로 패를 나누려고 한다. 패가 갈리고 의견이 나뉘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의견이 다를수록 더 발전하고, 이상적인 결론에 도달할 가능성이 더 많다. 요점은 그 뒤다. 서로 다른 의견으로 싸우다가도 한 결론에 도달하면 그간의 자기주장을 버리고 다수의 의견을 따라야만 한다. 뒤돌아서서 욕하고 흉을 보는 저질 인간이 적을수록 부류 사이에는 깨끗한 소통을 더 잘할 수 있다.

이런 상식은 나뿐이 아니고 많은 사람이 느끼는지 얼마 전 어느 TV 방송사에서 정월 초하룻날에 늙은이와 젊은이의 소통을 주제로 특별 토론을 길게 해보자는 의견을 내게 전해왔다. 나와 함께 토론할 사람은 나보다 30세 이상 아래인 젊은 공학자며 가수인 루시드폴이었는데 아마도 우리 둘이 어울려 출간한 서간집에서 서로 이해하고 충고하고 여러 의견을 나눈 것을 눈여겨본 것 같았다. 나는 우리 사회에 지금 제일 필요한 것이 소통이라고 믿는다. 한데 소통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양보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이가 적은 것 같다. 자기주장만 옳다고 늘어놓는 것은 소통이 아니다. 소통은 우선 상대방의 의견을 들어주고 이해하는 기술이다. 이런 양보가 없이는 소통은 있을 수가 없다. 양보가 손해 보는 일일까. 아닐 것이다. 혹 누가 손해라고 생각한다면 글머리에 언급한 무재칠시를 무재팔시로 고치고, ‘양보시’라는 것을 하나 더 넣으면 어떨까. 그 양보를 우리가 일상에서 실천한다면 나라에는 흥겨운 기운이 철철 넘쳐날 것이다. 제발 그런 기쁜 날들이 언제나 아름다운 내 나라에 차고 넘치기를….

소싯적 치기에는 무엇 하나 뾰족이 잘해야 멋진 인생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좀 더 살아보니 개인의 인생에서, 두 사람의 사랑에서, 사회의 우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때론 일갈하고 때론 공감하는 이성과 감성의 ‘균형’이더군요. 글을 쓴 마종기 씨는 차가운 이성을 가진 의사이면서 따뜻한 감성을 품은 시인입니다. 그는 1959년 의대 본과 1학년 때 <현대문학>에 ‘해부학교실’ ‘나도 꽃으로 서서’ 등의 시를 발표해 등단했습니다. 1966년부터 미국에서 살며 오하이오 의대의 방사선과 교수와 아동병원 부원장 등으로 일하는 중에도 고국에 꾸준히 시집과 산문집을 발표했으며, 한국문학작가상 등의 유명 상을 두루 수상했습니다. 가수 루시드폴과 서간집 <아주 사적인, 긴 만남>을 출간했고, 올해도 <우리 얼마나 함께>, <이 세상의 긴 강> 등을 연이어 선보인 그의 글은 이성과 감성이 조화를 이룬 삶의 지혜를 생각해보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