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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5월 ‘산딸’ 을 사랑하는 마음(윤후명 국민대 겸임교수)


 


드디어 산딸나무를 구했다. ‘드디어’라고 말한 것은 꽤 오랫동안 그러기를 원했다는 표현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몇 년 전의 경험이 보태진다. 길가의 나무 장수가 산딸나무라고 파는 나무가 있어서 옳다구나 하고 한 그루 손에 들고 왔건만 나중에 다른 나무임을 알아낸 것이다. 흰색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네 장의 순백색 꽃잎이 여간 밝지 않아서 좋아했는데, 그것은 병아리꽃나무라는 이름이 붙은 나무였다. 어느 날 압구정동의 큰길을 가다가 길옆나무가 달고 있는 명패를 보니 산딸나무라고 씌어 있는 게 아닌가.
어? 잘못 써붙였군. 나는 순간적으로 이 나라 공무원들을 속으로 못마땅해했다. 이런 거 하나 제대로 확인해볼 성의가 없다니까.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이리저리 검색을 해본 결과 ‘이 나라 공무원들’에게 그만 내 잘못을 빌게끔 되고 말았다. 길가의 나무 장수는 어디서 알고 병아리꽃나무를 산딸나무라고 팔아서, 나로 하여금 몇 년 동안이나 엉뚱한 사랑을 하게 만든 것일까? 나는 속상한 마음이었다. 물론 두 나무의 값에 무슨 큰 차이가 나는 게 아니므로 그가 일부러 속이려고 했을 까닭은 없었다. 세상에서 실제의 값어치를 제대로 받는 식물이 어디 있을까만, 불과 1만 원 안팎의 고만고만한 나무들이더라도, 하나는 ‘산딸’이요, 하나는 ‘병아리’였다.

 

나는 나무 이름에 쏠려서 좋아하게 된 나무가 많다. 식물의 전모를 따지는 식물학자가 아니라 글자에만 머리를 싸매고 있는 문학인의 한계인가?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물푸레나무도, 괴불나무도, 히어리도, 갈매나무도, 사람주나무도 다 그 안에 든다.
생긴 그대로를 좋아하면 그것으로 되는 것이지 굳이 이름까지 따질 게 뭐 있느냐고 나무랄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그런 사람도 얼마 전 유명한 누구의 본이름이 뭐라고 알려지자 왁자하게 입에 오르내린 사실 앞에서 머리를 끄덕거릴 것이다. 그러기에 오랑캐꽃이라는 독특한 이름이 제비꽃으로 바뀌었고, 개불알난은 복주머니난으로 점차 바뀌는 중이다. 식물뿐인가. 요즘에는 자기 본이름이 싫다고 다른 이름으로 바꾸는 사람도 많다. 오래전부터 ‘산딸’을 옆에 두고 싶었다. 그 유래는 식물 이름 사전에도 명확하게 씌어 있지 않지만, 비록 산딸기의 줄임말일지라도 산딸은 어김없는 산딸이었다. 그런데 ‘병아리’를 ‘산딸’이라고 사랑했다니! 그러나 ‘드디어’ 구한 산딸나무는 회초리 굵기의 묘목에 지나지 않았다.

이것이 언제 자라서 ‘산딸’의 흰꽃 얼굴을 피워 내게 보여줄 것인가? 아마도 영영 그럴 시간이 주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데에 생각이 이르면, 난처한 눈길을 그만 먼 하늘로 돌릴 뿐이다. 그만큼의 나이에 이제 나는 다다르고 말았구나. 어느덧 회한에 젖는 마음을 어린 ‘산딸’이 알아채지나 않을까 재빨리 먼 하늘의 눈을 거둔다. 아직은 더 살아야 한다.

 

어린 딸이 나를 보고 있는 한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 내가 네 흰꽃 얼굴을 못 볼지라도, 누군가 너를 바라보면서 사랑할 사람 있을 테니 부디 잘 자라만 다오. 나무를 여성성으로만 보는 것은 잘못된 눈일 것이다. 그러나 내게 ‘산딸’은 도리없이 딸이 되고 말았다. 이 점을 보안하기 위해 굳이 ‘여성성이 우리를 구제한다’는 투의 문학 아포리즘을 강조해야만 할까? 그럴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다. 그러지 않아도 아직까지 담배를 끊지 못해 그만큼 지구 환경을 더럽히는 나로서는 한 그루 나무라도 더 심어야 한다는 마음을 다그치는 게 조금은 더 현실적이다. 그래야 내 삶이 아직은 내 삶이 되리라.

한 그루 산딸나무를 심으며 온 산에 그득한 흰꽃 얼굴을 그려보는 계절이다. 푸르고 환한 세상에 숨 쉬고 있는 순간이 고마워서 전율한다. 삶의 완성이 어디에 따로 있단 말인가.
다만 한 그루 나무를 심는 이 믿음만이 내 것이다. 어리디어린 ‘산딸’을 미덥게 다독이며, 내가 푸르른 산이 되는 꿈으로 부푼 봄이다.

 

꽃나무를 잘 기르려면 제 생긴 대로 만개하도록 돌보아야 하듯, 자식 농사 또한 그러하지 않을까요? 그 지극한 마음으로 최근 산문집 <꽃>을 낸 소설가 윤후명(국민대 문창대학원 겸임교수) 씨는 ‘꽃 한 송이에 모든 시간이 모여 있음’을 보았습니다. 돌고 돌아 인연을 맺은 ‘산딸’ 이야기에는 과거의 사연과 현재의 열렬한 사랑과 미래의 애틋한 바람이 담겼습니다. 시간에 이어 공간도 확장됩니다. 한 그루의 산딸나무 덕분에 온 산, 그리고 온 우주에서 존재를 다해 떨고 있는 우리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