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2022년 11월 세탁소에는 행복이 흐르고 있었다

고덕동에는 35년 된 작은 세탁소가 있다. 사장님은 매일 아침 7시가 되기 전에 출근해 밤 11시까지 쉴 새 없이 손님을 맞이하고 옷을 다리고 가끔 배달도 하며 15시간 넘게 일한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국민학교 3학년 때 갑자기 돌아가셨다. 막냇동생이 이제 막 백일 지난, 아들만 넷인 집의 장남인 그는 국민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중학교에 가는 대신 돈을 벌기 위해 세탁일을 배웠다. 그 후로 50여 년 동안 매일매일 눈떠서 잠들 때까지 세탁 일을 해왔다. 

그에게 세탁 노하우를 묻자 “손님이 옷을 하나라도 맡기면 작품이라 생각하고 정성스럽게 옷을 세탁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번은 옷을 다리다 보니 주머니가 터진 게 보여서 손님이 따로 주문하지는 않았지만 잘 꿰매 건넸단다. 나중에 그 사실을 확인한 손님이 “아저씨, 존경합니다”라고 했고,그는 “그 말이 아직도 참 기분 좋게 남아 있다”고 했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가게를 처음 열었을 때라고 했다. 서른 살까지 남의집살이를 하다가 알뜰하게 모은 돈으로 세탁소를 열었을 때 남들 눈에는 비좁아 보일지 몰라도 그렇게 뿌듯하더란다. 사실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와 본격적으로 돈을 벌 때부터 월급의 80%는 고향에 부치고 나머지 돈으로 생활을 해야만 했다. 한번은 임신한 아내가 통닭이 먹고 싶다는데 돈이 모자라 한 마리를 못 사주고 조각으로 사준 것이 아직도 미안하다고도 했다. 그렇게 먹을것도 안 먹어가며 열심히 벌어서 이때껏 애들 공부시키고 살아온 것이 뿌듯하다고 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돈도 너무 많으면 힘들어. 이거 열심히 해서 먹고 살면 딱 좋아. 그게 난 행복해.”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우연히 가게에 들른 그의 아들과 딸을 만날 수 있었다. 둘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항상 아침 6시면 나가서 밤늦게까지 일하는 걸 지켜봐오면서 누구나 그렇게 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러다 어른이 되어 사회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야 아버지의 성실함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깨달았다고 한다. 딸은 만약 아버지의 자서전을 쓴다면 첫 문장을 “누군가의 첫째 아들, 누군가의 가장, 누군가의 남편, 그리고 OOO”라고 쓸 거라고 했다. 아버지의 자서전이지만 그에 따르던 막중한 책임감을 알기에 아버지 이름을 제일 먼저 올릴 수가 없을 것 같다는 것이다. 아들에게 아버지에 대해 묻자 이렇게 말했다. 

"저는 아버지처럼 살고 싶어요.” 
어릴 때부터 늘 자신보다 먼저 일어나 출근하던 아버지의 부지런함과 일에 대한 책임감을 닮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보여줄 게 있다며 사장님의 작업대 밑 바닥을 가리켰다. 자세히보니 가운데 부분이 움푹 파여 있었다. 사장님이 매일 서서 일하는 곳만 발바닥 모양 비슷하게 파여 있던 것이다. 그 부분을 아들이 손으로 만지면서 보여주는데, 그 안에 숨어 있는 경외심과 자랑스러움이 고스란히 내게 전해졌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을 가만히 지켜보던 사장님의 표정을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자신의 인생을 바친 가게에서 자녀들이 아버지의 성실함을 자랑스러워하는 것을 지켜보는 사장님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고, 입가에는 행복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알 것 같았다. 왜 사장님이 많은 돈 필요 없이 지금 충분히 행복하다고 했는지를. 손님에게는 ‘존경’의 대상이고 자녀에게는 ‘롤모델’인 사장님의 삶이야말로 행복이 아니고 무엇일까. 세탁소에는 행복이 흐르고 있었다. 그야말로 ‘행복이 가득한 집’이었다.


15년 넘게 카메라를 들고 노숙자부터 대통령까지 ‘사람’을 찾아 길에서 산 박지현 다큐멘터리 디렉터. KBS <다큐멘터리 3일>,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등을 통해 수많은 사람의 삶을 깊이 관찰하며 그가 배운 것은 “나와 타인, 내 인생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무엇인가”였다고 합니다. 신원동 고물상,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노량진 고시촌,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법정 스님 다비식, 독도 경비대까지 길에서 찾아내고 만난 그들은 “일보다 사람을 앞에 두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껴야 할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라는 진솔한 철학을 들려주었다고 하네요. 15년 동안 길 위의 철학자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담아 올가을 펴낸 <참 괜찮은 태도>가 참 괜찮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