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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3월 뭐 할 때 제일 행복해요?

요즘에 사람들을 만나면 버릇처럼 질문한다. “뭐 할 때 제일 행복해요?” 사실 답을 듣고 싶어서가 아니라 “저는 언제냐면요”라고 얘기하려고 묻는다. 매일 아침 50분 정도 걸어서 출근해 사무실 한쪽 욕조에 누워 책을 열 페이지쯤 읽는데, 그 10분이 너무 행복하다. 난독증이 있어 평생 읽은 책이 교과서 빼고 딱 세 권뿐  내가 올겨울 욕조에서 네 권을 읽었다. 주로 사랑 얘기다. 업무 관련 책을 읽으려 시도했는데 전혀 행복하지 않아서 물속 10분만큼은 사랑 얘기를 읽는다. 제인 버킨과 갱스부르를 다 읽고, 슈만과 클라라를 읽는 중이다.

일을 마치면 영화를 하나 틀어놓고 늦은 저녁을 먹는데, 하루 30분 정도 끊어가며 보는 그 영화가 또 큰 행복이다. 그래서 아무 이벤트 없는 날도 두 번은 무조건 행복하다. 회사의 내 방을 내가 직접 청소한다. 방이 꽤 넓어서 일요일 오후 혹은 월요일 새벽에 몇 시간 동안 청소해야 한다. 앞에서 말한 그 욕조도 열심히 닦는다. 청소를 마치고 마룻바닥에 척 누울 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세상의 즐거움은 둘로 나눌 수 있다. 할 때는 힘든데 하고 나면 행복한 운동 같은 즐거움. 할 때는 행복한데 하고 나면 힘든 음주 같은 즐거움. 매일 하는 업무는 ‘운동 타입 행복’이다. 할 땐 괴롭지만 하고 나면 뭐라도 살 수 있게 돈이 입금되니까. 매일의 식사는 ‘음주 타입 행복’이다. 먹을 땐 좋지만 먹고 나면 살찌니 어쩌니 하니까. 그러니 먹은 후 운동은 ‘행복하다 불행하고 불행하다가 다시 행복해지는’ 복잡한 일이다. 이렇게 두 타입으로 나뉜다는 건 어디에나 행복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무튼 일주일에 한 번 사무실 청소하는 행위가 내게 운동 타입 행복감을 준다. 

 

요즘엔 또 별 이상한 데서 행복을 발견한다. 예를 들면 무언가 버릴 때 매우 큰 즐거움을 느낀다. 나는 웬만한 연예인보다 선물을 많이 받는다(이유가 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산 물건은 버려도 선물은 그게 무엇이든 절대 버릴 수가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늘 물건에 파묻혀 살고, 별도의 창고까지 둘 정도다. 선물 중에는 ‘간직용’이 아닌, 이를테면 화장품·향초·영양제같이 사용해야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들이 두 번의 행복을 준다. 테이블 위에 작은 병들을 펼쳐놓고 용량이 큰 화장품이나 약을 소분하는 경건한 작업을 할 때 일차로 매우 행복하다. 다 쓰고 다 먹은 후 그 통을 버려서 서랍에 여유가 생기면 내가 매우 훌륭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이상한 보람을 느낀다. 도대체 왜 이런 걸로 행복하지? 변태인가 싶었는데 나 같은 사람이 꽤 있다고 들었다.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그렇게 소분하고 버리는 작업을 한다. 

 

그렇다면 나는 매일 두 번 이상, 매주 한 번, 매월 한 번은 무조건 행복을 느끼는 엄청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행복을 미분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행복의 반대 개념인 불행과 스트레스가 주로 그런 식으로 오니까. 인터넷 쇼핑할 때 결제하기 직전 오류가 나면 얼마나 화가 치밀어 오르는가. 아끼는 컵이 떨어져 깨지면 또 얼마나 슬픈가. 어제 산 주식이 조금 내리면 얼마나 맘이 아프고, 오늘 판 주식이 내일 오르면 또 얼마나 속 쓰린가. 그 작은 핸드폰 하나 잃어버리면 지구 종말을 느끼지 않나. 불행과 불운과 스트레스가 그렇게 작게 쪼개져서 만날 공격하는데 복권 당첨 같은 큰 행운 하나 기다리다간 인생이 불행으로 꽉 차버린다. 작게 몰려오는 것은 작게 대응해야 한다. 또 대부분의 불행은 늘 예정 없이 와서 뒤통수를 치는데 행복이라도 규칙적으로 적분을 해둬야지 않을까. 

 

월급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은 한 달에 한 번 행복하고, 해외여행쯤 가야 행복한 사람은 행복한 기분을 1년에 한두 번밖에 못 느낄 것이다. 행복이 가득한 집. 엘리베이터가 꽉 찰 만큼 덩치가 큰 사람이 탑승했다고 해서 엘리베이터가 사람으로 가득 찼다고 말하지 않는다. 크고 작은 여러 사람이 정원을 채울 때 그렇게 말할 수 있다. 큰 행복 하나 있다고 행복이 가득하다고 할 수 없다. 작은 행복이 많이 들어 있어야 쓸 수 있는 표현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에게도 “뭐 할 때 제일 행복해요?”라고 묻고 싶다. 사실 답을 듣고 싶어서가 아니라 나처럼 작은 행복들을 적어보고 그걸 일상에 가득 채워보시라고 권하기 위해서다. 적다 보면 행복한 날이 없던 게 아니라 그게 행복인 줄 모르던 날이 있었을 뿐이라고 느낄지도 모른다.아주 오랜 시간 모든 원고 청탁을 거절해왔는데 오랜만에 이렇게 행복에 관한 글을 쓰니 또 행복함을 느낀다. 참고로 마감을 지킨 즐거움은 일종의 운동 타입 행복이다. 

 


욕조 속 독서든, 선물 소분 작업이든 여준영 대표처럼 행복을 미분해보는 리추얼이 꽤 필요하겠다 싶습니다. ‘국내 1위 홍보 회사 대표’ ‘홍보의 신’이라는 다소 낯간지러운, 그러나 그런 수식이 또 제격인 그는 코오롱 그룹을 거쳐 2000년 프레인 글로벌을 창업했습니다. 창업 5년 만에 업계 1위 홍보 그룹으로 성장시킨 후 문화 콘텐츠 전반에서 여러 이슈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배우 매니지먼트, 스포츠 마케팅, 투자 사업, 리테일 사업(조명 브랜드 세르주 무이, 편집숍 스트롤, 녹차를 베이스로 한 브랜드 산노루) 등 프레인 컨설팅 그룹이 벌이는 일은 그야말로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 같습니다.


글 여준영(PCG 대표) | 담당 최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