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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3월 삼세판 이라고? (손철주 학고재 주간)

딸이 초등학교 3학년 때 국어시험을 치렀다. 딱 하나가 틀렸다.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의 뜻을 잘못 적었다. 호초, 당초 맵다지만 시집살이에 비할까. 며느리는 그저 입 다문 채 들어도 못 들은 척, 봐도 못 본 척하라는 옛 속담이 딸에게는 생경했던 모양이다. 빈 칸으로 남겨둘 수 없어 제 딴에 답을 적긴 했다. 딸의 답안지를 본 담임선생이, 속된 말로 뒤집어지더란다. 딸은 선생이 왜 웃었는지 궁금하다며 아내에게 답안지를 건넸다. 딸이 쓴 답은 이랬다. ‘모든 것은 삼세판이다.’

딸은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했다. 입학하고 한 두 달쯤 지났을까. 딸은 제 힘에 겨운 ‘중장비’를 들고 나타났다. '기타와 앰프, 그리고 연주에 쓰이는 전자 제품들이 거실을 가득 채웠다. 기함한 아내에게 딸은 공표했다. “나, 록 밴드 결성했어.” 어려서 딸은 그림을 제법 그렸고, 피아노를 조금 쳤다. 회화를 배우다가 느닷없이 디자인으로 선회한 딸을 아내는 수긍했지만, 피아노가 아닌 전자 기타를 어깨에 멘 딸은 곤혹스러웠다. 고막을 찢는 굉음 속에서 헤드 뱅잉 하는 딸은 아내의 꿈에조차 없었다. “아빠는 어때?” 하고 딸이 물었다.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조상 중에 조선시대 장악원 정正을 지낸 어른 한 분이 떠올랐다. 나는 겨우 입을 뗐다. “아악도 아니고, 굳이 속악이냐.”

딸은 대학 4년 내내 기타를 놓지 않았다. 홍익대 앞에 불려가 공연했고, 언더그라운드 그룹들에게 펑크 계열의 신곡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교내에서 공연하고 돌아온 어느 저녁, 딸은 덤덤한 표정으로 전했다. “오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어.” 들어보니 제의한 사람은 유명 매니지먼트사 소속 스카우터였다. 아내의 어두운 표정보다 딸의 무심한 표정이 의아했다. “어쩔 셈이냐?” 하고 물어봤다. 딸은 시다 달다 대꾸 없이 제 방으로 가버렸다. 아내와 나는 딸의 심사를 헤아리기 어려웠다. 며칠 뒤 아내가 오디션은 봤냐고 딸에게 물었더니, 거절했단다. 하도 신기해서 이유를 캐묻자 딸은 손바닥을 턱에 받치는 시늉을 하면서 “엄마, 난 이게 안 되잖아” 했다. 아내는 걱정스러운 듯이 나에게 말했다. “저러다 견적받아보자고 나서면 어떡하지?”


졸업한 딸이 ‘다행히’ 기타를 멀리했다. 그리고 장고長考에 들어갔다. 딸은 선언했다. 유럽에서 길을 찾겠다는 것이다. 나와 아내는 공항에서 딸을 전송했다. 어느 날, 로마에서 전화가 왔다. 딸이 조각가이자 공예가인 이탈리아 작가의 조수로 들어갔단다. 그 만만찮은 자리를 딸은 혼자 힘으로 개척했다. 아내는 ‘천우신조’라며 들떴다. 디자이너건 아티스트건 이제 정착의 길로 접어들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딸은 손수 제작한 작품을 가끔 메일로 보여주었다. 생활비를 조금밖에 못 보내는 심정을 아는지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도 번다며 부모를 안심시켰다. 용기가 가상하고 고마웠다. 그리 고 1년이 채 안 돼 딸은 보따리를 싸 들고 서울로 왔다. 아내는 기가 막혔다. 딸은 씨익 웃었다. 또 무슨 심경의 변화를 겪었단 말인가. 딸은 짐도 풀지 않고 일방 통보했다. “이제부터 사업해서 돈 벌 거야.” 그날 아내는 밤새 뒤척였다. 내가 위로랍시고 귀엣말을 했다. “쟤, 돈 번다잖아.” 아내는 홱 돌아누웠다.


이쯤 되면 애비의 한마디가 시급하다. 딸을 불러 앉혔다. “우리 집은 행복이 가득한 집이었어.” 딸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18년 전에 우리 가족이 <행복이 가득한 집> 광고 모델로 나온 것 기억하지?” 딸은 그 잡지를 품에 안고 잤다.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행복은 고요와 안정이야. 네가 요동치면 우리 집 행복은 날아가. 몇 번이나 더 갈팡질팡할 거냐?” 딸은 같잖다는 투로 내뱉었다. “모든 게 삼세판인 거, 아빠 몰라? 삼삼은 구, 합이 아홉 판이라구.”

 

명칼럼니스트이자 학고재 주간인 손철주 님의 글로 봄을 엽니다. ‘아홉 판’을 주창한 따님께서는 지금 보석회사에 근무하고 있고 아직 네 번째 뒤집기는 하지 않았답니다. 50대 아버지는 ‘고요 속의 행복’을, 20대 자식은 ‘암중모색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시공을 막론한 공통점인가 봅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모습에 자식의 미래가, 자식의 모습에 아버지의 과거가 있으니, 이보다 아름다운 절경은 없을 것입니다.
행복이가득한집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