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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7월 순수의 세계 (전성태 소설가)

두 아이에게 나는 유쾌한 뻥쟁이지만 이야기 레퍼토리가 금방 바닥나서 쩔쩔매는 이야기꾼이기도 하다. 입술을 깨물고 있으면 아이들은 아무아무 얘기를 다시 해달라고 쑤석인다. ‘한때 소도둑들이 숨었다는 동굴이 있다. 소도둑들이 칼을 씻은 그 동굴의 우물물이 산 너머 바다를 물들였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어떤 아이들이 우물이 멀리 바다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동굴로 들어가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어릴 때 내가 늘 하던 공상이다.

나는 동화를 거의 접하지 못하고 자랐다. 오히려 요새 아이들을 재우면서 많이 읽는다. 최근엔 열 권짜리 우리 전래 동화를 읽는 중인데, 나 역시 미처 모르던 다채로운 민담에 쏙 빠질 때가 많다. 아이들이 이미 잠들었는데도 순전히 내 호기심으로 끝장을 볼 때가 많다. 아이들이나 나는 일단 이무기라든가 1백 년 묵은 여우, 천년 묵은 지네, 손톱을 먹은 쥐가 등장하는 변신담이 제일 재미있다. 바보가 우연히 행운을 잡거나 욕심쟁이가 제 꾀에 넘어가는 소극도 아이들은 좋아한다. 새삼 느낀 것이지만 권선징악의 구도가 뚜렷한 이야기는 재미가 덜하다.

민담은 뻥이 심하다. 허술한 설정과 얼토당토않은 비약이 많은데, 옛사람들은 가늠할 수 없는 세계의 경계에서 이야기를 지어내곤 했다. 알 수 없는 세계가 많을수록 가능성의 영토가 확장되는 게 이야기의 본성이라 할 때 민담의 활력은 알 수 없는 세계를 상상하는 데서 비롯했다고 할 수 있다. 세상의 어느 숲에서는 정말 인간이 되기를 열망하는 꼬리 아홉 달린 여우가 살 수 있고, 버린 손톱을 모으는 거대한 쥐가 살고 있을지 모른다. 세상 끝에 있을지 모를 그 숲에 누구도 가보지 못했으므로 그 세계는 언제나 그럴듯한 가능의 세계로 남아 있다. 나는 그 가능성의 세계까지도 자연의 영역이라 여긴다.

작은아이는 한창 세계의 구조, 우주의 정체를 골똘하게 생각하고 있다. 꽤 거창하게 얘기했지만, 일곱 살 난 아이는 세상이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할 나이가 된 것이다. 아이의 생각은 이렇다. 지금 자신과 자신이 사는 세상은 누군가의 꿈이다. 그 누군가는 창조주다. 그리고 아이의 꿈속에서도 누군가가 이런 지극한 호기심을 지니고 공상을 하며 살고 있다. 꿈속 아이에게 우리 아이는 창조주다. 결론적으로 아이가 생각하는 우주의 구조는 꿈꾸는 자의 무한대, 꿈꾸어지는 자의 무한대인 셈이다.

어릴 때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누구나 공상했을 우주와 닮아 있다. 작은 구슬이 가득한 큰 구슬, 큰 구슬이 가득한 더 큰 구슬…. 나는 미지의 세계에 촛불을 하나씩 밝혀나가는 현대 과학에 환호할 때가 많다. 외계에서 지구와 유사한 행성을 발견했다는 뉴스라든가 멸종한 매머드를 부활시키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는 뉴스에 흥분한다. 그렇다고 세계의 기원이 밝혀지리라 믿지는 않는다. 과학 탐험의 팬이면서도 나는 공상의 영토가 점점 줄어드는 게 안타깝기도 하다. 그리고 자연에 대한 외경심과 상상력이 무지의 소산이 아니라 아주 특별한 감각이며 지혜라고 생각한다. 나는 훗날 아이들이 아빠를 굉장한 뻥쟁이였으나 이야기를 통해 멀리까지 여행한 사람으로 기억해주면 좋겠다.

꿈꾸는 자와 꿈꾸어지는 자의 무한대로 세상을 이해하는 아이의 상상력이 놀랍습니다. 동굴을 탐험하는 꿈을 자주 꾸던 제 어린 시절도 떠오르고요. 여러분은 어떤가요? 과학 탐험의 팬인 전성태 작가처럼, 그리고 발칙한 상상을 하는 아이처럼 어린 시절 골몰하던 공상의 세계에 흠뻑 빠지고 싶지 않나요? 글을 쓴 전성태 씨는 1994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해 신동엽문학상, 오영수문학상, 현대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장편소설 <여자 이발사>를 썼으며, 소실집 <늑대> <국경을 넘는 일> <매향>과 산문집 <성태망태부리붕태>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