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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7월 행복 회로는 돌리기 나름

살아오면서 행복에 관해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나는 행복한가?” 하고 자문한 적도 없고, 불행하다고 한탄한 적도 없다. 삶은 행복해야 한다, 사람은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개념이 없었다. 오히려 “삶은 고행”이라는 부처의 말에 동의해, 사는 게 힘든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행복에 대한 기대도 불행에 대한 걱정도 없이 덤덤하게 살아왔다. 그런데 작년에 산문집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가 나오고 나니, 독자들의 한결같은 서평이 “내가 참 행복해 보인다”고 했다. 제가요? 책 어디에도 행복하다는 얘기는 한 줄도 쓰지 않았는데. 딸까지 이렇게 말했다. “내 친구들이 엄마는 정말 행복해 보인대.” 모르는 독자라면 몰라도 딸 친구들이 그렇게 말하는 건 아니지. 한 부모 가정의 가장인걸. 그래서 “어디가? 왜? 뭘 보고?” 그랬더니 “엄마가 불행하진 않잖아”라고 했다.  

 

아, 반박 불가네. 난 불행하지 않으니 행복한 거구나. 그때 처음으로 내가 행복한 사람임을 마지못해 인정하고, 내가 불행하지 않은 이유에 관해 딸과 얘기했다. 나는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옷…이 행복의 조건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친구들은 르크루제나 포트메리온 제품을 쓰지만, 나는 다이소 그릇을 쓰면서도 한 번도 명품 그릇 쓰는 친구를 부러워한 적이 없다. 공주님처럼 귀한 그릇보다 깨져도 아깝지 않은 그릇이 좋다. 당연히 명품 백도 없지만, 딸 가방 빌려 들고 나가는 게 부끄러운 적도 없다. 운전면허도 없으니 차도 없다. 딸이 고등학생 때에는 강북에서 강남까지 논술학원에 다녔다. 학원 앞에 엄마들이 몰고 온 차가 즐비할 텐데, 혼자 먼 길 오는 것이 마음 아프긴 했지만, 딸은 그런 상황에 원망도 하지 않고 주눅도 들지 않았다.  

 

딸이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한 부모 가정으로 살았지만, 그 사실을 슬퍼하거나 부끄러워한 적도 없다. 다양한 가정의 형태 중 하나일 뿐, 우리는 남한테 민폐 끼치지 않고 착실히 세금 잘 내고 사는 건전한 가정이라는 자부심만 있었다. 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자면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부모님과 떨어져서 살았다. 하지만 어린 마음에도 그런 환경 덕분에 내가 훌륭한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에 불행하지 않았다.  나는 “행복 회로는 돌리기 나름”이란 말을 종종 한다. 불행한 ‘자신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으면 행복해질 수 있다. 그렇지만 삶은 즐겁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것.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하면 행복이 인생의 궁극적 목표라고 나오지만, 굳이 그렇게 궁극적 목표로 삼아야 하는가 싶다. 이런 삶도 저런 삶도 내 삶이니 사랑하며 살면 되는 것. 평생 그런 생각으로 살다 보니 남들한테 행복해 보인다는 말을 다 듣는다.   


“불행하진 않잖아.” 정말 말 그대로, 반박 불가네요. 오늘 하루는 이 한 문장에 항복합니다. ‘이름 자체가 추천 기능을 하는 번역가’ ‘역자 후기 장인’이라 불리는 번역가 권남희.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류, 마스다 미리, 오가와 이토, 무레 요코 등 대표적 일본 작가의 작품을 우리말로 옮긴 30년 차 일본 문학 번역가입니다. 그리고 믿고 읽는 번역가를 넘어 믿고 읽는 작가인 그는 에세이집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 <번역에 살고 죽고>를 썼습니다. 얼마 전 펴낸 <혼자여서 좋은 직업>에는 ‘엉덩이 무거운 번역가’로 사는 삶, 그의 엄마·그·딸 3대가 함께하는 왁자지껄한 일상이 담겨 있습니다. “8할이 운인 가성비 좋은 인생”이라는 그의 세상 사는 이야기를 계속 믿고 읽어보렵니다. 

 


글 권남희(번역가) | 담당 최혜경 기자