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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하늘공원을 떠나며... (설호정 풀무원 상무)

하늘공원을 떠나며...
부엌 창으로 하늘을 보았다. 아파트 뜰의 감나무에 성기게 매달려 있는 붉은 잎과 푸른 하늘이 명료한 콘트라스트를 이루고 있었다. 한 번만 더… 이렇게 중얼거리고 싶도록 아름다운 날은 짧디짧게 스치고 지나갈 뿐이다, 인생처럼. 뒤죽박죽인 우울한 옷장 속을 정리하며 생각했다. ‘알차게’ 주말을 보낼 것인가, 드물게 좋은 날 놀러 갈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였다. 갈등을 길게 ‘때리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그날의 만추는 내 생애 마지막 날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어디로 갈까? 사는 것은 어차피 선택의 연속이니 이 질문을 피할 수는 없다. 타고난 별자리가 천칭좌여서 결정이 더딘 나는 빠지고, 남편이 자기 좋을 대로 길을 잡았다. “삼각산을 외곽으로 한바퀴 돌다가 아무 데서나 한적한 길로 찾아들어가 산책한다.” 수유리가 아니고 구파발 쪽으로 돌기로 했다. 그런데 올림픽대로를 달리다가 갑자기 내 마음이 움직였다. “하늘공원을 들러 가자, 쓸쓸한 정취가 쓸 만할 거다.” 두어 해 전 늦여름에 처음 갔다. 이미 푸른 빛이 기운 억새밭 사이를 느릿느릿 걸으며, 시야에 전선주와 고층건물이 거의 걸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했다. 생태복원, 뭐 그런 지구적 어젠더까지 생각할 것 없었다. 그저 그 공원의 명상적 분위기에 몸을 맡기면 되었다. 바람에 억새 잎이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던 풍경을 내 마음에 새기고 있었다. 명성이 높아졌는지 이태 전보다 사람이 훨씬 더 많았다. 이삭이 피어 흔들리는 몽롱한 억새밭 이 구석 저 구석에서 ‘순간 포착’에 몰두하는 남녀노유를 방해하지 않고 걷는 방법은 없는 듯했다. 아니, 솔직히 말해 그 사람들에게 방해받지 않고 걷는 법을 몰랐다. 그놈의 ‘디카’ 때문에 4천만 모두가 사진가가 되다시피 한 세상, 4천만이 모델이 되다시피 한 세상을 한탄하면 무엇하랴. 나만 카메라를 버림으로써 소극적으로 저항하고 있을 뿐이다. 또, 카메라만 들이대면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는 동작을 누가 고안했는지 원망심이 부풀어 올랐으나 그건 외면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공원 들목에서부터 내 귀청에 거치적거리는 소리를 피할 길이 없어 점점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부러 억새밭 한복판으로 뚫린 좁은 오솔길로 들어서보아도 소리가 조금 멀어질 뿐 아주 사라져주지는 않았다. 그 소리로부터 도망칠 길이 적어도 하늘공원 안에는 없어 보였다. 그 소리는 다름 아니라 음악이라는 거였다. 혹, 내 음악 취미 때문이 아니냐고 오해하지는 말길 바란다. 나는 내 나이의 평균 한국 아줌마가 좋아하는 거 좋아하고 부담스러워하는 거 부담스러워할 뿐이다. 간단히 말해 음악 취미랄 것이 별 없다. 그렇다고 불협화음을 들으면 물리적 고통을 느낀다는 절대 음감을 타고난 사람은 더 더구나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백컨대 가로등 허리에 빠짐없이 매달린 스피커에서 거침없이 쏟아지는 음악들의 총화는 정말 견디기 어려웠다. 그 음악은 나를 하늘공원에서 서둘러 ‘하강’하도록 내몰고 있었다. 공원은 안중에 없고 음악을 피하느라고 산책이 엉망이 되었다. 그런 어느 순간 음악이 끊어지고, 바람에 억새 흔들리는 소리, 아이들의 키득거림, 젊은이들의 은밀한 속삭임, 어른들의 짧은 나무람…. 어쩌면, 음악보다 아름다운 자잘한 일상적 소리들이 도드라졌다. 그러자 비로소 투명한 햇살과 쓸쓸함이 교차하는 평화로운 가을 공원의 진면목이 전개되었다. 음악의 있고 없음이 이다지도 사물을 달리 보이게 하는 것이었나? 그러나 역시 행복은 짧고 고통은 긴 것이다.
“공원 관리실에서 알려드립니다. 하늘공원에는 애완동물의 출입을 금하오니….” 이거야 원, 내려가야지 별 수 있나, ‘멋진 신세계’는 제발 이제 그만! 이렇게 툴툴대며 스피커를 메우는 ‘안내 방송’을 뒤로하고 패잔병처럼 공원을 터덜터덜 걸어 내려왔다. 내 마음의 하늘공원과 영영 이별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연락부절로 비행기가 오가는 소란스러운 하늘을 견딜 수 없어 하던 솔제니친이 말했다던가? “내 조국의 하늘에 정적을 돌려다오!” 그는 마침내 모든 소음을 피해 러시아의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지만, 나는 그저 무신경한 ‘배경 음악’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세상에서는 살고 싶지 않다는 소박한 꿈이 있을 뿐이다. ‘정적’까지야 어찌 바랄 수 있을까.

이 글을 쓴 설호정 씨 는 풀무원 상무로 ‘금녀’의 영역으로 여겨져 온 기업 홍보실에 일찍이 입성한 여성 임원으로 유명합니다. 부드러운 여성의 카리스마를 보여주고 있는 그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교양 월간지 <샘이 깊은 물>의 편집주간으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시원시원하게 일갈하는 한 말씀을 읽자니 마음이 덩달아 후련해집니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수런거리는 작은 소리를 덮고 마는 스피커의 음악 소리는 아니었는지, 반성도 해봅니다. 미세한 소리에도 귀 기울일 줄 아는 12월이면 좋겠습니다.

행복이가득한집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