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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오늘도 나는 타인의 행복을 꿈꾼다

나에게는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기억들이 있다. 어떤 주기를 타고 찾아오는지는 모르겠다. 나와 직접적인 연결 고리는 없는, 그러나 언젠가 내 옆을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르는 아주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같은 하늘 아래 하루를 시작하며 ‘행복한 내일’을 다짐하던 이들이었을 텐데, 이들의 다짐이 물거품 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가슴 아픈 순간을 조금이라도 바꿔보고 싶은 마음에 계속 그들이 등장하는 꿈을 꾸는 것일까. 

아마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두 딸을 홀로 키우던 마흔아홉 살의 여성이 점심 식사를 배달하다 교통사고로 숨진 사건이다. 그는 아이들의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올해 1월부터 배달 라이더로 일하기 시작하며 하루에 7만 보 이상을 걸었다고 한다. 물론 그렇게 종일 노력해도 세 가족의 생활비를 마련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는 배달을 더 많이 해보겠다고 결심하고는, 이런저런 고민 끝에 면허를 취득하지 않아도 운전할 수 있는 전기자전거를 마련하기로 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더 열심히 배달해서 가족들의 삶을 지탱하고 싶었을 그에게는 꽤 괜찮은 대안이었다. 심지어 2월에는 배달 횟수도 줄여가며 전기자전거를 타는 연습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연습을 마치고 드디어 본격적으로 전기자전거를 타고 도로로 나섰던 3월, 그는 그만 화물차에 치여 그 자리에서 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누구보다도 매일을 부지런히 살아냈을 사람이었다. 하루 7만 보만큼의 빠듯한 무게감을 아주 당연한 마음으로 이겨낼 만큼 그는 두 딸을 얼마나 사랑했을까. 

그리고 나는 자꾸만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세상의 부조리로 잃어버린 다른 수많은 얼굴과 함께. 그렇게 하루하루 울컥하는 순간이 많기에 오늘도 크게 심호흡하며 책상 앞에 앉는다. 나의 행복이 당연한 만큼 타인의 행복 역시 당연한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어떤 글쓰기가 필요할까 생각하면서. 보이지 않는 곳에 사람들의 시선이 닿게 하려면 무슨 단어로 눈길을 사로잡아야 할까 고심하면서. 

나는 ‘행복’이라는 단어를 선뜻 말하기가 어렵다. 행복은 특권이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소확행’에 불과한 아주 사소한 일도 실은 다른 많은 사람에게는 특권일 수 있다. 우리는 ‘행복해야 한다’는 명제가 마치 삶의 최종 목표인 것처럼 생각하지만, 이 명제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해서는 잘 묻지 않는다. 행복이 그저 스쳐 지나가는 순간적 쾌락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의미와 충만함을 부여하는 심리적 바탕을 뜻한다면, 과연 이 바탕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삶의 조건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만약 이 조건이 불평등하게 배분된 사회라면, 행복 역시 불평등하게 배분된 사회인 것은 아닐까? 아무리 힘을 내며 노력해도 가장 기본적인 조건조차 채울 수 없는 이들이 여전히 우리 곁에 있는데, 그들에게 “행복하길 바란다”고 가볍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늘은 타인의 행복을 생각하자. 그리고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세계를 조금이라도 앞당기기 위해 할수 있는 일들을 모색하자. 안부가 끊긴 이에게 연락을 하고, 도움을 청하는 사람에게 응답하고, 차별받는 사람들과 나란히 서서 함께 목소리를 내자. 수해와 재난에 맨몸으로 맞선 이들에게 내가 가진 것을 나누고, 동시에 아무도 더 이상 다치지 않도록 국가가 나설 것을 끈질기게 요구하자. 이 땅의 모두가 행복한 세계에서 살 수 있다면 우리의 하루는 얼마나 반짝이고 아름다울까? 이 세상의 모든 타인이 행복하다면, 그래서 타인을 바라보며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미소 지을 수 있다면, 내 마음은 얼마나 더 활짝 열릴 수 있을까? 그런 내일을 눈앞에 가득 채우며, 오늘도 나는 타인의 행복을 꿈꾼다. 


‘공정公正’, 이른바 지금의 시대정신이라는데 어쩐지 공회전만 하는 것 같습니다. 공정성에 집착하면서도, 알아서 각자도생하게 내버려 두는 게 공정이라고 말하는 한국 사회에 묻고 또 묻는 일을 멈추지 않는 김정희원 교수. 연세대학교에서 학사와 석사, 이어서 미국 럿거스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지금은 애리조나 주립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공정과 정의, 불평등과 차별을 핵심 주제로 삼는 그는 누구도 낙오되지 않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연구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연구 분야는 조직 커뮤니케이션으로 조직 구조와 소통, 권력 격차, 조직 공정성, 대안적 조직 운동, 노동과 번아웃 등의 문제를 다룹니다. 둘째는 건강 커뮤니케이션으로 건강 불평등, 건강의 사회적 요인, 디지털 헬스의 접근성 등을 주로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세 권의 공저·공역서를 출간했고, 올여름 단독 저서 <공정 이후의 세계>를 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