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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7월 스틸 컷과 영화 사이

그의 얼굴을 한참이나 쳐다본다. 그의 뒤로 무심하게 스쳐 지나가는 도시의 사람들, 평범한 도시의 밤. 그러나 그는 일생일대의 위기 한가운데에 서 있다. 순간 포착된 그의 시선과 몸동작은 그의 불안과 공허, 당혹감을 드 러낸다. 광택이 나는 종이 위에 인쇄된 그 사진에 매혹되어 나는 오랫동안 눈길을 거두지 못한다. 지금은 폐간된 <키노>라는 영화 잡지가 있었다. 그 잡지의 성실한 구독자이던 내가 잡지를 구입한 후 항상 행 하던 성스러운 의식이 있었다. 그 의식이란 바로 페이지를 부지런히 넘겨가며 내 마음을 뒤흔드는 스틸 컷을 찾는 것이었다. 스틸 컷. 영화의 특정 장면을 골라내어 현상한 사진. 나는 내가 아직 보지 못한, 그리고 어쩌면 앞 으로 영영 보지 못할 영화의 스틸 컷에 홀려 있었다.

 

스틸 컷은 긴 시간으로 만든 영화의 이야기를 한순간으로 압축한다. 시간이 흐르는 영화가 수많은 동사와 동사와 동사의 연속이라면, 시간이 멈춘 스틸 컷은 단 하나의 명사다. 나는 사진 속 여러 정보가 주는 단서를 통해 이 명사 속에 숨은 동사들을 풀어낸다. 그 과정을 끝내면 나는 다시 스틸 컷이라는 명사로 돌아온다. 이제 스틸 컷은 내가 풀어낸 비밀을 정지된 상태로 보여준다. 이 상상의 회로는 내게 지극한 즐거움이다. 하지만 그 즐거움이 실망감으로 바뀌기도 한다. 실제로 영화를 본 후, 스틸 컷을 보고 상상한 것과는 전혀 다른 질감과 느낌을 지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다. 솔직하게 말하자. 내가 스틸 컷을 보며 상상한 영화는 언제나 실재하지 않았다. 스틸 컷은, 아니 내가 스틸 컷을 통해 꿈꾼 것은 매번 나를 배반했다.

 

‘행복’에 대해 말하면서 스틸 컷을 언급하는 이유는 우리가 ‘행복’을 대하는 과정 자체가 내가 스틸 컷과 영화를 바라보는 관점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숟가락’이라는 단어를 보면 우리는 숟가락에 대한 스키마schema, 즉 숟가락의 형태와 질감, 사용법을 떠올린다. 그런 데 ‘행복’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는 다르다. 이 단어를 듣고 떠올리는 스키마는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때를 생각하겠지만, 다른 사람은 하루의 고된 업무에서 해방되는 순간을 떠올릴 것이다.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이 싫어하는 이가 길을 가다 미끄러져 넘어지는 장면을 그려볼 것이다.

 

이처럼 행복은 단 하나의 스키마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행복은 일관성 없는 수많은 동사와 명사의 나열로 구성되어 있다. 어쩌면 인간이 느끼는 행복이라는 감정의 세부 사항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우주 전체의 정보를 살펴봐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모든 단어가 그렇듯이, ‘행복’이라는 단어는 소통의 효율성을 위해 그 모든 우주의 정보를 생략한다. 그리고 그 생략은 경험의 왜곡을 가져온다.

 

‘행복’이란 단어에 집착하며 그것이 무엇인지 궁리하는 것은, 내가 정지된 영화의 한 장면을 보면서 영화 전체를 이해하려는 것과도 같다. ‘행복’이란 명사, 이 스틸 컷 속에 행복은 없다. 행복은 동사와 동사로 이어지는 삶을 통과해야만 겨우 간신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행복이라는 단어의 스틸 컷과 우리 삶이라는 영화 사이를 왕복하는 것, 행복이 무엇인지 묻는 것은 그런 회로를 따라가는 일이다. 

 

‘뭔가 다른 말들’에 누구보다 진심인 사회언어학자 백승주. 우리 사회를 빚어내고 있는 말의 지형을 분석하는 그에게 ‘행복’이란 말에   대해 물었습니다. “행복이라는 명사, 이 스틸 컷 속에 행복은 없다”라는 답이 왔고요. 그 뒤로 이어지는 이야기에 여러분도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입니다. 백승주 님은 서강대학교 한국어 교육원에서 10년 동안 외국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며 한국어를 타자의 눈으로 보는법을 익혔습니다. 지금은 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한국어교육학과 사회언어학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 <어느 언어학자의 문맹 체류기> <미끄러지는 말들>이 있습니다. 

 

 

글 백승주(사회언어학자) | 담당 최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